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는 롤스로이스 항공기 엔진에 부품 공급한 한화에어로의 고민

조귀동 기자 2019. 11. 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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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톡톡]

"롤스로이스 항공기 엔진 폭발 사고가 많은데, 원인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품을 공급했다가 문제가 되면 우리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사업 확대는 그렇다 쳐도, 사고가 잦은 엔진에 한화 부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구태여 자랑할 것까지야…"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영국 롤스로이스에 항공기 엔진 부품을 공급하게 된 사실이 널리 알려진 후 한화그룹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롤스로이스의 엔진(트렌트 시리즈)이 최근 잇따라 폭발사고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 8월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쇠 우박’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8월 10일 로마 인근 피우미치오시 주민들은 하늘에서 아기 손 정도 크기의 쇠 우박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인근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을 이륙한 노르웨이 노르위전에어 소속 보잉787 여객기 엔진이 뚜렷한 이유 없이 부서져 큼지막한 파편이 고도 900m 높이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이륙 23분 만에 발생한 이 사고로 주택 12채와 차량 25대가 파손됐습니다. 사고 조사 결과 롤스로이스가 만든 '트렌트1000' 엔진의 결함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3개월 후인 11월 9일에는 인천에서 싱가포르로 가던 아시아나항공(020560)여객기 에어버스 A350의 오른쪽 엔진이 갑자기 꺼졌습니다. 롤스로이스의 ‘트렌트XWB’ 엔진이었습니다.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기장은 급히 항로를 변경,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비상 착륙했습니다.

롤스로이스가 개발한 트렌트 엔진은 가벼운 구조로 설계된 엔진으로 여객기용으로 많이 팔렸습니다. 하지만 최근 엔진 결함으로 인한 여객기 사고가 늘어나며 항공사들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캐세이퍼시픽 소속 A350기가 엔진 연료관 균열로 연료가 새버리는 바람에 비행 도중 비상착륙했습니다. 10월에는 아시아나항공의 에어버스 A380 항공기가 이륙을 앞두고 엔진에 불이 붙었습니다. 모두 롤스로이스의 트렌트 엔진 결함이 원인이었습니다.

최신 제품인 롤스로이스 트렌트1000 엔진은 고장이 너무 잦아 언제 꺼질지 모르는 엔진으로 악명 높습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2018년 4월 트렌트1000 엔진을 단 항공기의 경우 엔진 하나가 꺼질 때를 대비해 비행경로를 설정할 때 비상착륙이 가능한 공항과의 거리(ETOPS·Extended-range Twin-engine Operational Performance Standards)를 기존 330분에서 140분으로 줄였습니다. 나머지 엔진 하나도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 때문에 트렌트 엔진이 들어간 항공기를 사용하지 않는 항공사도 있습니다. 대한항공(003490)의 경우 롤스로이스 트렌트 엔진 대신 제너럴일렉트릭(GE)과 프랫앤드휘트니(P&W)의 엔진이 들어간 항공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A350을 도입하지 않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A350에는 결함이 있는 롤스로이스 엔진만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롤스로이스 트렌트 시리즈 엔진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은 지난 2010년 호주 콴타스항공의 A380에 탑재된 트렌트972 엔진이 운항 도중 폭발한 사고를 계기로 드러났습니다. 엔진 내 연료 도관 불량으로 내부에 화재가 발생한 뒤, 화재로 터빈 디스크(얇은 판)가 뒤틀려 엔진 내부를 망가뜨린 게 원인이었죠. 롤스로이스가 이 사고의 원인이 트렌트 엔진 결함 때문임을 시인하면서, 트렌트 엔진은 ‘날으는 폭발물’이라는 오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롤스로이스는 트렌트엔진 결함이 설계가 잘못된 것인지 제작과정의 문제인지 9년이 지나도록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롤스로이스 트렌트 엔진에 10억달러 규모의 부품을 장기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회사 대표가 직접 나서 알렸습니다.

한화그룹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원청 업체인 롤스로이스의 완제품인 트렌트엔진이 폭발사고가 잇따르고 있어서 자칫 대형 항공사고로 이어질 경우 롤스로이스뿐만 아니라 엔진 부품을 공급한 한화까지 대규모 보상책임 문제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만약 대형사고가 난다면 롤스로이스는 트렌트엔진 결함의 원인을 자사의 설계 오류가 아닌 제작과정의 문제라고 밝힐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 경우 엔진 부품을 공급한 회사도 책임 부담을 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롤스로이스와의 납품 계약 사실을 널리 알리며 과시한 것에 대해서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홍보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것은 사업 확대를 위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이를 과시하듯 널리 알리는 것은 롤스로이스 엔진 폭발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선 문제가 있다"면서 "만약 롤스로이스 엔진 폭발사고가 계속되고 대형 항공사고로 이어질 경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물론 한화그룹까지 이미지 추락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의류 등 소비재는 판매확대를 위해 널리 홍보하는 것이 관행입니다. 하지만 엔진 부품 공급처럼 기업 간(B2B) 거래가 이뤄진 경우엔 알리지 않거나 간단한 보도자료로 대신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거래 금액이 이미 정해져 있어 널리 알린다고 해서 소비재처럼 수익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렇게 대대적인 수주 홍보에 나선 데 대해서 재계는 현재의 대표가 2015년 취임한 후 뚜렷한 성과가 없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 회사는 2016년만 해도 영업이익이 1507억원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영업이익은 매년 급감해 2017년 829억원, 지난해 532억원까지 줄었습니다. 현 대표가 회사 경영을 맡은 후 영업이익이 3분의 1로 줄어든 셈이죠. 2017년에는 377억원 순손실까지 냈습니다. 재계에선 연말 인사 다가오는 시점에 대표가 직접 나서 롤스로이스와의 계약을 널리 알리는 것은 자리보전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꽤 오랜 기간의 침체를 깨고 대규모 계약이 성사돼 알리게 된 것일 뿐이며, 대표 관련설 등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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