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방정부 '마작과의 전쟁' 성공할까

2019. 11. 1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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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량차오웨이가 주연한 영화 〈색, 계〉의 시작은 마작이다.

1942년 일제강점기의 상하이. 화려한 저택 안에서 ‘유한부인’들의 마작놀이가 한창이다. 탕웨이가 연기한 막부인과 다른 여성들은 다이아몬드 반지나 남편 승진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펑’(상대가 버린 패를 이용해 패를 맞추는 것)을 외친다. 중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마작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중국인들에게 피부처럼 달라붙어 있는 생활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탕웨이·량차오웨이가 주연한 영화 <색,계>에는 마작을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 엔테이컨텐츠· CJ엔터테인먼트

마작은 도박일까 취미일까?

최근 중국은 ‘마작관’ 금지령을 두고 시끌시끌하다. 장시(江西)성 위산(玉山)과 신저우(信州)현 공안국은 지난 10월 20일 “관할 지역 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마작관과 카드방을 22일 전까지 자진 폐업하라”는 통지문을 내렸다. 기한 내 폐업하지 않으면 치안관리처벌법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고 명시했다.

중국 치안관리처벌법 제70조는 영리를 목적으로 도박에 필요한 장소를 제공한 경우를 포함해 ‘도박’ 혐의에 대해서는 500위안(약 8만원) 이하 벌금 또는 5일 이하의 구류, ‘과도한 도박’에 대해서는 500위안 이상, 3000위안(약 49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10~15일 구류 처분을 받게 돼 있다.

장시성뿐 아니라 안후이(安徽)성 츠저우(池州)시, 후베이(湖北)성 스옌(十堰)시 등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마작관 금지령이 내려졌다. 지방정부가 ‘마작과의 전쟁’에 나선 것이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사회정화운동인 소흑제악(掃黑除惡·범죄조직을 소탕하고 악을 없앤다)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해당 지역의 공안국은 마작관 폐쇄는 도박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분위기를 정화하며, 대중들의 안전을 높이기 위해 충분한 법적 근거에 따라 집행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지문이 나온 후 마작을 도박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 간의 단순 친목도모를 위한 오락인 마작을 무조건 도박으로 몰아간다는 비판이다. 특히 마작을 취미로 삼는 은퇴한 고령층 사이에서 불만이 컸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관련법 적용을 둘러싼 이견이 나왔다.

중국 법률에는 도박 처벌에 대한 규정은 명확히 나와 있지만 도박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해서는 권위 있는 사법적 해석이 없다. 도박에 대한 기준은 지방마다, 사례마다 달랐다. 도박이 성립하는 개인 판돈 기존은 상하이는 100위안인데 비해 베이징 300위안, 선전 500위안으로 많게는 5배까지 차이가 났다.

게다가 마작관은 당국의 허가를 받고 운영돼 왔다는 점에서 합법적 영업장에 대한 무리한 폐업 요구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문제가 불거지자 위산현 공안국은 하루 만에 통지문을 삭제하고 다시 배포한 수정본에서 “마작관을 이용한 도박사범 집중 단속”이라고 표현을 수정했다. 불법 도박을 부추기는 영업장에 대해서만 규제하겠다며 한층 누그러졌다.

마작은 4명이 짝패를 버리고 맞추는 놀이다. 기원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은 전통놀이다.

중국어로 마작은 ‘마장(麻將)’이다. 광둥성·홍콩·마카오에서는 참새라는 뜻의 ‘마췌(麻雀)’라고 불린다. 패를 뒤섞는 소리가 참새가 대나무 숲속에서 재잘대는 소리와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게 정설이다. 지역마다 방법과 용어가 조금씩 달라 북방은 136개의 패를 쓰고, 남방은 144개를 쓴다.

마오쩌둥도 즐긴 마작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1893 ~1976) 주석은 생전에 마작을 좋아했다. 그는 “중국이 세계에 기여한 3대 공헌을 꼽으라면 중의학, 〈홍루몽〉(고전소설), 그리고 마작패”라고 말했다. 마오 주석은 “마작에는 철학이 있고 우연성과 필연성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중국의 마작은 특히 은퇴한 노인층 사이에서 많이 즐긴다. 중국에는 '앉아서 하는 것 중에서 마작, 서서 하는 것 중에는 골프가 제일 재미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마작이 철학을 담은 전통놀이라는 인식보다 도박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마작의 수난이 시작됐다.

청두(成都)시 원장(溫江)구에 사는 왕빈루(王彬如·여)는 ‘친목 마작’ 때문에 7년간 법정 다툼에 시달렸다.

왕빈루는 2011년 8월 20일 친구 두 명과 함께 찻집에서 판돈 5위안(약 800원)짜리 마작을 했다. 3시간 후 출동한 경찰은 전체 판돈을 575위안(약 9만원)으로 보고 왕씨는 구류 15일, 다른 2명은 구류 12일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그는 친구들끼리 친목게임을 도박으로 판단한 것은 잘못됐다며 원장구 공안지국을 상대로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는 모두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고, 2015년 1월 최고인민법원(대법원)의 재심명령 판결을 이끌어냈다. 긴 소송 끝에 2018년 6월 행정처분 취소 판결을 받았다.

그는 곧바로 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6월 4379.1위안(약 72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왕씨는 “7년간 수십 차례 법원을 다니며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가정도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에 대한 피해는 판결문에 적시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법률이 명확하지 않다면 이를 집행하는 데에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국청년보〉는 “민생과 직결되는 일이라면 긴 안목이 필요하다”면서 “영업허가증을 갖춘 마작관에 대한 무더기 단속은 민생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경영환경과 공신력을 훼손하는 행위인데 해당 당국이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은경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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