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혜의 황홀한 광란' 1700명 홀렸다..아이뉴스24 창간20주년 음악회 브라바!

민병무 2019. 11. 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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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의 아리아 등 '매드신' 대방출..김덕기 지휘·한명원 게스트 출연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1700여명이 모두 숨을 죽이고 무대 위 김성혜를 바라보았다.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된 가엾은 루치아가 거기 서있었다. 이별의 아픔을 감내하기 어려웠던 루치아는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미쳐버렸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 첫날밤에 신랑 아르투로를 칼로 찌른 뒤, 피투성이 드레스(흰옷에 붉은색 숄더를 길게 늘어뜨려 피 묻은 잠옷을 표현)를 입고 나타나 ‘Il dolce suono(저 부드러운 음성이)’를 부른다. 극심한 정신착란 속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비통한 심정을 노래하자 콘서트홀은 깊은 슬픔에 휩싸인다.

소프라노 김성혜가 '아이뉴스24 창간 20주년 기념 독창회'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속 매드신을 부르고 있다. [정소희 기자]
소프라노 김성혜가 '아이뉴스24 창간 20주년 기념 독창회'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속 매드신을 부르고 있다. [정소희 기자]

애끓는 플루트 소리(플루티스트가 소프라노 바로 옆에서 연주)가 들린다.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에드가르도의 음성이다. 아 당신을 잊은 적 없어요, 단 한순간도. 악기와 목소리가 애절하게 대화를 한다. 그저 듣기만 했는데 눈물이 왈칵 솟는다.

‘Spargi d’amaro pianto(사랑의 눈물이 흘러 세상에 넘치네)’까지 이어지는 핏빛 절규를 토해내자 관객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곤두 세웠다.

세상에 이렇게 처절한 노래가 또 있을까. 고음의 끝판왕!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별명은 없다. 정말 미쳐야만 부를 수 있는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 나오는 매드신(Mad Scene)을 섬세한 기교와 엄청난 힘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16분 동안 이어진 루치아의 아리아는 끝났지만, 감동의 울림은 앞으로 1600시간 계속 이어질 듯 브라바 함성이 멈추지 않았다.

소프라노 김성혜가 '아이뉴스24 창간 2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소희 기자]

소프라노 김성혜가 21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국데뷔 10주년 독창회 ‘I’m Coloratura, I’m Kim Sunghye(아임 콜로라투라, 아임 김성혜)’에서 황홀한 광란을 선사했다. “나는 콜로라투라야!”를 증명하듯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구사했다. 특히 아이뉴스24 창간 20주년 기념 콘서트로 열린 이번 공연의 일부 수익금은 ‘툴뮤직 장애인 음악 콩쿠르’에 사용돼 더욱 뜻깊은 음악회가 됐다.

모든 레퍼토리가 ‘심쿵’이었다. 김성혜의 눈부신 고음은 김덕기 지휘자와 코리아쿱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음악을 타고 심장을 저격했다.

벨리니 <몽유병의 여인>에 흐르는 아미나의 아리아 ‘Ah! non credea mirarti...Ah! non giunge uman pensiero(아, 믿을 수 없어라...아, 내 마음속의 충만한 기쁨)’에서는 루치아의 노래처럼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해줬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는 미묘한 심경의 변화가 유려한 선율에 실려 스펀지처럼 마음에 스며들었다.

‘A vos jeux, mes amis(당신들의 놀이에, 친구들이여)’와 ‘Air des clochettes(종의 노래)’에서는 인상주의적 색채가 강한 프랑스 음악 스타일을 선보여 환호를 받았다. 토마의 <햄릿>과 들리브의 <라크메>에 나오는 이 두곡을 독특하고 정갈한 서정미로 표현해 뛰어난 곡해석 능력을 보여줬다.

소프라노 김성혜가 <호프만 이야기>에 나오는 '인형의 노래'를 부르자 김덕기 지휘자가 인형의 태엽을 감아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김성혜는 태엽을 감아줘야만 움직이는 인형으로 변신해 ‘Les oiseaux dans la charmille(새들은 나뭇가지 사이에)’를 불렀다. 오펜바흐 <호프만 이야기>에 나오는 올림피아 인형이 되어 지구 최강 ‘세젤귀’를 뽐냈다.

아름다운 소녀가 되어 두근두근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Una voce poco fa(방금 들린 그 목소리)’와 ‘Caro nome(그리운 그 이름)’에서 남자 때문에 처음 느껴보는 설렘을 살려냈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중 로지나의 아리아와 베르디 <리골레토> 중 질다의 아리아를 꿈꾸듯 노래해 박수세례를 받았다.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 중 하나인 ‘Vorrei spiegarvi, oh Dio! K.418(오, 신이여! 제 얘기를 들어보소서)’에서는 오보에 소리가 멋졌다. 김성혜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듣고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사랑이 샘솟았다.

소프라노 김성혜와 바리톤 한명원이 <리골레토>에 나오는 질다와 리골레토의 이중창 '주일날 교회에 다녀와서'를 부르고 있다. [정소희 기자]

특별 게스트로 나온 한명원은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에 나오는 ‘Nemico della patria(조국의 적)’에서 바리톤의 역량을 시험하는 비장하고 진지한 노래를 퍼펙트하게 불렀다. 또 김성혜와 듀엣으로 <리골레토> 속 질다와 리골레토의 이중창 ‘Tutte le feste al tempio...Si, vendetta(주일날 교회에 다녀와서...그래, 복수다)’를 선사해 딸의 아픔을 보듬는 아버지의 심정을 절절하게 펼쳐냈다.

독창회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중간 중간에 오페라 전주곡과 간주곡을 넣어 액센트를 줬다. 김덕기 지휘자와 코리아쿱은 바그너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을 연주해 낭만주의적 웅장함을 담아냈다. 칠레아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2막 간주곡과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니> 간주곡도 살포시 마음을 울렸다.

푸치니 <마농 레스크> 3막 간주곡은 감미로움과 비장함을 동시에 표현한 현악기와 하프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아름답고 처연했다.

소프라노 김성혜가 앙코르곡으로 <말괄량이 마리에타>에 나오는 '이탈리아 거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소희 기자]

김성혜는 앙코르곡으로 허버트의 <말괄량이 마리에타>에 나오는 ‘Italian street song(이탈리아 거리의 노래)’을 연주해, 나폴리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며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경쾌하게 담아냈다. 또 새롭게 편곡된 ‘보리밭(박화목 시·윤용하 곡)’도 귀에 쏙쏙 박혔다.

김성혜는 리사이틀을 마친 뒤 “하늘이 주신 귀한 선물인 제 목소리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좋겠다”라며 “이런 멋진 자리를 마련해준 아이뉴스24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연은 콜로라투라의 진수를 아낌없이 보여줄 수 있어 인생 콘서트가 됐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민병무기자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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