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유튜버 비결? 6년간 3300개 영상 올려봤나요?

이혜운 기자 2019. 12.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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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구독자 252만명, 도티 나희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샌드박스네트워크 본사에 있는 자신의 캐릭터 인형 옆에 선 '도티' 나희선 공동 창업자. 그는 "지상파와 유튜브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형 탤런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전 세계적인 유튜버 선망(羨望) 시대.

지난 7월 미국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폴과 레고가 미·영·중 8~12세 어린이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장래 희망 조사에서 미국·영국은 유튜버가 1위, 중국은 5위였다. 한국도 비슷하다. 지난 10일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초등학생 장래 희망은 운동선수·교사에 이어 유튜버가 3위다. 직장인들도 한번쯤 유튜버로 월급 이상의 수익을 꿈꾼다.

구독자 252만명의 '도티' 나희선(33)은 국내 1세대 유튜버다. 2018년 국내 게임 채널 최초로 구독자 200만명을 넘었다. 유병재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 기업 '샌드박스네트워크(이하 샌드박스)'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 2015년 창업된 샌드박스는 현재 340여명의 유튜버 등이 소속된 국내 대표 크리에이터 엔터테인먼트 그룹. 연 매출 약 283억원, 누적 투자액 400억원이다. 2017년 EBS와 교육 콘텐츠 기업 '스쿨잼'이 조사한 초등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순위에서 도티는 김연아, 세종대왕, 유재석에 이어 4위였다. 서울 대치동 샌드박스 본사에서 만나 물었다. 도대체 스타 유튜버가 되는 비법은 무엇인가. 대답은 '성실'이었다.

전교 1등 모범생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은?

"직업으로서의 꿈은 없었다. 막연히 '훌륭한 사람'이라고 썼다. 어릴 때 위인전을 많이 봐 위인전에 나올 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정도 읽었길래.

"앉은 자리에서 대여섯 권은 읽었다. 활자 중독이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세종대왕이다."

―공부는 잘했나?

"중학교 때는 반에서 3~4등 정도. 고등학교 때는 전교 1등을 거의 안 놓쳤다. 또래 집단에서 '1등'이 주는 타이틀은 꽤 크니깐. 내심 뿌듯했다."

―어떻게 공부했나?

"난 마음 불편한 상태로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 재미가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이 스트레스를 주니깐. 그래서 숙제든 공부든 빨리 하고 몰입해서 놀았다. 내신으로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연세대에 수시 합격했다."

―전공은?

"원래는 국어국문학과였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 전국대회 입상도 했다. 그런데 시쓰기 수업에서 C플러스 학점을 받고 '프로의 세계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바로 흥미가 떨어지더라. 그때 법학이라는 학문이 매력적으로 보여 전과했다."

―법조인을 꿈꿨나?

"처음엔 그랬다. 사법고시 준비도 했다. 그런데 6개월 하고 깨달았다. '여기도 내 길이 아니구나'."

―뭐든 빨리 깨닫나보다(웃음).

"내 한계를 잘 알았던 거 같다(웃음). 사실 변명이었을 수도 있다. 붙잡고 했으면 됐을 수도 있는데. 그러기엔 노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휴학하고 보습학원 강사 몇 개월 하다가 군대에 갔다. 스물다섯 살 때였다."

無스펙의 PD 지망생

―군 생활은 어땠나.

"일과를 마치면 생활관에서 TV를 봤다. 그때 PD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때 CJ 슬로건인 '문화를 만든다'는 말도 멋졌다."

―어떻게 준비했나.

"난 스펙이 전무했다. 봉사활동, 학회 경력, 인턴십 하나 없었다. 토익 점수도 바닥이었다. 그때 유튜브를 알게 됐다. 당시 싸이의 강남스타일 때문에 유튜브가 화제였다. 개인 채널을 개설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몇 개월 열심히 하면 구독자 1000명은 모을 수 있겠지. 그러면 자기소개서 한 줄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첫 동영상이 게임 '마인크래프트 올클리어(정복하기)'다.

"원래 하던 게임은 아니다. 당시 유튜브나 아프리카 TV 상위권 방송을 보니 마인크래프트 순위가 높더라. 이 게임은 '디지털 레고' 같은 거다. 가상의 스튜디오에서 내가 퀴즈쇼도 할 수 있고 추격전도 할 수 있다. 기획·연출하는 부분이 PD 업무와도 비슷하고. 그래서 시작했다. 직접 해보니 노동 강도가 엄청났다. 기획·영상·편집·유통·편성을 혼자 다 하니 하루에 3~4시간도 못 잤다. 20분 안팎의 영상이지만, 촬영하고 단순 컷 편집만 하는 데도 몇 시간이 들어갔다."

―인기 비결은.

"계기는 없었다. 스노볼 굴리듯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을 올리다 보니 알고리즘에 추천할 만한 비디오라고 뜨더라. 유튜브는 누적형 플랫폼이니까."

―전업 유튜버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때는.

"유튜버는 광고 수익이 100달러 이상이 되면 구글에 환전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때까지 3개월 걸렸다. 10만원 정도를 받고 전업을 결심했다. 돈을 벌었다는 건 내 콘텐츠가 정당한 가치로 평가됐다는 거니까."

―일반 직장 취업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 반대는 없었다.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지금이라도 원서 60~70개 넣고 붙는 곳에 취직한 후 유튜브는 취미로 해라'고 조언했다. 결국 원서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유튜버들의 탈세가 사회 문제로 거론된다.

"유튜버는 구글에서 환전해 보내주기 때문에 외화 흐름이 공개돼 탈세할 수 없는 구조다. '유리지갑'이다. 최근 문제가 된 유튜버들의 탈세는 구글에서 받는 광고 수익이 아닌 PPL 등 추가 수익에 대해 신고를 안 하거나 실수로 누락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불법 행위는 유튜브뿐 아니라 모든 경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유튜버에게만 초점을 맞춰 탈세의 온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샌드박스네트워크 창립 4주년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공동 창업자 도티 나희선(왼쪽)과 이필성 대표. / 이필성 인스타그램

절친과 강남 결의

―샌드박스는 어떻게 창업하게 됐나.

"유튜버를 6개월 했을 때 '세계 온라인·비디오 기술 콘퍼런스(Vidcon)'에 참석했다. 내 일의 사명감을 찾고 싶었다. 난 영어를 못하니깐 절친이면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 이필성에게 '비행기표 값 대줄게 같이 가자'고 꼬셨다. 필성이는 구글 직원이었다. 그래서 갔는데 이미 2014년 미국에서는 1인 미디어에 대한 담론이 활발했다. 디즈니나 드림웍스 같은 기업도 관심을 보였다. 둘이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그해 봄 사명을 짓고 법인 등록서를 작성했다. 역삼동 구글코리아 회의실에서였다."

―첫 사무실은?

"삼성동 월세 100만원의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회사가 본격적으로 운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후 필성이가 '미안하다. 난 구글을 나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약 네가 구글을 포기하면 내가 유튜버로 버는 수익 다 줄게. 난 월급으로 200만원만 줘. 넌 그 돈으로 회사 운영하고 하고 싶은 거 해'라고 제안했다. 이 대화를 나눈 게 강남역에 있는 맥줏집이다. 우리는 이 일을 '강남 결의'라고 부른다. 그때부터 직원 두 명이랑 넷이서 시작해 지금은 직원 214명이다."

―200만원이 당시 총수입의 10분의 1은 넘나?

"훨씬(웃음). 아마 혼자 크리에이터 생활했으면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거다. 그런데 이걸 통해 유튜버들이 존중받게 하고 싶었다. SM 소속 가수라는 게 그 자체로 가치가 높아지듯 샌드박스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지상파의 미래에 비관적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업력을 가지고 여전히 강점을 가지는 부분이 많다. 범대중적인 인지도도 높고. 내가 요즘 방송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난 경계를 허무는 탤런트가 되고 싶다. 부모님은 요즘에야 '내 아들 TV 나온다'며 좋아하신다. 유병재씨를 스카우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6일 전 세계 가장 많은 구독자(약 1억명)를 가진 유튜버 '퓨디파이'가 "너무 지쳤다"며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나도 올해 초 번아웃이 돼 몇 개월 정도 쉰 적이 있다. 그전까지 6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약 3300개의 영상을 올렸으니 지친 거다. 휴가도 가본 적이 없다. 매일 마감에 쫓기는 신문사 편집국장의 심정이 이럴까. "

―앞으로의 계획은?

"계속 유튜버를 하고 싶다. 환갑잔치도 유튜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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