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퍼지니 기후위기 실감..반정부 시위 나선 시드니 시민들
[경향신문]

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후변화 피해를 몸소 체험한 호주 시드니 시민 1만여 명이 11일(현지시간) 정부에 즉각 대책을 마련하라며 거리로 나섰다. 몇주째 이어진 호주 동부 대형 산불로 생긴 짙은 매연때문에 전날 긴급대피 소동까지 겪은 시민들이 이날 시드니 시청 주변에 몰려들어 정부에 온실가스 저감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당장 일상에 들이닥친 기후변화 위협에 맞서 시민들이 직접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은 산불·매연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각하고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지 성토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썼으며, 일부 임신부들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불태우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드니 시청까지 걸었다. 집회 주최측은 페이스북에 “기후변화의 결과가 여기 있다”면서 “전례없는 대규모 산불, 가뭄에 이제는 수백만명이 출구도 없이 매연 속에서 콜록거리고 있다”고 썼다. 몇몇 시위 참가자들은 담배를 피는 모습으로 희화화한 스콧 모리슨 총리의 캐리커처를 들고 정부가 명백한 기후변화 위기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날 시드니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평소의 10배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자사 시드니지부 건물에도 매연때문에 화재경보기가 울릴 정도로 대기질이 안 좋았으며 곳곳에서 대피 경보가 울렸다고 전했다. 짙은 안개때문에 가시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페리 운항도 전면 중단됐다. 지난주부터 매연 피해가 더욱 심각해졌는데 일주일동안 호흡기·피부질환 등으로 응급실을 찾은 인원은 평소보다 2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혼란의 시발점은 대형 산불이며 근본원인은 기후변화라는 지적이 갈수록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시드니가 속한 동부 뉴사우스웨일즈주와 퀸즐랜드주에서 지난 10월부터 현재까지 100여 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남반구인 호주는 봄철인 9월부터 11월까지 산불이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발생 건수가 많다. 과학자들은 남극의 기온이 이례적으로 높아지면서 호주에 극단적으로 고온건조한 날씨가 초래되고 산불이 잦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날 시위에 앞서 뉴사우스웨일즈 주정부의 환경장관 매트 킨도 “이번 화재는 여느 때와 달랐다”면서 “당장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호주 중앙정부는 기후변화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다. 마이클 맥코맥 부총리는 “기후변화가 한 요인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작은 악마들때문에 발생하는 산불도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방화에 의한 산불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모리슨 총리는 이번 화재 국면에서 진화에 힘쓴 자원소방대원들의 노고만 칭찬할 뿐 매연 등 부수적인 피해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에 관심 없는 모리슨 총리가 화재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호주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석탄화력발전소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호주 정부는 지난 6월 퀸즐랜드주에 탄광개발을 허용하면서 환경운동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모리슨 총리는 호주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량 목표를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유엔은 호주가 그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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