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강에서 29박30일.. 손녀 껴안은 할머니 시신보자 눈물이"

남양주/조유진 기자 2019. 12.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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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2019 최고 영웅 소방관 전준영 소방장

한국에서 8000㎞ 떨어진 헝가리 부다페스트. 며칠째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동유럽 패키지여행을 온 한국인 관광객들은 5월 29일 밤 다뉴브강의 허블레아니호에 올랐다. 하지만 유람선은 다섯 배 더 큰 크루즈와 부딪혔다. 7초 만의 침몰. 이날 허블레아니호를 탄 한국인 33명 가운데 생존자는 7명이었다.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한국의 유족들은 정부 발표만 바라보며 '제발 한 명이라도 살아오라'며 애태웠다. 늦봄에 시작해 여름까지 이어진 실종자 수색. 실종자 명단의 18명은 결국 사망자 명단이 됐다.

다이빙을 가르치다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소방관이 된 전준영 소방장은 “같은 깊이에 잠수하더라도 그냥 들어갔다 나오는 것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수심 70m 아래로 들어가면 굉장한 충격을 받는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3일 경기 남양주시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 119 특수구조대에서 전준영(38) 소방장을 만났다. 소방청·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쓰오일이 선정한 '2019 최고 영웅소방관'이다. 헝가리 사고 현장에 파견돼 실종자를 수색한 전 소방장은 부다페스트에서의 29박 30일간 하루도 쉴 수 없었다고 했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300㎞ 가까운 타국의 강을 뒤졌다.

뼛조각이라도 찾겠다

―만 10년 경력에 '최고 영웅소방관'으로 선정됐습니다. 최고라는 형용사가 붙지 않은 '영웅소방관' 7인보다도 젊고 경력도 짧은데요.

"소방에서는 수난(水難) 사고 수습을 위해 구조대를 해외로 파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더 주목받은 것 같습니다. 다른 수상자들이 20년, 30년 경력의 선배들인데 어떻게 그분들보다 뛰어나겠어요." 전 소방장은 특수 구조, 특히 수난 구조분야의 정예 요원으로 꼽힌다. 스쿠버 강사, 잠수기능사, 급류 구조, 공기 심해잠수, 특수항공구조, 로프구조 등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올해엔 대심도 잠수, 소형선박조종사 자격증을 땄다.

―타국에서의 구조 활동은 어땠나요.

"일단 저희가 가져간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못 썼어요. 헝가리 측이 빠른 유속과 제한된 시야 때문에 공기를 표면 공급하는 장비만 가능하다고 했어요. '너희가 쓰는 장비를 빌려 달라. 그 장비로 물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장비는 어땠습니까.

"헝가리군에서 오래된 잠수 장비를 지급했어요. 먼지가 뽀얀 게 창고에 있던 장비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희는 다들 수난 구조 전문이기에 자체 정비했습니다. 헝가리 측에서도 '그 장비로 들어갈 수 있겠느냐'며 무안해했죠."

―직접 수중 수색을 했나요.

"수중에서 한국 신속대응팀이 처음 시신을 인양할 때 수색 보조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첫 시신을 인양하고는 안전을 이유로 잠수가 금지돼 제가 직접 들어가진 못했어요. 이후에는 보트·헬기 수색, 육상 수색으로 다뉴브강에서 실종자를 찾았습니다."

―잠수 금지는 무슨 의미였나요.

"처음엔 동양인이라 무시하나 싶었는데 헝가리는 우리나라와 죽은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다르더라고요. 너무 위험하며, 산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뼛조각이라도 찾아 장례를 치르고 싶은 우리를 이해 못 했습니다."

지난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전준영 소방장과 한국 신속대응팀이 허블레아니호 실종자 수색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29박 30일 정글 헤치며 수색

―헝가리의 한 달을 요약해주신다면.

"매일 아침 7시 반 현장에 갔습니다. 강이 300㎞ 정도로 굉장히 길어요. 어제는 여기까지 수색을 했으니까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하자는 식의 상황 회의를 합니다. 해가 지는 저녁 6시 정도까지 수색했습니다."

―보트를 타고 수색하나요.

"걸어 다니는 속도로 보트를 천천히 몰아 물이 고일 만한 구간을 찾았습니다. 시체가 부패하면 물 위로 떠오르면서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폭우 때문에 강변이 침수된 상황이라 쓰레기와 우거진 나무가 문제였어요."

―수색 속도가 더뎠겠군요.

"강 위에서는 쓰레기를 헤치며 가다가 나무뿌리 때문에 보트가 못 가면 배에서 내렸습니다. 땅에서는 한 뼘 넘게 발이 빠지는 뻘밭 위를 나무를 꺾어 가며 전진했어요. 6월의 뜨거운 날씨에 모기도 너무 많아서 정글 같았습니다."

―29박 30일간 총 17구의 시신을 수습했다면서요.

"저는 그중 선체를 인양할 때 시신 3구를 수습했습니다. 제가 감정에 무뎌서 현장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편인데, 할머니와 손녀를 수습할 땐 눈물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지난 6월 허블레아니호 인양 당시, 유치원생 여섯 살 아이는 외할머니에게 안긴 채로 발견됐다. 전 소방장에게는 일곱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이 있다.

전준영 소방장이 올해 최고의 영웅소방관으로 뽑혀 표창장을 받았다. /연합뉴스

'물장사' 한다던 날라리가 영웅으로

―소방관이 된 지 만 10년입니다. 왜 소방관이 됐나요.

"소방관이 되기 전엔 이집트에 있었어요. 세계여행을 다니다가 홍해(紅海)의 후르가다에 눌러앉아 2년간 스쿠버다이빙을 가르쳤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군요(웃음).

"놀러다니던 고등학생 시절, 절 많이 혼내신 선생님이 있어요. 그분이 '특전사 경력을 살려서 소방관은 어떠냐'고 권해주셨어요. 학교 가기 싫으면 안 가고 밤에 놀러다니며 술 마시던 학생이었죠. 선생님께 '물장사' 한다고 농담했다가 '뒈지게' 맞기도 했어요(웃음). 고졸에 가진 건 몸뿐이라 소방관 시험을 봤죠."

―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 늘 각오하나요.

"집사람한테 '나는 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사명감에 먹고사는 사람이다. 나도 저런 사고를 언제든지 겪을 수 있고 당신도 그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예방 주사처럼 자주 이야기해요."

―국내 대형 사고에도 많이 출동했습니다.

"제가 속한 특수구조대는 전국으로 출동합니다. 첨단 장비나 전문적으로 훈련된 인력이 필요한 국가적 대응 상황에 투입됩니다." 올해 전 소방장은 4월 강원 고성군 산불 화재에 항공구조대원으로 출동해 환자 이송을 맡았고, 8월에는 서울 남대문 오피스텔 화재를 진압했다. 지난 11월엔 독도 소방헬기 추락 사고의 실종자를 찾아 심해로 들어갔다.

―헝가리에 함께 다녀온 배혁(31) 소방대원이 지난 10월 독도 소방헬기 추락으로 순직했다면서요.

"혁이도 해군 해난구조대 출신이라 한국에서부터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습니다." 씩씩하게 답하던 전 소방관이 배혁 대원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도 마음으로는 언제든 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 대비하고 있어요. 그래도 혁이를 정말 찾고 싶었어요. 제 맘처럼 안 되더라고요. 안 보였어요." 말끝을 흐리던 전 소방장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자리를 뛰쳐나간 그는 "유품이라도 찾아 가족께 돌려 드렸으면…"이라며 한참을 엉엉 울었다.

―"순직한 대원들이 영웅"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영웅소방관으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독도에서 들었어요. 내 옆에 있던 동료는 사고로 물속에 있는데, 저는 그 공로로 상을 받는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30분 가까이 울면서 인터뷰하던 전 소방관은 "울었다고 소문내면 안 된다"고 했다. "헝가리에서도 독도에서도 국민과 가족들은 궁금하고 답답하셨을 겁니다. 제가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서 실종자를 가족 품으로 보내는 것, 그게 모든 대답을 대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충혈된 눈으로 그가 말했다. 소방영웅은 집에서 어떤 아빠인지 물었다. "어려운 사람을 구해주는 사람, 불 끄는 사람, 집에 잘 안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아들은 열심히 말리는데도 소방관이 꿈이라네요."

전준영 소방장이 헬멧을 착용하고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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