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주의자의 미식여행>茶山도 못잊은 겨울의 맛.. 찬바람 불면 더 생각나는 담백함

기자 2019. 12. 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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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면옥 ‘계절면상’

서울서 맛보는 ‘북한음식’

계절면상

냉면 먹기전 수육‘先肉後麵’

식후엔 망개떡 ‘정갈한 소반’

함흥식 녹말국수

양지 삶은 물에 쫄깃한 면발

밥 말아 온반으로 즐길 수도

토종닭만둣국

두부·숙주 넣어 투박한 만두

그 위엔 쭉쭉 찢은 닭 살코기

냉칼국수

동치미 섞은 육수와 깨소금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함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 북한 음식점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향민과 점차 늘어나는 새터민들을 위한 시장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워낙 깊이 있는 음식의 존재감이 외식업의 각축장인 서울에서도 북한 음식의 시장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함흥식 녹말국수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평양냉면까지, 서울에서 북한 음식의 본격적인 각축전이 시작된 듯하다. 노포들의 굳건한 입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서울의 북한 식당들을 소개한다.

‘평양냉면의 신흥강자’ ‘국내최강의 어복쟁반’ 등의 찬사를 듣고 있는 ‘서관면옥’에서는 냉면을 주제로 ‘계절면상’이라는 메뉴를 개발해 문 연 지 만 1년이 조금 넘은 현재,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북한 음식점이다. 이 집은 평양냉면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오너 셰프 김인복 대표가 운영하는 곳으로, 북한 출신 직원은 없다. 점심시간에 20명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는 계절면상을 즐기기 위해 정오 이전부터 발 빠른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외식업을 오래 해온 김 대표는 “평양냉면은 내가 즐기며 좋아하는 음식이다. 다만 어떻게 팔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며 “냉면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이야기에 따라 메뉴화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 집의 대표메뉴 ‘계절면상’이 완성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지인들과 함께 맛있다고 소문난 평양냉면 집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서관이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했다. “서관은 평안도와 황해도를 통틀어서 부르던 옛 지명입니다. 음식문화 전문가의 도움으로 서관이라는 말과 뜻을 알게 되었어요. 공부해 보니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지은 ‘여유당전서’에 냉면과 어복쟁반에 대한 내용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관으로 이름을 정한 이후 북한음식으로 콘셉트를 잡아 식당을 개점했고요.” 테이블에 붙어있는 식당의 브랜드 스토리에 눈이 갔다. 정약용의 ‘선주후면(先酒後麵)’, 즉 ‘술 마신 후 냉면을 즐기다’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시월 들어 서관에 한 자 되게 눈 쌓이면, 이중 휘장 폭신한 담요로 손님을 잡아 두고는, 갓 모양의 냄비에 노루고기 전골하고, 길게 뽑은 냉면에다 송채 무침 곁들인다네.’ 풀어보면 ‘눈이 많이 내리는 북한 지역에서 숯불에 달궈진 냄비에 노루고기가 육수 속에서 익어가고 거나하게 취한 선비들 몇이 독한 소주를 마시고 난 후에 국수를 먹는다’라는 매우 서정적인 미식의 장면이다. 이처럼 고기 먹고 술 마시고 난 다음에 냉면을 먹었다는 서관의 자연스러운 음식 문화가 서관면옥의 정체성이 되었다.

“지금의 육수 맛을 내는 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육수를 섞어 쓰고 있어요. 소고기는 당일 도축 혹은 3일 이내에 도축된 고기만 사용하고 있어요. 신선하고 맑은 육수를 위해서지요. 양지, 아롱사태와 버크셔K 뒷다리가 감칠맛을 내죠. 중·저온에서 3시간 이상 충분히 끓여줍니다. 그리고 하루 이상 숙성해야 좋은 육수를 얻을 수 있어요.” 또 이 집에서는 100% 제주메밀을 맷돌 제분해 면을 만들고, 소금은 3년 동안 간수를 뺀 서해안의 천일염을 사용하고 있다. 계절면상의 메뉴는 식전음식으로 천보음(참마, 배, 우유, 잣 선식) 죽과 한우 수육, 석류 만두다. 본식에는 비빔냉면인 선비냉면, 김치, 연근전, 더덕마늘꼬치, 한우차돌구이, 갑오징어, 잣, 대하냉채 등이 나왔고 식후 음식으로는 의령망개떡과 제철과일, 석류 젤리가 제공됐다. 이 모두가 한 상 소반에 내듯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참으로 아름다운 면상이다. 앞서 설명했던 선주후면, 선육후면을 적용해 본식인 냉면 먹기 전에 식전 음식으로 한우 수육과 석류 만두를 준비했다. 12월 망개떡은 의령지방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 운동가들에게 떡을 만들어 줄 때 쉽게 상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망개 잎에 싸서 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집안 행사 때마다 온면을 즐겨 먹는 풍습이 있다. 녹말국수라고 불리는 ‘반룡산’의 ‘함흥식 온면’은 고구마 전분 100%를 사용한다. 양지를 푹 곤 육수에 쫄깃한 녹말국수를 말고 고명으로 숙주나물, 계란지단, 오이, 양지살 등을 얹는다. 육향이 풍부한 육수에 밥을 말면 온반이 된다. 칼칼한 양념이 고명 옆에 나오는데 매콤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덜어내는 것이 좋다. 또한 어복쟁반과 비슷한 ‘돌판수육’은 돌판 냄비에 소고기 양지살, 우설, 도가니 부위를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후 육수를 붓고 뜨겁게 끓여 부추, 버섯 등과 함께 즐긴다. 우설은 향이 다소 강해 조금 거북함이 있었지만 육수와 야채를 뜨겁게 같이 즐기기에 이 겨울의 추운 날씨에 제격이다.

‘능라도’에는 매일 사용하는 메밀 제분기가 식당 출입구에 위엄을 자랑하며 설치돼 있다. 식당이 문을 열자마자 서울의 많은 셰프가 이곳의 냉면을 맛보러 마포 나들이를 했을 정도로 이곳 냉면 맛은 화제가 됐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에 계란지단 고명이 풍성히 올려져 있다. 매콤한 양념장도 순화시켜주고 육수 마시며 간간이 씹히는 맛으로 심심함을 없애준다.

‘평가옥’ 만두는 두부와 숙주가 주재료로 심심한 만두 속맛이 단백 그 자체다. 이렇게 만두피가 두껍고 크며 투박한 만두는 오랜만에 보았다. 토종닭 혹은 소고기 만둣국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만두소가 다른 것이 아니라 올리는 고명이 다르다. 토종닭 만둣국의 경우 기름을 걷어낸 토종닭 살코기를 길게 쭉쭉 찢어 올려놓는다. 국물을 살짝 칼칼하게 고춧가루로 맛을 내었다. 온반을 시켜도 만두 2개가 같이 나오니 맛볼 수 있다.

1993년에 문을 연 ‘하단’은 평남 하단이 고향인 장모님을 둔 사장이 부인의 손맛을 거쳐 북한음식을 구현해냈다. 이 집에서 내는 만둣국은 북한에서는 중상계층 음식이라고 한다. 13년 전 서울 장안에서 유명한 냉면집 주방장이 찾아와 만두 만드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정도로 이곳 만두는 북한식 만두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의 만둣국은 많이 단순화됐다. 이 집 주인장께 무엇이 달라졌는지 물으니 “보통 북한식 만두라 하면 닭과 소고기를 삶아 투박하게 고기를 크게 찢어서 꾸미도 올려야 하는데 이제 꾸미 없이 단순하게 그냥 나간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서울사람 입맛과 가격에 맞췄다. 만둣국을 전문으로 내지만 정작 이곳의 특징 있는 대표메뉴는 ‘냉칼국수’다. 소고기 육수와 동치미를 섞어 육수를 만들었다. 고명도 무채, 오이채 그리고 수북하게 올려져 있는 깨소금 외에 아무것도 없다. 단출하고 단순한 이 음식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하며 참으로 올곧고 당당한 느낌이다. 찬바람 거칠게 부는 날씨에 차가운 냉칼국수를 즐기니 ‘이랭치랭’이 따로 없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미식가이드

평양냉면의 계절면상으로 즐길 수 있는 ‘서관면옥’(02-521-9945)은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56길 11에 위치해 있다. 매일 평일 점심 계절면상 20명 한정 1인 2만5000원, 평양냉면 1만3000원, 선비냉면 1만3000원, 어복쟁반 9만 원.

‘반룡산’(02-3446-8966)은 강남구 대치동 894-4(포스코센터 뒤편)에 위치해 있다. 함흥식 녹말국수 1만2000원, 가릿국밥 1만 원, 돌판수육 4만5000원이다.

‘능라도’ 마포점(02-717-0304)은 마포구 마포대로 25 신한디엠빌딩 1층에 위치해 있으며 평양냉면, 평양온면, 비빔면 세 가지 메뉴 모두 1만2000원.

크고 투박한 북한식 만두를 즐길 수 있는 ‘평가옥’(02-568-1577)은 강남구 삼성로 95길 37에 있다. 찬으로 나오는 오이지와 백김치가 훌륭하다. 토종닭 만둣국, 토종닭 온반 모두 1만3000원.

메밀 냉칼국수를 즐길 수 있는 ‘하단’(02-764-5744)의 주소는 성북구 성북동 184-40으로 변형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북한 음식을 주문하고자 하면 미리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냉칼국수 9000원, 만둣국 9000원, 녹두지짐 1장 8000원, 냉칼국수는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이 외에도 본문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방문해보면 좋을 북한 음식점을 소개한다. ‘친친’(0507-1482-2001)은 마포구 연남로7길 24 1층에 위치해 있다. 농마국수라고 하는 함흥식 녹말국수와 피순대가 훌륭하다. 농마국수 9000원, 함경도 아바이 순대 2만3000원. 이 밖에도 다양한 요즘 북한음식을 판매한다.

‘청춘구락부’(02-702-1399)는 마포구 토정로 308에 있으며 양대창 구이를 주 메뉴로 하는 집인데 메밀 100% 순면을 사용해 만든 메밀국수에 들기름, 김가루를 얹어 메밀의 향긋함과 고소함을 살린 ‘들기름막국수’가 인기 있다.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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