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기타신공] '이승철밴드' 박창곤..정통과 현대의 조화

조성진 기자 2019. 12. 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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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스윙 커스텀 기타로 시연을 보이고 있는 박창곤.
이승철황제밴드 공연에서 즐겨 사용하고 있는 깁슨 레스폴 골드탑. 연말까지 예정된 이번 이승철밴드 공연에서도 이 기타를 메인으로 사용한다.
박창곤을 위해 특별 제작된 물론(Moollon) 커스텀 기타.
내년 초 출시 예정인 프리미엄급 고가의 모델 콜트(Cort) 시그니처 기타.
정말 누구를 연상케 할만큼 '너무 똑같은' 박창곤의 외모.
박창곤이 애용하는 라인식스(Line 6) 힐릭스(Helix)
소위 '꾹꾹이'라 불리는 컴팩트 이펙터들을 조합한 페달박스. 저 유명한 아이바니즈 튜브 스크리머(오리지널)도 눈에 띈다.
박창곤이 기타리스트 엄인호 아들로부터 구입한 65년 펜더 트윈 리버브 앰프. 구하기 힘든 '레어' 중의 '레어 아이템'이다.

▶ 16년째 이승철과 함께 하고 있는 ‘밴드 마스터’
▶ 김경호, 최재훈, 서문탁 등 히트곡 작곡가로도 두각
▶ 정통-네오클래시컬-재즈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
▶ “이승철 완벽주의 에피소드, 레코딩/공연서 잘 드러나”
▶ 실력과 유명세로 일렉기타 세일즈에도 크게 기여
▶ 내년 초 콜트 시그니처 기타(프리미엄급) 출시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박창곤(45)은 김경호와 이승철이란 국내 간판급 명 보컬들과 함께 활동했다는 점에서 부러움을 살 만하다. 김경호와는 4년, 이승철과는 16년째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승철밴드(이승철황제밴드) 기타리스트 박창곤은 187cm의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 故 김주혁과 너무 닮은, 국내 유명 기타리스트 중에선 손꼽히는 미남 중 하나다. 인터뷰를 위해 인천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도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故 김주혁이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아 흠칫할 정도였다.

박창곤은 소위 ‘정통파’ 기타리스트다. 빠른 솔로잉에서도 왼손의 엄지가 항상 네크 위에 고정돼 있으며 심지언 스트레치를 요하는 연주에서조차 엄지가 내려가지 않는 형태를 취한다. 거의 습관적으로 엄지가 네크 뒤로 가는 테크니컬 기타리스트들과는 많이 다른 운지 방식이지만 바로 이런 일련의 이유가 그를 벤딩과 비브라토 등 왼손에 무게중심을 두는 소위 정통파 록 기타 패턴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속주 형태에서도 핑거 패턴은 펜타토닉 자세를 취하고 있을 정도로. 정통과 다채로운 현대 하이테크를 모두 받아들이며 공존을 이루고 있는 기타리스트다.

이승철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박창곤은 ‘My Dreams’(2007)와 ‘Guitar in Love’(2012) 등 2장의 솔로앨범도 발매한 바 있다.

박창곤은 작곡/편곡자로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미 김경호밴드의 히트곡 중 하나인 ‘Rock n Roll’도 그가 작곡했고 이외에 최재훈 ‘별리’, 서문탁 ‘끝에서 시작으로’ 등의 히트곡들을 포함해 60여 곡이 저작권협회에 등록돼 있을 정도다.

박창곤은 1974년 충남 서산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산에서 금성전자(현 LG전자) 대리점 및 몇몇 사업체를 운영하던 관계로 박창곤은 경제적으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박창곤의 동생은 봉황기 우승 경력의 야구선수(투수) 출신으로 현재엔 야구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박창곤은 어릴 때 사업 확장 차원에서 서울/인천으로 사업체를 옮기는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상경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체르니 및 일련의 소나타 작품까지 연주할 만큼 기본기는 갖추게 됐다.

그러다가 중1 때 학교 친구가 통기타(어쿠스틱기타)를 연주하는 걸 보고 멋지다고 여겨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 2만 원을 들고 기타 가게로 가 국산 어쿠스틱기타를 사며 기타 연습에 몰두했다. 2~3개월 열심히 혼자 연습하다가 한계를 느껴 동네 학원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라디오를 끼고 살던 그는 딥퍼플을 들으며 록의 매력에 심취해 갔다. MBC FM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특히 애청했다. 중2 겨울방학 무렵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물론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중3 겨울방학 때 어머니를 졸라 생애 첫 일렉트릭 기타를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게 된다. 당시 10만 원에 판매하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타입의 ‘짝퉁’ B.C.리치로, 리치 블랙모어가 흰색 바디의 스트라토를 연주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던 어린 창곤의 기억이 이 모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날아갈 듯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창곤은 생애 첫 일렉기타로 본격적인 기타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잉베이 맘스틴의 ‘레닌그라드 라이브’ 비디오를 본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그는 그 비디오에서 잉베이가 기타를 목에 메고 돌려대는 퍼포먼스를 흉내 내고 싶어 자신의 일렉기타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타를 떨어뜨리며 박살이 나고 말았다.

당시 박창곤의 우상은 리치 블랙모어 등을 비롯한 록 기타리스트다.

“특히 리치 블랙모어, 게리 무어, 스티브 레이본, 잉베이 맘스틴, 조 새트리아니, 스티브 바이, 조지 린치, 비토 브라타(화이트 라이온) 등 영향받은 기타리스트들이 많습니다.”

박창곤은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서던록 그룹 아웃사이더스(Outsiders)의 리드기타로 조금씩 두각을 나타냈다. 아웃사이더스는 93년 록 경연에 참여해 사하라(Sahara)에 이어 2위에 입상했는데, 이로 인해 입상팀을 모은 옴니버스 앨범 ‘Rock Wave’에 참여하게 된다. 이어 김민석의 ‘거리에서’(93년) 앨범 세션을 하며 레코딩 세션 기타리스트로서 데뷔했다.

94년 육군에 입대한 박창곤은 훤칠한 키의 건장한 체격으?특공여단에 차출돼 해병대보다 ‘빡세다’는 군 생활을 했다.

제대 후 ‘슬리핑 프린세스’라는 록 밴드 활동을 하는 가운데 학원 강사 및 음향 시스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중 평소 알던 김경호 밴드의 드러머 노호현으로부터 밴드 가입 제의를 받았다.

“당시 경호 형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본 적도 없었고, 거의 관심을 두지 않던 상태이다보니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이후 다시 제의를 받아 박창곤은 당시 대학로 라이브 클럽에서 있은 김경호 공연을 보러 가기에 이른다.

“대단하지 않게 생각하고 공연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며 소름이 돋고 말았죠. 경호 형의 보컬은 그간 내가 듣던 한국의 보컬들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가창력의 대단함에 닭살이 돋으며 공연 내내 감탄 또 감탄을 했어요. 그 공연을 보며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래, 바로 이 사람과 음악을 해야겠다고.”

김경호밴드와 함께 3~4곡 정도의 간단한 합주(오디션)를 거쳐 박창곤은 97년 김경호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정식 합류한다. 그런데 그가 가입한 시점은 김경호밴드의 공연이 10일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 김경호의 곡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던 그는 공연 준비를 위해 이 기간 동안 30여 곡에 가까운 김경호의 작품들을 카피/암기하는데 몰두했다. 평소에도 매사 적당히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다보니 이번에도 두문불출 라면만 먹어가며 집중한 끝에 무사히 김경호밴드 공연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김경호밴드가 공연할 땐 이현석씨도 종종 공연장을 찾아오곤 했어요. 어느날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를 함께한 이현석씨가 제게 놀랐다는 말을 했던게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이 음반에서 연주했던 기타솔로를 공연에서 똑같이 완벽하게 카피할 수 있는 기타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 같아요.”

박창곤의 좌우명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대비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자”다. 대충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는 그의 꼼꼼 치밀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01년 박창곤은 4년 동안 함께 했던 김경호밴드를 탈퇴했다.

“김학래 대표님은 누구보다 음악적으로 나를 잘 이해한 분이었어요. 내겐 은인과도 같은 존재죠. 하지만 소속사가 바뀌며 크고 작은 견해차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서로 지향하는 바가 너무 달랐죠.”

“밴드가 오래 지속되려면 멤버간의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좀 덜 갖자와 같은 것 말이죠. 각 멤버의 존재감/기량 등이 미미하더라도 멤버끼리 뭉쳐 밴드라는 하나의 팀으로 되는 순간 막강한 파워가 발휘되는 겁니다. 크라잉넛 같은 밴드가 대표적이죠.”

2001년 박창곤은 부활의 서재혁 등과 잭팟(Jackpot)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하고 셀프 타이틀의 앨범을 발매했다.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등등 대중적으로 친숙한 클래식 명곡들을 인스트루멘틀 록으로 만든 것이다.

“서라벌레코드 홍현표 사장님이 유명 클래식을 록 버전으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서 잭팟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게 됐어요.”

김경호밴드를 탈퇴한 후인 2002년경 박창곤은 부활의 인천 공연 때 이승철과 처음 만났다. 서재혁 등 부활 멤버로부터 박창곤에 대한 얘기를 듣던 이승철은 인사차 공연 대기실을 찾아온 박창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랑도 언제 한번 같이 연주해요.”

“승철이 형의 그 한마디가 인상적이었어요. 김경호밴드를 탈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더욱 울림이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릅니다.”

부활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공연을 비롯한 제반 상황에서 세컨드 기타를 투입하곤 했다. 따라서 박창곤도 처음엔 부활의 세컨드 기타 포지션으로 인연을 맺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얼마후 이승철이 부활을 탈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그는 이승철과의 인연으로 그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박창곤은 2003년 이승철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박창곤은 어느덧 이승철황제밴드와 16년째 함께 하고 있다. 그것도 공연 준비/연습 전반을 총괄하는 밴드 마스터로서 말이다. 서로 궁합이 잘 맞는 걸까?

“승철이 형은 멤버들을 존중하고 잘 배려해 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본받을 점이 많아요. 완벽주의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중 하나죠. 앨범을 녹음할 때에도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계속 작업을 합니다. 이 때문에 예정된 것보다 제작비가 몇 배 이상 더 들기도 하죠.”

“승철이 형은 공연 퀄리티에 대한 집착도 대단합니다. 공연장을 직접 가서 객석 전반을 둘러보며 자신의 공연을 감상하는 데 좋지 않은 위치라 여겨지면 그쪽 객석을 다 철거하라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공연장 여기저기의 객석을 치우다 보면 공연 주최사의 입장에선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승철이 형은 자신의 공연을 보러온 喚느?조금이라도 감상하는데 불편해하면 안 된다는 철칙을 가진 것 같아요.”

이승철밴드와 함께 하며 기타리스트로서도 박창곤의 입지는 강력해지고 있다. 여러 악기회사로부터 협찬 제의를 많이 받을 뿐 아니라 시그니처 기타도 제작됐다. T.C.일렉트로닉, 라인6, D&A(스탠드), 무어(오디오) 등 여러 글로벌 브랜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박창곤의 시그니처 기타가 처음 선보인 건 2014년 스윙(Swing) 기타에서 제작한 ‘스윙 곤’ 모델이다. 그리고 2016년 스윙기타에서 두 번째 시그니처 ‘스윙 곤 SE’가 공개됐다. 그의 첫 시그니처 기타인 ‘스윙 곤’ 모델은 출시 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수천여 대가 넘게 팔렸다.

또한, 그가 스윙기타 EZ100으로 연주한 잉베이 맘스틴의 ‘Far Beyond the Sun’ 동영상이 네티즌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며 이 스윙 EZ100 모델은 5000여 대가 넘게 팔려 나갔다. 국내 일렉트릭 기타 시장으로 본다면 놀라운 판매량이다. 이 모델을 검색하다 보면 “스윙 EZ100기타는 박창곤 님 때문에 산 것임”이라는 사용자들의 후기가 심심찮게 올라와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외에 박창곤을 위해 몇몇 악기회사가 주목할만한 커스텀 기타도 제작한 바 있다. 스윙 기타가 제작한 스윙 커스텀(사진 참조)과 물론(Moollon) 커스텀이 특히 인상적이다.

스윙 커스텀은 5단 셀렉터에 부스트 컨트롤, 강력한 픽업 장착에 이르기까지 스윙 기타에서 그를 위해 정말 신경 많이 써서 제작해준 오로지 1대만 존재하는 모델이다. 강력한 성능을 위해 쉽게 볼 수 없는 부품들이 장착되다보니 제작비가 만만치 않아 소비자가 등을 맞추기도 힘들고 그 외 제반 사정으로 양산용으론 출시되지 못했다. 박창곤은 이승철 25주년 공연 때 이 기타를 연주한 바 있다.

물론 커스텀 기타(사진 참조)도 박창곤에겐 오랫동안 기억될 악기다. 당시로선 물론에서 처음 시도하는 컬러가 사용된 바디는 한번만 봐도 눈에 확 들어온다.

“각자 자기 몸에 맞는 게 있듯이 스윙기타는 내 몸에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 퀄리티도 국산 기타의 편견을 깰 만큼 탁월합니다.”

내년 초엔 박창곤 콜트(Cort) 시그니처 기타가 공개될 예정이다. 콜트 시그니처는 몇 년 전부터 얘기가 되어 오다가 본격적으로 제작에 돌입한 건 1년 전부터이며 이번 콜트 시그니처는 우선적으로 단 10대만 소량 출시되는 프리미엄급 모델이다.

24프렛으로 사틴 피니시의 바디(베이스우드)에서 네크(메이플), 지판(에보니)에 이르기까지 콜트 측에서 매우 신경 써서 제작한 것으로 물론 박창곤의 요구를 100% 수용한 모델이다. 픽업은 덩컨, 트레몰로 암은 플로이드로즈, 그리고 고급 기타케이스로 잘 알려진 히스콕스(Hiscox)가 따라간다. 이 모델은 무엇보다 현재 사용되는 콜트가 아닌 초기 콜트 기타에서 볼 수 있는 로고를 헤드에 디자인한 게 눈에 띈다.

“초기에 볼 수 있는 콜트 기타 로고가 더 좋아서 이번 시그니처에 사용하게 됐어요. 지금보다 초기 로고가 더욱 ‘록스러운’ 패턴인 것 같아요.”

요 몇 년 동안 박창곤은 깁슨 레스폴 골드탑(2004년)을 사용하고 있다. 10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는 이승철 공연에서도 이 레스폴을 메인기타로 사용한다.

“깁슨 레스폴은 레스폴 고유의 힘이 느껴지는 게 매력이죠. 오랫동안 검증된 명기만의 특징 즉, 다이내믹 폭, 음역대가 넓게 커버되는 게 강점입니다. 솔로잉때엔 24프렛 기타를 선호하지만 이승철밴드에선 24프렛 기타를 사용할 일이 없어요. 이승철밴드 음악에선 깁슨이 가장 잘 어울리고 승철이 형도 레스폴 소리를 워낙 좋아하는 이유도 있어 레스폴을 밴드 공연 때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하이엔드 기타 비지에(Bigier)도 그가 애용하는 기타 중 하나다. 24프렛, 덩컨 픽업 장착의 이 기타에 대해 그는 “깔끔하고 정교한 소리가 매력인데 특히 카본 소재라 매우 가볍고도 내구성이 탁월합니다. 네크에 트러스로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현재까지 네크가 휘어지는 증상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박창곤은, 명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마크 켄드릭을 비롯해 편하게 누워서 연습하기에 좋게 제작된 코로나 커스텀(헤드리스), 마틴 D28 어쿠스틱 기타 등등 현재 약 30여 대의 기타를 소장하고 있다.

유명세만큼이나 그에게 개인 레슨을 받길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박창곤은 월평균 5명으로 수강생에 제한을 두고 있다.

“한꺼번에 수강생이 많아지면 그만큼 제자에게 집중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받고 있어요.”

“레슨시 무엇보다 기본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피킹, 핑거링 같은 것 말이죠. 뭐를 해도 기본기가 확실해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힘을 빼기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교습시키는데, 예를 들어 피킹/핑거링 등 기타를 연주할 때 필요 없는 부위엔 힘을 빼고 연주하는 순간에 필요한 부위에만 힘을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말합니다. 개념적으론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트레이닝 방식과 같은 것이죠.”

박창곤은 2010년 결혼해 현재 7살과 9살의 딸 둘을 두고 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다니던 학원 선생이 현 아내다. 영어를 배우러 갔다가 첫눈에 반해 본격적으로 연애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내는 현재에도 ‘잘 나가는’ 영어 선생으로 맹활약 중이다.

박창곤은 건강관리를 위해 10년째 테니스를 치고 있다. 일주일에 4회 이상은 치는 편인데 동호회 수준으로 볼 때 A-B-C 중 B의 상위 레벨은 된다고.

주량은 소주 3병 정도, 담배는 하루 반값만 피운다고.

박창곤은 내년부터 기타리스트/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을 알리는 데 더욱 정진할 예정이다.

“이승철밴드와는 별개로 내년부터 나만의 밴드를 조직해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 록 발라드/소프트록 타입을 지향하는 밴드로, 이미 30~40여 곡을 만들어 놓은 상태죠. 또한 내년부턴 버스킹도 열심히 해 좀더 일반 대중에게도 박창곤의 존재감을 알리려고 해요. 먼저 송도 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터키 행진곡, 치고이네르바이젠, 왕벌의 기행 등등 귀에 익숙한 클래식을 록 버전으로 연주하며 버스킹을 해볼 생각입니다. 일렉기타 저변 확대에도 어느 정도는 기여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박창곤에게 기타란
“나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거울”

사용장비

▶ 기타
스윙(Swing) 커스텀
깁슨 레스폴 골드탑(2004년)
비지에(Bigier)
물론(Moollon) 커스텀
깁슨 레스폴 더블네크(93년)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마크 켄드릭(2005년)
그 외 다수

▶ 앰프
마샬 JCM2555
펜더 dx rer 1965
솔다노 X-99
Two Notes-Torpedo (라이브)

▶ 그 외 이펙트/기기
라인식스 힐릭스(Line 6 Helix)
무어 오디오(Mooer Audio)-GE300
ue 커스텀 인이어, 슈어(Shure) ulxd4 와이어리스 등등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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