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방'을 아시나요? 'BC 시대' 디자인 되살립니다

채민기 기자 2019. 12.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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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디자이너 재조명 나선 김성천]
이상철의 잡지 '샘이깊은물'부터 손으로 그린 캐릭터 '김서방'까지
1세대 선배들의 작업을 디지털화..
7080 서체 복원 프로젝트도 앞장 "시대상 담은 디자인도 문화유산"

디자인회사 CDR어소시에이츠에서 진행 중인 한국 1세대 디자이너 재조명 작업에 대해 문의하자 김성천(56) 대표와 직접 연락하라는 답신이 왔다. 대표가 담당자라고 했다. CDR은 88 서울올림픽 공식 포스터를 만든 조영제(1935~2019) 전 서울대 미대 교수의 연구실로 1974년 출발해 국내 아이덴티티 디자인(기업 등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디자인) 분야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회사다.

디자이너로 입사해 24년째 회사를 이끌어온 김 대표는 요즘 1세대 선배들의 작업을 디지털화(化)하는 일에 '꽂혀' 있다. 2017년 조영제(CDR)로 시작해 2018년 잡지 '샘이깊은물' 아트디렉터 이상철, 올해는 한국적 캐릭터 '김서방'의 김교만(1928~1998) 디자이너로 확대하며 CDR 차원을 넘어섰다. 최근 만난 김 대표는 "디자인에도 당시의 사회상이 담겨 있다"면서 "디자인도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했다.

지난해 올림픽 기념 전시에서 서울올림픽 관련 조언을 맡으며 충격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 디자인계 구석구석 수소문해도 그래픽디자인 공식 설계도에 해당하는 표준 편람조차 구할 수 없었다. 당시 유명 디자이너 12명이 1장씩 맡았던 문화포스터도 10점뿐이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30년 전 작품들도 사라지고 있구나 싶어서 나라도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BC(before computer) 30년', 즉 컴퓨터 본격 도입 이전인 1960~80년대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매뉴얼을 모아 스캔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예컨대 은행 매뉴얼엔 당시 수표·어음 양식이나 유니폼 디자인이 정확하게 나와 있어요. 그것도 시대의 단면인데 사라져가고 있죠."

①한복에 상모 쓰고 말 달리는 김서방.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디자이너 김교만이 1983년 서울대 기념 엽서에 넣었던 일러스트를 김성천 대표가 디지털로 복원했다. ②1976년 김교만 작품전에 출품됐던 ‘농악’. ③디자이너 조영제·조종현의 피어리스화장품 서체를 바탕으로 만든 가방과 김성천 대표. /CDR어소시에이츠

매뉴얼엔 당시 기업들이 260여 자(字)씩 만들었던 전용 서체도 남아 있다. 이를 바탕으로 폰트(컴퓨터용 서체)를 만든 것은 오늘날 유용한 무언가를 내놓자는 생각에서였다. 크라우드펀딩으로 후원금을 모아 CDR의 1970~80년대 기업 서체를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2017년에 시작했다. 피어리스화장품에서 동글동글한 플라우어체가, 한국투자신탁에서 세련되고 단단한 석류체, 제일합섬에선 모서리가 독특하게 꺾인 제스트체가 나왔다. 김 대표는 "조영제 선생이 총괄했지만 피어리스는 조종현, 한국투자신탁은 구동조, 제일합섬은 양승춘 디자이너가 참여했다"면서 "익명으로 남았던 이들의 공헌을 기록에 남기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2018년엔 이상철의 샘이깊은물 창간호를 기반으로 샘물체도 만들었다.

올해는 김교만을 택했다.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내며 한국미를 간결하게 표현한 캐릭터 '김서방'을 만든 디자이너다. 김서방은 1980년대 우표, 추석 선물세트 포장지부터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 문화포스터, 1994년 한국방문의 해 로고 등에 폭넓게 쓰이며 사랑받았다. 김 대표는 유족과 협의를 거쳐 작품을 바탕으로 한 문구류·그림 등을 만들고 이달 초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판매 부스도 열었다. 그는 "1세대 디자이너의 작업이 지금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한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복고) 감성'일까. "레트로가 한때 유행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새것이 좋다며 앞선 것을 다 버리다가 조금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옛날을 돌아보기 시작한 거죠. 다만 그 시절의 스타일만 빌려오기보다는 사라져가는 작업을 복원하고 정확한 기록을 남기는 게 저의 레트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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