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이 어쩌다..'날개 달린 쥐' 비둘기 어쩌나

오진영 인턴기자 2019. 12.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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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많고 폭발적 개체수 증가로 '기피대상'된 비둘기..개체수 조절엔 동물권 보장해야 한단 목소리도
광화문 근처 청계천의 한 다리에서 비둘기들이 모여 있다.


"'평화'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비둘기요."

지난 2018년 통일연구원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평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나는 단어 3가지를 말하시오"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3000개의 단어 중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전체의 13%(389회)를 차지한 '비둘기'라는 단어였다. 심지어 이 단어는 '통일(9.9%·297회)'이나 '자유(7.0%·210회)'등 일반적으로 평화를 떠올렸을 때 생각하는 단어들보다 많아, 한국인의 비둘기에 대한 생각을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 같은 인식 아래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도 3000마리의 비둘기가 하늘을 가로질렀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비둘기 수천 마리가 날갯짓을 했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거대한 비둘기 형상의 조명이 개막식에 등장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비둘기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2009년 6월 유해동물로 지정된 이후 천덕꾸러기가 된 비둘기는 취객의 토사물을 쪼아 먹고 날갯짓을 할 때마다 병균까지 옮긴다는 인식이 더해져 '날개 달린 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평화의 상징'은 어쩌다 '기피대상 1호'가 됐을까.
음식물 쓰레기 주워먹고 수도권에만 50만 마리 사는 비둘기…배설물은'세균 덩어리'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음수대 이용하는 비둘기'. 해당 사진이 올라오자 누리꾼들은 야외 음수대를 이용하지 않겠다며 분노했다. /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2009년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만 3만 5000여 마리에 가까운 비둘기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한조류협회는 수도권에서만 50만 마리가 넘는 비둘기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한국 텃새인 멧비둘기는 야생에서 살아가지만, 주로 '닭둘기'로 불리는 집비둘기는 도시나 사람이 사는 곳을 근거지로 하기 때문에 마주하기 쉽다.

이같이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증가한 배경에 정부의 '전시행정'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당국이 아시안게임과 서울 올림픽 때 방사한 총 6000마리를 빼더라도 2000년까지 각종 체육 대회에서 비둘기를 날리는 행사가 90여 차례나 있었으며, 심지어 정부는 한강에 비둘기 집까지 지어'평화의 상징'을 독려했다. 이 때 방사된 비둘기들의 후손이 증식하면서 탁하고 어두운 색깔의 골칫거리 비둘기들이 됐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비둘기가 질병을 옮긴다는 것 뿐만 아니라 비둘기 자체가 기생충과 중금속 오염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한강공원의 집비둘기 11마리의 혈액·허파·뼈에서 건조중량 1g당 평균 16.21㎍(마이크로그램)이 검출됐는데, 비교대상군인 전남 함평공원의 비둘기보다 3~4배나 높은 수치다. 게다가 비둘기의 배설물에서 병원성 곰팡이가 자랄 수도 있는데, 임영운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서울 시내 38개 지점의 비둘기 분변에서 35종의 병원성 진균이 검출된 바 있다.

천적 없는 도시 비둘기, 퇴치업체까지 등장했지만 살처분'난항'…"먹어서 없애라는 말인가"
청계천 다리 밑에 설치된 비둘기들의 진입을 막기 위한 버드스파이크. / 사진 = 오진영 기자

황조롱이·매 등 천적이 있는 야생과는 달리 도시에는 마땅한 비둘기의 천적이 없다. 때문에 비둘기를 전문적으로 퇴치하는 업체까지 생겼다. 퇴치업체 '반짝반짝열매'의 황순배 대표는 "비둘기가 많으면 미관상 좋지도 않고, 병균을 옮길 수도 있어 퇴치 요청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면서 "요청받으면 신속하게 출동해 버드스파이크(비둘기의 접근을 막는 장치)·퇴치 전용망 등을 이용해 비둘기를 퇴치하고, 병균의 온상인 배설물을 청소한다"고 밝혔다.

당국에서도 2009년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고 2010년 관련 지침을 하달하는 등 비둘기 퇴치에 나섰지만, 여러 어려움들로 비둘기 개체수 조절이 쉽지 않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멧돼지 등 피해액이 큰 유해야생동물들을 우선 퇴치하도록 되어 있어 비둘기에 행정력을 기울이기는 어렵다"면서 "비둘기는 사람들과 서식지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총기 사용이 어려운 등 퇴치에 난점들이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다른 나라처럼 먹어서 없애자"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중금속이나 오염된 쓰레기를 먹이로 삼는 길거리 비둘기를 잡아먹는 것은 위생상 좋지 않지만, 실제로 중국에서는 비둘기를 마와 삶아서 만든 요리인 황샨뚠꺼(黄山炖鸡)라는 요리가 있는 등 비둘기 요리를 즐겨 먹는다. 이집트에서도 닭 백숙 대신 하맘 마슈위(hamam mahshi)라는 비둘기 탕 요리를 먹으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비둘기 간장찜을 즐겨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균덩어리 비둘기 박멸하자 VS 인간 이기주의

날갯짓하는 비둘기. / 사진 = 오진영 기자

시민들은 비둘기를 볼 때마다 "한시바삐 없애야 한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실제로 2009년 비둘기의 유해야생동물 지정 당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7101명 중 83%에 달하는 사람들이 "유해야생동물 지정에 찬성한다"는 목소리를 냈으며, 지난해 '두잇서베이'의 설문조사에서도 3733명 중 57%가 "유해야생동물 퇴치에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비둘기(58.1점)는 멧돼지(53.5점) 다음으로 인식이 안 좋은 동물에 꼽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동물권(동물의 권리)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지금 비둘기의 '도살'에 가까운 퇴치작업은 인간 이기주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김경은 국장은 "비둘기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인간의 필요에 의해 한국에 들어온 동물"이라면서 "체육대회·행사 등 비둘기가 필요해 대량수입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퇴치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비둘기의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길고양이를 살처분하다 중성화 수술 등으로 선회한 사례처럼 동물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라면서 "개체수가 늘어난 데에도 음식물 쓰레기·대규모 건물 등 인간이 원인이 됐는데 이기심에서 살처분하는 것보다는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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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인턴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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