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유럽 건축, 원통형 기둥에서 각기둥으로 바뀐 이유

2019. 12. 2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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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둥엔 시대의 상징물 치장
"장식 없애면 본질 만날 수 있다"
무엇도 표현 않는 각진 기둥 도입
예술가들 '순수성' 지향하려 노력
회화도 수학처럼 '절대 영점' 추구
사각형은 창조적 편집 최소단위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 〈26〉
숫자라고 다 같은 숫자가 아니다. 여론조사를 포함한 사회조사연구에서 사용되는 통계학에는 네 가지 종류의 숫자가 있다. 우선 ‘남자=1, 여자=2’와 같은 ‘명목 척도’다. 모양만 숫자지 수학적 계산이 불가능한, 기호일 뿐이다. 이를 가지고 “남자가 먼저고 여자는 나중”이라든가 “여자는 남자의 두 배”라고 하면 정말 정신 나간 소리다.

두 번째로 ‘1등, 2등’같이 순서만 보여주는 ‘서열 척도’가 있다. 이 또한 계산할 수 없다. 그다음 ‘등간 척도’다. 온도처럼 각 숫자 간의 거리가 동일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등간 척도’는 기준이 되는 ‘절대 영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0도’는 온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특정 지점의 온도를 ‘0도’라고 했을 뿐이다. ‘절대 영점’이 없다면 수학적 계산에 한계가 있다. 반면 몸무게의 ‘0㎏’은 진짜 무게가 없는 거다. 이를 ‘비율 척도’라고 한다. 이 ‘비율 척도’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수학적 계산이 가능하다.

① 말레비치의 ‘흰 바탕 위의 흰 사각형’(1918). 말레비치에게 가장 순수한 형태는 ‘흰색의 사각형’이었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그는 ‘절대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② 몬드리안의 ‘색면들과 회색선의 구성’(1918). 화면이 원색의 사각형으로 가득 채워지며 ‘전경’과 ‘배경’의 구분이 사라진다.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각종 사회조사연구에서 사용되는 숫자의 대부분은 ‘서열 척도’나 ‘등간 척도’일 뿐이다. ‘등간 척도’가 아닌 것도 마치 ‘등간 척도’처럼 취급한다. 예를 들어 ‘아내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매우 사랑한다’(5점)부터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1점)와 같이 ‘5점 척도’로 대답한다. ‘아내 사랑’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심리적 상태를 똑같은 크기의 5조각으로 나눈다는 이야기다. 턱도 없는 소리다! 그런데 그렇게 황당하게 얻어진 숫자를 마치 ‘비율 척도’인 것처럼 통계학적 계산까지 해버린다.

컴퓨터 통계프로그램은 ‘남자=1, 여자=2’의 숫자도 넣으면 그냥 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눠버린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그래프로 계산 결과까지 보여준다. 그래프로 나타난 숫자는 마치 ‘절대 영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절대 영점’이 존재하는 숫자를 객관적이라고 여긴다. 각종 사회조사 지표들은 결코 믿을 게 못 된다는 이야기다.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숫자만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거다. 질문 순서만 바꿔도 결과는 극적으로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난 주 데이트를 몇 번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하고나서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데이트를 많이 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질문 순서를 바꾸면, 행복과 데이트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조사연구에서 사용되는 통계학은 이런 자연과학적 숫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막연한 환상을 이용한 ‘설득의 기술’일 따름이다. 이런 대중조작 기술은 20세기 초반에 생겼다. ‘절대 영점’을 전제로 하는 수학,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기하학적 원리들을 사람들이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말레비치의 ‘영점’으로서의 ‘검은 사각형’은 바로 이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자연과학 그리고 기계기술의 발전으로 이뤄질 미래에 대한 무한 긍정의 세계관이다. 수학적·기하학적 세계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검증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세계다. 통제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계산 가능한 세계’에 대한 회의와 반동은 수시로 일어났다. 그러나 수학적 원리에 기초한 합리적 세계관은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작동한다. 이제는 인문과학도 자연과학처럼 통계학이나 실험으로 대중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심리학이다. 심리학은 통계학을 수용해 가장 대표적인 대중설득의 학문으로 성장했다.

‘원통형 기둥’ 주변의 모든 장식을 제거하라

유럽의 역사적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통형 기둥’. 둥근 기둥은 인간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초반 들어 둥근 기둥은 추방되고, 각진 기둥이 대세가 된다. [사진 윤광준]
20세기 초반, 유럽의 예술가들은 예술에서도 온갖 장식적인 것을 제거하면 가장 본질적인 것과 대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식이 아닌 시대정신을 기초로 미술사를 서술한 독일의 한스 제들마이어는 이 같은 시도를 ‘순수성을 향한 노력’으로 설명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원통형 기둥’을 대체하기 시작한 ‘각진 기둥’이 그 대표적인 현상이라는 거다.

천장을 받치고 있는 ‘원통형 기둥’은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육체, 그리고 인간이 지금까지 이뤄온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기둥 주위로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조각이 붙고, 기둥의 상부와 하부로도 각종 양식의 장식이 붙는 원통형의 기둥은 각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그리스 양식, 고딕 양식 같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양식은 대부분 이 원통형의 기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건축에서 시대를 표현하는 원통형 기둥이 추방됐다. 과거와 단절하는 건축혁명은 ‘각진 기둥’, 즉 그 무엇도 표현하지 않는 ‘순수한’ 기하학적 기둥의 도입으로 완성되었다.

수학적 계산의 기초가 되는 ‘절대 영점’처럼, 회화에서도 ‘영점’이 되는 ‘사각형’을 도입한 말레비치의 시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사각형이야말로 재현과 의미를 제거한 가장 순수한 형태라는 거다. ‘검은 사각형’이 전시되고 3년이 지난 후, 말레비치는 ‘흰 바탕 위의 흰 사각형’을 발표한다. 그 어느 것과도 관련 없는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순수한 예술을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라고 불렀다〈그림 1〉.

원근법은 ‘3차원의 세상’을 ‘2차원 화면’ 위에 정확히 구현하려는 ‘재현의 과학’이었다. 그러나 재현의 회화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들어선 말레비치의 ‘사각형’은 ‘대상의 재현’ 이후의 암흑을 두려워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등대와도 같았다. 새로운 편집(구성 혹은 구축)의 가능성을 명확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드(Grid)’ 즉 사각형을 새로운 회화의 기본단위로 처음 채택한 화가는 클레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들로네였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각형보다는 색채실험에 몰두했다. 결국 창조적 편집을 위한 최소단위로서의 사각형은 추상의 끝을 거침없이 추구했던 말레비치의 것이 되고 만다.

몬드리안, 수직-수평선 철학을 회화로 추구

말레비치보다는 조금 늦게 네덜란드의 몬드리안도 사각형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파리에 머물며 큐비즘 이후를 탐색하던 몬드리안은 1914년 7월 아버지를 병문안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잠시 들렀다. 마침 전쟁이 터졌고, 몬드리안은 파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몬드리안은 고립된 네덜란드에 머물며 자신만의 추상회화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다.

이 시기에 몬드리안에게 강력한 정신적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었다. 수학자이며 신지학자였던 마티외 스훈마르케스(M. H. J. Schoenmaekers·1875~1944)다. 신지학(theosophy·神智學)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신비주의적 종파다. 명상·운동·채식 등을 강조하며 동·서양의 종교교리에 새로운 과학이론을 섞어 삶의 통찰을 강조하는 신지학은 당시 유토피아를 갈망하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이텐이 빠져있던 ‘마즈다즈난’교 또한 비슷한 계율을 추구했던 신흥종교였다. 당시 유럽에는 천국이 아닌 현실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신흥종교들이 난립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스훈마르케스가 지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세상을 서로 반대되는 힘, 즉 수평-수직, 남자-여자, 음-양, 영혼-물질의 결합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 상반되는 힘의 균형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시각화했다. 몬드리안은 스훈마르케스의 바로 이 수직선과 수평선의 철학을 회화로 구현하려했던 것이다.

전쟁 동안 네덜란드에 머물던 몬드리안은 ‘모듈 그리드(modular grid)’, 즉 ‘사각형의 편집’을 시도한다. 대상이 해체된 화면에 다양한 형태의 사각형을 채워 넣은 것이다. 모노크롬의 사각형을 회화의 기본단위로 삼은 말레비치와는 달리 몬드리안은 색채를 담은 사각형을 편집의 기본단위로 삼았다.

같은 사각형이지만 둘의 추구하는 바는 많이 달랐다. 말레비치가 ‘영점(zero degree)’으로서의 사각형을 추구하는 동안 몬드리안은 전경과 배경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데 몰두했다. 말레비치는 ‘편집의 단위’를 고민했고, 몬드리안은 ‘편집의 차원’을 고민했다는 이야기다. 몬드리안의 1917년 작품 ‘선 구성’에서는 모든 이미지가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수직과 수평의 직선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여전히 전경과 배경의 대립이 존재한다. 즉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검은 선들의 집합은 둥그런 형상의 전경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 뒤로 비어있는 배경이 있다.

몬드리안은 이 같은 ‘전경과 배경의 대립’이라는 지각상의 게슈탈트 원리가 작동하는 한, 추상회화는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화면 가득히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사각형을 채워 넣었다. 회화의 기본전제였던 전경과 배경의 구분이 사라지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그림 2〉.

이렇게 극단의 추상주의적 형태언어, 즉 모든 색을 빨강·노랑·파랑의 3원색과 흑백으로 환원하고, 수평과 수직만의 구성을 허용하는 ‘데 스틸’의 원칙이 완성된 것이다. 자연의 우연적이고 특수한 형태인 곡선은 부정된다. 오직 명확한 수직과 수평의 직선만을 사용한다. 사각형과 직선은 언제든 동일하게 반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성이란 반복 가능해야 한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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