모두에게 복된 새해
엊그제 사찰 사진 한 장을 보고 환해졌습니다. 제주도 산방사 사진이었는데,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죠. '아기예수 사바세계 오신날 - 명승 제77호 산방산 지킴이 산방사'.
사바(娑婆)세계는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 산스크리트어에서 소리를 빌려온 음차(音借)죠. 종교다원주의라는 건조한 개념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불교가 환영하는 '예수님 탄생'이 따뜻해 보였습니다.
공감이 힘들어진 시대라는 주장을 점점 더 자주 만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제 창작자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공감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이번 주 '새터데이 픽'에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이 있습니다. 공감 거부라는 냉소적 주장에 대한 온기 가득한 반박이랄까요. 노쇠한 두 교황의 느릿한 대화가 대부분인데, 이 완벽한 몰입의 경험이라니.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는데도, 제게는 올해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600년 만에 처음이라는 교황의 중도 사임 무렵의 바티칸.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다음 교황 프란치스코가 될 추기경 베르고글리오 역시 처음에는 공감을 거부하는 듯 보였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사제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쳐다보지도 않죠. 하지만 차츰 자신의 잘못을 고해성사하면서 둘은 친구가 되어갑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신념을 굽힌다는 게 이렇게 멋지고 감동적일 수 있구나라는 감탄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교황의 고해성사를 목격할 때, 제 몸과 마음도 정화되는 기분이더군요.
영화는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2014년 월드컵 결승전을 함께 TV로 지켜보는 두 교황을 마지막에 보여줍니다. 베네딕토 16세는 독일,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죠. 비록 감독의 판타지더라도, 나와 다른 상대에게 우리는 얼마나 마음을 열 수 있을까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라 생각합니다.
극에 달한 진영 논리를 볼 때면, 정말 우리가 같은 나라 국민인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배신이랄까 봐 잘못된 주장을 반복하는 사람도 많아 보입니다. '두 교황'을 보며 느닷없이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가 떠오르더군요.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2019년의 마지막 '아무튼, 주말'입니다.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모두에게 복된 새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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