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1 대 99' vs '20 대 80'

이기수 논설위원 2019. 11. 2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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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억하기 좋은 11월11일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한겨레 칼럼에서 꽂힌 ‘숫자 20’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강 교수는 “불평등의 담론을 1 대 99에서 20 대 80으로 옮겨야 한다”며 진보의 사고·행동 틀을 혁명적으로, 정교한 정책으로 바꿀 때가 됐다고 했다. 진보를 향해 “거대담론에 능하고 민생과 각론에 약하다”고 되짚고,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내 몫을 줄일 뜻 없는 상위 20%”라고 지목했다. 대기업 정규직도 상당수가 그 속에 들어간다. ‘자본 대 노동’으로 가르는 1980년대식 이분법이 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민생에 맞지 않고, 99% 내부에 파여가는 불평등에도 눈을 돌리자고 한 것이다. 다시 꺼내든 담론은 타이밍이 절묘했다. 이른 송년모임에서 대학 친구가 ‘20’을 불러내고, 회사를 떠난 동기도 주고받던 술잔에 이 숫자를 부었다. 누가 시작하면 또 한 순배 돌고 마는 ‘조국 대화’ 끝에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 부(富)의 선을 그어본다. 최신 통계의 기준연도가 갈리지만, 상위 1%는 근로·사업·금융·임대 소득을 다 합쳐 한 해 평균 3억9051만원(2017년)을 벌었다. 근로소득 상위 1%(18만55명) 평균선은 2억6417만원이다. 지난해 종부세를 부과받은 공시지가 9억원 이상 주택 보유자는 46만6000명(0.9%). 종부세 주택의 82.5%는 서울에, 서울에선 70.2%가 강남3구에 몰려 있다. 배당·이자 소득에 물려 연 2000만원의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내는 9만명의 금융자산은 평균 9억7600만원이다. 어림하면, 상위 1%는 종부세를 내고 금융자산 10억원에 4억원의 연수입을 올릴 정도일까. 정부가 21일 발표한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980만원이다. 지난해 임금근로자 상위 20%의 연봉 하한선은 5062만원이다. 8000만원 이상 연봉자도 105만명이 잡힌 임금 피라미드 위쪽엔 여러 사(事, 士, 使, 師)자 전문직과 교수, 대기업·금융사 임원이 자리한다. 언론인과 평균연봉 6487만원인 대기업 정규직도 꽤 많은 수가 20% 그룹에 속할 것으로 추산된다. SKY 대학생 넷 중 셋이 학종·정시를 선호하는 상위 20%에서 나온다. 이자·배당 소득의 97%, 주식 양도차익은 96%, 부동산 양도차익의 78%는 상위 20%에서 불로소득의 낙수(落水)가 끝난다. 이 땅에서 불평등과 계층 이동의 경계선이 20 위아래로 가장 깊게 파이고 있는 셈이다.

20도 억울해할 수 있다. 업(業)을 이루고, 힘들게 경쟁하고, 집에서 아이들 숙제·진로까지 챙기는 막후의 버거움을 모른다고! 왜 공부하냐고? 왜 출세하냐고? ‘개천의 용’이 된 1세대·창업자일수록 누릴 자격이 있다는 목소리는 커진다. 하늘과 헌법이 부여한 그 기본권을 가타부타할 것은 없다. 문제는 그 뒤다. 잘나가는 사람들도 말이 끊기고, 인지부조화를 호소하고, 곧잘 숙연해지는 세 글자가 있다. ‘대물림’이다. 입시귀족학교를 향해 ‘비상수로’가 뚫려 있는 개천에서, 3루에서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3루타를 친 줄 아는 세상에서 용이 나올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80’의 다른 이름은 청년, 비정규직, 자영업, 중소기업, ‘82년생 김지영’이다. 꿈과 기회를 사재기할 수 있는 세상은 바로잡아야 한다.

조국·나경원·김성태…. 진입 장벽이 높은 교육·채용의 특권과 불평등이 거론될 때 소환되는 이름들이다. 1과 20의 대물림 보호막부터 하나씩 걷어야 한다. 답은 법과 돈과 소통이다. 시소 타는 학종과 정시보다 지역(기회)균형선발이 넓어지고, 평당 1억원을 돌파한 주택시장에 보유세를 처방하고, 건강보험 최고상한액을 높이고, 공정하게 경험할 공공인턴을 늘리면 기울어진 세상이 조금 더 평평해지지 않을까.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깔때기’인 돌봄의 질을 높이고, 정규직 노조 대표가 비정규직 지회장을 친국하듯 무릎 꿇리는 노동 내부의 갑질도 없어져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20%가 문제를 인정할 때 일어날 수 있다. 아니면, 위험해진 공동체가 나서야 한다.

80이 볼 땐 서로 도긴개긴 닮아가는데, 20%가 1%를 공격하며 피난처 삼는 세상은 위선이다. 조국사태가 댕긴 불쏘시개는 검찰을 넘어 교육·노동·조세 판의 불평등까지 겨눠야 한다. 답을 줘야 할 정치는 오늘도 혼미하다. 20대 국회는 ‘불명예 폐장’ 목전이고, 대통령은 반환점을 돌며 만난 국민과 소통의 갈증을 풀지 못했다. 제1야당 대표의 국회 단식은 파국의 먹구름만 키운다. 뜬금없고 가볍고 “지금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란 말이 맴돌 뿐이다. 바둑에서 한 수가 갖는 집의 가치는 둘수록 작아진다. 모두들 지금도 늦었다는 뜻이다. 시장골목, 먹자골목, 인력시장을 가보라. 찬 바람이 스산한 민생고는 거기에 있다. 급한 것은 민생이고 1에서 20으로 불평등의 시선을 옮기자는 글에 ‘좋아요’ 하나를 누른다. 계층 이동과 꿈이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서. 80의 아우성을 1도 20도 묻어버리는 세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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