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구이·불고기·전골·육회..소·돼지 못잖은 염소고기 유혹
아버지 농장서 키운 거세 수놈 사용
영상 2도 5일 숙성, 육질·향 맛깔나
한약재 듬뿍 수육전골엔 깊은 맛
"소·돼지·닭·오리 다음 5대 육류 꿈"
[이택희의 맛따라기] 염소고기의 재발견
가축의 애완·반려 기능이 강조되면서 원초적 용도 구분은 경계가 희미하거나 무의미해졌다. 일부 가축은 먹으면 야만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원래 관점에서 보면 꼬리가 몸통을 흔들기도 하고 뒤엎기도 한 형세다.
검은 암양 ‘고’와 산양 뜻하는 ‘력’
애완·반려와는 무관하지만, 쓰임새가 모호한 가축도 있다. 흑염소가 그렇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식용의 기억은 별로 없고, 보신용으로 쓴다고는 하지만 실제 먹어 본 사람은 드물다.
그런 염소고기를 육류시장의 주류로 키우겠다고 도전장을 낸 젊은이가 있다. 할아버지가 하던 소규모 염소목장을 아버지와 함께 물려받아 1000마리 규모로 키웠다. 염소를 도축해 숯불구이(갈빗살·꽃살), 불고기(서울식·석쇠구이), 부추 수육, 수육전골, 샤부샤부, 고추장육회, 사골곰탕 등으로 만들어 파는 식당도 열었다.
식당 이름은 검은 암양을 뜻하는 고(羖)와 산양이라는 뜻의 력(䍽)을 합치고 집 당(堂)을 더해 지었다. 1527년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서는 고, 력을 모두 ‘염쇼’라고 훈독했다. 최씨는 ‘고력’이라는 말을 전남대 축산대학원 흑염소 최고경영자과정에 다니던 2015년에 알았다. 염소보다 고급스럽고 색다른 식당 이름을 고민하던 때였다. 그해 연말, 서울의 양고기구이 전문점 ‘이치류’에서 식당 실전을 익힐 때 상호로 내정했다.
고력당은 개업 이듬해부터 한국형 음식점 평가인 ‘블루리본’ 표지를 2년 연속 받았고, 지난달엔 ‘네이버 예약 식당 어워즈’에서 올해의 베스트 리뷰 상을 받았다. 수도권이 아닌 순천 외곽에서, 대중적 음식도 아닌 특수 메뉴로, 짧은 기간에 이루기 쉽지 않은 성과다.
그의 음식을 먹어봤다. 갈빗살은 베이컨처럼 얇고 길게 잘라, 소금에 파슬리 가루를 섞은 양념을 뿌려 참숯불에 굽는다. 소나 돼지고기에 비해 질겼다. 고기를 씹으니 특유의 향이 올라온다. 지방질이 섞인 부위에는 냄새가 있다고 한다. 거북할 정도는 아니다. 익숙해지면 염소고기를 떠올리게 하는 중독성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하다. 꽃살은 업진살을 2~3겹으로 둥그렇게 말아 굳힌 다음 얇게 저며 숯불에 굽는다.
수육은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된장·생강·양파·대파 넣고 고기를 살짝 삶은 후 찬물에 깨끗이 씻어 다시 조리하면 냄새는 없어지고 고기는 부드러워지면서 부피가 커진다고 한다.
새해 초엔 부산에 2호점 문 열어
외식업 스승으로 여기는 ‘이치류’의 주성준 대표는 “남보다 조금이라도 세세하게 챙겨야 손님이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본다”고 늘 말했다. 그 가르침을 화장실부터 실천했다.
그는 20대 10년을 치밀한 계획에 따라 참 열심히 살았다. 2008년 대학 외식경영학과에 입학했고, 학군단(ROTC) 소위로 임관해 특전사에 근무했다. 28개월 동안 수당을 포함한 월급을 꼬박 모아 식당 종잣돈을 마련했다. 전역 후 아버지 목장 일을 도우며 대학원에서 흑염소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한편으로 염소와 비슷한 양고기구이를 잘한다는 서울의 식당 ‘이치류’ 대표에게 무작정 메일을 썼다. 2015년 여름이다. 본인은 “일하고 싶다며 쳐들어갔다”고 했다. 1년 6개월 동안 ‘열심히 한다’는 평을 들으며 일을 배웠다. 그리고 2017년 8월 21일, 만 28세에 자신의 식당을 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생일 때 귀향해 염소목장을 물려받아 규모를 늘리며 토대를 닦았다. 지난해 5월에는 제1회 전남 염소 육종 경진대회(보성군 주최)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노력하며 아들의 음식 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유성씨에게 꿈을 물었다. 답이 명료하고 구체적이다. “염소고기를 5대 주류 육류로 만들려고 한다. 소·돼지·닭·오리 다음 자리에 올리는 게 목표다. 또 ‘고력당 스타일’을 염소고기 요리의 기준으로 전파하고 싶다. 이미 인근에 비슷한 음식점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언젠가는 염소고기로 고급 레스토랑도 하고, 최고급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 새해 초엔 부산에 2호점을 낸다.”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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