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기타신공] 찰리정, 韓기타계서 그 존재감 더 특별한 이유

조성진 기자 2019. 12. 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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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우즈(Willows) 기타로 시연을 보이고 있는 찰리정. [사진=조성진]
깁슨(Gibson) 175 기타로 연주하고 있는 찰리정.
준모기타에서 제작된 '빈티지 사운드' 앰프.
펜더 리버브 앰프(64년)
찰리정의 이펙터 조합. 자세한 내용은 본문 참조.
찰리정의 이펙터 조합. 자세한 내용은 본문 참조.
빠른 코드웍 시에도 마치 클래식 기타의 코드 운지처럼 안정적이며 정확도가 높다.

▶ 음의 낭비 없는 다양한 피킹 뉘앙스의 섬세한 표현력
▶ 블루스/재즈에서 록까지, 탁월한 올라운드 플레이어
▶ 국내에선 보기 힘든 흑인 필도 갖춰
▶ 내년 3월 ‘무반주’ 기타 솔로앨범 발매
▶ 축구 실력도 수준급…어릴 땐 축구선수 꿈꿔
▶ 기타 명문 GIT 최우수 졸업
▶ 기타 선생의 ‘레전드’ 테드 그린 직계 제자
▶ 협찬받아 연주한 야마하 모델은 100배 매출 상승
▶ “펜더 스트라토는 세상 모든 기타의 중심”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현재 국내 기타계의 허리라 할 수 있는 40대 연주자 중에서 가장 맨 앞에 위치하고 있는 일진(선봉) 중의 하나가 찰리정(정철원·42)이다. 한국 기타계에 있어 찰리정의 존재 가치는 매우 특별하다.

찰리 정의 기타는, 그 깊이는 물론 프레이즈에서 불필요한 음이 전혀 없다. 왼손의 손맛과 오른손의 다채로운 표정의 피킹을 통해 음 하나하나에 성격과 외모를 부여한다. 표현의 섬세함은 가히 최정상급이다.

여타 현란한 테크닉의 기타리스트 연주를 접한 후 찰리 정을 들으면 때에 따라선 밋밋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주의 깊게 들어보면 피킹 모션이나 코드웍 타입의 프레이즈 형태 등 일련의 행위만으로도 그의 진가를 엿볼 수 있다.

피킹의 경우 1~12레벨까지 다양한 각도와 방식으로 콘트롤을 하며 음색과 악센트 전반 다채로운 표정을 담아내는 것이다. 코드웍 시에도 마치 클래식 기타의 코드 운지처럼 안정적이며 정확도가 높고 때론 묵직하고 또 때론 경쾌하게 진행하며 그 노련미를 더한다. 순간적일 만큼 잠깐이지만, 왼손 핑거 코드웍시 줄을 잡은 손가락 모두를 떨어대며 공명을 극대화하는 비브라토, 즉 빌 프리셀이나 존 스코필드 등의 연주에서 접할 수 있는 이러한 코드 비브라토도 좋다.

한국인임에도 찰리정의 솔로 프레이즈에선 흑인만의 필이 자연스럽게 감지된다. 단지 연습으로만 익힌 ‘그럴듯한’ 차원이 아닌 본토 고유의 정서다. 하프나 쿼터 벤딩 등등 일반적인 주법을 통한 교과서적인 방식과는 또 다른 손맛이다.

또한, 다른 장르의 연주자끼리 소통이 약한 것과는 달리 찰리정은 재즈/블루스 뮤지션은 물론 신대철, 김도균 등등 전혀 다른 장르의 기타리스트들과도 적극 소통(잼)해 오고 있다. 클럽에 놀러 갔을 때 즉석에서 누가 잼 제의를 하면 쾌히 응하고 그 잼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 의해 동영상으로 배포되기도 했다. 인터넷상으로 찰리정의 이러한 잼은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시스템으로 제작된 게 아니다 보니 음향 등 제반 문제의 아쉬움이 크고 또한 이로 인해 찰리정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긴 힘들다. 직접 그의 연주를 보는 게 정답이다.

그간 한국 기타사는 블루스, 펑키, 포크, 록/메틀 등등 각 장르 명연주자들을 배출해 왔다. 특히 탁월한 록 기타리스트들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양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재즈, 블루스, 블랙뮤직(펑키 등등), 재즈블루스 등 찰리정이 추구하고 있는 기타 스타일은 그간 한국 기타씬이 그 외연과 내연을 더 넓혀야 할 분야였다. 이 점에서 국내 기타씬의 다양성 차원에서도 찰리정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고 소중하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찰리정도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출발하진 않았다. 선배 세대의 장점을 끊임없이 흡수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특장점을 개발해 갔던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발매한 찰리정의 초기 연주곡 중 하나인 ‘When Did You Leave Heaven?’를 들어보라. 눈을 지그시 감고 들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래리 칼튼의 곡으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똑같다. 래리 칼튼이 록 성향을 내포한 일렉트릭을 지향하던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의 기타 스타일 바로 그것이다.

이런 면에서 래리 칼튼은 찰리정에게 많은 영향을 준 기타리스트 중 하나임은 자명하다.

찰리정은 내년 3월 오로지 기타 독주 만으로 전곡을 채우는 무반주 솔로기타 앨범을 발매한다. ‘찰리정 솔로기타 Vol.1’이란 타이틀로 Vol.3까지 3장의 시리즈 솔로기타 앨범으로 국내에선 흔치 않은 시도다.

볼륨1은 블루스/가스펠 스타일을 테마로 100% 어쿠스틱 기타 인스트루멘틀로만 꾸미거나 또는 거기에 한 곡 정도만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할 예정이다. 볼륨2는 재즈 스탠더드로 꾸밀 예정이고 볼륨3은 발라드 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볼륨2~3은 그간 찰리정이 써놓은 자작곡이 주를 이룰 것 같다. 온라인 음원 및 CD도 함께 출시될 예정이다.

“오로지 기타만의 무반주 기타솔로집 발매를 결심하게 된 건 홍대 ‘카페더블루스(Cafe the Blues)’ 클럽에서의 경험이 큰 자극제가 됐죠. 1주일에 한 번씩 카페 더 블루스에서 기타로만 시간을 채우는 경험을 계속하는 가운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찰리정은 1977년 충북 청원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내 철도 유지/보수를 총괄하던 ‘한국궤도’란 회사의 공장장이었다. 당시 한국궤도는 철도공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 분야 전문회사였다.

찰리정이 처음 기타를 잡게 된 것은 기타리스트가 나오는 ‘에디’라는 영화에 감동받은 중1 때였다. 당시 3만 원을 주고 국산 통기타를 구입해 ‘기타 코드집’ 등을 보며 독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와 어린 찰리 정의 기타를 연주했는데 아버지의 노련한 연주 솜씨에 충격받게 된다.

“아버지가 그렇게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인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제 음악 인생 첫 번째 충격이었죠. 이에 자극받아 엄청난 연습 끝에 몇 개월 만에 에릭 클랩튼(클랩턴)의 ‘Tears in Heaven’도 연주할 수 있게 됐어요.”

음악(기타리스트)에 대한 꿈을 갖긴 했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찰리 정은 결국 관광 분야가 향후 비전이 좋다고 여겨 경주대에 입학해 ‘호텔경영’을 전공한다. 그러나 공부보다 음악과 기타에 더 몰두해 1년 동안 전공보다 학교 동아리 밴드 활동을 열심히 했다.

96년 군에 입대한 찰리정은 수색대로 배치돼 “해병대를 능가할 만큼 빡세다”는 군생활을 하게 된다. 어릴 때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선수를 꿈꾼 만큼 군에서도 축구를 워낙 잘했던 관계로 그는 어느 날 연병장에서 프로 선수들과의 시합에 뽑힌다. 이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하던 중 무릎을 심하게 다쳐 결국 의가사 제대를 하고 말았다.

‘의가사 제대’가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을 때였던 만큼 여러모로 많은 고민 속의 나날을 보내던 99년의 어느 날 그는 LA로 이민 간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비행기 값만 들고 무조건 LA로 와라. 네가 할 일이 정말 많은 곳”이라는 친구의 말과 위로에 동화된 그는 무작정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99년은 IMF로 인해 생계형 출국자나 해외로 도피하는 경제사범 등이 넘쳐날 때라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 비자 발급이 까다로울 때였다. 그런데도 그는 비자 발급을 위한 심사에서 “아버지 직업이 뭐냐?”는 단 한마디의 질문만 받고 무사히 비자를 발급받았다. 국가 주도 기간사업인 철도유지/보수 관련 회사에 재직 중이던 아버지의 직업이 그만큼 확실한 크레딧이 됐던 것.

정작 문제는 도미 이후였다.

비행깃값만 달랑 들고 도미한 만큼 그는 생계를 위해 청소부 등등 각종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베벌리힐스 대저택의 청소부로 일하던 당시엔 타마(Tama) 드럼 사장 저택도 청소한 적이 있다고. 이외에 수색대 복무 시 특공무술 연마로 유단자가 됐는데 이 자격증이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 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정철원의 ‘철원’이란 이름이 발음상 찰리와 비슷해 ‘찰리’로 사용하며 이후 찰리정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그는 우연한 기회에 미국의 세계적인 실용음악학교 MI(Musician Institute)를 견학하게 됐는데, 이때 기타학부인 GIT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2000년 GIT에 입학한다.

세계적인 기타 전문학교로 명성 높은 GIT는 그 네임밸류 만큼 학비도 비싸 찰리정은 이 때문에 야간택시 운전, 웨이터, 당구장 청소부 등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GIT 수업을 받으며 한국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여러 광경에 놀라고 또 놀랐어요. 특히 스캇 헨더슨을 비롯한 유명 교수들의 수업은 그 수준과 높은 퀄리티라는 점에서 충격 자체였죠. 따라서 한국에서 기타 연주하던 것과는 근본부터 달랐던 관계로 학기 초반엔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재즈-퓨전-스탠더드 등의 이론과 실기 모두에서 주임 교수로부터 자주 지적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찰리 정의 머리에 갑자기 전구가 켜진 듯 시야가 훤해지며 GIT 수업 전반이 쉽게 이해되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빠르게 실력이 업그레이드되며 학교 수업 중반기 이후부턴 동급생들이 수업 후 그 내용을 질문하고 배울 정도였다. 결국 그는 2002년 GIT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하게 된다.

찰리정은 졸업과 동시에 LA를 중심으로 흑인클럽 및 코리안타운 등 여러 곳에서 연주하며 이름을 알려 갔다. 그리고 이즈음 미국에서 활동 중이던 한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을 만나게 된다. 찰리 정은 조윤성 트리오의 멤버로 LA를 중심으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활동했다.

“같이 연주하며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재즈 피아니스트가 있었나 할 정도로. 아버지가 기타를 치는 모습에 이은 제 생애 두 번째 충격이죠. 조윤성 님을 통해 제 연주세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된 건 물론입니다.”

조윤성 트리오 멤버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찰리정 트리오 및 R&B 밴드 ‘벨 다이아몬드’의 멤버로도 활동을 병행했다. 그는 벨 다潔틘捉恙【?연주하며 백인과는 너무 다른 고유의 흑인 정서 및 흑인음악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 됐다.

2003년 찰리 정은 생애 3번째 충격이자 일생일대 자신의 음악인생 최고의 멘토를 만나게 된다. 당시 LA의 노스할리우드엔 전설적인 기타 선생 테드 그린(Ted Greene)이 살고 있었는데 이를 알게 된 찰리정은 그를 찾아가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테드 그린은 학교 강단보다 개인 레슨을 통해 수많은 기타리스트를 배출한 기타 선생 사상 가장 위대한 ‘레전드’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주법/테크닉의 기술적인 면보다 하모니 등 음향적 측면과 코드 어프로치 등에 해박했으며 그의 제자 중엔 스캇 헨더슨도 있다. 하지만 레슨 내용이 너무 수준이 높아 스캇 헨더슨 조차 그에게 배울 때 “너무 어렵다”는 표현을 자주 썼을 정도라고.

찰리정은 테드 그린에게 무려 2년 동안 기타 레슨을 받으며 기타 전반의 깊이와 이해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음악적 깊이는 물론 식견/통찰력 등등 다양하게 익힐 수 있던 최고의 시간이었죠. 음악적 정신적인 차원에서 그분은 내 음악 인생 유일의 멘토입니다.”

워낙 명성이 자자했던 테드 그린인 만큼 유럽 등 세계 전역의 명문 대학 및 여러 곳에서 온라인으로라도 좋으니 레슨을 해달라는 의뢰를 많이 받았음에도 테드 그린은 학생과 선생은 1:1로 마주 보며 학습을 해야 한다는 원칙 하에 온라인 강의는 거절해 왔다. 강습비 역시 당시 유명 기타 선생들이 회당 평균 60~80달러를 받았음에도 테드 그린은 25불을 고집했다. 그렇게 많이 받을 이유가 없다며.

물론 스캇 헨더슨이 그랬던 것처럼 찰리정에게도 테드 그린의 강의는 너무 어려워서 반드시 복습해야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래서 찰리정은 방과 후 복습이란 이유를 들어 테드 그린의 레슨을 그의 허락을 받아 동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레전드 선생의 이 레슨 영상은 분량도 무려 2년 치나 되는 만큼 그 가치에서도 단연 압도적이다.

“혼자만 알고 있기엔 내용이 너무 아까워 그간 유튜브 채널을 비롯한 그 어떤 곳에도 아직 한 번도 올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타를 배우고자 하는 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조만간 적당한 기회가 되면 테드 그린의 가족들과 상의해 레슨 영상을 공개할까 합니다.”

미국에서 음악인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음에도 찰리 정은 2006년 영구 귀국하게 된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실에 빠진 부모 곁을 지켜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귀국 후 부모와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던 찰리정은 2007년부터 다시 심기 일신해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더불어 이때부터 2014년까지 서울재즈아카데미 기타학부 및 호원대 실용음악(2009년~현재)과도 출강 중이다.

또한, 귀국후 자신의 밴드는 물론 많은 세션과 학교 강의 그리고 로벤 포드와 래리 코리엘 등 세계 최정상의 기타리스트가 한국을 찾았을 때도 그들과 협연을 하며 그 분야 정상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였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으로 찰리정은 MI 졸업생 성공 스토리에도 등재됐다. MI 측에서 그의 맹활약을 주시한 후 관련 활동상을 MI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자랑스러운 MI 동문’으로 널리 알렸던 것이다.

찰리정은 학교 강의 이외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개인 레슨도 하고 있지만 월평균 3명 정도로 제한을 두고 학생을 받는다. 일반인에서 입시/전공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이 레슨을 받지만 인원 제한 때문에 그에게 수업을 받는 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찰리정의 실력과 유명세 때문에 인원을 늘려달라는 여러 유혹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적은 인원을 고집한다.

“제겐 월평균 3명 정도가 제일 적합한 것 같아요. 인원이 많아지면 그만큼 집중도도 약해질 수 있고 학생 개개인에게 좀 더 신경을 쓸 겨를도 그만큼 적어지는 거니까요.”

기타리스트 인터뷰를 할 때마다 개인적인 궁금함으로 레슨 금액도 물어보곤 하는데 찰리정이 받는 가격을 듣곤 깜짝 놀랐다. 역량이나 네임밸류 모든 면에서 정상급 연주자의 레슨비로는 너무 ‘싼’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현지에서 테드 그린과 같은 ‘레전드’ 선생님으로부터 레슨을 받을 때 이미 수강료가 비싸선 안된다와 같은 그분의 마인드를 저도 모르게 견지하게 된 것 같아요.”

“5~6년 전까지만 해도 화성악 전반, 스케일, 솔로 라인 진행, 기교 등등 일반적인 것들도 레슨에서 다뤘지만 이젠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들은 쉽게 얻을 수가 있어요. 따라서 지금은 이런 것보다는 음악/연주 전반에 대해 좀 더 깊이를 더하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표현어법의 강화’와 같은 다양한 노하우를 레슨에서 강조하는 편입니다.”

찰리정은 유명세만큼 그간 다양한 기타를 연주했지만, 현재 윌로우즈(Willows) 기타와 깁슨 커스텀 175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메인기타인 윌로우즈 굴?클래식 찰리정 시그니처(클로프만 픽업)는 류지수 윌로우즈 대표가 찰리정을 위해 많은 공을 들여 제작해 준 시그니처 기타다. 물론 찰리정이 원하는 형태를 100% 수용해 6개월 이상의 제작 기간이 소요돼 완성한 것이다.

“윌로우즈 기타는 목재 등 소재의 퀄리티도 매우 높고 기술적인 완성도도 뛰어납니다. 기타 제작 수준이라는 점에선 캘리포니아에 전혀 뒤지질 않아요. 결코 깁슨에 밀리지 않는 파워풀함, 그리고 묵직하고 두꺼운 소리도 인상적이고 소리의 밸런스 또한 탁월합니다.”

기타계의 가장 ‘핫한’ 연주자인 만큼 찰리 정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일화가 있다.

그는 2012년경 야마하로부터 SA2200 기타를 협찬받아 사용한 적이 있다. 저 유명한 깁슨 ES335 타입의 모델이었는데, 야마하 기타 라인 중에선 매우 고가의 악기이다 보니 당시 국내에선 1년에 2~3대 정도 팔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찰리정이 야마하 측으로부터 이 모델을 협찬받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이 기타는 연간 200대 이상 판매됐을 정도다.

비록 ‘록의 르네상스’ 시대에 비교한다면 펜더 기타의 찬란함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일렉트릭 기타는 펜더에 대한 끊임없는 긍정/부정의 변증법적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찰리정은 펜더 기타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그 표현에 저도 100% 공감합니다. 펜더 텔레캐스터는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기타죠. 정말로 매력적인 소리를 냅니다. 또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는 세상 모든 기타의 중심입니다. 리드악기의 표준(스탠더드)이죠. 연주자에 따라 가장 다채로운 소리를 구현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그 깊이와 넓이로 볼 때 단연 펜더가 최고입니다.”

일렉트릭 기타의 양대 산맥 격인 펜더와 깁슨, 깁슨과 펜더를 비교한다면?

“펜더는 오래 사용하면 할수록 그 반응이 좋게 나타나는 기타입니다. 반면 깁슨은 오래 사용할수록 기가 막히는 명기로 화하는가 하면 퇴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실망스럽게 되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 깁슨은 악기의 편차가 있습니다.”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깁슨 커스텀 175의 경우엔 소리가 매우 깊고 좋은 울림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표현하려는 감정을 그때그때 제대로 전달해 주죠. 소리의 전달력이란 차원에서도 막혀 있지 않고 힘있게 뚫고 나오고요. 깁슨 레스폴 골드탑도 힘이 좋고 소리도 잘 뻗어 나갑니다. 나는 좀 두꺼운 네크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런 면에서도 충분히 만족감을 주죠.”

“탐 앤더슨은 현대음악 전반과 세션용으론 베스트입니다. 그러나 빈티지한 느낌은 좀 아쉽죠. 서(Suhr) 기타도 잘 만든 악기지만 펜더나 깁슨과 같이 가슴을 치는(울리는) 면은 없는 것 같아요.”

찰리정은 지난 10일 펜더 기타 국내 유통을 총괄하는 기타네트(대표 박종호)의 라이브라운지 개관 기념 및 펜더 아메리칸 울트라 시리즈 론칭 때 행사장을 찾아 펜더의 야심작 어쿠스타소닉을 시연해 보기도 했다.

“펜더 어쿠스타소닉 텔레캐스터를 처음 연주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일렉트릭과 어쿠스틱 모두를 재현하는 퀄리티가 대단히 훌륭했어요. 범용성이란 차원에서 정말로 탁월한 신모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타 줄도 통기타에서 사용하는 스틸 줄이고 그 외 몇 가지 특장점으로 볼 때 색다르고 신선한 사운드를 원할 때 이걸로 연주하면 매우 좋을 듯합니다.”

“앰프는 펜더, 마샬, 메사부기 등등 많이 경험해보기 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음악엔 펜더 앰프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기술력이 발달하며 요즘 앰프들 역시 소리가 더욱 깔끔해지고 있지만, 제작방식이 다르다 보니 펜더 빈티지 앰프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이는 요즈음 앰프들에서 느끼는 많은 아쉬움이죠. 블랙페이스와 같은 빈티지는 정말 탁월합니다.”

찰리정은 미국에서 어렵게 구한 펜더 리버브 앰프(64년)와 준모기타 ‘빈티지 사운드(Vintage Sound)’ 앰프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빈티지 사운드 앰프는 2016년부터 인연을 맺었는데 빈티지 성향이 강해 소리가 마음에 들고 잡음도 많이 해결된 앰프다. 세션 녹음 시 거의 이 앰프만 사용한다고.

물론(Moollon) 기타 박영준 대표가 찰리정에게 ‘빈티지 사운드’ 앰프와 좋은 궁합을 이룰 거라며 ‘물론 스피커(앰프) 케이블’을 줬다. 이 케이블을 사용하면서 그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됐다.

“앰프 케이블 하나로 전체적인 사운드 전반을 이렇게도 바꿀 수 있다는 것에 너무 놀랐습니다. 이 물론 케이블을 사용하면서 빈티지 사운드 앰프만이 가진 특장점이 대폭 살아나 소리도 꽉 찬 느낌에 뛰어난 밸런스, 음역대까지 확장되는 등 정말 감동 그 자체였어요. 케이블 하나를 교체했는데도 그 효과는 마치 앰프 캐비닛을 바꾼 것 이상의 효과를 얻었습니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박영준 대표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기타 줄(Strings)은 가장 유명한 다다리오와 어니볼의 경우 여타 줄보다 쩌렁쩌렁하고 탄성도 좋죠. 블랙스미스의 경우 텐션감도 좋고 가격대비 우수합니다. 글쎄요.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지만 ‘엔틱’하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앞으로 국내 음악인 중에선 한영애 선배님과 꼭 한번 같이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해외의 경우 래리 칼튼입니다. 그와는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아쉽게 아직까지 협연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어요.”

찰리정은 국내 기타리스트들들과 다양하게 교류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혹시 기술적, 감성적인 면 그 외 제반을 고려할 때 누구를 높이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기타를 전반적으로 가장 잘 다룰 줄 아는 ‘공력’이란 점에선 샘 리 선배를 꼽습니다. 난이도 높은 테크닉의 경우에도 매우 부드럽게 표현하죠. 얼마 전 샘 리의 집에서 함께 잼을 한 적이 있는데 여전히 대단했습니다. 젊은 시절과 비교해 조금도 손색없는 기술적 표현과 감성이었어요. 그리고 이경천 선배도 언급하고 싶어요. 그분은 건반도 잘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라서 일반적인 기타리스트들과는 다른 접근/표현력을 보이곤 해요. 신선하고 센스가 있습니다.”

찰리정은 작곡도 게을리하지 않아 지금까지 100여 곡이 넘게 곡을 썼다. 그중 현재까지 20~30여 개만 공개된 상태다. 그간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곡으로 이어진 것.

천하의 찰리정이라지만 결국 그도 인간이다. 뮤지션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슬럼프라는 벽을 그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나야말로 천재가 아닌 대표적인 노력형 연주자입니다. 한창 바쁘게 활동하며 존재감도 높아지던 2014년경부터 슬럼프가 왔던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 좀 더 표현하고 싶은데 어느 순간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던 겁니다. 이걸 깨달은 순간 약 2년 정도 힘들었지만 그때 나름대로 슬럼프 극복 방법을 익힌 것 같아요. 그것은 포커스(Focus), 즉 순간에 대한 강한 집중력입니다. 슬럼프 때라도 즉흥연주 시 이러한 포커스에 더욱 스스로를 강하게 고무시켜야 하죠. 평소에도 어려운 자기집중, 즉 멘탈적으로 하이레벨의 영역을 슬럼프 때에 더욱 강조한다는 게 언뜻 납득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로 시도해보면 슬럼프가 극복된 후 정신적 음악적으로 더욱 강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키스 자렛의 연주를 들어보면 그 집중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극도의 자기 집중력이 없인 나오기 힘든 차원이죠.”

“기타란 그 어떤 것들과도 차별화되는 고도의 예술성을 가진 악기입니다. 특히 블루스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악기죠. 따라서 후배들이 유행과 타성에 젖지 않고 깊이가 있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쪽으로 더 노력해주면 좋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지만 찰리정은 연주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헬스클럽)을 한다. 주량도 소주 3병 이상은 거뜬하지만 연주 컨디션 유지를 위해 그 수준만 마시려고 하며 음주 빈도도 일주일에 1회 정도만 하는 편.

각지 공연을 도는 가운데 어느덧 이러한 투어가 이젠 여행이란 취미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다.

“몇 년 전 일본 후쿠오카와 나고야 공연을 했는데 그곳의 인상적인 풍경에 매혹된 적이 있어요. 포르투갈도 기억에 남습니다. 포르투갈은 남미적 성향의 이국적 정취에 유럽의 고풍스러움이 함께 하는 곳이라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경치가 일품이죠.”

좌우명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찰리정에게 기타란?
“항상 부모보다 더 가까이 있던 내 일부, 바로 내 삶(인생)이다.”

사용장비

▶ 기타
윌로우즈(Willows) 선셋 클래식 찰리정 시그니처(클로프만 픽업)
깁슨 커스텀 175
테일러(Taylor) 기타
길드(Guild) 기타
그외

▶ 앰프
준모기타 ‘빈티지 사운드(Vintage Sound)’
펜더 리버브(64년)

▶ 이펙터
보스(BOSS) 디지털 리버브 RV-5
블랙베리 잼(Blackberry JAM) 페달
스트리몬 플린트(Strymon Flint)
이븐타이드(Eventide) H9 하모나이저
BB 프리앰프
RC 부스터
그 외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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