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가르쳐야할지.." 엄마들도 두려운 유아 성교육
경기도 성남의 한 어린이집에서 만 5살 여아가 또래 아동으로부터 상습 성폭력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아이들을 위한 성폭력 예방 및 성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한 현 제도권에서의 성 교육이 추상적이고 위기 대처 중심이어서 성 인지가 빨리지고 있는 달라진 환경에서 아이들을 성과 관련된 사건, 사고로부터 보호하고 건전한 성 인식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보다 구체적인 대처 요령과 함께 아이들의 발달 속도에 따른 맞춤형 성교육 틀이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교육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가정에서도 아이들의 성장 발달 정도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기초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피해자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아동의 가해를 방지하기보다는, 피해 예방 및 대처 차원에 그친다. 표준보육과정의 성폭력 예방 교육의 경우 '아동이 학대·성폭력·실종·유괴상황 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명시하고 있다. 또 아동복지법 제1장 11조(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5년마다 아동의 양육 및 생활환경, 언어 및 인지 발달, 정서적ㆍ신체적 건강, 아동안전, 아동학대 등 아동의 종합실태를 조사해 그 결과를 공표하고, 이를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에 반영하여야 한다'는 의무사항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개별 아동에 대한 진단이 어렵고, 사후 대처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피해 아동에게는 구체적인 대처 방법을 알려줘야 하고, (잠재적) 가해 아동이 될 수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인식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공 대표는 "혹시 누군가 만질려고 하면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가 어른에게 도움을 청해라"는 등의 구체적인 방법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의 성교육 제도가 변화하는 아이들의 발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발달 속도는 아이들 개인별 경험과 성장 배경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서울 종로구의 모 어린이집 ㄱ원장은 "요즘 아이들은 개인별 경험, 상황에 따라 발달 속도가 제각각이다"며 "연령별로 짜여 있는 현행 교육 방식은 요즘 아이들에게 적용하기에 다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평균 수준의 발달 속도에 있는 영유아들에게는 기본 교육으로도 문제가 없지만, 주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성 관념이 빠르게 잡힌 아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상위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단순 연령 구분이 아닌, 아이에 대한 발달 상태 진단과 함께 '맞춤 성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선 대부분 어린이집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교육안을 활용하고 있다. 송파구의 어린이집 ㄴ원장은 "정부나 센터에서 나온 다양한 교육 자료들과 기타 연구, 논문 자료를 참고해 자체 교육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단순히 유인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상황극, 자유놀이 등을 통해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정에서의 성교육 상황은 현장보다 취약하다. 영유아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만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영유아 아동에게 성교육을 따로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4살 여자 아이 아빠 변호영(32)씨도 "아직 아이가 어리다고 생각해 성교육을 해보지 않았다"며 "하지만 가정과 어린이집에서 성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4살 여자 아이 엄마인 김지원(가명·24)씨는 "아이들의 성 지식은 책에서 나와 있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빠르게 습득되는 것 같다"며 "더 이상 가정에서도 '성'이 쉬쉬돼선 안 된다"고 가정 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잇따른 아동 간 성폭력 사건 이후 성교육에 관심을 갖는 부모들이 많아졌지만, 이제 겨우 말을 알아듣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대부분 혼란스러워 한다. 경씨는 "괜히 시도했다가 성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만 늘어나는 게 아닌가"라고 두려움을 드러냈다. 김씨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만지면 안돼요!'를 가르치는 것뿐이다"고 털어놨다.
이에 아이가 아닌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송파구의 모 어린이집 ㄴ원장은 "결국 몇몇 아이들이 조숙해진 데는 아이가 아닌 부모의 탓이 크다"며 "부모가 먼저 올바른 성 관념을 갖추고, 아이 상황에 맞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부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어린이집 부모 교육은 시설 재량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어린이집을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부모의 경우, 한국보육진흥원에서 위탁 운영하는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온·오프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다. 또 필요시 온라인 상담사에게 1:1 상담을 신청할 수도 있다.
영유아는 기본적으로 '나'와 신체에 대한 인식과 탐구가 필요한 시기다. 따라서 신체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성교육이 이뤄지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현장 전문가는 성급한 성교육보다, 아이의 발달 상황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ㄱ원장은 "아무리 시설에서 가르쳐도 귀가 후 집에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어떤 발달 상황에 있는지, 해당 단계에 맞는 교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기 아이에 대한 충분한 진단 없이 선생님으로부터 정답을 받아가려 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동시에 선행돼야 할 건 부모의 올바른 성 인식이다. ㄱ어린이집 3세반 유치원 교사는 "성에 대한 관심이 빠른 3세 아이 어머니께 아이의 행동들을 알렸더니 불쾌해 했다"며 "아이에 대한 교육은 시설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함께 이뤄져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 먼저 성을 자유롭고 건전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아이를 바라봐야, 아이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다. 아이의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상태를 애써 외면하는 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렇더라도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어린 아이 때부터 성폭력 행위에 대한 인지 교육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 대표는 "피해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는 데도 나쁜 행동인지 몰라서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어린 아이일수록 잘못된 행동을 정확하게, 꾸준히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역시 1968년부터 성교육을 정식과목으로 시행하면서 1992년부터 성교육 의무화를 강화했다. 독일은 '포괄적으로 모든 연령과 계층에서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을 성교육의 모토로 영유아 때부터 성교육을 한다. 바이에른 주의 사회부 장관 크리스타 스테븐스는 "성교육이 11세에서 12세 사이에 이뤄지는 것은 너무 늦다"며 "더 이른 나이에 성교육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 세계 150여 개국을 누빈 성교육 전문가 노미경씨(한국성폭력상담소 객원 강사)는 "북유럽 가정에선 아이들이 성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면 2~3살이어도 터놓고 알려준다"면서 "한국의 부모들처럼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절제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자위하는 법을 알려줄 때 '기분이 좋지만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절제 방법을 정확하게 인지시킨다"면서 "성교육과 인성 교육을 함께 가르치고 부모의 올바른 성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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