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동계올림픽 개최지 미리 본다ㅣ<3> 코르티나 등반 대상지] 극강의 고도감 속에서 만난 우에무라 나오미의 '안나'

글 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2019. 11. 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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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차 세계대전의 유산, 와이어로프로 연결한 바윗길 '비아 페라타' 등반
이탈리아 사람인 파비오가 푼타 안나 루트의 어금니를 오르고 있다. 무럭무럭 솟구치는 안개 속에 토파나의 거대한 벽이 보인다.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는 세계적인 산악인이자 탐험가였던 우에무라 나오미가 1974년 12월 20일 북극 횡단을 시작, 1년 2개월의 대장정 끝에 개썰매의 리더 개 안나와 코츠뷰에 도달한 1976년 5월 8일까지의 일기이다. 그의 나이 29세인 1970년에는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 등정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1980년대 초 한국 산악인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었던 나오미는 철학이 있어서 산에 오른 게 아니라, 단지 마음속에서 뭔가 용솟음쳐 산에 올랐을 뿐이라고 했다. 과거의 만족을 누리며 안주하지 않고 지금까지 겪은 모든 체험을 토대로 새로운 모험을 향해 나서고 싶었다고 했었다.
파비오가 작은 오버행을 넘어 발아래 고도감을 즐기고 있다.
이탈리아 코르티나 역사를 자세히 보면 자연스럽게 ‘비아 페라타’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적보다 높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알피니(이탈리아 산악 부대)들은 거벽을 올라야 했다. 무기와 군수품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벽에 와이어로프와 쇠사다리를 설치했고, 벽을 관통하는 터널을 만들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끝났으나, 전쟁 당시 설치한 와이어로프와 군 막사 터널을 자연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당시 자연 파괴는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는 당시 설치한 비아 페라타가 돌로미테의 자연유산이 되었고, 그 길이 전문적인 클라이머가 아닌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는 등반 코스로 만들어졌다. 5개 등급으로 난이도가 나뉘어 있으며, 헬멧과 안전벨트, 와이어로프에 확보할 수 있는 2개의 긴 슬링과 카라비너를 가지고 안전하게 등반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발전했다.
지금도 이탈리아의 지자체는 바위벽에 새로운 루트를 만들고 있다. 토파네암군에는 수많은 비아 페라타 등반 루트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루트는 ‘푼타 안나Punta Anna’이다. 접근이 매우 편하고, 급경사 칸테에 만들어진 이 루트는 올라갈수록 발아래 벌어진 오버행으로 고도감이 높아지며, 여러 침봉 속으로 들어가는 묘미가 있다. 푼타 안나를 오르기로 한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혹시 우에무라 나오미의 ‘안나’를 만나지 않을까 해서였다.
등반을 시작해서 첫 번째 오버행 아래를 오르는 파비오.
토파네에서 가장 유명한 비아 페라타 코스
토파네Tofane(여러 개의 토파나, 토파나의 복수)는 이탈리아 북부 서쪽 베네토Veneto 벨루노Belluno 지방의 코르티나 담페조에 있는 백운암으로 된 암군이다. 최고봉은 토파나 디 멧죠Tofana di Mezzo(3,244m), 토파나 디 덴트로Tofana di Dentro(3,238m), 토파나 디 로제스Tofana di Rozes(3,225m)로 3개의 3,000m급 암봉이다. 특히 토파나 디 멧죠는 마르몰라다Marmolada(3,343m), 안텔라오Antelao(3,262m)에 이어 돌로미테 3위의 고봉이다. 3개 봉 모두 1863년, 1864년, 1865년에 코르티나 가이드들에 의해 초등되었다.
1956년 코르티나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6개의 알파인 스키 경기 중 5개 종목이 토파네에서 열렸다. 최근에는 여성 월드컵 스키 대회를 개최하고 있고, 2021년에는 월드 챔피언십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푼타 안나를 등반하기 위한 접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코르티나에서 팔자레고Passo Falzarego 패스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오른쪽 좁은 아스팔트 도로를 통해 디보나Dibona산장을 경유, 두카 다 아오스타Duca d’ Aosta산장으로 가서 걸어 올라가는 방법. 반대편 토파나Pie tofana산장으로 가서 스키 리프트를 두 번 타고 두카 다 아오스타산장 위쪽의 포메데스Pomedes산장까지 올라가는 편안한 방법이다.
‘푼타 안나’의 뜻은 ‘안나의 이빨’이다. 페라타 안나의 이빨은 무수한 V자와 U자형 암벽의 협곡을 오르는 루트다. 난이도는 4급으로 비아 페라타 중에서 매우 어려운 편에 속한다.
취재를 위해 포메데스산장까지 스키 리프트를 타고 오른 후 초원을 통과했다. 암벽 등반의 시작이다. 동쪽으로 칼날처럼 가파른 칸테Kante(각이 져서 튀어나온 바위 모서리를 뜻하는 독일어) 리지가 보인다. 우에무라 나오미를 이끌었던 리더 개 안나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려면 모델이 있어야 더 멋있는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기에 그를 기다렸다. 리프트를 타기 전 바로 옆에 주차했던 남자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했다. 피렌체에서 온 파비오였다. 등반을 무서워하는 아내를 나중에 산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혼자 왔다며 동행자가 생겨서 좋아한다. 처음에는 쉬운 돌길을 몇 번 구비 구비 돌았다. 이윽고 발 아래로 해발 2,550m에 자리한 디보나산장이 보였다. 엄청난 고도감의 연속이다.
벽이 워낙 커서, 좁고 넓은 V자형 협곡을 여럿 지나야 했다. 이렇게 1시간 이상 올라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 개의 거대한 침봉이 어지럽게 보인다. 와이어로프가 없었다면 도저히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바위틈으로 연결된 미로였다. 어떤 곳은 U자형 바위틈을 지나고 어떤 곳은 발아래 삼삼하게 벌어진 오버행을 감상하며 오금 저리게 올라야 했다.
필자가 경치를 즐기고 있다. 발아래로 보이는 디보나 산장을 가리키고 있다.
많은 등반가를 만나겠거니 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짙은 안개와 구름이 많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서인지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구름이 드리웠고 가끔 발 아래의 구름 사이로 보이는 칸토레Cantore산장과 최근에 리모델링한 지우산니Giussani산장이 숨바꼭질을 하며 나타났다.
올라 갈수록 와이어로프는 줄어들고 좁고 위험한 첸지아(높은 벽의 밴드)를 횡단해야 했다. 다행히 붉은색 화살표가 돌 위에 그려져 있어 마음 졸이며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길이 아닌 곳에는 돌을 모아놓은, 길이 아니라는 무언의 표시가 있었다. 붉은색 화살 표시가 없는 곳은 작은 케른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정상에 올라 푸근한 미소를 짓는 파비오. 현장에서 만나 즉석으로 동행한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이다.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안개 때문에 우리 둘뿐이었다.
밑에서 보이던 날카로운 침봉의 끝, 정상이었다. 예상보다 긴 길이었고 주변에 더 높은 봉우리가 많아 정상 같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다행히 작은 십자로 정상을 표시해 놓았다. 여기서 앞을 보고 더 올라가면 또 다른 비아 페라타 코스인 도스 데 토파나Dos de Tofana 등반을 시작하게 된다. 긴 8자 체인처럼 만들어진 여러 개의 루트를 돌아야 했다.
오른편의 약한 경사의 슬랩을 따라 길게 횡단하며 올리비에르Olivier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수천 수억개의 돌이 쌓여 있는 길을 걸어 내려오며 묵묵히 자신의 꿈을 찾아 걸었던 우에무라 나오미를 만났고, 그가 사랑했던 개 안나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마음은 새로운 산을 향하고 있었다.
낙석을 일으킬 수 있는 바위가 수없이 깔려 있어 조심히 올라야 했다.
필자가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짙은 안개가 춤을 추고 있다.
나의 코츠뷰는 어디인 걸까?
‘하나의 작은 불빛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도전했는가? 도전하는 것과 도전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의 도전을 가능하게 한 걸까? 나는 도전 정신을 왜 잃어버렸는가? 나의 어린 날의 모험심은 어디로 갔는가? 나는 도전 앞에서 왜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은 색이 바래서 노랗게 변해 버린 책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를 다시 꺼내 보아야겠다.
토파네 연봉의 최고봉인 토파나 디 멧죠(3,244m)를 오르는 ‘푼타 안나’ 루트.
토파네 푼타 안나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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