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라 지키는 서북청년회로다"

이계홍 작가, 언론인 2019. 11. 1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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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19>

[이계홍 작가, 언론인]

 
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바로가기 :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처음부터 보기

제19장 “우리는 나라 지키는 서북청년회로다” (1)

쾅쾅쾅.
밤이 깊었는데 거칠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사위는 고요적막하고, 마을과 들판은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이었다. 다시 다급하게 쾅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여기저기서 일제히 개들이 짖어댔다. 그 사이 잠들었던 아이들이 놀라 깨서 본능적으로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강태실은 어둠 속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소리내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쾅쾅쾅. 
개들이 더욱 요란하게 짖어댔다. 강태실은 두 아이를 끌어안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죽은 듯이 엎드렸다. 이렇게 숨죽이고 있으면 잠잠해질 것이다. 그러면 돌아가리라. 꼭 돌아가야 한다. 그녀는 그렇게 주문처럼 외었다. 돌아가라 돌아가라 돌아가라... 그러나 밖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듯 계속 대문을 두드리더니 이윽고 와지끈 대문 부숴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마당으로 들어서는 거친 구둣발자국 소리가 났다. 구둣발이 툇마루로 올라오더니 안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검정 홑이불을 펴서 위로부터 아래까지 못을 쳐서 문을 가렸지만 우왁스런 손 하나에 그것은 무력하게 문고리마저 뽑힌 채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밖으로부터 불에 탄 짚 냄새가 확 방안으로 끼쳐들어 왔다. 마을이 소각된 매캐한 냄새들이었다. 불탄 냄새는 여전히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괴한 셋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지휘관인 듯한 사내가 방 가운데 머리맡 허공을 더듬더니 전등불을 켰다. 30촉짜리 불빛은 아담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방안을 빠짐없이 비쳤다. 아직도 신혼의 냄새가 나는 듯 송판 장식장이 방 윗목에 단정하게 놓여있고, 그 옆 책상보가 깔린 테이블 위엔 한 무더기 조팝나무꽃이 화병에 꽂혀 있었다. 아랫목 벽에는 여인의 소망이 어린 듯 공작새 두 마리가 마주보고, 그 사이 ‘SWEET HOME'이란 영문자가 수실로 새겨진 벽걸이 가림막이 배불뚝이처럼 불룩하게 나와 있었다. 사내가 벽걸이 천을 와락 잡아제치자 여자의 옷과 남자의 외출복이 드러났다. 그가 그것을 무시하고 방바닥에 깔린 이불자락을 잡아제꼈다. 젊은 엄마와 두 아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엉겨있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숨죽인 채 떨고 있는 어미와 아이들을 향해 조장 사내가 외쳤다.
“간나들. 바로 앉으라우! 니네 집은 무슨 비밀이 많아서 대문 걸어놓고 사네? 방문에다가 이불까지 씌우구... 다른 집은 대문도 아예 없대서.”
강태실은 신혼을 나면서 빈 집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기왕이면 뽄새가 나도록 대문을 세웠다.  
“바르게 앉으라우!”   
두 아이들이 놀라서 서로 엄마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이들은 다섯 살, 세 살 쯤 되어보이는 사내 아이들이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두 팔로 안은 채 웅크리고 앉았다.
“에미나이 끌어내!”
조장 사내가 명령하자 키 작은 사내가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 한쪽으로 와락 제쳤다. 그녀가 방 구석으로 나동그라졌다. 엄마로부터 떨어진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로 달려들었다. 사내가 큰 아이를 걷어찼다. 아이는 그 자리에 고꾸라져서 죽 뻗은 채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 작은 아이는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엄마 품을 파고들었다. 그곳만이 자기를 보호해줄 유일의 피난처라는 듯이. 
“우리 아기, 죽어요! 우리 아기요!”
이윽고 강태실이 울부짖으면서 뻗은 아이에게 기어서 다가가자 사내가 그녀 적삼을 잡아채 한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적삼 옷고름이 떨어져나가면서 그녀의 하얀 유방이 드러났다. 
“에마나이 년이 아는 챙기누만.” 조장 사내가 달려들어 풍성한 그녀 젖을 한 손으로 움켜쥐더니 소리질렀다. “빨갱이새끼 어디다 숨갔나?” 
그녀는 하얗게 질린 채로 벙어리가 된 듯 입을 열지 못했다.
“종간나 새끼, 에미나이 모냥이 어지간허니까니 멀리는 못가가서!”
사내는 계속 평안도 사투리로 이죽대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는 벗겨진 상반신 그대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세 장정들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이제는 부끄러울 것도 없고, 부끄러움도 잊은 것 같았다. 한참을 노려보자 조장 사내가 소리쳤다.
“성깔 하나는 있고만. 고래, 주이(쥐)새끼 어디다 숨갔나?”
“내가 먼저 알고 싶다. 너희놈들이 잡아간 것 아니냐. 너희놈들이 대라, 못된 놈들아!”
그녀가 소리쳤다. 순간 옆 사내의 군화발이 그녀 등짝에 떨어졌다. 그녀가 앞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지금 뭬라고 했네? 뒈질라고 환장했네? 뚫린 입이라고 마구 씨부리네? 고래, 우리가 니 종간나새끼 데려다 구워 삶아먹었다. 어떡할래? 니년이 데려다 놔야 삶아먹든가 구워먹든가 할 게 아니가? 고래, 간나새끼 어드메 숨갔네?”
그가 말하는 사이 두 사내는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광으로, 부엌으로, 옆방으로 갔다가, 헛간까지 돌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아이들만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작은 아이는 사내의 눈을 애써 피하며 엄마 품에 얼굴을 감췄다. 집안을 뒤지던 두 사내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없수다.” 
“아새끼들 가져가라우! 귀찮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사내 중 하나가 꼼짝없이 엎어져있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물건 집듯 억센 손으로 틀어쥐더니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우리 아이 안돼요. 안돼요....”
그녀가 절규했지만 조장 사내는 밖에다 대고 냉정하게 말했다.
“날레 노형리 2호집으로 가라우.” 
아이들이 울부짖었지만 그것도 개짖는 소리와 함께 묻혀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애들, 애들 하고 꺼져가는 소리를 토해낼 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마을은 깊은 적막감 속에 잠겨있었다. 하긴 마을의 집들은 상당수 소실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벌써 빠져나가 산으로 피신했다. 아아아, 엄마가 이윽고 동물적으로 울부짖으며 발악을 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가 몸부림치자 사내의 군홧발이 다시 그녀 등을 밟아서 몸부림칠 수가 없었다. 숨이 잦아들기만 할 뿐 내뱉어지지가 않았다.
“거딧말하거나 둘러대면 니 두 아들놈들 죽일 거래이. 순순히 대답하라우. 간나새끼 어디메 갔네? 고년 이종사촌인가 고종사촌인가 하는 고길자 년 거처가 어디네?”
“나도 찾고 있다, 이놈들아, 나쁜 놈들아....”
그녀는 딱딱 끊어지는 단음절로 소리쳤다.
“왜 몰라? 어제 밤까지 함께 있었닪아. 우리가 다 염탐하고 온 기야. 고 자가 폭도들하구 연락한 걸 보구 왔단 말이다. 밀대가 폼으로 있네?”
그녀는 호흡을 정리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애원이 담긴 목소리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어젯밤 시아버님이 다녀가셨어요. 시아버님도 애아빠 찾으러 왔어요. 나는 몰라요.”
“둘러대지 말라우. 다 알고 와서! 고길자 고 악질년이 일본서 왔더구만. 글구 함께 데리고 온 임순심이란 년을 찾아야디. 고년도 일가붙이디? 고것들이 발악한단 말이다. 제주도는 모였다 하면 사고를 치니까니. 해녀들 모아서리 무슨 짓하잔 거가? 씹텡이들이 근질근질하나?”
그가 쿵쾅거리며 마루와 건넌방을 왔다갔다 하던 사내를 불렀다. 
“이 에미나이 시아바이를 찾아라. 일도린지 이도린지 금융조합 뒤편이다. 거게 사무실이구, 아매 이도리가 안집일 기야. 사무실이 비어있으면 이도리로 가보라우. 그 자 뒤를 밟으라우.”
“알가습네다.”
부하가 후다닥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시 개들이 짖어댔다. 빈 마을엔 개떼들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조장 사내가 엎드려있는 그녀 몸을 일으키더니 이불 위에 바로 눕혔다. 그녀의 하얀 젖무덤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그가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를 올라타더니 치마를 벗기고 팬티를 끌어내렸다. 하얀 허벅지 속살이 드러나자 호흡이 거칠어지고, 입에선 단내가 풍겼다. 
-탐스럽다야. 
눈부신 듯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던 그는 그러나 한순간 망설였다. 욕망을 채울까 말까. 요사이 이런 일로 시끄러웠다. 한창 나이의 욕망을 쏟았다가 벌통을 건드려놓은 것처럼 온 마을이 시끄러웠다. 한 여자가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매 자살을 해버린 것이었다. 구좌면에서는 자매가 당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뒤이어 청년단원 하나가 낫으로 난자당해 죽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문을 퍼뜨려? 
당한 것들은 입을 꾹 다물 줄 알았다. 그런데 여지없이 마을에 퍼졌다. 그것은 피해자들이 소문을 내서가 아니라 당한 그들이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고개를 떨구고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가 나는 것이고, 그 숫자가 계속 불어났다. 주민들의 시선들이 심상치 않았다. 어느 마을에선 노인이 도끼를 들고 대들었고, 피해 여성이 어디론가 종적을 감춘 경우도 있었다.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서 본부에서도 주의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지켜지는 것은 없었다. 그것을 지키기엔 그들은 혈기방장했고, 광기가 넘쳤다. 지금 그의 눈앞에 놓여있는 여자도 외면하기엔 너무나 눈부시다. 피부가 매끄럽고 통통 튀는 것처럼 몸이 탄력이 있다. 하얀 허벅지 속살과 무성하게 돋아난 샅을 덮고 있는 까만 털의 숲, 그 사이로 검붉은 음부가 도드라져있는 것이 더욱 숨이 칵 막히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명색이 청년단 간부라면 참아야 한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럴수록 가슴이 뛴다. 역시 충동은 가깝고 이성은 멀다. 억제하기엔 벽도 뚫는다는 갓 스물한 살의 청춘이다.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온 처지도 아니다. 고향땅을 벗어날 때 이따위 체면 나부랑이는 대동강물에 빠뜨리고 왔다. 폭풍처럼 살아온 나날, 내일이란 없다. 가진 것은 각목 휘두르며 식욕과 성욕을 해결하는 본능의 실존 뿐이다. 
그는 한쪽 팔로 그녀를 쪄누르고 다른 손으로 자신의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여자가 일어났으나 그의 우악스러운 팔이 여지없이 그녀의 몸을 내리눌렀다. 연약한 여자는 꺼지듯이 무너졌다. 그녀는 체념하고 말 것도 없었다. 거부의 몸짓도 저항의 몸짓도 의미가 없었다. 발악할 힘은 더더구나 없었다. 입술을 물며 분노를 삼킬 뿐이었다. 아, 이런 폭력에는 어쩔 수 없구나, 모든 게 무망한 일이구나... 그녀는 울음을 삼키며 수치심과 모멸감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순식간에 욕구를 채운 그가 마음이 느긋해졌는지 낮게 내뱉었다.
“내일 다시 올 거우다. 누구에게 말할 수 있간? 부끄러워서두 말하지 못하디. 고렇디? 말하믄 니만 손해디. 정숙치 못하다구. 글구 니 아새끼덜 영영 못볼 기다. 알간? 내일 와보구 아새끼들 데려다줄까 말까 결정할 기다. 당신 글고 보니 긴짜꾸다. 쫄깃쫄깃 내 잊을 수 없다, 흐흐흐...” 
그는 바지를 끌어올린 다음 허리띠를 조여매더니 문 밖으로 황급히 사라졌다. 마을의 가옥들이 탄 냄새가 여전히 매캐하게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약한 곳부터 쳐야 한다

관덕정 광장 옆 골목길로 사나이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골목 안쪽엔 새끼줄로 지붕을 얼기설기 얽어맨 납작 엎드린 초가들이 들어앉아 있는데, 그 초입에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말쑥한 이층짜리 건물이 서있었다. 일본식과 서양식의 혼합형 주택이었다. 그 건물로 젊은 사나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각목을 들고 있었으나 일본 군도, 경찰 곤봉을 착용한 자도 있었다. 일본 군복과 노동복을 입고 있었지만 대체로 행색은 초라하고 꾀죄죄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건물 안에서 요란한 합창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리는 서북청년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아가 나아가 38선 넘어 매국노 쳐버리자
진주 같은 우리 서북이 지옥이 되어
모두 도탄에서 헤매이고 있다
동지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
등잔 밑에 우는 형제가 있다
원수한테 밝힌 꽃봉이 있다
동지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

합창이 끝나자 와, 함성이 일고, 곧바로 사회자가 진행 발언을 했다. 
“여사한 일로도 우리 동지가 다치면 열배 백배로 응징하라. 반드시 본떼를 보여라. 그래야 두 번 다시 대들지 못한다. 우리의 단결된 대오는 영원하다. 서청 조직 강철대오! 우리 서청이야말로 이승만 박사, 조병옥 박사, 문봉제 단장님을 떠받드는 일세의 기둥이다. 알갔나?”
“네엣!”
우렁찬 대답과 함께 다시 함성이 일었다. 뒤이어 각 조별 활동내용이 보고되고, 주의 사항이 하달되고, 단장의 지침이 내려지고, 그런 다음 다시 군가가 울려퍼졌다.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 적에
혈관에 파동치는 애국의 깃발
넓고 넓은 사나이 마음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다
보아라 우리들의 힘찬 맥박을
가슴에 울리는 독립의 소리!

노래가 끝나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단결 구호를 외치고 만세삼창이 이어진 뒤 해산했다. 강당 한쪽엔 단장실과 부단장실이 나란히 붙어있었는데, 단장실에는 두 남자가 책상을 맞대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래, 천하에 정용팔이가 현호진이란 놈 하나 못잡아오는 거가? 고래, 고 자가 고렇게 신출귀몰하오?”
부단장 구대구가 웃지도 않고 따져물었다. 이름 때문에 뒤로 가도 구대구, 앞으로 가도 구대구란 별명을 갖고 있는 그가 섭외부장 정용팔을 졸로 보는 눈치다. 이름에서 빌려온 듯 구더기란 별명도 갖고 있는 그는 별명대로 쌍통을 늘상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것은 권위와 관록을 보이는 자기 상징이자 부호처럼 여기는 의도된 표정이었다. 
정용팔은 꼴로 보아서는 그보다 자신이 위로 올라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정말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래선 안된다는 뜻으로 눈을 가늘게 깜빡거리며, 구대구의 눈치를 살폈다. 
“걱정마시라요. 내 뛰었다 하면 구만리요. 내 요렇게 한방 날리면 항우 장사도 묵사발이우다!”
그가 커다란 주먹을 내쳐 허공을 갈랐다.
“아, 그 사투리 그만 안쓰면 안되오? 서울 말씨 좀 써요. 당신 그래두 중학물 쬐끔 먹었댔닪나. 말하는 걸루 봐서는 택도 없는 거 같은데... 그렇닪아두 피안도 말 쓰면 주민들 씩겁하오. 노려보던 그 싸늘한 눈깔들 안보이오? 그런 것 생각하믄 서던 좆도 죽어버리오. 정말 농담 아니구 섭외부장 주의하시오. 단장님도 늘 그 말씀 하시지 않았넹?”
“알가습네다. 부단장님도 주의하시구레.”
“날 또 걸고 넘어지긴. 어쨌든 현호진 고 자 어떻게든 잡아들이시오. 우리를 기망했소. 고 간나새끼가 교사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버려놨대서. 이렇게 되면 우리 사업 어드렇게 되는지 알가서? 이젠 이모네, 고모네 식구들까지 동원돼서 대적하고 있으니까니. 해녀조합의 고길자 년까지 엮으라우.”
뒷 말엔 반말로 나오는 게 스스로 화를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정용팔은 그가 자신 앞에서 유독 으스대는 게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다며 그냥 넘어갔다. 구대구 자신도 변함없이 사투리를 쓰면서 자신을 구박하는 것이 좀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단순하게 보이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고 자 집에 가서 아새끼들 데려왔습네다. 2호집에 수용했습네다.”
“어드레?”
말귀를 못알아듣고 구대구가 물었다.
“노형리 민가입네다. 민가 아지트에 갖다 놓았습네다. 고래야 엮이디요. 헌데 현호진 고 자 아바이가 문제입네다. 현문선이라구, 보통 대가 세디 않디요. 일제 때부터 악명을 떨치던 놈입네다. 경찰이 학을 뗐다고 합네다. 날레 고런 놈을 반 죽여놨댔어야 하는데..... 해녀들, 노동맹원들도 따른다고 합네다. 머리가 시끄럽습네다.”
“고래두 정용팔 부장이야말로 우리 서청의 별 아니오. 강단있고 패기있고 용맹하고, 착착 일처리 잘하기로 소문나디 않았소. 한 건 하시오. 내 믿소.”
“고래두 현문선 고 자 만만티 않습네다. 어르신이라고 자부심 높습네다. 그런 자들이야말로  골치가 아프대니까니....”
“고까짓 게 민족주의자면 뭐하겠슴? 고개 다 빨갱이디. 구둣발 몇방이면 끝나는 기요. 금방 살려줍쇼 하구 무릎 꿇디! 옷 벳기구 부랄 쥐고 벽에 서있으라고 기합 주면 그걸로 끝나는 기요.”
“물론이디요. 자존심을 먹고 사는 놈들은 사루마다만 벗겨놓으면 끝나디오. 번데기같은 좆대가리 감추느라 정신없으니까니, 하하하. 하디만 고 자들의 보복도 고려해야 합네다. 주의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네다. 돈이 있는 놈입네다. 글구 그 아들놈이 악이 받쳐서 보복도 우려해야디요.”
“아, 일본 대학물 먹었다구 계속 우리 농간하는 놈 말이우까? 현호진 새끼!”
“맞습네다. 일본대학 2학년 때 해방을 맞구서리 곧바로 귀국한 자입네다. 귀국자 놈들이 문제디오.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아새끼들 다 버려놓갔다구 발광한답네다. 고래서 조천중학원 아새끼들이 더 악질적이고 발악적이디요. 고 자를 묶어 넣으면 고구마줄기처럼 반항자들 싸그리 뽑아올릴 거라요. 하디만 잘못 건드리면 세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서 난리칠 거니까니 조심해야 합네다. 처치 곤란하게 단다 말입네다.”
“고런데 고 자가 먼저 튀어버렸댔시니.”
“우리가 좆됐십네다.”
“지난번 마을 사찰 나갈 때 주민들 싸늘한 눈깔들 보지 않았넹? 살벌하디 않소? 주민 모두가 폭도들이오. 유의해서 고 자를 잡아들이시오. 그 아바이놈도 좋디만 고 자를 잡아야 일이 풀리는 기요.”
“고래두 그 아바이 다루기가 좋디 않습네까?”
“아니디. 모르는 소리 마오. 아새끼를 잡아족쳐야 아바이가 순순히 따른단 말이오. 자식 험한 꼴 보는 게 자기가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법이우다. 고래, 알다시피 고 자가 밀무역을 손대는 큰 손이란 말이우다. 고 자의 멱통을 쥐어잡아야 자금줄을 확보한단 말이오. 고걸 성공시키기 위해선 고 새끼를 잡아들여야 하오. 냄새가 풀풀 나디 않소. 폭도들하고 접선한 것, 9연대 세포놈들과 접선한 것, 밀대들 첩보가 틀린 것 봤소? 자금줄이 그리로 쏟아들어가면 낭패디. 암, 낭패구 말구.”
“물론이디요. 고래서 벌써 저인망을 쳐놨습네다. 고 자를 잡으려면 현호진이 고 마누라를 묶어두어야 하니까니, 고 마누라를 잡기 위해선 또 아새끼들을 인질로 잡아두어야 하니까니...”
“고래서 아새끼들을 유폐시켜 놓았구만?”
“고렇습네다, 하하하.”
“역시 정용팔 섭외부장은 머리가 좋단 말이우다. 내가 따라가지를 못하가서. 고렇게 하구선 그 마누라 밑구녕을 뻥 뚫리도록 몇방 쑤셔넣고 오디 그랬소? 그래야 고 여편네두 뒷 말 없을 거니까니. 뒷 말 막는 최상의 방법이오. 먹물 먹을수록 수치심, 부끄러움은 아니까니....”
정용팔은 이미 저질렀다고 자랑삼아 대답하려는 순간 꾹 참았다. 구대구가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막상 그리 했다고 설레발치면 공연히 질투심을 느끼고 해코지할지도 모른다. 경험상 그도 그런 경우를 접했으니까. 다른 대원이 아낙네 겁탈하고 와서 자랑삼아 설을 풀 때, 은근히 자기 애인이 당한 듯 부아가 나서 그자를 다른 이유를 걸어 사정없이 팼던 것이다. 구대구 이 자도 알게 되면 괜시리 심통부릴지 모른다. 근래 보기 드문 몸매의 학식있는 여잔데, 나 혼자 아껴야 하는 먹잇감인데.... 제주도 여자들은 일을 많이 해서인지 피부가 거칠고 투박한데 이 여잔 하얀 피부에 탄력있는 젖가슴과 고등어처럼 단단한 살,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풍성한 육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그것을 자랑하다 잘못되면 죽 쒀서 개주는 꼴이다.... 
그때 사진봉 단장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섰다. 행사를 마치고 온 듯 그는 하얀 목장갑을 손에서 잡아빼 책상위에 신경질적으로 내던지고 대장 의자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두 사내가 일어나서 경례를 붙였다. 
“단장님, 정용팔 부장 동지가 마침내 일 냈습니다.” 
부단장 구대구가 서울 말씨로 보고했는데 사진봉 단장은 대꾸없이 여전히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있었다.
“단장님, 현호진 이 자가 드디어 그물망에 잡혀들었습니다. 정동지가 일을 내고 왔습니다.”
그는 계속 깍듯한 서울말씨로 보고했다. 사진봉은 충성스럽게 말하는 그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싱겁다는 듯이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단원들은 앞으로 평안도 사투리를 쓰지 말도록 엄명을 내렸었다. 그러나 그걸 지키는 자는 그 자신이나 단원들이나 별로 없었다. 사진봉은 귀찮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은 채 눈을 지긋이 감았다. 
“단장님, 감기 왔습네까.”
그러자 사진봉이 구대구를 쳐다보는데 화난 얼굴이었다. 
“헛소리들 말고, 사계리 쪽 동태 살펴보라우.” 
“사계리 쪽 동태라니요? 불타 없어지디 않았습네까.”
“영락리도 살펴봐.”
“거기도 불타 없어졌디오.”
“그러니까 살펴보란 말이야! 새별오름에서 와장창 부딪쳤대믄 알아차려야디, 영락리, 사계리, 금릉리,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면 어뜨렇게 되나?”
그가 정말 골치 아프다는 듯이 더욱 쌍통을 찌푸렸다.
“단장님, 고건 우리와는 상관없습네다. 사계리, 금룡리는 다른 대원들이 작업한 곳입네다.”
“간나새끼들, 일을 어뜨렇게 고따구로 하나? 일을 내도 그렇게 무식하게 나갈 수 있나 말이야. 퇴로는 열어줘야디. 왜 일을 고따구로 확대시켜! 겁만 주어도 되는데 왜 고렇게 통째로 밟나 말이다.”
“아니, 단장님, 우리가 자발적으로 한 겁네까? 위에서 시키는 일, 좆으로 밤송일 까라면 까야디, 안그렇습네까. 어차피 중산간 마을은 없애기루 하디 않았습네까?”
“야, 이 새끼야! 중산간마을이든 해안마을이든 구분하고 이서?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하지 않아서? 내 명령을 따라야디. 월권하믄 고립되는 거 몰라? 니놈들같이 이렇게 무식해서야 어뜨렇게 함께 일해먹가서! 당장 나가!”
사진봉도 다급하면 진한 평안도 사투리가 터져나왔다. 두 사내는 영문도 모른 채 단장실을 나왔다. 씨팔 놈, 구대구가 씨부렸다. 우린 칭찬만 받았댔는데, 저 자는 통제만 하려 하구! 
사실은 단장이 회의 마치고 들어오면 상의할 일이 있었다. 밀수 물량을 가득 실은 밀선이 들어온다는 첩보가 답지한 것이다. 그래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뚱딴지같이 벼락을 맞고 말았다.
“조직부장 들어오라구 해!”
사진봉 단장이 밖에 대고 소리질렀다. 강당에는 점호를 마치고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단원들이 조직부장을 둘러싸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직부장 하대칠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군말없이 단장실로 달려갔다.
“북촌리 사계리 몇 놈이 갔댔나?” 
얼겁결에 질문을 받았던지 하대칠이 한동안 멍청하게 서있었다.
“몇 놈이 갔던 거야? 그래, 조직부장이란 자가 그런 조그만 현장에까지 나갈 필요가 있었나 말이야?”
“현지 지원차 나갔댔시오. 그리구 우리만 간 건 아니고 대동청년단도 갔습네다.” 
하대칠은 숫자를 대지 않고 대동청년단을 끌어다 댔다. 단장의 표정으로 보아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아서 먼저 빠져나올 보호막부터 친 것이다.
“우리 청년단에서 몇 놈이 갔나?”
“열댓 명 갔습네다.”
“고래서?”
“몇 놈 손 좀 보았댔디요.”
“손 본 것이 몇 놈이 죽어?”
“물지 않으면 되레 물립네다. 선제적으로 제압해야디요. 당연히 그래야 하디요. 대들면 눈깔을 뽑아버려야 합네다. 이에는 이, 눈깔은 눈깔. 그래야 두 번 다시 덤벼들디 못합네다.”
“거긴 잘못 짚은 거야. 의심갈만한 청년이 없어. 순박한 동네야.”
“고런 구분이 어디 있습네까. 순박하고 고약하고가 어디 있습네까. 약한 곳이 오히려 문제입네다. 약할수록 간계를 꾸밉니다. 약한 곳부터 쳐야 합니다. 늑대는 약한 개체부터 공격합네다. 고래서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됩네다. 거기도 폭도 아지트입네다. 이곳은 센 곳, 약한 곳 구분이 없습네다. 상황을 보아 숨죽이고 있을 뿐이디요.”
하대칠도 서울말과 평안도말을 섞어서 말했다. 다급하면 아무렇게나 튀어나왔다. 그는 속으로 이 새끼가 요즘 변심했나, 왜 이래? 하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직부장 하대칠은 사건이 나게 된 과정을 더 상세히 설명하고 싶었다. 
마을 청년들이 폭도를 쫓는 경찰관 두 명과 다투었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었지만 거칠게 심문하는 경찰의 태도에 반발했다. 서로 멱살잡이하며 대거리했다. 뒤늦게 출동 명령을 받고 하대칠이 달려가 그자들을 늑신하게 패주었다. 그 중 한 놈은 다리 병신이 되었다.
조천면 신촌리 선거사무소가 습격을 당했다. 저지 지서도 피습을 당했다. 경계망을 치고 응원경찰까지 동원했어도 구멍이 뚫렸다. 그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조용하던 것들이 점차 대응 수위가 높아지더니 선제공격을 해온 경우도 있었다. 경찰력이 밀리니까 경찰은 청년단에게 의지했는데, 이때 청년단이 존재감을 보여주어야 했다.
“날뛰지 말라우! 사건을 키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니까니.”
“억울합네다. 우리만 당하라구요? 섭외부장 말 한번 들어보시구레.”
하대칠이 일방적으로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야, 정용팔 섭외부장, 구대구 부단장 당장 단장실로 들어와보라요!”
정용팔, 구대구 두 사람 역시 단장의 태도가 못마땅해 궁시렁거리고 있던 차였는데 부름을 받자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다시 단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정용팔 부장, 사계리 사건 전말을 설명해보라우. 단장님이 모르시갔단다.”
“아, 고렇습네까. 고거야 내가 말하디오. 고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니.”
구대구 부단장이 대신 나섰다. 
“내가 족쳤으니까니, 내가 더 훤합네다. 부락에 무장폭도가 출현했댓시오. 간나새끼들이 보급투쟁중이었던 모양이우다. 주민들이 협력하고 있었디요. 고걸 순찰중이던 경찰관 두명이 적발해서 취조를 하는데 마을청년들이 달려들어 거짓말을 해서리 손 좀 봐주었디오. 이걸 몰래 숨어서 본 폭도들이 쫓아와서 경찰을 공격했댔시오. 고래서 지서에 증원 병력을 요청해서 우리 서북청년회가 출동했댔는데 폭도들은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은 시침을 따고 있는 거래요, 고래서 분이 나서 입산한 폭도들의 가옥을 불태웠댔시오. 마을은 입산한 무장폭도들이 많았댔시오. 마을을 태우자 무장폭도들이 다시 쫓아와서 부딪쳤댔시오. 고래서 경찰이 증원돼서 이자들을 격퇴시키고 마을사람들을 손 보았댔디요.”
그는 사안을 가능한 한 과장해서 복잡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끌어들여 섞갈리게 해야 진상을 흩뜨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자기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대상 지역이 강성 폭도마을이 되어야 하고, 폭력적인 마을 청년들이 마구잡이로 대드는 것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사진봉 단장은 폭도마을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았고, 그 마을은 그의 동거녀 고향 마을이었다. 

“우리는 나라 지키는 서북청년회로다!” (2)

“그 말 사실이네?”
사진봉 단장이 확인하듯 대원들을 향해 물었다.
“아니, 단장님은 누구 편입네까. 설사 우리가 잘못했대두 우리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닙네까?”
부단장 구대구가 못내 섭섭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본래 쌍통이 그래서 그렇지 화를 내거나 섭섭한 얼굴은 아니었다. 단장이 그의 말을 묵살하고 말했다.
“특별한 게 아니면 개입하지 말라우.” 
“고게 특별하지 않구 뭐가 특별한 겁네까?”
“무대뽀로 나가면 안된단 말이다”.
“아니 거게 지원 나갈 일이 아니고 뭡네까?”
구대구가 계속 깐죽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대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밀리다 보니 사진봉은 막상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나 밀리면 영이 안선다. 이 새끼가 오늘사 말고 독사처럼 왜 대가리를 쳐올리나? 그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그들 사기를 고려해서 참아줄만도 한데 구대구가 바락바락 대들어서 내질렀다.
“씨발 새끼들, 겁간이나 하고 말이다. 이제 고마하라 안했나. 고래서야 쓰네?”
“네?”
“간나 새끼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죄질이 나쁜 거이 고런 거란 말이다. 고런 거이 민심을 더 흉흉하게 한단 말이다. 눈알 뒤집히게 한단 말이다. 오늘도 접수됐단 말이다.”
“원, 단장님도, 폭도들 처자 따먹는 게 고래 죄질이 고렇게 나쁩네까? 단장님도 경험 많지 않습네까. 하하하...”
그제서야 구대구가 별게 아닌 걸 가지고 윽박지른다는 투로 말하며 소리내어 웃었다. 곁의 간부들도 따라 웃었다. 사진봉은 이 자들과 더 씨부렸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부턴가 돌이켜보니 그것만은 과오라고 판단했다. 할 짓이 아니었다. 오늘 읍내에서 듣고 온 이야기를 떠올리면 참 부끄러웠다. 
“단장님께 분명히 보고 올립네다. 내통자에게는 칼같이 엄격해야 합네다.” 
구대구가 본 업무로 돌아가 엄숙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또 할 말 이서?”
“말씀 드리죠.”
구대구는 토벌을 나가서 도망가던 주민 중 노인을 붙잡았다. 실실 눈치를 살피며 옆 골목으로 새는 모습이 수상했다. 노인 곁에는 걸음걸이가 불편한 소년이 끼여 있었다. 그는 둘을 잡아 마을 앞 공터에 세웠다. 도망치던 주민 중 하나가 멀리서 그 사람 그럴 분 아니오, 하고 소리질렀다. 그러자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소리로 불쌍한 사람이오, 하고 외쳤다. 그것이 구대구의 성질을 돋구었다. 이 새끼들, 짜고 노나? 이 새끼들아, 내가 하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확실하게 위세를 부려야 했다.
“간나새끼 어드레 좆빠지게 도망가노? 도망가는 자가 범인이다. 안그래니?”
구대구가 노인을 향해 소리치자 노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파란 자식같은 놈이 간나 새끼라니, 아무리 험한 세상이라도 이건 아니다. 그러자 구대구가 버럭 소리질렀다.
“겁대가리없이 누구를 째리보네?” 
그리고 귀싸대기가 올라갔다. 노인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뭐라고 애원하듯 끝없이 중얼거렸다. 
“이 녕감 뭐라 하네? 도통 알아먹을 수 있어야디. 여기 통역 좀 서라우.”
그러자 곁의 할아버지 손자가 또렷하게 말했다.
“아저씨들 못됐다는 말씀이에요. 우리는 죄가 없다고요.”
곁의 정용팔이 삼각 눈을 하며 구대구를 향해 보고했다.
“부단장 각하, 이런 건 말로 해선 안됩네다. 체면이 있습네다. 동리 사람들 보고 있댔시니 묵인하면 우리가 좆됩네다. 이렇게 해보시라요.”
그가 노인과 소년을 마주보도록 세웠다. 
“니 이름이 뭐간?” 
“임순동이요.” 
“할아바이 이름은?”
“임자 경자 차자예요.”
“임자 경자 차자 하지 말구, 임경차! 하라우. 그럼 임순동이, 녕감한테 경차야! 하고 불러봐.”
소년이 쭈볏거렸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구대구가 워카발로 소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렇잖아도 불편한 다리인 듯 소년이 무릎을 싸안고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일어나라우.”
“순동아, 그렇게 불러라. 할아방은 괜찮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노인이 말하고 아이를 일으켜세웠다. 일어나 바로 선 소년이 그래도 쭈볏거리자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마을 주민 누군가가 외쳤다.
“괜찮다. 그렇게 말해라. 그렇게 해야 풀려난단다.”
그제서야 용기를 얻었던지 소년이 경차야! 하고 소리질렀다.
“고래고래. 잘해서. 하지만 이 개새끼야, 자기 할아방한테 개이름 부르듯 하다니, 이런 개호로자식이 다 있나. 너한테두 동방예의지국이 해방되었누나. 해방, 해방, 참 꼴 좋다. 그래두 씨발새끼야, 시킨다고 구분구분 할아버지 이름을 동리 개이름 부르듯이 부르는 놈이 어디 이서? 할아방, 이런 예의범절 모르는 손자놈 혼내주라우. 제대로 교육을 시키라우. 뺨을 다섯 대 때리라우. 가만가만 때리믄 할아방이 대신 맞는다는 거 알라우. 고건 사랑의 매니까니. 교육의 매니까니.”
노인이 주저없이 시키는대로 아이의 뺨을 때렸다. 아이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임순동, 너 기분 나쁘디? 이건 너무 하잖니? 너도 똑같이 할아방 다섯 대 때리라.”
하지만 소년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래저래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더 이상 놀림감이 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정용팔이 나서더니 주먹으로 소년의 복부를 갈겼다. 소년이 보리자루처럼 절푸덕 쓰러졌다.
“일어나 빨갱이 새끼야. 우리 눈이 달걀봉사네? 우리 다 알고 와서. 니 아바이 어따 숨갔나?”
그제서야 소년이 통증도 잊은 채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뭔가 들통나면 큰 일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렇디. 뭔가 있긴 이서. 그럼 도망간 아방 불 때까지 할아방 때리라우! 숨기는 자가 범인이니까니.”
“아가, 어서 나를 때려라.”
노인이 두려움에 떨며 소년에게 맞기 좋게 반쯤 몸을 구부렸다. 소년이 할아버지 면상을 갈겼다.
“좀더 세게. 고롷지 고롬. 고롷고 말고. 고래 고래. 더 세게. 더 세게. 더 세게!”
순간 소년이 후다닥 몸을 돌려 해안선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소년이 붙들리는 것은 금방이었다. 소년이 울면서 소리질렀다.
“이러지 마세요. 우린 죄가 없어요. 아버진 바닷일 가서 돌아오지 않았어요. 정 이러면 선생님한테 말할 거예요!” 
“바닷일 가서 안돌아오면 빤한 거디. 고걸 우리가 모르네? 그리구 선생님? 뉘기네?”
“현호진 선생님이요!”
소년은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또렷이 말했다. 억울함을 그런 식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불의 앞에 무릎 꿇지 마라. 정의는 힘들지만 마침내는 세상을 끌어가는 힘의 원천이다. 현호진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었다.
“현호진이다 이거디? 니네 아바이가 현호진과 짜고 입산했다 이거디? 봐라, 이렇게 어린놈에게도 세포로 심어둔단 말이다!”
하대칠이 일부러 화를 돋구어 소년을 노려보았다. 
“알가서. 문초하면 다 나오갔디. 수고했다. 임순동이, 아까 하던 거 다시 하라우! 할아방 귓방망이 때려!”
소년이 멈칫거리자 예외없이 주먹이 날라갔다.
“순동아, 할아방 때려라. 할아방 때려도 할아방은 하나도 안아프다. 백대 이백대 이천대 때려도 할아방은 안아프다.” 
노인이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래도 소년은 완강한 태도로 거부했다.  구대구가 대창으로 소년의 배를 찔렀다. 쓰러진 소년의 배에서 창자가 쏟아져 나왔다. 피가 흥건히 흙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놈들아, 날 죽여라. 날 죽여. 왜 죄없는 손자를 죽이냐! 허허, 하눌님, 이게 무슨 꼴이우까.”
노인이 절규하며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휘두르자 하대칠이 일본군도를 뽑아들어 힘차게 노인의 목을 갈랐다. 노인의 두상이 굴러 떨어져 나뒹굴었는데 두 눈은 부릅뜬 채였다.
“간나 새끼, 우리가 당한 것에 비하면 이건 상대접이다. 고통스럽지 않게 해주었으니까니 우리도 예의 법도를 차린 거레이.”
구대구가 자기가 저지른 것에 더 화가 난다는 듯,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주민을 향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당신들,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았디? 우리두 이렇게 당했소다. 남로당 제주도당 개망나니 새끼들이 경찰지서를 공격한 것 다 알디? 이 자들은 대한민국 건국 선거를 반대하기 위하여 준동한 반동이다. 고 자들은 경찰의 목을 잘라 담장에 걸어놓고, 또 어떤 순경 부부를 대창으로 찔러죽이고, 우익 놈 자식이라는 이유로 열 살 먹은 소녀를 찔러죽이고, 다른 우익 부부를 쏴죽였다. 여러분, 다 알디? 우리더러 부처님처럼 가부좌하고 조용히 수양하고 있으란 말은 못하갔디? 그리구 이 자의 자식은 세포 중의 세포 핵심이야. 우리가 다 알고 찾아온 기야. 이렇게 해놓았으니까니 이 자가 복수하러 내려오갔지. 기다리고 있갔다. 오냐, 오냐, 기다리마.” 
마을 사람들은 대원들이 물러나자 죽은 노인과 소년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두 시체를 수습해 바닷가 숲으로 사라졌다. 구대구 일행은 몇 개 마을을 더 돈 뒤 읍내로 돌아왔다. 
“우리도 얼매나 당했십네까. 당한만큼 갚아야디오. 우리가 행패를 부린 건 아닙네다. 민심이 흉흉하면 뽄대를 보여야 합네다. 그런데 어느 새끼가 우릴 모략합네까?”
화를 내면 더 화가 치미는 게 사람의 성질이다. 구대구가 두 주먹을 쥐며 몸을 떨었다.
“알아서. 다들 물러가.”
과정을 듣고 난 사진봉 단장이 귀찮아서 대꾸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버티고 서있었다.
“용건 있네?”
“밀선 하명 내려야디오.”
“오늘 분위기가 좋지 않다.”
사진봉은 내키지 않았다. 도청 뒷골목에 자리잡은 보헤미안에 들렀었다. 다방으로 들어서는 그를 오신애가 부리나케 맞더니 따졌다. 
“원 세상에나...”
그녀와는 몇 달 전부터 몸을 섞어온 처지고, 그런 사이 밀대로도 활용해왔다. 그녀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제주 역사, 풍속, 지리, 제주항을 드나드는 무역선을 위장한 밀선, 주요 인맥들까지 꿰고 있었다. 남자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지만 남자는 폐질환을 앓더니 자식도 없이 수년 만에 죽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친정으로 내려와 있다가 미색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제주읍으로 나와 다방을 차렸는데 어느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사진봉은 그녀를 통해 제주도 인사들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를 통해 고급정보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진봉의 풍부한 경제적 지원에 몸을 맡겼지만, 의외로 사려깊고 진중한 태도여서 알게 모르게 마음이 기울었다. 서청이라고 했지만 포악스럽지 않고 사색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조천 쪽 치사사건 알아요?”
사진봉이 의자에 앉자 그의 곁에 바짝 붙어앉으며 그녀가 물었다. 다방에는 손님이 아직 들지 않았다. 사진봉은 손님이 들기 전인 이른 아침 보헤미안에 들르곤 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약속과도 같은 것이었다. 
“무슨 사건이간?” 
사건이 나면 모두 서청 짓으로 돌리는 것이 불쾌해 듣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지껄이는 것이 수상했다. 
“올케 언니가 다녀갔는데요.” 
“그래서?”
“말하기가 민망해요.” 
“또 그 소리네? 쓸데없는 소리라면 고마하라우.”
사진봉은 단박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단원들 행동이 근래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장대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청년단 입장에서는 질서를 잡고 치안을 유지하고, 주민을 제압하기 위해선 거칠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폭도들이 선제 타격을 가해오면 당한만큼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안의 전후를 따지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따져서 흑백을 가리기엔 감정이 앞선다. 사실 이런 것일수록 이론이 구구하면 복잡해진다. 부딪친 상황에서 당했으면 응징하고, 더러 부당하게 제압했으면 진압이라고 여기면 된다. 그런 것이 실적이 되고, 때로는 포상 공훈이 된다. 오신애가 커피를 끓여와서 탁자에 놓고 다시 그의 곁에 붙어앉았다. 
“당신 요즘 예민해요. 그래 놓고 연애할 수 있겠어요?”
그는 손님이 들어오기 전 일찍 다방을 찾으면 오신애와 사랑을 나누었다. 커튼을 쳐놓고 의자에서, 혹은 탁자 위에서 나눈 섹스는 말 그대로 자극을 주었다. 방안에서 정식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어설프게 나누는 사랑이 황홀감을 더 주었다. 이런 소소한 일탈과 파격을 오신애도 즐기는 눈치였다. 사진봉이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나자 그녀가 말했다.
“임신한 여자를 강간했다네요?” 
“너 고걸  말이라고 하네? 누구 이간질시킬라구 입놀리네? 쓸데없는 유언비어를 다 믿네? 그럼 나두 해볼까?” 
그가 버럭 소리 질렀다. 다분히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그녀는 한 순간에 꾸중듣는 아이 꼴이 돼버렸다.  
“아휴, 이렇게 속 좁은 사람 내 남자인 거 맞아?”
그러자 사진봉이 다소 느긋해졌다. 사실 오신애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토라져서 돌아서면? 그녀를 탐하는 남자들은 많다. 쪽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려서 말했다. 
“호상간에 이간질이 많아서 그래.”
“당신 화나라고 말한 건 아니에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래요.”
“뭔데?”
“글세, 사위하고 임신한 장모하고 붙도록 했다는 거죠.” 
“고래서?”
“그 상황인데 되겠어요? 그래서 방에 들어가서 세워가지고 넣으랬다나요? 방에 들어가서도 안되니까 장모더러 사위 것을 빨라고 했대요. 그러자 사위가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나와 대들었다는 거죠. 결국 그는 칼을 빼앗겨 찔려죽고 말았고요.”
“쌍년, 너 정말 죽을려고 환장했네?”
이건 말도 안된다. 지어내도 터무니없는 날조다. 그녀도 화가 났는지 지지 않고 대들었다.
“당신들 왜 그래요? 발정난 수캐들도 아니고, 살인광도 아니고... 이건 아니잖아요.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올케 언니가 말해주고 산으로 갔어요. 올케 언니도 언제 당할지 모른다고 이를 물고 올라갔어요.”
“이것들이 죽으려고 작정했네? 산으로 가면 다 죽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 아녜요? 이렇게 살 바엔 산사람들 밥이나 해주고 죽겠다고 올라가버렸어요. 당한 곳은 내 고향 마을이라구요.”
“뭐? 네 고향마을?”
시진봉은 어느결에 그녀의 고향마을도 지켜주지 못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말해주지 않은 이상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화가 났다.
“왜 말해주지 않았니? 말해주어야 알지 않가서? 하지만 그렇더라두 빨갱이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무서운 것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만행들이 일상화되고, 그 중심에 서청이 있고, 서청은 모든 원성의 근원이 되고, 그래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도무지 혼란스럽다. 사랑하는 여자의 입에서 이런 막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오신애에게만은 그런 세계에 가닿지 않도록 하고, 그래서 험한 일들은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 그녀가 먼저 분개한다. 하긴 눈앞에 벌어지는 어지러운 세상의 일들로부터 그녀가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직업상 그녀는 소문의 환경에 더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그럴수록 그녀 역시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다. 
“왜 가려구요?”
그는 대답 대신 호주머니에서 잡히는대로 지전을 꺼내 탁자에 던져놓고 보헤미안을 나왔다. 네가 그따위 말을 해도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뜻을 그는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오신애가 어느새 뒤따라 나와 그에게 무명 보퉁이를 안겨주었다. 깔끔하게 다림질한 팬티와 양말, 손수건 따위가 보퉁이 안에 들어있었다. 
“저녁에 오겠어요?”
“모르가서. 하지만 함부로 입 놀리지 말라우. 말 한마디 잘못해개지구 가는 수가 있어. 누구 믿고 살 때가 아니야.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는 수가 이서. 개기러들면 아무것두 아닌 것 개지구 가버린다. 계집아도 단속 잘 해야 한다.”
‘계집아’는 손님이 많은 오후부터 데려다 쓰는 종업원 박양을 두고 한 말이었다. 오신애는 사라지는 그의 듬직한 두 어깨를 바라보며 묘한 감격과 슬픔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어느날 손님으로 들어오더니 낯이 익을 무렵 뚱딴지같이 그녀에게 돈을 맡겼다. 자그마치 동력선 한 척 값이었다.
“사무실에 둬봤자 어느놈이 주인이 될지 모른단 말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숙소는 더 말할 것 없고. 그러니 당분간 맡아둬.”
그는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돈이죠?”
“알 거이 없어.”
그렇게 대답을 거부하는 데야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다만 자기를 신뢰하기 때문에 돈뭉치를 맡기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녀 역시 그를 신뢰했다. 그런 어느날 밤 그가 간단히 말했다. 
“밀선을 단속한 거다.”
얼마 후에도 큰 돈이 들어왔다. 그는 뭉치돈을 그대로 맡겼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이런 험한 세상에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사랑해. 당신이 원하면 어떤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마음 속으로 다지면서 주방으로 들어가 찻잔을 챙겼다. 

사진봉은 단장으로서 조직원들의 후사를 책임져야 하는 일로 근래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한동안 어지럽더라도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승패가 갈리고, 승자 독식과 패자 도태의 상태로 정리가 되고, 그런 가운데 질서가 잡히고, 사물은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승자 구조로 질서가 재편되면 무지랭이들은 한 방에 훅 날아간다. 이용가치가 없으면 용도폐기되는 것이다. 부당하다고 대들면 경찰 검찰을 동원해 감방에 쳐넣어버린다. 그래서 따까리 인생의 말로를 사진봉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회를 노려야 한다. 변신하지 않으면 낙오되니 변신을 모색해야 한다. 벌써 그런 것들은 나타나고 있다. 겁 없이 물정 모르고 주색에 빠져들고 아편에 절어 살다 폐인이 되는 경우를 보았다. 왜인이 버리고 간 재산에 눈독 들이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더 좋은 기회로 활용하고 있었다. 먼저 눈뜬 자가 세상을 떵떵거렸다. 그 중심에 경찰과 관리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뒷돈을 댄 모리배가 있었다.
사진봉은 애초에 평양의 건달이었다. 해방이 되자 남쪽으로 내려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 숫자가 백만명에 이른다고 했다. 이들은 대지주, 일제관료 출신, 친일기업인들, 기독교인, 이러저러한 사건 연루자들이었다. 북한 체제에서 견디기 어렵거나 피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범죄자들도 꽤 있었다. 이들의 성향은 자연스럽게 반평양이고, 반공산주의였다. 
사진봉의 집안은 기독교 집안으로서 이북에서 문명자로 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로 부모가 왜경에 쫓겨 만주로 도망을 가고, 그는 외가에 남겨져서 고아처럼 자랐다. 학교도 보통학교 저학년 때 그만두고 평양역으로 나와 사람들의 보통이를 노리는 좀도둑이 되었다. 그것이 눈칫밥을 먹는 외삼촌 집보다 훨씬 편하고 자유로웠다. 
그런 어느날 소련군이 들어왔다며 남부여대, 짐을 싸들고 남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뭔가 불안해했지만 신천지를 찾아가는 기대감으로 들떠있었다. 사진봉도 무작정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나이보다 덕대가 크고 겁이 없었으므로 남행자들의 안내자가 되었다. 평양역에서 익힌 두둑한 배짱과 거칠게 굴러먹은 가락이 있었으니 그 힘이 컸다. 스스로 행동대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38선을 넘은 사람들의 길을 안내하고, 조무래기들을 지휘하니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서울역에 내러 영천교를 근거지로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연명했다. 문봉제를 만난 것이 그 무렵이었다. 문봉제는 서울역 앞에서 어느날 고향 사투리로 외쳤다. 그는 신체 건강한 청년부터 찾았다. 
“우리의 배후엔 군정경찰이 있고, 행동철학은 우남 박사로부터 나온다. 경찰이 우리의 배후라고 한다면, 돈암장은 우리의 정신적 배후다! 이박사를 따르는 것이 애국의 길이다! 젊은 청년들이여, 나를 따르라!”
문봉제는 “돈암장과 군정 경찰은 서북청년회를 굴리는 2개의 수레바퀴”라고 역설했다. 문봉제는 수시로 돈암장을 찾아 이승만 박사로부터 격려금을 받는다고 자랑했다. 이박사는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식민지 시절 수십 년동안 미국 조야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골쇄신하신 분이며, 그런 분이 해방과 함께 조국을 찾았으니 신생 조국의 앞날이 환히 열릴 것이라고들 했다. 그런 분 곁에서 일한다는 것은 젊은 청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야망이었다. 사진봉은 힘이 솟구쳤다. 
사진봉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도 지급한다는 서북청년단에 패거리들을 이끌고 합류했다. 조직을 이끌고 들어갔기 때문에 당장 힘이 붙었고, 서울역을 중심으로 젊은 단장으로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들은 밑도 끝도없이 경찰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절차가 진행되었다. 경찰담당관이 청년들을 규합해 자격 시험을 보는데, 시험이라는 것이 구구법 따위를 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합격해 약식 경찰학교에 입교했다. 사진봉은 구구단 정도도 외지 못했기 때문에 경찰관이 되지 못했다. 억지로 들어가겠다고 생각하면 안될 일도 아니었으나  경찰관이 아니라도 청년단장으로서 먹고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나 불편이 없었다. 
그런 어느날 똘마니들과 함께 미군용 수송선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갔는데, 도착한 곳이 제주도였다.
서북청년단원의 제주도 입도는 관덕정 3.1사건 다음달인 1947년 4월 21일 부임한 유해진 지사가 서북청년단 출신 7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제주 땅을 밟으면서부터 시작됐다. 그해 9월에는 경찰이 청년들을 규합해 결성한 대동청년단과 서북청년회가 정식으로 발족됐다. 뒤이어 조선민족청년단 제주도 단부도 창립됐다. 우파 청년단체로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대청) 제주지부와 광복청년회 제주도지회가 조직되었다. 
우파 청년단체들이 조직을 강화하는 데는 유해진 지사와 미국 정보기관 CIC의 역할이 컸다. CIC는 한반도 내 첩보 및 정보수집과 정치인사찰, 대북공작, 반공청년단체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청년단 조직을 이끈 것은 한국인 지도자들이었지만 배후엔 미 CIC가 있었다. 미국은 철두철미 뒤에 숨었다. 당시 그들의 좌파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객관적이었다. 1948년 1월 제주 CIC의 보고서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근래 좌파 인사들의 활동’이란 제목의 미 24군단 정보보고서가 일정 부분 그들의 시각을 대변해주고 있다. 

-제주도는 우익 진영과 좌익 진영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지식인층 지도자들과 대중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있다. 좌익 인사들은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으며, 소위 좌익분자라고 불리우는 인사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다. 대부분의 제주도민들은 국내외적 정치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익이나 좌익에서 터져 나오는 모든 종류의 선전 선동에 쉽게 휩쓸린다. 우익인사들은 ‘빨갱이 공포’를 강조하며 주로 청년 단체와 공직에서 좌익 인사들의 척결을 통하여 섬을 장악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제주도의 좌익은 반미를 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의 테러는 우익이 선동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제주도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Hq. USAFIK, G-2 Weekly Summary, No. 123, January 23,1948). <김관후의 4·3칼럼(63) ‘정보입수, 정세분석, 정치상황에도 관여했던 미CIC’ 일부 인용>  

이런 정보자료를 근거로 보면 미 군정은 비교적 객관적인데, 군정을 배경삼아 활동한 육지부의 우익들이 과도하게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었다. 그 행동대가 서북청년회(단)였다. 서북청년회 제주도 단부가 결성된 전후 제주에 파견된 단원은 제주읍과 각 면 40~50명 등 총 700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정부가 각 도에 할당한 숫자의 일부였다. 국가 재정이 빈약해서 각 도에서 알아서 먹이도록 분산 배치된 인원들이었다. 
이 숫자는 좁은 제주땅에서 3.1 시위 사건 후 1,000명을 헤아리더니 4.3이 터지자 2,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서청을 비롯한 우익 청년단이 깔리면 좁은 제주땅이 다 덥힐 지경이었다.
처음 청년단이 제주도에 쏟아져 들어왔을 때는 변변히 식사를 해결하지 못했다. 중앙정부에서는 자급자족하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달리 말하면 노골적으로 민폐를 끼치라는 지침이었다. 대원들이 엿장수, 노점상, 방물행상으로 나가고, 이승만 박사 초상화와 태극기를 만들어 관공서, 상가, 시장통을 돌며 판매에 나섰다. 판매라고 했지만 강매였다. 
이 과정에서 민폐가 나오다 보니 좁은 바닥에서 원성이 높았다. 주민들은 두려워하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피해의식이 체화딘 상태에서의 주민들은 육지 사람들에게 배타적이었다. 그런 그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려면 겁을 주는 일이었다. 주먹과 각목이 날아가는 것이 해결하는 데 특방이었다.  
주민들은 대개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일가붙이였다. 없는 가운데서도 그들끼리 형님 동생 사돈 하며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었다. 육지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이었다. 바로 일본의 반체제 인사 이시하라 상이 바라보는 지점이고, 고상하게 말하면 아나키즘의 본령이었다. 어느날이었다. 시장통에서 태극기와 이박사 초상화를 돌리고 있는데 한 늙은 노점상인이 궁시렁거렸다.
“꼬닥꼬닥 걸어가는 간세새끼들처럼 놀멍쉬멍 사는 곳이라 그런 거 필요없수다.”
순간 한 대원이 달려들어 노인의 멱살을 쥐어잡았다.
“영감, 지금 뭐라 했네? 날레 간세새끼라고? 간사한 새끼라니?”
그는 늙은이를 떡실신되도록 두둘겨 팼다. 펴놓은 좌판을 걷어차자 순식간에 물건들이 흩뿌려졌다. 함께 간 대원들이 위세를 부리느라 이웃 상점에까지 들어가서 행패를 부리고, 건어물, 술 담배, 미제물품 따위를 들고 나와 리어카에 싣고 본부로 돌아갔다.
“꼬닥꼬닥 걸어가는 간세 새끼들이라니? 우릴 뭘로 보고 욕하니? 개족같은 놈.”
사무실에서 말린 오징어와 전복을 씹으며 소줏잔을 기울이던 한 대원이 쌍통을 우그려뜨리며 투덜댔다.
“사실은 그게 말이우다. 사실은 간사한 새끼란 뜻이 아니에요. ‘느릿느릿 걸어가는 조랑말 새끼처럼 놀며 쉬며 사는 곳이 제주도’란 말이란 뜻이우다. 간세는 제주말로 조랑말이우다. 몇 개월 살다 보니 그네들 말 이제야 좀 알아먹겠더라구요.”
“원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누? 미국말도 아니구 일본말도 아니구. 통역이 있어야 통하가시니 이게 사람 사는 동네가? 그리구 넌, 그러면 그때 그 말이 그 뜻이 아니라구 말려야디 왜  말리지 않았나? 공연히 늙은이 하나 조졌댔잖나.”
“그런 말할 틈이라도 줬소? 성질부터 부리는데? 또 그런 시비거리가 아니어두 다른 꼬투리 잡아서 팰 작정 아니었소?”
“그 말은 맞다, 하하하.” 
닥치는대로 부수고 때리고 다니다보니 재미가 붙었다. 부녀자도 손대다 보니 피끓는 욕망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위세에 주민은 겁먹고 두려워했다. 그런 것도 승리감을 안겨주었다. 당하고도 열패감에 젖어있는 자를 보는 것은 또다른 쾌감을 안겨주었다. 서청 대원은 대정·모슬포·성산·구좌·남원·서귀포 쪽으로 분산 배치되었다. 사진봉은 제주경찰서를 중심으로 제주읍을 관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짓도 점차 시들해졌다. 오신애가 싫어하니 그도 조금씩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사진봉은 지체있는 집안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이 있었다. 조부는 국가의 녹봉을 먹은 벼슬아치라 했고, 부친은 개신교를 믿다 일제에 쫓겨 만주 유랑민이 되었다. 그런 신분이 개망나니처럼 산다는 게 어느날부터인가 알게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괴롭혔다. 오신애를 만나면서 그것은 더욱 죄의식과 부채의식으로 남았다. 이 생활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원들을 이 상태로 놓아둘 순 없었다.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고, 그 기회를 잡아야 하고, 기왕이면 제대로 정착할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들, 이 전쟁이 얼마나 간다고 보네?”
사진봉이 세 사나이를 향해 물었다. 
“아매도 이십 년은 갈 기요. 산을 샅샅이 뒤져서 폭도들 씨를 말리려면 이십년? 그때까지 먹고 살아갈 일은 걱정 없가시오. 진지 동굴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얼마나 얽혀 있소? 몇십 키로 된다카던데, 그곳을 다 뒤져서 일망타진하려면 몇십 년 걸릴 기요....”
“한심한 자식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고렇게 십 년이구 이십 년이구 해쳐먹고 살아라.” 
그는 잠바를 어깨에 걸치고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단장, 왜 저러네?”
자리에 남겨진 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했지만 그는 벌써 거리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대장 지 혼자만 살려구 수작하는 거 내 벌써 감 잡았디. 고럼 우리가 직접 상대해야디. 내일 잡아들이자구. 밀선이 북항에 정박한댄다.”
그들도 투덜거리며 밤거리로 쏟아져 나갔다.

“우주엔 천억개의 별이 빛나는 천억개의 은하계가 있대요“

오민균 소령이 제주 4·3항쟁 진압 차 부산 5연대 휘하 제2대대를 이끌고 제주항에 입항한 것은 1948년 4월 하순이었다. 그는 주둔지인 진해에서 미군 함정을 타고 제주도에 상륙한 뒤 제주 공항 인근 벌판에 대대 본부를 설치했다. 모슬포 인근 대정에 있는 9연대 본부와 별도로 파견부대를 편성해 운영했지만, 매일 연대 본부를 찾거나 연대장이 직접 제주 공항으로 와서 작전회의를 가졌다. 대대 병력은 9연대 지휘를 받았다. 9연대장 김익창은 호방한 성격의 경상도 사나이였다. 행동이 굼뜨고 낙천적이며, 농담을 곧잘 해서 어느 일면 비군인적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적 체취가 풍기는 사람이었다. 지휘관이라기보다 동네 형님같은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연대장이라고 했지만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어느날 김익창이 불쑥 오민균의 대대본부를 방문하더니 소리쳤다.
“대대장, 조천 쪽으로 나가보지 않겠나.”
오민균은 어두침침한 퀀셋 안에서 벽에 붙어있는 제주도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우선 지형지세부터 익혀야 했다. 연대장이 다시 물었다.
“조천이 어디 붙어있는 줄 아는가?”
오민균이 지도에 눈을 주며 대답했다.
“제주읍으로부터 성산포 가는 쪽에 붙어있군요.”
“이 사람아, 내 손안에 있어, 하하하.”
그것은 그가 제주도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그렇습니까. 저는 엉뚱한 곳을 찾았군요,”
“그래. 하지만 상황을 잘 살펴야 돼. 극심한 분쟁지역이야. 병력 이끌고 나가보게.”
김익창은 일본군 학병 출신으로 소위로 군복무 중 해방을 맞았는데, 일찍 군에 입대해 지금은 육군중령이었다. 
“폭도와 경찰이 빈번하게 충돌하는 곳이니까 민심의 소재를 잘 살펴보도록.” 
오민균은 분대 병력을 이끌고 조천면사무소와 경찰지서로 향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것을 경험했다. 경찰이 그의 병력을 의도적으로 출입을 차단했다. 청년단원들이 부산나게 드나드는 지서 초소에 들어서자 초병이 제지했다.
“어디서 왔습니까.”
“9연대 소속 파견 부대요.”
“돌아가시오. 군대는 들어오지 못합니다.”
“왜 못들어간다는 건가.”
“여긴 군부대가 아니니까요.”
그는 상부로부터 지시를 받은 듯 태도가 완강했다. 군대를 얕잡아보는 태도가 완연했다. 오민균은 순간 불쾌감이 확 들었다. 병사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는 두말없이 병사들을 이끌고 장터 쪽으로 나왔다. 대오를 갖춰 행군하자 주민들이 지켜보며 뭔가 갈구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주고 있었다. 경찰지서와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길 가던 중년 농부는 가볍게 손을 까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장터의 잡화상점 앞 노상에 이르자 한 사내가 다가왔다.
“9연대 병사들입니까.”
“그렇습니다. 파견 나왔습니다.”
그는 잠시 오민균의 눈치를 살피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내 잠깐 말씀 한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대답 대신 오민균은 그를 길 한쪽 외롭게 서있는 늙은 은행나무 아래로 이끌었다. 그가 담배갑에 크고 붉은 원이 그려져있는 럭키스트라이크에서 담배 한 가치를 뽑아 오민균에게 내밀고 자신도 하나 뽑아 입에 물었다. 모던한 디자인 때문에 남자라면 호기있게 가지고 다니고 싶은 담배갑이었다. 웬만한 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담배였다. 그러나 제주 땅에서는 호사가들이 곧잘 입에 물고 다녔다. 그만큼 외제 물품이 흔하게 유통되었다. 밀수품이 범람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오민균이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평소 피우지 않는 담배를 받아 서툴게 빨고 있는데 맛있게 담배를 피던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난 무장 자위대원도 아니고, 협력자도 아니오. 평범한 동네 사람입니다. 입산자들은 악질 경찰과 서청을 공격대상으로 삼았소, 국방경비대는 아닙니다. 주민의 우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군에게도 맞대응하지 않습니다. 경찰과 청년단의 행동이 심하니 붙게 되는 거 뿐이지요.”
오민균도 입도(入島) 하자마자 피부로 느꼈다. 무장대들의 주 공격목표는 경찰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낯선 사람 앞에서 대놓고 경찰을 비난하는 것이 불쾌했다. 군과 경찰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 앞에서 대놓고 경찰을 비방하는 것은 무언가 이간질로 미끼를 던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민균이 연대에 배속되자 연대장으로부터 들은 바도 있었다. 
“우리 9연대는 철저하게 중립이야. 주민들을 동포애로 맞아들이게. 하지만 백프로 믿지는 말게.”
“소령님이 나를 믿지 못하는 모양인데,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사내가 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조천수산 문용철’이라 씌어있고, 주소와 전화번호가 기입되어 있었다. 
“초면에 기분 언짢겠지만 할 말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내 연락 한번 주십쇼. 간곡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군을 믿습니다.”
오민균이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그가 골목으로 황망히 사라졌다. 뭔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오민균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대대장님, 고아원이 인근에 있습니다. 고아들이 엄청 늘어났습니다.”
부관이 그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앞서시오.”
오민균은 연대에 배속되자마자 소대장으로부터도 보고를 받았다. 주민들로부터 민원의 첫째는 서청의 횡포였고, 다음이 떠도는 어린아이들이었다. 거지 없는 제주에 거지 아이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자 거리는 더욱 불결했고 을씨년스러웠다, 오민균의 대대 병력은 시내에 주둔해있는만큼 대민 봉사 차원에서 이들을 보살피는 임무도 병행하고 있었다.

해안마을에 아동 수용 시설이 있었다. 허름한 퀀셋과 바람 펄럭이는 임시 가설 막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퀀셋 이마에 ‘천사원’이란 간판이 붙어있었다. 수용자들은 부모들이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자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아이들이었다. 굶주림 때문에 해안의 해초를 뜯어먹고 쓰레기통에서 썩은 음식물을 헤집어 먹다가 식중독으로 죽은 아이도 있었다. 어느날 육지에서도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제주섬에 쓰레기처럼 밀어 넣어버린 아이들이었다. 
오민균이 부대원을 이끌고 천사원에 들어서자 눈빛이 맑고,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 여교사를 만났다. 마른 체격에 아담한 키의 여자였다. 슬픈 표정 가운데서도 아이들과 함께 간간이 웃을 때는 볼에 우물이 패인 모습이 청순해보였다. 그녀가 그를 맞아 고아원 현황을 브리핑하면서 눈물을 머금을 때, 그는 갑자기 그녀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대해서도 좀처럼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약혼녀를 그녀 고향마을로 보내놓고 전출지로 왔지만 약혼녀에게서 느끼는 것과는 완연히 다른 감정이었다. 
오민균은 외출 때마다 그녀를 찾았다. C레이션, 분말우유, 구슬, 인형 따위 구호물자를 준비해 갔다. 정비되지 않은 비포장도로를 1과 2분의1 트럭을 몰고 가면 아이들이 먼저 반겼다. 

“당황하셨죠?”
오민균은 말없이 웃었다. 그러자 현호영이 다시 말했다.
“제주도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 여자가 먼저 프로포즈하기도 해요.”
적극적인 것 같지 않은데 그녀는 이렇게 프로포즈를 한 셈이었다. 그들은 시내에서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밤 바닷가로 나갔다. 바닷가 언덕에 나란히 앉아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온통 별 천지였다. 성긴 별들이 금방 쏟아질 듯이 가득 깔려있었고, 먼 바다에서는 별들이 바다에 닿았다. 어떤 별들은 또록또록 빛을 발하며 언덕 가깝게 내려와있는 듯이 보였다. 파도가 철썩 해안을 때릴 때마다 하얀 포말이 일었다. 어둠 가운데서도 그것은 또렷하게 보였다.
“은하계엔 별들이 천억개가 존재한대요.”
오민균은 담담하게 그녀 말에 귀를 기울였다. 봄이라지만 밤의 기온은 조금은 한기가 돌았다.
“그런데 저런 천억개의 별들이 사는 은하계가 또 천억개가 넘는다고 해요.”
“그렇지요.” 오민균이 그녀의 말을 보탰다. “한 은하계에 천억개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계가 우주엔 또 천억개나 있다는 거, 천억 곱하기 천억, 어마어마하지요? 그래서 우주는 무한광대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무량무한이란 개념으로 말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지요.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다는 비상비비상(非相非非相)이니까요.”
“우주공간에 티끌의 티끌, 그 티끌의 티끌, 또 그 티끌의 티끌, 끝도 없이 그 티끌의 티끌도 안되는 존재인 우리가 왜 이렇게 끝없이 다투며 살까요.”
그녀가 날씨 때문만은 아닌 듯 몸을 가볍게 떨었다. 그녀는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애써 참고 있었다. 그녀가 감당하기엔 세상은 너무 무겁고 무섭다. 
“오늘 아이 하나가 죽어나갔어요.” 그녀가 말하고 이윽고 눈물을 보였다. “왜 그 아이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나갈까, 세상의 좋은 것 하나 구경 한번 못해보고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냘픈 육신은 만신창이가 되어서 죽어가나, 너무 슬펐어요. 어른들이 너무 많은 죄를 짓는 것 같아요.”
현호영은 천사원에서 무급직으로 보모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부른 것도 아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 것처럼 매일 바람에 펄럭이는 막사를 찾았다.   
“오빠가 산으로 갔어요. 어린 학생이 죽었잖아요. 학생은 전단을 뿌리다가 체포됐대요. 그 아인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다가 죽었어요.” 남의 말하듯 말했으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오빠가 잠적한 뒤 계속 그들이 오빠 집을 감시하고 있어요. 올케와 두 아이 뿐인데...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몰리고 있죠. 상품들을 압수해갔어요. 밀수품이라고요. 처음엔 아버지가 협력을 해주었죠.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는 그들을 피했어요. 그랬더니 협력 안한다고 협박하는 거예요.” 
경찰과 서청은 주민을 내놓고 위협했다. 기본 전제부터가 주민들은 질서를 파괴하는 불순분자고, 사상이 의심된다는 시각이었다. 
국방경비대는 독립적인 군사조직이라기보다 언필칭 경찰의 보조기구로 전락해 있었다. 제도가 상당히 바뀌었는데도 그 질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민균은 내내 그들의 들러리를 서는 것같아서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경찰은 군인을 멸시했다. 9연대가 주민에 대해 미온적이라고 해서 또 오해를 받았다. 제주 주둔군 조직 내에는 현지 청년들이 자원 입대한 숫자가 많았고, 육지에서 배치된 병사들도 있었다. 제주 출신 병사는 고향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 깊었고, 육지에서 배치된 병사들 역시 주민들에게 동정심을 갖고 있었다. 지휘관들 중엔 주민을 괴롭히는 경찰과 청년단을 향해 노골적으로 욕을 퍼부었다. 게다가 나라의 간성인 군이 마을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밑에 깔리다니, 그런 설정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았다. 그래선지  제주 연대 병력은 의도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었고, 그것은 경찰 입장에서 오해받을 소지를 안겨주었다. 
오민균이 처음 제도주로 배속되어 왔을 때 주민들의 한결같이 어두운 표정들을 보았다. 그들은 겁에 질린 두려운 얼굴로 주로 골목길로 나다니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가 거리를 점령한 듯이 공포감이 무겁게 쪄누르는 분위기 속에서 숨어 지나는 모습들이 살아있는 도시 같지 않았다. 
“오빤 소화기 계통이 안좋은데, 식사가 불규칙하면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 거예요.”
오민균이 떨고 있는 현호영의 어깨에 자신의 야전 잠바를 벗어 얹어주었다. 진작에 얹어주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가 잠바속에 묻히더니 말을 이었다. 
“아버지 배가 활발히 움직인 건 한꺼번에 몰려온 귀환동포들 때문이었어요.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래서 불편하지 않게 보급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고아원에 기부금을 낸 분도 아버지예요. 육지에서 들어온 청년단 사람들에게 정착금도 지원해 주셨어요. 제주도 사람들은 없는 가운데서도 나눠먹고 나눠 쓰는 미풍이 있잖아요. 그렇게 상부상조하다 보니 큰 부자는 없지만 가난한 사람도 없어요. 도둑없고 대문없고 거지가 없어요.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것은 육지 사람들이 제주에 와서 배워야 해요.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이게 무너져버렸어요. 무참히 짓밟히면서 사람들의 순한 마음이 파괴되어버렸어요.” 
오민균은 일본 육사생도 시절 만났던 사상가 이시하라 겐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제주도가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아나키스트의 풍속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했다.
“이시하라란 사상가가 있어요. 톨스토이식 아나키즘을 신봉하는 분이었죠. 제주도는 인디안의 생활방식이랄까, 공동체의 삶들이 아나키스트 삶의 본성에 충실하다고 했어요. 중앙정부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고 살아가는 자치성과 자주성, 그리고 독자성. 그게 바로 제주도라는 겁니다.”
“아나키스트, 난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나도 그분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아나키즘은 명확한 사상 체계로서 인식하기보다 공동체의 생활철학 체계로 인식합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공산주의로 몰아서 오도된 부분이 있지만, 사실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하는 좌익 운동의 일파로 취급됩니다. 공산주의와 연계될 수 없는 사조라는 것이죠. 그런데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를 반동이라고 잡아들였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되 공동체적 집산운동 성격을 갖고 있는데도요. 무조건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면 적으로 몰았으니까요. 어렵나요?”
“네. 잘 모르겠어요. 우리 식대로 사는데 어떤 정의가 필요하고, 개념이 정리돼야 하나요?”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경쟁을 지양하고 평화롭게 생산운동을 한다는 것이죠. 그걸 꼭 경제적 성격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양의 도교적 철학의 모델이라고 볼 수도 있죠. 본질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인류보편성을 지닌 것인데 우리가 일제에 핍박을 받으니 민족주의적 항일 독립운동 체계로 차용했다는 것이고요. 물론 과격한 행동파적 운동자도 있습니다. 범위와 층위가 넓다고 봅니다.”
“어렵지만 흥미롭네요.”
“그래요. 좀더 얘기하자면, 이 사조는 일본 유학생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발아해서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본질적인 면에서 사상운동이 집산주의적이라는 점에서 노동조합운동과 연계되는데, 중앙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제주도가 공동체적 자구(自救) 집산운동을 하는 모형이라는 것이죠.”
“우린 그런 것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우리 삶이 그런 사상과 접목이 됐다고 하니 왠지 우리가 고상해보이네요. 하지만 현지 사람들에겐 피부에 와닿는 얘긴 아니죠. 무엇보다 지금 제주도는 너무너무 힘들어요.”
이념과 사상이 강고해도 직접적으로 삶과 연관되지 않으면 운동은 관념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제주엔 모든 것이 직접 삶과 연결돼 있다. 일제시대부터 생업이 돼오다시피 한 일본-제주-육지 간의 중간무역이 성행했는데, 해방되자 공권력의 침해가 심했다. 전복, 생선말림, 해조류, 한라산의 고사리 등 제주생산품을 거둬다 일본에 팔고, 대신 일본에서 주요 생필품을 들여와 제주나 육지 항구를 돌며 파는 중간무역상은 제주의 크고 작은 선박들이었고, 제주경제를 살리는 주체 중 하나였다. 수만 명의 재일 귀환동포들의 수송과 재산 운송을 이 선박들이맡았는데, 이때 경찰이 개입해 협박과 갈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민심이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분단과 시대 모순을 고민하고 있던 귀국 유학파 지식인들이 이런 주민 불만을 등에 엎고 전면에 등장해 항의를 표출했다. 그들의 부모가 피해를 받았으니 그들 또한 피해자인 셈이었다. 
3.1사건 이후 증파된 경찰과 서북청년단은 질서를 잡는다고 했지만 횡포가 심했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떠도는 청년대원들은 당장 해결할 의식주가 큰 문제였다. 이들이 일본을 들락거리는 무역선을 감시하며 단속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항만은 자유항 비슷하게 각종 선박들이 자유롭게 입출항했으며, 세관은 명목뿐이었다. 그런데 경찰과 청년단이 밀수품을 단속한다며 선원들을 잡아가두고 물품을 압수했다. 그동안 소소한 물건으로 주민을 괴롭히던 것과는 완연히 다른 기업형 갈취였다. 경찰은 운영비로 쓴다는 명목하에 상인들을 괴롭혔고, 그 과정에서 폭력은 묵인되었다. 수탈을 위해 옥살이시키던 조선조의 탐관오리나 중세 종교암흑시대의 면죄부 발급보다 더 악랄하고 저질적이었다. 
이런 탄압을 견디다 못한 선주들이 부산‧여수‧목포 항으로 입출입이 변경되고, 제주도에서는 무역이 지하로 잠복했다. 경찰은 청년단을 앞세워 시내는 물론 산간마을까지 수색에 나섰는데, 치안 유지는 저만치 사라지고, 뒤지고 압수하는 일이 일상 업무가 되다시피 했다. 쫓고 쫓기는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져 도내의 치안상태는 오히려 엉망이 되었다. 각 경찰지서마다 체포된 밀무역 혐의자와 그 가족들이 문초를 받고, 고문이 비일비재했다. 
청년대원들은 마을을 돌며 젊은 혈기를 못이긴 나머지 여성들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섬놈에 대한 비하는 물론 사투리까지도 조롱거리로 삼았다. 이래저래 반항하면 빨갱이라고 잡아가두었다. 빨갱이 사냥은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상대방 제압의 수단이었다. 그 한마디면 모든 것이 종결되었다. 일제 때부터 경찰이 행사해온 상투적 수법이지만, 그렇다고 일망타진되는 것이 아니라 이 틈을 노려서 역설적으로 진짜 좌익 세력이 손을 뻗쳤다. 좌익은 모순의 거리에서 활개를 치는 좋은 토양을 만난 것이었다. 억울하게 당하니 자생적 공산주의자도 양산되었다.
해방 초기의 좌익 활동은 불법이 아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은 이를 폭넓게 수용했다. 
챔프니 미군정 군사국장은 민주주의 국가는 어떤 이념도 수용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남로당의 박헌영이 월북한 시점부터 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닌 방향으로 어정쩡한 스탠스를 밟더니 어느날부터 초토화의 시간으로 활용했다. 좌익계의 저항이 있었지만 우익의 물리력이 막강했으므로 일방적이었다. 제압의 행동대는 혈기방장한 반공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몽둥이를 들고 거리를 휩쓸었다. 진짜 좌익세력은 숨거나 도주했다. 어설픈 시민들이 당했다.
미군정의 어설픈 태도는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계열 등 저항세력이 준동하도록 방치한 셈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좌익 척결 전술로 기능했다. 대구에 이어 제주가 좌익 척결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일제 때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를 잡아들여서 치안유지 수단으로 삼았던 경찰은 청년단을 앞세워 대대적인 체포와 테러를 감행했다. 진짜 사회주의자는 지하로 숨은 대신, 억울하다고 불평을 토로하는 주민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혐의를 뒤집어씌워 엮어 넣었다. 그동안 익혀온 스킬대로 경미한 죄상도 날조하거나 과대포장해 조서를 꾸미면 승진의 과표로 인정되었다. 이런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제주는 끝없는 희생의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대대장님, 이러다 제주도 사람들 다 죽는 건 아닌가요?”
현호영이 다시 몸을 떨었다.
“그럴 수 있나요. 우리 국경이 있는 한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국방경비대, 과연 힘이 돼줄 수 있을까요?”
그녀가 못믿겠다는 투로 되물었다. 오민균은 어떤 확신이 있었다. 김익창 연대장도 그 점 분명히 했다. 내 동포를 보호하기 위해 국방경비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국방경비대는 곧 정부가 서면 국군이 될 것이다. 국군은 국토를 지키고, 국민을 지키는 간성이다. 영토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모체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아름다운 인심, 아름다운 풍속을 지니고 있는 고장인데, 우리가 마땅히 지켜드려야죠. 그게 군인의 본분이니까요.”
“제주도를 예쁘게 받아들여주어서 고마워요.”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모르는 게 더 많지요. 그중 제주도엔 남자가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군요. 여성들만 보여요.”  
“본래 그래요. 바다에 나가 많이 죽잖아요.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기 때문에 또 모두 떠났고요. 주로 일본으로요.”
“왜 육지로 안가고 일본으로 가지요?”
“서울은 마음의 거리로나 지리적 거리로나 먼 곳이에요. 일본보다도요. 배척 당했으니까요. 육지 사람들이 제주 행정을 장악했지만 혜택이라곤 없었구요. 그런 학습효과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육지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없어요. 대신 해류를 타면 금방 닿는 곳이 일본이에요. 일본 도항은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서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보다 훨씬 빠르고 쉬웠어요. 비용도 적게 들구요.” 
“일본은 이민족이고, 차별이 심하잖아요.”
“물론 냉대와 차별을 받죠. 그러나 그곳에선 육지 사람이나 제주 사람이나 똑같이 차별을 받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은 덜하죠.”
“일리 있는 말이군요.”
“제주 사람들, 일본 사람들에게 대항한 역사 아세요?”
“그런 게 있나요?”
“우리 오빠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제주 사람들이 시모노세키, 후쿠오카, 고베, 오사카에서 항만 노조를 결성하고 시장번영회도 조직했어요. 유학생들이 그런 토대를 제공했어요. 부당한 탄압에 저항하는 세력은 제주 결사체가 중심이었대요. 그분들이 지금 돌아와서 목소리를 내고 있죠.”
일본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이 사회주의 경향의 지식인들이고, 그 유학생들이 해방이 되자 제주로 돌아왔는데, 분단 과정에서 모순이 극복되지 않고, 주민이 착취당하고 있으니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빨갱이가 준동한다는 것은 경찰의 조서에 나타나는 것일 뿐, 실제로는 자립자치 정신과 일제에 저항한 민족주의 운동의 토양이 배경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운동의 당위성은 인정되지만 그 결과가 너무 참혹하게 가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희생이 커요. 조개로 바위치기죠.” 
“그러면 묵묵히 굴복하고 살아가야 하나요? 외세 물러가라, 폭압경찰 물러가라, 자주자립권을 달라, 남한만의 선거는 무효다, 남북협상하라, 우린 빨갱이가 아니다... 이런 절규가 무의미하단 말인가요?”
“현실적으로 봅시다. 그들은 힘을 가지고 있죠. 어떤 왜곡과 조작도 가능해요. 고립될 뿐이에요. 공권력의 발표문만 보도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니까요. 강자의 선전대로 전락했잖아요. 나치 독일의 선전상 괴벨스 어록 있죠?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다. 그것에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벌써 사람들은 세뇌되고 선동되어 있다’... 육지 사람들은 벌써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하지 못하는 것이 슬프군요. 이 사태를 절망하고 사는 것이 괴로워요. 저는 사실 이화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그때 진학했더라면 이런 꼴 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가슴이 아파요. 숨을 못쉴 것 같아요.”
그녀가 떨면서 가볍게 울었다. 그가 그녀를 깊숙이 안았다. 
“가련한 호영씨, 좋은 세상을 기도합시다. 성격은 다르지만, 나도 일본육사를 다닐 때 요요기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보고 한없이 가슴 아픈 적이 있습니다. 숨이 칵 막히더군요.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이 4월29일인데 그날 일왕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 군대의 관병식이 열렸어요.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차출된 병력이 몇 개 사단 병력쯤 되었을 거예요.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분열식을 하고, 파라슈트 낙하 시범 묘기를 선보이고, 각종 화기와 대포, 총기와 탱크 행진을 하고, 제로센 전투기가 하늘을 까맣게 덮는데 그것을 보고 그들은 환호했지만 나는 절망했죠. 일본군이 패망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어요. 우리의 해방과 독립은 영원히 끝이라는 생각을 했죠.”
“대대장님은 일본을 위해 육사를 지망했잖아요.”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견 맞습니다. 하지만 내 안의 이중성이 있습니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가는 겁니다. 그때 그런 교육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 간 것일 뿐, 꼭 일본의 멋진 군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언젠가 내 조국이 찾아지는 날, 멋진 군인이 되어서 더 이상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은 막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조선인 생도들 중 상당수가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 우리 영친왕의 모습을 보고 난 정말 좌절하고 말았죠.” 
“영친왕이요?”
현호영이 의아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고종황제의 아드님이시고, 조선왕조를 이을 우리의 마지막 왕이시죠. 어려서 인질로 일본으로 끌려간 분이에요. 단상에는 히로히토 일본 왕이 히라유키라고 하는 키가 크고 늠름한 백마를 타고 앉아 있는데, 단하에는 우리의 왕 영친왕이 검은 반점이 박힌 작고 초라한 반 백마 히모후리 위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중대 생도기수로 맨 앞줄에 서있었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서 우리의 왕을 바라볼 수가 있었죠. 작은 말을 탄 우리의 왕을 보고 저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왜 조선왕이 여기에 와 서성거리고 있는가. 지도자란 과연 뭔가. 그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의 상징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독립된 나라는 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단을 발판삼아 백성의 고통을 밟고 외세에 빌붙어서 호의호식하는 세력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좌익몰이로 국민을 겁박하고 쪄누르고 잡아가두는 공포의 경찰국가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익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분단국의 백성들은 분단이라는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욱 고통받고 말았습니다."
“아, 내 조국....”
그녀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마침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계속> 


이계홍 작가,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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