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4대 내전을 치르고 있소"

이계홍 작가, 언론인 2019. 11. 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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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21>

[이계홍 작가, 언론인]

 
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바로가기 :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처음부터 보기

제21장 “우리는 4대 내전을 치르고 있소”

현호진은 성산포에 들어와 있었다. 대정 쪽에서 밤에 밀선을 타고 바다 멀리 나갔다가 섭지코지의 신양 포구로 들어와 마을 끝 빈 집의 골방에서 야학반 교사들을 만났다. 4.3 직후 요소요소에 서북청년단원과 대동청년단원들이 배치되어있고, 경찰의 경비는 삼엄했다. 그래서 육로보다 바닷길을 택해 들어오는 것이 덜 위험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현호진은 고종 관계인 고길자의 해녀조합과 연계돼 지하 조직을 움직이고 있었고, 야학반 교사들을 별도로 지휘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격활동을 벌이는 야산대 중의 하나였는데, 마을에서 지원을 요청하면 출동하는 비상 대기조였다. 토벌대의 진압이 가열 차서 근래 활동이 위축되었다. 
으슥진 골방, 조그만 호롱불 아래 마주앉은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모두들 절망에 빠진 듯 한결같이 침울해 있었다. 그런 중에도 순간순간 귀를 세우고 밖에 신경을 쓰는데, 그것은 도피생활 중 체득한 하나의 체질로 보였다.  
현호진은 행색이 꾀죄죄했지만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전사의 풍모였으나 어떤 달관이랄까, 여유 같은 것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현호진을 청년들은 마음 속 깊이 존경하는 듯했다. 가족의 안위보다 이웃을 생각하는 자세는 그대로 혁명자의 풍모였다. 
“상준이 사라진 건 언제라고 했지요?” 
한참만에 현호진이 물었다.
“보름 됩니다. 일본에서 온 처녀와 함께요.” 
야학반 청년교사 박재동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른 관점으로도 나이브하게 볼 수 있지. 여자와 함께 사라졌다면...”
“오빠, 제발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이 좁은 제주 바닥에서 함께 외지로 나갔다면 누구 눈에든 띄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두 사람은 사랑할 사이가 아니에요.” 
고길자가 말했다. 
“사랑할 사이가 아니라니, 젊은 이성간에는 그게 전제되는 것 아닌가.”
현호진이 물었으나 고길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임순심의 과거를 지켜주어야 하고, 그렇더라도 그녀를 상준과 엮이게 할 수는 없었다.
“남녀 청춘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니까 속단하지 말자구. 남녀가 사라졌다면 좋은 일 아니겠나? 이곳을 떠났다면 더 이상 좋은 일도 없을 거고....” 
현호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웃집 가듯이 산책하는 차림으로 나갔으니까 문제죠.”
“그렇게 주변을 안심시키고 떠나는 수도 있지.”
이렇게 낙관하면서도 현호진 역시 불안했다. 주민의 ‘행불’이 일상화되어 있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가족이 뒷덜미 잡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행불자 중에는 전사(戰士)로 나선 자도 있었으니 그가 몰래 숨어들어오면 뒤쫓는 청년단에게 덜미가 잡혀 가족 전체가 피해를 보았다. 
현호진이 정색을 했다.
“그들이 안전한 곳에 있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혁명은 사사로운 연애까지 허용하지 않소. 나 역시 집을 나선 지 반 년이 넘었지만 집에 못들어가요. 그들은 덫을 놓고 있으니까 말려들면 안되오. 그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녀, 즉 인간의 가장 허약한 고리인 가족을 이용하는 거요. 그래서 연애와 혁명은 양립할 수가 없지. 이 점 유의하고, 우리가 기왕에 만났으니 모처럼 학습합시다.”
“경찰과 청년단원들 때문에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데, 그중 뒤에서 조종하는 경찰놈들이 더 비열합니다.”
박재동이 말하자 현호진이 낮으나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의 이 사태를 제주 주민 대 경찰의 싸움이라고 보아선 안됩니다.” 
“제주 주민 대 경찰의 싸움이 아니라고요?”
엄연히 살육이 병정놀이처럼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으면서 그게 아니라니, 박재동은 납득할 수 없었다. 박재동은 사람들이 나약해지면서 하나씩 둘씩 무너져가는 상황을 보면서 근래 더욱 좌절하고 있었다.   
“박 동지, 사태를 잘 보시오. 그들은 하수인입니다. 하수인이 이용당하면서 폭력성을 보일 뿐이오. 무지하면 더 용감하고 야만적이지요. 우리는 거대 담론과 함께 미시 담론, 즉 디테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 사태를 어떻게 보신다는 겁니까.”
“이건 내전이오. 그것도 네 개의 내전을 치르고 있소.” 
“네 개의 내전이라니요?”
현호진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내전은 조선인민 대 일제식민 지배와의 전쟁이오. 그런 관점으로 제주 4.3을 보아야 해요. 미국이 조선을 해방시켰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입니다. 미군이 진주하면서 일제와 항복 조인을 맺었으나 조선은 독립되지 않았소. 일제는 조선의 모든 물적 유산과 인적 자원을 미군에 물려주고 떠나지 않았소? 조선 인민에게 물려준 것이 아니오. 그중 인적 자원이 문제요.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에게 헌신한 세력이 불이익당하지 않도록 미군정에 협조를 구하고, 그 기조 아래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물러간 것이오. 저지른 죄악에 비하면 너무나 행복하게 떠나간 것이오. 미국은 일제강점기의 고급 관료와 경찰, 헌병 출신들을 받아서 통치 기반으로 삼았소. 그것이 수월한 조선통치 방식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오.”
“인식이라뇨?”
“일본 제국주의자들한테 학습받은 거요. 미군 태평양사령부는 일본국을 패전국으로 구분하지 않고, 전승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대접했소. 반면에 그 전범국가에 의해 희생된 식민지 조선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았소. 철저히 묵살했소.”
“왜 그렇습니까.”
“협상의 카운터 파트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지. 힘없는 대상은 애초에 배제되는 거요. 지시하고 명령하고 호령하면 되는 대상일 뿐이지. 협상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주의요, 그리고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지식이 없었소. 일본이 가르치고 알려준대로 조선을 인식했을 뿐이오. 루스벨트는 카이로회담에서 조선 독립은 '적당한 절차'를 거쳐 ‘적당한 시기’에 베푼다고 했지. 이것은 일본의 식민지배처럼 무한 신탁통치한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는 발언이오. 전쟁이 끝나면 당연히 독립하는 건데,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절차를 밟아 독립시켜준다? 이런 때 우리의 지도자들은 정보가 빈약하고, 세계관 또한 허약했소. 그들은 변화된 국제 정세를 읽지 못했지. 그러니 친일 사대에서 친미 사대로 옷을 바꿔입은 세력에게 무참히 밟히고 만 것이었소.”
“우리에게 이승만 박사가 계시지 않습니까. 그는 미국 조야에서 발언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까”
“그분은 조국의 그랜드 디자인을 그릴 정도의 위인이 못되었소. 워싱턴 포토맥 강가에서 낚시질로 소일하셨지, 더군다나 70 노객인데 무슨 꿈이 있겠소. 노쇠하기도 했고. 외교가에 끼워넣어줄 군번도 못되고 인맥도 없었고. 미국 조야에선 이런 영감이 있었나 할 정도였소. 반면에 왜놈들은 미국 조야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들어가 모든 일본계가 로비스트가 되었소.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오. 마천루를 지어놓고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놀라지만 사실은 사람이 만든 거요. 패망한 일본이 터럭 하나 다치지 않은 것은 그런 인적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오. 맥아더는 과거의 이력을 통해 볼 때 가장 화끈한 친일파였소.”
“맥아더가 친일파라. 그보다 일본을 동등하게 처리한 것은 소련 남하를 막기 위해 일본을 미국 방어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전략 때문이 아닌가요?”
“미소 양국은 같은 전승국으로서 협조적이고, 루즈벨트 때는 더 협력적이었소. 트루만도 루즈벨트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소. 이런 때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이 않았지. 그런 안목이 없으니 우리는 시계 제로의 미망이 갇혀버렸소.”
“저는 그렇게 안봅니다. 중국에서 국공 내전이 벌어지고, 마오쩌뚱이 전세를 역전시키고 있는데, 거대 중국 대륙이 마오에게 넘어가면 공산 세력 확장은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 소련이 남하했다, 그래서 미국이 전범국가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켜준 것이다, 라는 정책 전환이 있다고 봅니다.”
“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아요. 외부적 환경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유리하지 않습니다. 그런 환경을 바꾸어나갈 내부적 역량이 갖춰졌느냐 안됐느냐가 문제지요. 지도자들이 힘을 발휘해 우리 몫을 차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것이 되는 것이오. 한데 우리 지도자들의 미래 비전이나 세계관이 어떤가. 패전국 왜놈은 미군사령부를 다룰 줄 아는데 우린 동굴 속에만 갇혀 있는 것이오. 그 차이요.”
“물정을 모르고 자국민끼리 싸우기만 한단 말이죠?”
“장님이 서로 등불 들고 길 안내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꼴이오. 미군정의 전후 관리가 엉망이라는 사실, 환히 드러나고 있지 않소. 이런 오류를 시정토록 길을 찾거나 길을 밝혀주어야 할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멱살잡이하고 있단  말이오. 시덥잖은 차이를 가지고 말이오. 오랜 당파성의 DNA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 미국과 일본이 걸기 좋은 미션이오. 그들은 갈등이 생길만한 곳에서는 언제나 싸우도록 유도하지요. 그래야 자기들의 지분이 확장되고, 역할은 강화되지. 한 예로 우리의 군대 조직을 봅시다. 군사 조직을 경찰의 하부 조직으로 편성했는데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런 경우가 있나. 신성한 국토 방위의 수호자를 장터에서 소매치기를 잡는 경찰의 하부조직으로 집어넣다니, 그러니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지. 또 만주팔로군, 조선의용군, 항일빨치산, 광복군 출신들이 민족의식이 강하게 무장되어 있고, 일본군 출신 중에서도 민족의식이 내면화되어 있는 젊은이들이 있소. 그런데 미군은 이런 세력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요”
“그건 친일세력들의 이간질과 모략 때문이 아닌가요?”
“물론 정치적 저의가 있소. 미국이란 나라는 다인종국가로서 본래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희박한 나라지. 그래서 조선의 민족주의를 이해하지 못해요.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또 어떤 전승국이건 내부적으로 뭉치는 것을 경계하니까 민족적 자존심과 자주성을 내세우는 진영보다 민족의식이 결여된 세력과의 결탁을 선호하지. 그래서 그들을 권력의 주변부로 밀어내거나 싹을 잘라내는 것이요. 이것을 조선총독부가 정보를 제공하고 떠난 거요. 문제는 우리 지도자들이 이런 내막과 저의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요. 그저 놀아나고 있을 뿐이오.”
“그럼, 두번 째 내전은 무엇입니까.
“좌우 대결이오. 미군정은 본의든 아니든간에 국내에서 좌우 대결이 극렬해지는 것을 방관해왔소. 해방 관리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오. 이것 역시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오. 알다시피 일제는 제국주의를 반대한 세력을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로 몰아 이적시해서 잡아가두었소. 그렇게 대중 선동과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탄압했던 것이지. 일본을 반대하는 세력은 공산주의자다, 사회주의자다 라고 몰아붙이면 군국주의에 세뇌된 백성들은 국가적 병균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병균은 영원히 박멸해야 한다고 흥분하지. 일본인은 본래 정치적으로 권력에 순응하는 국민성을 갖고 있는데, 일제는 이것을 이용해 모순을 극복하겠다는 양심적인 인사들을 분쇄했소. 체제에 불만을 품은 자들을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여서 일본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반면에 세뇌된 백성들은 그들을 일망타진할 때마다 열광을 하지. 식민지 조선의 경우는 그 강도가 훨씬 더했소. 조선 인민에겐 항일정신이라는 또다른 ‘저항의 병소’들이 자라고 있다고 보고, 낙인을 찍어서 가혹하게 탄압했던 것이오. 아다시피 일본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세계 어느 나라 사회주의자들보다 온건한 사람들이오. 조선의 경우는 더 허약했소. 그런데 경찰과 헌병들이 세상에서 존재해서는 안되는 가장 극악무도한 악마로 설정해 박멸해야 할 벌레 취급하며, 극단으로 몰아 다스렸소. 가장 온건한 사상범을 가장 극악하게 다루었던 것이요. 조선인에게는 훨씬 잔인했소. 지금도 그 연장이오.”
“세 번째 내전은 무엇인가요.”
“남북 대결이오. 분단이 이런 내전의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고 있소. 사회주의자도 있지만, 그들은 항일이라는 나무 아래서 물을 받아먹고 번식해온 민족주의의 틀 안에서 자라난 세력들이오. 그런데 분단이 되고, 북에 소련의 아류인 프로레타리아 정권이 들어서면서 좌우 대결, 남북 대결,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소. 일본 제국주의가 빨갱이가 없으면 나라를 지탱할 힘이 없었듯이, 한반도에도 지금 일본이 행한 지배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소. 좌우대결, 남북대결이 부각되면 자연스럽게 고등 사찰계 경찰들의 활약상이 돋보일 것이고, 그래서 나라는 헌병국가, 경찰국가로 전락해가는 것이오.”
“아아, 절망입니다. 그럼 네 번째 내전은 무엇입니까.” 
“지금 제주도에서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내전이 결합하면서 주민 자치와 나라의 독립정신을 가차없이 부수고 있소. 제주도민 대 정부 토벌대와의 내전이오.”
“군대는 그래도 중립 아닙니까?” 
뒷자리의 청년이 물었다. 
“힘은 행사하라고 존재하는 관성을 갖고 있소. 그래서 힘을 가지면 누구나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법이요. 총을 갖고 있으면 쏘고 싶은 욕망이 따른르는 것이오. 총의 사용이 지휘관의 품성에 따라 억제되는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서는 불완전하단 말이오.”
“경찰과 청년단에 이어 군대도 제주도 너는 죽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거군요? 지휘자에 따라서...”
“공명심이라는 것이 나쁘게 작동하면 인간의 욕망을 가장 나쁘게 사용하는 흉기가 되는 것이오. 이런 무법천지의 토양에선 굳이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할 필요가 없소. 지휘관이 인간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한 의지가 작동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요행일 뿐, 요즘 세상에 그런 요행을 바란다는 것은 미신적인 믿음과 다를 바가 없소.”
“결국 결사항전 밖에 없습니다.” 
박재동이 비장한 어조로 선언하듯 말했다.
“혁명은 이론이 아니라 액션 플랜입니다. 중산간 마을, 선흘리 대흘리 세화리 상도리 쪽을 유의해서 보고, 우도쪽과의 연락 체계도 차질없이 갖도록. 지침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소. 전달 속도도 느리고.”
“전화 한 대 없고, 경찰과 군대 초병들이 요소요소에 지키고 있고, 오직 비밀리에 그들을 피하는 인편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비밀 루트 개척이 중요해요. 지금 몇가지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토벌군보다 서청과 대청의 동태를 먼저 파악하시오. 다들 미치광이가 되어가고 있소. 아울러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습기가 많고 물이 많은 진지 동굴은 가능한 한 피하시오. 고뿔 걸리기 딱 좋은 날씨에, 동굴 환경이 최악이오. 한 사람이 고뿔에 걸리면 모두 전염되어서 총맞아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소. 기침소리 하나에 조직원이 전멸할 수 있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참석자 하나하나를 살펴보었다. 모두가 결의에 차있으나 절망적인 그늘이 어려있었다.   
“9연대와 라인이 작동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와 있는데 사실입니까.”
한 청년이 물었는데, 현호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지금 나가봐야겠소. 길자가 집에 한번 가봐요. 걱정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주고, 아이들 먹는 것만은 빼먹지 않도록 해요.”
현호진 역시 혁명자 이전에 평범한 지아비였다.  
“상준이를 잘 찾아보도록.”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뒷 모습이 허허로웠다. 정말 누구 하나 안위가 걱정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런 시기엔 친구, 친척, 가족을 찾는다는 자체가 슬픔이었다.    

엄마는 남자를 이긴다

바다 멀리에서 불빛이 깜빡 켜졌다가 사라졌다. 얼마 후 똑같이 불빛이 켜졌다가 사라졌다. 무슨 신호인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돛배가 서서히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배가 임시 가설한 부교에 정박하자 부둣가에 대기하고 있던 청년 몇이 우루루 돛배 쪽으로 달려갔다.
“꼼짝 마라.”
그들은 배 위에 올라 뱃머리에 서있는 선장과 뒤쪽에서 닻을 내릴 준비를 하던 선원들을 모아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하부장님, 그게 아닌데요? 고깃배예요.”
선체를 뒤지던 청년 하나가 달려와 하대칠에게 보고했다. 
“위장선이다. 그럴수록 샅샅이 뒤져라.”
그러나 배 밑창에는 갓 잡은 싱싱한 물고기만 가득차 있었다. 
“밀선이 아니란 말이가?” 
그들은 밀수품을 실은 배가 들어온다는 첩보를 받았다.
“우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배의 뒷 구석에 쳐박힌 선장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상 봉쇄된 걸 몰랐네? 요것들이 간뗑이가 부어두 배꼽 밖으로 나왔군.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멋대루 바다에 나가네?”
“저녁 횟감으로 올릴 것들입니다.”
“누구한테?”
“민정장관님 특별허가를 받고 나가서 작업하고 오는 길입니다.”
“고래? 민정장관?”
맨스필드 민정장관이라면 누구나 깜빡 죽었다. 선장이 항행증을 내보였다. 
“왜 그럼 일찍 들어오디 않구 깜깜한 밤중에 위험스럽게시리 어둡게 들어오네?”
“물때가 좋아서요. 고기가 많으면 정신이 없습니다.”
그들은 검색을 마친 뒤 배에서 물러났다. 얼마 후 바다 가운데 떠있던 동력선 진미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선을 미리 보낸 것은 일종의 미끼였다. 어선을 바다 가운데로 나오도록 하고, 밤이 깊자 부두로 들여보낸 것이었다. 항행증도 여러장 준비해놓고 있었다.
청년단은 아직 부두노조를 장악하지 못했다. 뱃사람들은 일제강점기부터 부두의 살벌한 노동환경과 노동자의 거친 생존법칙에 따라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온 세력이었다. 그래서 청년단과 대립하는 도내 유일의 집단이었다. 암흑가의 조직보다 더 결속해있는 이들 때문에 청년단은 그래서 가능한 한 부두노조 노동자들과는 충돌을 피하고 있었다. 
배재정은 첩보를 입수해 먼저 고깃배를 들여보낸 다음 부두로 진미호를 접안시켰다. 다시 검은 물체의 사람 하나가 동력선으로 빨려들어가듯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선체 후미의 배 밑창 방으로 들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배재정이 그를 맞이했다. 
“이번에 가지고 온 건 무엇입니까.”
“모포올시다.” 
“산 사람들 때문이요?” 
사진봉은 마땅치 않은 표정이었다. 
“여름철이니 모포값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바람이 많고, 일교차가 심해서 언제나 모포가 필요해요.”
“폭도들에게 제공할 생각 아니오?”
그제서야 배재정이 웃으며 대답했다.
“장사꾼이 구분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물건만 사겠다면 적에게도 무기를 팔지요.”
“배사장 배짱은 놀랍소. 다른 건 뭐가 있소?”
“라디오, 신발, 모자, 의약품, 담배 등속이오.”
“담배는 나에게 넘기시오.”
“이백보룬데 반 넘기겠소.”
사진봉은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청년단원들은 엉겨붙기를 좋아했지만 그는 한번 결정한 것은 번복한 적이 없고, 크게 부족하지 않으면 그대로 수용했다. 하긴 가만히 앉아서 잇속을 챙기는 것이니, 그것도 그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모포도 오십 장 주시라요.” 
“그건 현금이오.”
“좋소. 내일 오전까지 보헤미안으로 사람 보내시오. 결재해주갔소.”
“아이들 좀 챙기시오. 이 사람 찾아오고, 저 사람 찾아오고, 불편합니다.” 
사진봉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달렸을 것이다. 대원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면 선주들이 무던히도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그것을 봐주는 조건으로 선주들로부터 삥을 뜯고 있었다.

깊은 밤, 사내 하나가 훌쩍 담을 뛰어넘었다.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사위는 고요적막했다. 사내가 익숙하게 집안으로 들어서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은 비어있었다. 사내는 방안을 두리번거리더니 반쯤 기울어진 문짝을 일으켜 세워 바로 세우고 광을 지나 골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가느다랗게 숨죽이며 누워있는 사람이 있었다.
“에미나이네?”
그가 이불을 제치자 누워있는 사람이 조금 움직였다. 납작 누워있는 사람은 여자였다. 
“몸 많이 상했네? 나 섭외부장이다.”
정용팔이 누워있는 여자 곁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지난번 우악스러워서 무서웠디? 이젠 걱정하디 말라우. 아이들두 곧 데려다 줄 기야. 뭣 좀 먹으라우.”
그가 어깨에 메고 온 배낭에서 이것저것 물품을 꺼냈다.
“우리 애들....”
하고 여자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했고, 삶의 의지도 포기한 상태였지만, 아이들에 대한 집착은 강했다. 아이들만 보면 숨을 쉴 것 같았다. 
“이것 좀 먹구 정신 채리라우. 애들은 곱게 자라구 이서.”
배낭에서 꺼낸 물품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카스테라, 파운드케익, 우유. 주스 따위와 카라멜, 땅콩 등속이었다. 
“아이들 데려다 주세요.”
“강태실 여사, 걱정 말라니까니. 님자 생각부텀 하라우. 두 애들 곱게 자라구 이서.”
그가 팔을 넣어 그녀를 안아 일으켜 세웠다. 그녀 유방이 그의 가슴에 와닿았다. 출렁거리는 젖무덤이 와닿자 그는 잠시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순간 충동이 일었지만 잡은 물고기는 서두르면 안된다. 처음엔 우격다짐이지만 일단 내 것으로 만들었으면 병아리 다루듯 해야 한다. 그녀를 보면 정이 묻어나고 사랑이 솟는다. 한번으로 쪽내는 것이라면 몰라도 오래 끌고 갈 여자라면 그녀 마음을 사야 한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부드럽고 섬세하게.... 
“아이들 데려다 주지 않으면 죽을 거예요.”
“걱정 내려 놓으라우. 여기서보담 더 잘 먹이고 보호하고 있으니까니 한숨 놓으라우. 그냥 이녁 몸 챙기라우.”
그가 우유팩 주둥이를 손톱으로 딴 뒤 그녀 입에 갖다 댔다. 그녀가 말없이 받아먹었다.
“내 조사 다 했디. 강태실 여사, 여학교 출신이더누만? 모범생이더누만. 제주여학교 학적부 뒤졌디. 지난번 일은 미안하우다. 내 좋아서 덤볐대서. 본의가 아니었으니까니 리해해줘야디. 나도 순정이 있구 의리가 이서. 고래서 사과하러 와서.”
정용팔은 그녀에게 폭 빠졌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눈을 뜨거나 감거나 그녀가 눈앞에 선연하게 어른거렸다.
“남편 찾아오는 기 아니디?”
그는 이제 그녀 남편을 경계하고 있었다. 질투심을 유발하는 그의 강력한 연적이었다. 
“강태실 여사랑 나랑 단 둘이서 얘기 나누고 싶어서 와서. 나 순정이 이서. 강태실 여사에게 아름다운 감정 가지고 와서. 나한테도 순정이 있다니까니. 내 순정은 진하디까니. 내 순정은 정말 진하디.”
그는 말이 짧아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정용팔이 카스테라를 잘게 부숴 그녀 입에 디밀었다.
“불켜디 않아두 괜탆구먼. 분위기 있구, 감정이 있구....”
그는 말없이 입을 오물거리며 먹는 그녀를 보고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굶은 끝에 먹다 보니 식욕이 돋았다. 변변히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어떤 것도 맛이 있었다. 
“주스도 이서. 오리지날 주스야. 하와이 오렌지나무에서 직접 열매를 따서 꽉 쥐어 짜가지구 미군 군용선으루 실어서 가져온 것이라서 원액이라누만. 이거 먹으면 얼굴이 뽀송뽀송 고와지구, 원기가 돈다는 기야. 피부가 아름다워진다는 기야.” 
그가 또 다른 팩의 주둥이를 따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강태실이 그것을 받아 힘있게 빨아마셨다. 목줄기로 넘어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정용팔은 뿌듯한 마음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역시 산 목숨은 식욕이 우선이다.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음식을 먹다 말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이요.” 
무엇을 먹어도 아이들부터 생각나는 것이었다. 
“걱정하디 말라니까니. 곱게 자라구 이서. 절대루 아이들 다치디 않게 하가서. 울어대서 애들 보살피는 전문가 아주마이가 기르구 있디. 조용한 곳에 가 이서. 미군 구호품으로 잘 먹고 있으니까니 영양은 좋디. 당신이 내 말 잘 들으믄 금방 데려다 주가서.”
“정말이요?”
“거럼 거럼.”
그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불위로 눕히자 그녀는 저항없이 그대로 쓰러졌다. 
“내가 많이 후회했디. 당신을 거칠게 다룬 거이 몹시 가슴 아팠디. 나두 하나의 인격으로 사는 사람인데 말이우다. 이렇게 좋은 녀자를 함부로 대해서 미안했대서. 모르고 한 일이니 용서해줘야디, 안그래네? 난 이녁을 사랑하디. 엄청 사랑하디. 나도 순정이 이서.”
그는 말이 많았고, 그녀는 기왕 무너진 이상 말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정용팔로서는 이렇게 부드럽고 예쁘고 눈부신 여자는 처음 겪는다. 수도 없이 여자를 탐했지만 강태실만한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 강태실이 생각난 듯 또 말했다.
“아이 데려다 줘요.”
“지금 열이 오르는데 그런 말 꼭 해야 하네? 걱정하디 말라우. 걱정하디 말구 나한테 충실하라우, 집중하라우. 당신 거 맛이 이서. 빨아들이는 힘이 빨판 같다야. 환장하게 넘어질 판이다야. 안그러네? 나 너무 돟아.” 
그는 열심히 동작을 취했다.
“아이 안데려다 주면 죽을 거예요.” 
“알가서 알가서. 당신 죽으면 나도 죽을 기다. 손해볼 일 왜 내가 하갔나. 곰방 데려다 줄 거우다. 난 당신을 사랑한다. 나두 순정이 있다니까니. 나도 외로운 놈이디. 그런 놈 사랑하면 안좋으니? 자꾸 오가서. 괜찮네?”
“아이만 데려오면요.”
“알았다, 알았대서...”
그는 하늘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 아, 마침내 여자의 마음을 사는구나. 내 생애 이런 고상한 사랑도 얻는구나. 절대로 놓쳐선 안되지. 그는 속으로 끝없이 중얼거렸다. 일을 마치자 그녀가 다시 채근하듯 말했다.
“내일 아이 데려와요.”
감정이 정리되는데 또 같은 말을 되풀이하자 순간 정용팔은 성질이 뻗쳤다. 섹스를 마치면 모든 것이 허무하고, 왜 이렇게 매달렸던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데 그녀는 예의 아이 타령이다.
“당신 왜 그러네? 꼭 아이를 걸구 넘어져야 하가서? 나 만나는 거 아이 때문이네?”
“그래요. 아이 안오면 당신 안만날 거예요.”
환상이 확 깨져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녀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이 걸고 넘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좋았댔는데, 정말 날 사랑한다 말이디?
“사투리 쓰지 않으면 안돼요?”
“그야 버릇이구, 태생지가 고래서 고랬는데 당신이 불편하믄 앞으로 쓰지 않가서. 당신이 쓰지 말라는데 쓰갔네? 표 안나게 하라 그 말이디? 고래, 표 안나게 하가서.” 
강태실은 정용팔이 거칠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사는 남자다. 무엇보다 아이를 데려오도록 하려면 그에게 충실해야 한다. 정용팔이 그녀 옆으로 벌렁 누웠다. 그녀가 반쯤 몸을 일으켜 그의 입에 주스 팩을 갖다 댔다. 그가 게슴츠레 눈을 뜬 채 주스를 죽죽 빨아 들이켰다. 어둠 속에서도 행복에 젖은 정용팔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졌다.
“주스 맛이 상큼하디만 당신 맛보단 못하디. 긴짜꼬 맛을 어디에 비교하갓나.” 
다음날도 그는 강태실을 찾았다. 그 다음날도 나타났다. 열흘쯤 지난 후 그녀는 마침내 짜증을 냈다.  
“정말 아이 데려오지 않을 거예요?”
이제 어느새 신분과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그는 강태실과의 달콤한 사랑이 아이들로 인해 깨질 것이 두려웠다. 지금은 그녀를 독차지하지만 아이들이 오면 차 순위로 밀리거나, 언제 차일지 모른다.
“남들 시선이 이서. 고래서 다른 집으로 옮기구 좀 있다 데려올 거우다.” 
“약속을 안지키고 있잖아요!”
“너 자꾸 아이들 데려다 달라는 거 보니 날 사랑하는 게 아니구만. 아이들 때문에 날 이용하는 거 아니가?”
그가 의문을 품으면서 성질을 냈다. 꼭 자신의 순정을 이용하는 것 같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어떻게 남자와 편하게 잘 수 있나요? 그런 여자들만 만났나요? 그러면 그 사람들 찾아가세요. 난 아이들 찾아갈 거예요. 거기서 애들과 함께 살 거예요. 찾아 나서면 금방 찾을 수 있어요. 제주읍내는 좁거든요.”
“그건 안되디. 내 체면이 말이 아니디. 내 허락없이는 안되디. 그리구 당신 말고는 다른 여자들 한 타스로 갖다 줘두 이젠 싫디. 나는 당신 이외는 생각하는 녀자가 절대루 없다니까니.”
“그러면 날 행복하게 해주어야죠. 사랑하는 사람의 청을 거부한 사랑이 사랑인가요? 내 아이 내가 찾겠다는데, 그게 뭐가 나빠요?”
“당신은 반동의 아이만 생각하네? 당신 남편, 그렇디 현호진이 고 자의 새끼들만 생각하네? 난 개좆이네?” 
정용팔이 순간 화를 냈다. 질투심이 폭풍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그럼 나는 뭐여요? 당신의 정부예요? 당신의 성놀이개예요?”
“정부란 말 괜찮다, 하하하.”
이 자를 다루기란 쉬운 것같은데 힘들다. 기분 내키는대로 움직인다. 그의 방향으로 세상은 운행된다. 금방 약속했다가도 어느 순간 뒤집고, 들어줄 듯하다가도 또 뒤집는다. 운전대는 그가 잡고 있고, 힘은 강고하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난 아이들도 사랑해요. 아이들이 없는데 마음이 아프지 않겠어요?”
“당신 마음이 아프면 나두 아프디.”
그러면서 그가 그녀 몸을 더듬는다. 그녀는 모욕적이지만 참는다. 그가 요구하는대로 응해주는 육체가 그의 마음을 녹여내는 유일의 무기라는 생각에 절망을 한다.
“당신, 이제 떳떳해야죠. 뭐가 두렵나요. 몰래몰래 만나는 것, 남자답지 못해요. 떳떳하게 아이들 데려와 함께 살면 더 자연스럽죠.” 
“일부러 그런 말하는 거디? 고건 날 매장하는 기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디. 남의 시선이 이서.”
“계속 이럴 거면 단장한테 찾아가서 난 당신 정부라고 말할 거예요.”
“너 정신 있네 없네? 지금 어떤 시기인데. 여자와 상간(相姦)하는 거 집중 단속하는 거 모르네?”
“더 잘됐네. 그리구 사내대장부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한두 번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
“아이 데려다 주면 나는 차일 것 같다.”
“그렇게 속좁고 옹졸한 인간이라면 나는 그런 인간과는 하루도 함께 살 수 없어요.”
그러자 그가 급하게 말했다.
“알가서. 집요하누만. 내가 항복이다. 내일 데려다 주가서. 대신 우리 관계 소문 안나게 한다는 거 약속하라우.”
“당신이 더 지켜요. 그리구 당신이 나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그야 두 말하면 개소리디. 사랑하디. 사랑하구 말구. 백만번 천만번 사랑하디.”
그가 붕 뜬 기분으로 흡족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후 정용팔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찾지 않은 어느날부터 강태실은 그가 그리워졌다. 궁금하고 불안해졌다. 사고가 생겼나, 다른 여자 만났나. 묘한 질투심과 함께 그리움이 쌓였다. 그렇다고 수소문하고 다닐 수 없었다. 누구에게 내놓고 말하기엔 그것은 엄연한 사련(邪戀)이었다. 그런데 한달만에 거짓말같이 그가 찾아왔다.
“그새 말랐네.” 
그녀는 울음이 복받쳐올랐다. 야릇한 감정의 혼란이 오고 있었다. 아이들도 잠시 잊었다. 
“내 알디. 사랑은 무엇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구, 사랑하는 이를 불편하게 하디 않는 일이라는 걸 알디. 하지만 부득이한 일이 있었어. 내 생각 많이 했네?”
그녀가 눈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만족한 듯 웃으며 그녀를 눕히자 그녀가 더 간절한 듯이 그를 받아들였다. 
“몸 조심하라우. 집에 콕 박혀 이서. 중산간 마을 대대적으루 소탕작전 벌일 거야. 꼼짝 말구 집안에 박혀 이서. 물품 많이 갖다 줄 거니까니 먹구 입구 바르구 몸 잘 가꾸고 이서. 당신 몸이 상해지니 나두 마음이 안돟다야. 당신 몸이 상하면 내 마음도 상하디. 내 사랑 영원히 천년은 가야디.”
한바탕 격랑이 휩쓸고 지나간 뒤 그가 그녀 젖을 주물럭거리며 속삭였다. 그녀도 진정으로 말했다.
“당신도 몸조심해요.”
“집을 옮기가서. 며칠만 기다려. 좋은 적산가옥 하나 물색해 놓았디. 아무도 몰래 숨어들어가  살자우. 현호진 고새끼 잊으라우. 공산당 놈에 새끼는 영원히 이 땅에서 박멸해야디. 그리고 내 당신 행복하게 해줄 거우다.”
그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인 것처럼 불타는 사랑을 나누었다. 

“정용팔 이거 요즘 실성한 거 아니가?”
구대구 부단장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정용팔의 동태를 살폈다. 근래 정용팔의 행동이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허공에 붕 뜬 모습이고, 어떤 환상 속에 갇혀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미제 물품들만을 골라 축냈다. 상인들에게 넘길 물건들을 들고 어디론가 튀었다. 그들은 청년단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뜨악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한 정용팔을 여전히 성토했다. 
“여자에게 제대로 물린 것 같다. 저 자는 두 번 이상 찾는 놈이 아닌데 말이디...”
“하던대로 살지 않으믄 동티가 나는데 불안해서 못보갔다.” 
“고렇디. 고양이에게 무늬 치면 호랑이 된대? 미친 새끼, 사는대루 살아야디.” 
“하하하, 꼴에 요즘 포마드 바르고 구리무 바르구 폼 낸다야. 표가 나두 너무 나.”
“고 자가 할 일 안하니 우리반이 남원반만도 못하다. 어떻게해야 여자에게서 뽑아올까.”
“야야, 그런 시시한 얘기 고만 하구 중산간마을 소개 작전 준비하라우.” 
하대칠이 화제를 바꾸었다. 일차로 남자들을 체포하고, 그중 청년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양민과 폭도 구분을 할 수 없으므로 모두 폭도로 인정한다. 반발하거나 저항하면 밟는다. 그자들은 폭도들과 내통하고 있다. 폭도 진압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주민들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다. 어쨌거나 경찰보다 실적을 더 내야 한다. 확실히 존재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용팔이 언제나 용감하게 선두에 섰는데 그는 요즘 엉뚱한 지점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다. 대창으로 단번에 숨통을 끊어놓은 실력을 갖춘 용맹하고 힘좋은 청년인데 계속 구름의 층위에서 놀고 있다. 그런 그가 자칫하면 영영 떠나버릴 것 같아서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밤이 깊자 정용팔은 다시 강태실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어느 누구의 미행도 따돌리기 위해 택시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좁은 읍내를 돌았다. 아이들은 칭얼댔지만 읍내를 몇바퀴 돌자 이내 지쳐서 잠이 들었다. 집으로 들어서서야 그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표가 난단 말이다. 몰래 숨겨서 데려오느라 참으로 고생했디.”
공치사 받으려고 말했지만, 그러나 강태실은 아이들을 부여안고 한동안 울었다. 아이들도 엄마를 만나자 엄마 품에 안겨서 울음을 터뜨렸다.
“내 수고는 눈에 안보이네?”
“고마워요. 역시 당신은 사내예요.” 
한참만에 그녀가 그를 의식하고 칭찬했다.
“칭찬 들을라구 한 것은 아니디만 당신이 기쁘니까니 나도 기쁘디. 그게 행복이라는 거디.”
“고마워요. 이제 평안도 말 안쓰고, 평범한 제주 사람으로 살기로 해요.”
“알가서. 무슨 말뜻인지 알가서. 이거 잘 챙겨두라우. 배 두 척값은 될 기야. 잘 살아야디.”
그가 두둑한 륙색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배가 빵빵한 륙색안에는 돈이 가득 들어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선박 값으로 계산하는 습성이 있었다. 배 한두 척이면 큰 부자였다.  
아이들은 정용팔을 보고 경계의 빛을 보였다. 
“아이들 재워. 급하다.” 
오늘은 일찍 자리를 털고 나가야 했다. 청년단에게도 오해를 사면 안되었다.
“당신은 나만 보면 섹스만 하고 가려구 해요? 그렇다면 위안부 찾아가요.”
그녀가 생콩해진 얼굴이 되자 그가 잇몸을 훤히 드러내고 소리없이 웃었다. 
“그게 아니구, 회의가 있댔어.” 
“그러면 그냥 가세요.”
“그게 말이라구 하네? 애 데려다 주니 벌써 변심했네? 난 칭찬받으려구 아이들 데려다 놓았는데 하는 말이 기껏 그기가?” 
“아이들 재워놓고 기념으로 술도 한잔 해야 할 것 아녜요? 오늘은 회의에 빠지세요. 기념일이잖아요. 사랑의 기념일. 아이들과의 재회 기념일....”
“와우, 그 말 명언이다. 미안하우다. 내가 갖다 놓은 조니워커 있디? 고걸 먹구 축하하자우. 가족재회에 취하구, 사랑에 취하구, 세상에 취하구, 여자에 질탕 취하자우. 물좋은 당신 두고 그냥 가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네? 사랑하는 당신을 사랑하디 않으믄 영원한 바보디....” 
그가 들뜬 채로 그녀를 껴안았다. 
“아이들 재울테니 뒷채로 가요. 거기가 분위기 나요.”
“애들이 보면 또 어때. 어른들이 장난질하는 걸루 알 텐데....”
“안돼요. 그런 모습 보여주면 평생의 나쁜 기억으루 남아요.”
아이들이 잠이 들자 그들은 뒷채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량소년 소녀들이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기 위해 찾아든 골방처럼 방은 좁고 아늑했다. 
“내가 고렇게 좋네? 니 남편보다두?” 
정용팔은 조니워커 스트레이트 석잔에 확 올랐다. 
“내 남편이 누구에요?”
“산으로 간 현호진이 말이다.”
“남편이 아니구 원수예요. 산에다 내다버린 지 오래예요. 그 사람 말 두 번 다시 꺼내지 말아요. 내 남편은 당신이우다.” 
그녀가 평안도 말로 다정하게 짚었다. 그러자 정용팔이 더 화끈 오르는 기분이었다.
“요게 오롷게 나를 녹여놓는단 말이다. 내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야.”
행복이 가슴에 가득 차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호사다마라고, 이런 행복이 어느 순간 날아갈 것만 같아서 그는 조바심이 났다. 정말 이런 행복이 언제 있었던가. 떠돌이생활, 거칠게 살지 않으면 무엇 하나 챙길 수 없는 나날들. 그렇게 여기까지 돌멩이처럼 구르며 흘러왔다. 거칠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 여자들도 닥치는대로 밟았다. 그런데 비단결같이 고운 여자를 만났다. 인간에겐 열심히 살면 기회가 온다는 것을 그는 그녀를 통해 알았다. 그는 연거푸 술을 마시고, 육포를 질근질근 씹었다. 그리고 한 순간에 그녀를 올라탔다.
“오래오래 넣어줘요.”
진한 술냄새와 몸에서 칙칙한 시금내가 났지만 그런 냄새도 감당할만큼 그녀는 익숙해졌다. 
“니 남편도 이랬댔니?”
“당신이 최고야요.”
“고래고래 돟다 돟아. 오늘은 술을 좀 먹었더니 길게 가누나. 난 조루였댔닪나. 니께 워낙에 문어 빨판 같아서 내가 곰방 쌌는데 오늘은 술기운으루 오래 가고, 고래서 환장하게 좋다야. 마음이 합쳐지니까니 더 오른다야. 니 거는 역시 최고의 긴짜꼬다. 내 생전에 이런 맛은 처음이디. 절대루절대루 당신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가서.”
그는 혼자서 마구 지껄였다. 그녀가 신음소리를 토해내더니 이윽고 자지러졌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힘을 쏟았다. 일을 끝내자 누구랄 것도 없이 퍼져버렸다. 
“당신 고생했어요.”
그녀가 일어나 준비한 꿀물을 그에게 먹였다. 그가 벌컥벌컥 마시더니 곧 깊은 잠에 떨어졌다. 그녀는 일찍 잠든 것이 아까운 듯 그의 몸을 흔들었다. 육중한 몸은 움직임이 없을 정도로 곯아떨어졌다. 그녀는 한참만에 일어나 머리맡 궤짝에서 기다란 끈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단단하고 질긴 삼끈이었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그의 목에 감았다. 그는 여전히 코를 드르렁드르렁 곯았다. 그녀는 목을 감은 노끈을 한 순간에 있는 힘을 다해 조였다. 그가 처음엔 퀙퀙 밭은 소리를 내고 두 손을 앞으로 뻗었지만 빈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온 힘을 다해 끈을 조이자 한참 후 그의 팔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처졌다. 그래도 그녀는 정신없이 목을 조였다.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가 더 이상 움직임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끈을 놓자 그녀는 힘이 전신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할 일이 남았다. 수면제를 탄 물잔의 나머지 물을 뒷문을 열고 버렸다. 다음으로 광으로 그를 끌고 갔다. 육중한 몸을 옮기는 데는 힘에 부쳤지만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나자 저도 모르게 힘을 냈다. 낑낑거리며 광 마루짱 한쪽을 들어올려 그를 바닥으로 밀어넣는 데는 반 시간쯤 걸렸다. 마루짱 밑은 밀주를 담가 숨겨놓기 위해 파놓은 흙구덩이가 있었다. 거기에 그를 묻고 미리 준비한 삽으로 흙을 퍼와서 덮고 널빤지 마루짱을 다시 깔고, 그 위에 보리가마니를 풀어 널자 새벽녘이었다. 그녀는 미리 챙겨놓은 가방과 먹을 것을 쓸어 담고 아이들을 챙긴 다음 부둣가로 나갔다. 그후 그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달삼을 아나?”

“대대장, 우리 꿩 사냥 나갈까.”
어려운 것도 쉽게 생각하고, 언제나 태평인 것처럼 보이는 김익창 연대장이 오민균을 연대장실로 불렀다. 
“사격솜씨 보여주시려구요?”
“내 사격솜씨 어떻게 아나.” 
“소문 났습니다.”
“하하하, 소문났다면 실력을 보여주어야지.” 
두 사람은 가볍게 군장을 하고 문도지오름 도너리오름쪽을 골라 산을 올랐다. 고지가 비교적 높고 경사진 곳이었다. 고지대라서인지 아직도 벚꽃이 지지 않았고, 음지쪽엔 진달래꽃이 만발했다. 산이 꽃으로 물든 것 같았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김익창의 사격 솜씨는 소문대로였다. 꿩들이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그가 쏘는 족족 명중이 됐다. 총알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꿴다는 실력이었다. 김익창은 목표치인 꿩 다섯 마리를 채우자 바위 섶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 옆에 오민균이 앉았다. 건너편 산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그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후쿠치야마(福知山) 예비사관학교에 다닐 때 나는 특등사수였네. 그런 것들이 나를 느긋하고 여유롭게 했지. 사람들이 시시하고 하찮게 보였어. 헐떡이며 사는 모습들이 사사롭게만 보였다니까. 도 닦던 도사가 득도를 한 뒤의 한적이랄까. 천의무봉처럼 세상만사를 보게 되었네.”
연대장은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가 계속했다.
“요즘은 자꾸 후쿠치야마 생도 시절이 생각나누만. 역시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이야. 후쿠치야마성을 구경 가고, 고베로 가서 태평양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사나이 대장부의 야망이 불태웠지. 고국이 그리우면 동해물이 출렁거리는 도요카로 나가서 망국의 한을 달랬지. 주말 외출시간이면 죽 여행을 했어. 교토 근교 비와호에서 보트를 타던 때도 가슴 설레었지.” 
그렇게 말해놓고 그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는 계속 감상에 젖었다.
“육군 소위로 임관하자마자 만주로, 태평양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선에 있었지. 하지만 이건 남의 전쟁을 하는 거잖아. 남의 잔치에 와있는 것처럼 마음이 늘 불편했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나선 사람 같았어. 마음은 방관자였어. 언제 독립이 될지 모르는 암울한 상황인데도 나라를 찾는 날을 꿈꾸며 광야를 헤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의식하지 못했네. 가명을 네 개나 사용하며 관헌을 피해다니던 동창생을 외면한 적도 있었어. 한 발짝만 들어가면 생생한 민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난 일정 부분 거기로부터 격리돼있었던 거지. 나라 잃은 우리의 허무와 좌절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안락과 행복을 기꺼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난 격리돼 있었던 거야. 해방되자 그게 미안하고 부끄럽더군.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조국의 건아로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 두 번 다시 나라를 빼앗기지 않는 부국강병의 군인이 되자. 그런 각성으로 여기 섰네.” 
그는 크게 숨을 내쉬며 바람에 출렁이는 숲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시린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뚱딴지같이 물었다.
“오 소령 부모님은 잘 계신가?”
“네. 부모님은 한학을 하신 분입니다. 젊었을 적엔 측량기사로도 활약하셨는데 지금은 인근 젊은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계십니다. 저는 아버님한테 훈몽자회, 동문선습, 명심보감을 배웠습니다.” 
“아, 그렇군. 그래서 의젓하구먼. 오 소령한테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가 있어. 그걸 카리스마라고 하지. 좋은 군인 멘탈리티야. 그래, 그대로만 가게. 오 소령만큼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갖춘다면 나라가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나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하네.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민족으로부터도 버림받게 되어있지. 하지만 지금 이게 뭔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네. 나라 꼴을 보면 화가 나네. 잔혹했던 것은 한때로 족하지 않는가....”
“맞습니다. 연대장 각하, 맨스필드 중령과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오민균은 연대장이 맨스필드를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맨스필드는 미육군 중령으로 제주도 주재 미군정관 겸 9연대 고문관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그는 군정장관, 민정장관, 고문관으로도 불렸는데 어느 호칭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제주읍내 제주도청에 설치한 미군정관실에 상주하면서 연대와 산하 부대와 수시로 연락을 취했다. 다른 군정관과는 태도가 우호적이었다.  
“그 친구 난처해졌어. 제주도 사람들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인데 말이야....”
“난처한 일이라뇨.”
“몰리고 있지. 미국인들, 지역 특수성이나 역사적 맥락을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목표, 그것을 달성하려는 욕망만 갖고 덤비지. 하지만 맨스필드는 달라. 역시 엥글로 섹슨 계열이야.”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입니까.”
“그렇지. 모든 관점은 커먼센스야. 임지에 부임해 오면 그 지역민의 성향과 기질, 역사, 문화, 풍속, 생활방식 정도는 파악해야지. 이 친구는 상식의 눈으로 정확하게 보고 있더라구. 나와 일치하는 게 많아. 지적 풍모가 넘쳐나.”
부대 내에 대대장들이 있었지만 마음을 터놓을 사람은 오민균 뿐이라고 김익창은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간부들은 성실한 직업군인일 따름이었으나 오민균은 또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내가 9연대로 부임해오니 가관이더군. 연대 병력이라고 해도 숫자가 대대 병력도 안되는 거야.” 
연대장이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전단지를 꺼내들었다. 경비대 모병 광고 전단이었다. 

-국방경비대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동포를 사랑하고 조국을 위하여 순국하려는 피끓는 젊은이들의 애국 군사기관이다. 우리들은 모국(某國)의 주구도 아니다. 일개 정당의 이용 기관도 아니다. 다만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추진시키고, 밖으로는 국방의 중책을 완수하려는 국가의 간성이다

전단지를 읽고 나서 김익창이 말했다.
“전임들이 모집한 광고문인데 이렇게 해서 제주도 청년들이 군에 들어온 숫자가 얼만 줄 아나? 50명이 안되었어. 대부분 문맹이고 농사짓거나 고기 잡다가 온 청년들이었지. 이러니 오합지졸이 될 수밖에.... 왜 그런 줄 아나?”
오민균은 대답 대신 그를 바라보았다. 
“육지 청년들이 오질 않아. 모두들 제주를 유배지로 생각하는 거야. 9연대는 상관에게 밉보이거나 사고에 연루되면 귀양 보내는 곳으로 인식됐어. 총사령관까지 자기 비위에 어긋나면 “너는 제주도로 귀양이다”하고 즉시 9연대로 보내버렸지. 전의 연대장도 그랬고, 나 역시도 명동거리를 산보하다가 총사령관 부인에게 경례를 안한 죄로 추방되어 왔다네. 와보니 이런 낙원이 없는데 말일세. 할 일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데 말이야. 차별과 멸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직접 보고 알았네.”
“저 역시 제주도에 흠뻑 빠졌습니다. 마을마다 학교가 세워진 걸 보고 놀랐습니다.”
“그거 말일세. 일본에서 돌아온 귀향자들이 고향을 위해서 한 일이네. 배워야 산다면서 야학과 학교 설립운동이 뜨겁게 일어난 거야. 중앙정부에서 방치한 고장이라서 한때 문맹률이 높았던 곳이었어. 그런데 마을마다 초등학교, 면마다 중등학교 세우기운동이 벌어져서 많은 자제들이 공부하고 있다네. 상부상조하고 배려하고 헌신하는 정신을 갖고 있네. 그래서 이곳은 자주자조자립 정신이 강해. 아름다운 공동체야.”  
오민균은 도쿄에서 만난 이시하라 상이 떠올랐다. 그는 아나키스트가 지향하는 생활조합운동, 인권옹호, 외세 배격과 자주의 본성이 제주도에 있다고 했다. 이것을 연대장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아는 일본의 거리의 사상가가 있습니다. 그는 제주도 해녀분과 결혼해서 제주도 팬덤이  된 분입니다. 그분의 관점이 현지에 와서 보니 맞아 떨어지더군요. 일본인이 제주를 더 잘 알아요.”
“그래. 규수지방이나 오사카에 제주도 출신이 많지. 그들은 개척정신이 강해. 그래서 홋카이도, 사할린 탄광지대까지 진출했어. 해녀들도 진출했지. 그들은 함경도 청진 함흥지방까지 나갔더구만. 지금 이 지역 사람들이 단정 단선 반대운동을 편 것도 청진 함흥지방으로 간 고향 해녀들 때문이란 거야. 분단되면 영영 못나오니까 말이야. 지엽적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들에겐 절실한 문제니까요. 이념과 상관없이.... 제주도 사람들이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온 숫자가 4만 명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제주 인구의 상당수가 외국에서 떠돌았던 셈이죠.”
“그래. 제주도 사람들 육지 사람들과 가치관이나 사는 방식이 다르지. 자치의 열망이 뜨거운 곳이야. 공동체의 자립과 나라의 자주 독립을 함께추구하는 커뮤니티야. 몽양 선생이 만든 건국준비위원회와 그 이후 이름이 바뀐 인민위원회도 제주에 아직까지 존치되어 있네. 일제가 물러간 뒤 건준이 실질적으로 각 면과 마을행정을 이끌어갔는데 건준이 해체된 이후에도 존치되어서 행정공백을 메우고 있어. 모범적인 지방자치 정부인 셈이지. 이 기구가 연대의 바탕이 되고 있어. 치안활동과 농사법교육, 학습회, 체육대회, 야학운영 등을 전개하고 있더군. 정권을 인수받은 미군정도 이를 고맙게 생각해야지. 미군정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하고 있으니까.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잘 이끌어가는 지방 단체는 기득권을 인정해주고, 결성되지 않은 곳을 결성하도록 견인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분탕질하면서 제거하고 있어.”  
“부당한 간섭과 탄압이죠.”
“그런 곳에 육지의 경찰과 청년들이 몰려 들어와서 무력으로 밟았어. 반항하자 경찰과 청년단을 풀어놓았네. 빨갱이로 매도하면서 부쉈네. 물론 좌익들도 손을 뻗친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그것은 어느 곳이나 모순이 있는 곳이면 나오는 현상이 아닌가. 평화롭게 자주적으로 살겠다는 지역사회를 일제 때보다 더 가혹하게 몰아붙여버리니, 그런 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주민의 지원세력이 된 거지. 이것을 잘 살펴야 돼. 매도할 것이 아니야. 중앙 언론이 덮어놓고 경찰발표만 가지고 편파보도를 하니 육지 사람들은 제주에서 반란이 난 줄 아는데, 그게 아니잖나. 언론이 중요해. 그런데 때려죽일 놈들이야. 그 새끼들은 언제나 권력의 빵부스러기에 영혼을 파는 양아치들이야. 그러니 어떻게 한다? 그래서 내가 오 소령을 부른 걸세.”
연대장의 고민의 무게를 느낀 오민균이 받았다.
“무슨 하명이라도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맨스필드 군정장관이 내게 부탁한 것이 무엇인 줄 아나?”
“설마 토벌작전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겠지요?”
요즘 분위기가 그랬다. 미군사령부에선 암암리에 초토화 작전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뒤에 숨는 대신 경찰과 청년단, 군대가 밀어붙이도록 독려하고 있었다.
“그게 아닐세. 나더러 반란군사령관을 만나라는 거야. 협상을 진행하라는 거지.”
지금 전력 증강과 전력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화를 추진한다? 뭔가 이율배반적인 지침 같았다. 9연대는 4월말부터 출동명령을 받고 있었다.
“상황이 강경 모드로 간 것 아닙니까?”
“아니지. 4.3 이후 제주도 유지와 관공서 대표가 중심이 되어서 시국대책위원회를 조직했잖나. 족청(민족청년단)도 나서서 시국수습 특사대를 조직하고, 반란군 측과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려고 하고 있지. 결렬됐지만 말이야. 그래서 병력을 증강했던 거야. 일종의 무력 시위고 협박이지.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 조지겠다. 증원부대가 파견된 이후 우리도 본격적으로 전투준비를 했잖나. 하지만 나나 맨스필드의 기본 도정 방침은 평화적 평정이야. 경찰 등 강경파가 반발하지만 대화파 중엔 미국 쪽에도 맨스필드 군정관 같은 사람이 있어. 그가 딘 소장을 설득했다더군.” 
“그거 잘 됐군요. 기회일 것 같습니다. ”
오민균의 가슴이 갑자기 벅차올랐다. 그래, 평화가 답이다. 그렇지 평화가 길이다. 평화가 밥이다.... 
“하지만 도처에 덫이 깔려있네. 적이나 다름없지. 자칫 잘못했다간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수 있어.”“무슨 일이든지 리스크는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살상을 막으려면 당연히 시도해야지. 대대장이 저쪽 비선 만나줄 수 있나?”
“네?”
“특명이야.”
김익창이 이렇게 말하고 오민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가 사냥 나가자고 오민균을 불러낸 이유가 이것이라는 것을 오민균은 알았다. 그러나 오민균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막중한 임무인데 내가 가능할까. 일을 성사시키려면 제주 인맥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은 없었다. 라인이 있더라도 성사시킬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다. 양측은 너무도 서로를 불신하고 있었다. 
“그쪽과 선이 닿지 않나? 일본 유학파 말일세. 현호진인가 그 자 말일세.”
현호영의 오빠 현호진. 일본대학 출신. 그런데 현호영과 사귀고 있는 것을 김익창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천사원에 자주 구호물품 갖자 주었지?”  
역시 그는 꿰뚫고 있었다. 그가 이윽히 오민균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너는 날 못속여, 하는암시가 깔려있었다. 
“고아들이 있으니까요.”
“현호진의 여동생도 있지 않나. 그 여선생을 설득하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많아. 이쪽도 경무부가 문제야. 그중 경무부장이 강경해. 우리를 의심하네. 모해한다구.”
“모해라니요?”
“음해지. 그러니까 미친놈들이지. 우리가 폭도 편이라잖아. 일제 경찰 출신들을 불러모아 주민들을 탄압하니 동의하지 않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악명높은 자들이 반성하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더 군림하고 떵떵거리는데... 정통성을 의심받게 되니 민심 이반이 나오는 거야. 그런 자들이 방해자란 말일세. 그런 자들이 우리를 음해해.”
오민균이 생각에 잠기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경무부장을 나도 좀 아는데 자파 세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경찰을 이용하고 있어. 군을 경찰의 하부조직으로 둔다는 생각도 여전히 갖고 있어. 어느 나라에 그런 편제가 있나? 그것도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는 경찰 하부조직으로! 이 때문에 얼마전엔 전라도 영암에서 경비대와 경찰이 충돌해서 사상자가 나왔지 않나. 대구에서도 그렇고! 미군정이 경비대를 정식 군이 아닌 경찰의 예비대로 국한한 것이 이런 문제를 야기한 거야.”
그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입을 쩝 다셨다. 
미군정은 경비대의 병력 증강을 서두르지 않은 대신 경찰에 대한 지원은 아낌이 없었다. 경찰은 창설 직후부터 미제 최신형 카빈 소총을 지급받았고, 국방경비대는 일본군이 쓰다 남은 낡은 군복과 무기도 구식인 99식 소총과 38식 소총으로 무장했다. 탄환도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위상 때문에 경찰은 신설되는 국방경비대 병사를 업신여기고 조롱했다(이한림 회상록 ‘세기의 격랑’72p). 
국방경비대 구성원은 경찰의 일사불란한 조직체계에 비해 사상이 혼재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이에 일본군 대령 출신 이응준 미군정 고문은 국방경비대 창설 무렵, 지원입대자의 사상과 신원을 조사하여 군조직의 정체성을 명료히 하자고 제안했으나 묵살됐다. 미군정 챔프니 군사국장과 아고 대령은 이런 요구에 반대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권이 보장되고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일본 군국주의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구분되는 기준이다. 이것이 전승국의 선물이다.... 
그리고 미소공동군사위원회 합의를 따른다는 이름 아래 군 육성 대신 국내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 보조역을 두기오 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 군인도 아니고 향토예비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찰도 아닌 어설프고 어정쩡한 위치의 군대를 신설한 셈이었다. 이 통에 혼란을 겪는 쪽은 하부 지휘관들이었다. 방향과 키를 어느쪽에 두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가치관의 혼란, 정체성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념을 달리해도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이론상 맞지만 위험한 발상이었다. 신생국일수록 국토를 방위하는 군인은 국가정체성이 명료한 국가관이 서야 한다. 이상주의적 관점에서도 그것은 자칫 사상대립, 이해 충돌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에는 해방과 더불어 광복군, 조선의용군, 항일 빨치산부대 등 중국과 만주, 시베리아에서 활동하던 군인 출신 중심으로 군벌 시대가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일본군 출신 주요 인물들은 사회적 분위기상 일단 자숙하는 태도를 보여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재등장했다. 미군정에 의해 전면에 나선 것이다.
군사단체는 군벌을 형성해 세력 다툼이 잦았다. 조선국군준비대, 조선임시군사위원회, 학도대, 한국혁명군, 장총단, 장병대, 학병단, 치안특별감찰대, 조선국군학교, 군사주비회, 대한무관학교, 광복청년회, 한국광복군군사원원회, 광복군 국내지대, 건군준비위원회 보안대, 학병동맹 등 무수한 좌파 및 민족성향의 군사단체가 난립했다. 반면에 우익 군사단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해방직후 사회적 분위기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지식인이 대세를 이루었듯이 군인 세계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찬반탁 과정에서 좌파가 질서를 파괴한다고 보고 미군정이 이들을 불법화하면서 경찰력을 총동원했다. 박헌영의 월북을 계기로 좌파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령이 내려졌다. 경찰의 하부 조직인 서북청년회 등 극우 단체들을 양성해 행동대로 내세웠다. 
군부 내에는 만주 관동군 헌병대 출신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우익 청년단체와 공동전선을 폈다. 만주군 헌병대는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영창에 갇힐 운명에 있었는데, 극적으로 탈출해 38선을 넘어 남하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서울에 와서 일제 강점기의 경찰과 군 출신을 중용하는 미군정 정책을 보고 과감히 그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은 주로 스스로 밀정으로 활약했거나, 일본군으로부터 비용을 받아 고용 밀정을 부려서 독립군을 잡고, 독립군이 자중지란을 일으키도록 이간질시켜 독립군 부대를 궤멸시킨 ‘무공’으로 승진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해방이 되었다고 해도 항일 독립군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소련군에게 당한 것처럼 남한 사회에서도 똑같이 당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미군정과 경찰의 지원 아래 나라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을 때, 그들의 힘은 막대했다. 민족주의 세력이나 사회주의 세력의 상당수는 체포되어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일부는 북으로 넘어가고, 일부는 지하로 잠복했다. 이들을 체포하는 데 일등 공신은 일제의 경찰 사찰계와 헌병 출신들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인재가 요구되는 신생조국 건설의 에너지는 약화되고 말았다. 
양측의 대결로 많은 희생이 강요되면서 신생조국의 인재 풀이 초토화되어버린 것이다. 미군정의 정책은 이처럼 엄청난 인적 손실을 가져왔다. 이응준의 제안대로 선발과정에서 미리 좌우를 선별하거나 구분해 뽑았더라면 이런 혼란과 막대한 인적 손실은 막았을 것이다. 

-민주주의 원칙론으로 인하여 공산당의 활동을 허용한 것은 미군정 당국의 일대 실책이었다. 창군 이념에 있어 동상이몽을 생기게 하는 과오를 저지른 결과가 비참한 인적 손실로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훗날 이응준의 회고담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이랄 수 없었다.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집약된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본질적인 문제 아니었을까.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운전대를 잡지 못한 것도 원인이다. 이 과정에서 이상주의를 꿈꾸던 청년장교일수록 혼란의 정국에서 많은 희생을 강요받았다.    

김익창 연대장은 잡은 꿩을 하나씩 줄에 묶어 옆구리에 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저녁 술안주로는 넉넉하겠지?”
“그렇습니다. 한잔 해야 되겠군요.”
“하지만 요즘 술맛이 안나. 모함들이 많아서 함부로 누굴 만나지도 못해. 대대장도 주의하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오민균은 짧게 대답했다. 돌이켜보니 그도 오해를 사고 있었다. 
“제가 국방경비대사관학교 생도대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김창동이란 자가 경비대사관학교에 응시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만주간도특설대 정보대에서 일본군 헌병 오장 계급으로 독립군을 잡으러 다닌 사람이었죠. 독립투사를 미행, 감시, 체포, 구금, 고문한 악명높은 자였습니다. 면접을 보는데 전력을 보니 도저히 조국의 군인이 되어선 안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탈락시켰습니다. 헌데 다음 기에 그 자가 재응시해 합격했더군요.”
“그게 현실이야.” 
김익창이 담담하게 받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게 오민균은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뭐가?”
“제 주위를 뱅뱅 돌면서 저를 노리는 것같더군요. 사감으로 세상을 사는 자 같았습니다. 한번 물면 놓치 않는 맹견이랄까요?”
“그래서 물렸나?”
“사람같지 않아서 사람 취급도 안했는데요.”
“그자는 분명 냄새를 맡은 모양인데, 그럼 오 소령은 어느편인가.”
그가 정면으로 오민균을 응시했다. 그는 무슨 뜻인 줄 알고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소련도 미국도 아닙니다. 오직 민족의 편입니다.”
“그런 추상적인 용어는 그만 두고, 김달삼을 알고 있나?”
오민균은 주춤했다. 안다고 답변해야 그가 요구하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것인지, 모른다고 해야 흡족할 것인지 섞갈렸다. 이런 때가 가장 위험하다.
“직접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현호진과 접선하게. 김달삼의 참모야. 특명일세. 철두철미 기밀을 요하는 거고, 철통 보안이야.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해. 자칫 이러다 다 죽이네. 그러니 누군가는 나서야지. 강경파들이 발톱을 디밀고 있으니 꼭 성공해야 돼. 성과 못내면 다 함께 죽네.”
“맨스필드 군정장관도 동의합니까.”
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연대장이 길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했다. 
“그 자를 만나려고 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러면 됐어. 책임이 크네. 지구와 같은 무게감이야.”    <계속> 


이계홍 작가,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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