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의원정수 확대' 국민정서법 넘을 수 있을까?

노윤정 2019. 10.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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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장사치, 대국민 사기극에 정의 야합당까지…독해진 설전

"체면도, 정의도 내팽개치고 밥그릇 챙기기에만 골몰한다. 말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실상은 당리당략에 목맨 정치 장사치들의 법안거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세비는 3백인 분 동결한다는 사탕발림까지 덧붙였지만,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사기꾼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주영 국회부의장, 자유한국당)
"몰염치가 극에 달했다. 정의라는 고상한 단어가 정의당에 의해 더럽혀졌다. 정의 야합당이라고 이름 바꿔야 할 때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국민에 대한 가렴주구다. 국민은 정당 해산 요구를 해야 할 판이다." (김정훈 자유한국당 의원)

어제(30일) 아침 한국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쏟아진 발언입니다.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수위가 아주 독합니다. 대상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의원 수 10% 확대론'을 들고 나온 이후, 한국당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이 발언이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해 12월 여야 5당,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까지 함께 합의했던 대로 현행 300석에서 10% 범위에서 확대하는 그런 합의가 이뤄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지난 27일 기자 간담회)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튿날 바로 "왜 없는 말을 하나, 없는 합의를 있다고 하나, 지난번 합의문 한번 똑똑히 읽어보라"면서 "권력과 의석수에 눈이 멀어 정치 허언증에 이른 것 아니냐"고 발끈했고, 어제는 "오늘(30일)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내일(31일)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 여야 5당 합의문 둘러싼 진실 공방, 속내는….

지난해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검토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독한 설전의 발단은 그러니까,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여야 5당의 '선거법 개정 검토' 합의 당시 의원 수 확대에 합의했느냐, 안 했느냐, 진실 공방입니다. 문제가 된 합의문 문구는 이렇습니다.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 (2018년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문 발췌)

문구만 놓고 보면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고 돼 있어 명확하게 합의를 안 한 듯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였던 김관영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도 의석수 확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협상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원내대표들이 세세한 것을 미주알고주알 다 합의할 수 없으니 큰 틀에서 합의하고 그 방향을 지키면서 정개특위에서 세부적인 것을 의논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했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전 대표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당에 가서 합의안 추인을 받으려면 '여부'라는 말을 좀 넣어달라고 했다"면서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라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합의문에 담기지 않은 '의도'를 놓고 다투는 건데, 누구 말이 맞는지는 평행선만 달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한국당이 법적 조치까지 운운하면서 공세에 나선 건, 반드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것보다는 '의원 수 확대'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선 패스트트랙 연대를 겨냥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국민이 싸늘하게 반응하는 '의원 수 확대론'을 비판하면서, 여야 4당 연대를 '꼼수', '야합' 연대로 낙인찍기 위한 전략적 공세인 셈입니다.

실제 한국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국민 73, 2%는 의원 수 10% 확대론에 반대한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당 여의도연구원 여론조사-지난 28일 전국 만 19세 이상 1,503명 대상. 유·무선 자동응답 조사.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2.53%P)

■ '의석 한 석 늘리기'도 이렇게 힘들었다…'국민 정서법'의 벽

'국회의원'하면 일단은 일도 안 하고 싸우기만 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 정서'입니다. 그래서 의원 정수를 조정하는 것은 늘 '국민 정서법' 개정 다툼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를 살펴볼까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299석이던 국회 의석수가 300석으로 한 석이 늘었습니다. 세종특별자치시가 독립된 지역구를 받으면서인데, 인구수가 많았던 강원도 원주시와 경기도 파주시도 이때 분구가 됐습니다. 지역구가 3개 늘어나니 다른 곳에서 지역구 3개를 줄여야 정수를 맞출 수 있는데, 이 과정이 그야말로 험난했습니다. 자신의 지역구가 통폐합될 위기에 처한 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겁니다.

2012년 2월 27일 국회 정개특위 회의장에서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이 항의하는 모습. 여 의원의 지역구(경남 남해·하동)는 결국 사천과 통합됐다.


진통 끝에 결국 정개특위는 선관위 안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해, 지역구를 영남에서 1개, 호남에서 1개, 2개만 줄이고 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300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고, 선거법 개정안은 본회의를 통과합니다. 당시 언론매체 기사와 사설 제목입니다.

〈국회의석 300석, 이완용 소리 들을 야합이다.〉
〈헌정사상 첫 300석 "하는 일 없이 밥그릇만…."〉
〈300석 '밥그릇 챙기기' 찬성 의원은 누구?〉
〈의원 수 절대 못 늘린다.〉

욕이란 욕은 있는 대로 다 먹고서 겨우 한 석을 늘린 셈입니다. 이때의 아픈 기억이 아직 생생한 의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의원 수 확대'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의원 수 확대론을 언급했다가 된통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4월, 정책엑스포 부스를 돌던 중 적정한 국회의원 수를 묻는 행사에 참여해 '351명 이상'이라는 의견에 스티커를 붙이면서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 400명은 돼야 한다. 국민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인구수 대비 의원 비율이) 낮다"고 말한 겁니다. 평소 소신대로 발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당 안팎이 들썩하자 "그냥 퍼포먼스로 장난스럽게 말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야 했습니다.

■ 그래도 고양이 목에 방울은 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심상정 대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의원 수 확대론'을 꺼내 든 걸까요? 세비 동결이나 일 안 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소환제 도입 등 조건을 많이 달았지만,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면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는 심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27일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를 하는 모습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과 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5당의 대타협은 사실 공존할 수 없는 명제와도 같습니다. 현재 253개인 지역구를 225개까지 줄여야 하는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지역이 영남과 호남으로 예측되는 상황입니다. 한국당은 일관되게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이고, 민주평화당과 (가칭) 대안신당도 농어촌 지역구에 불리한 선거구 조정은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2012년 당시와 같은 몸싸움이 선거구 획정 기간 무시로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하려면 결국엔 의원 정수를 어느 정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겁니다.

한발 더 나아가 의원 정수는 언젠가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사안이기도 합니다. 의원 수가 많으면 세비 부담이 커지기는 하지만, 의원 수가 적으면 그만큼 대표성이 떨어지고 정부에 대한 감시 기능이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정한 의원 수를 찾는 게 필요합니다.

외환위기 당시 여론 압박으로 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273명으로 줄이면서,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에 적정한 의원 수가 과연 몇 명일까,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국회의원 정수 산출을 위한 경험 연구〉(명지대 김도종·국민대 김형준 연구, 2003년) 논문은 대표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산출해 368명에서 379명이라고 제안했고, 〈국회의원 선거 제도의 개혁〉(숭실대 강원택 연구, 2002년) 논문은 적정한 의원 수가 인구의 세제곱근에 비례한다는 '타게파라와 슈가트' 공식을 차용해 362명을 제시했습니다. 모두 현재보다는 의석수가 많습니다.

언젠가는 늘려야 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큰 변화가 논의되는 지금이 적정한 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협상이 꽉 막힌 상황. 어차피 더 나빠지기도 힘든 상황. 심상정 대표는 이럴 때 오히려 의원 수 확대론으로 꼬인 실타래가 한꺼번에 풀리는 대타협이 이뤄질 거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곤일척이 될지, 일장춘몽이 될지는 국민이 판단할 일입니다.

노윤정 기자 (watchdo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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