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2호선 세입자'..'웃픈' 사연 간직한 특별한 세입자들

2019. 10. 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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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한 장면만 소개하면 마치 호러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새벽으로 가는 깊은 밤. 운행을 멈춘 지하철 2호선 차량 안, 의자가 쓱 열리면서, 천정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또 벽의 작은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등장한다. 이들은 다섯 명의 ‘지하철 2호선 세입자’. 일단 호기심이 확 일어난다.

▶Info

▷장소 대학로 바탕골소극장

▷기간 ~오픈 런

▷티켓 세입자석 3만5000원, 일반석 3만5000원

▷시간 월~금 오후 5시, 8시 / 토 오후 1시, 4시, 7시 / 일 오후 2시, 5시

▷출연 시청 역–김성준, 이진실 / 성내 역–강민정, 김태은 / 구의 역–박주용, 임정균 / 방배 역–박소영, 김서윤 / 홍대 역–이원준, 이주형 / 역삼 역–이종훈, 이대호

33세의 열혈 청년 이호선. 그는 현재 백수다. 아버지는 지하철 2호선 기관사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도 이호선으로 지었다. 어릴 때부터 이호선에게 아버지와, 지하철은 우상이고 꿈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큰 차를 모는 운전사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 이호선에게 세상은 현실로 다가왔다. 기관사를 꿈꾸던 그는 시험에 매번 낙방했다. 그렇게 벌써 33살이 되었다. 오늘도 여자 친구 미나와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그녀는 호선을 응원하고 기다려 주었다. 그녀의 삼촌에게 호선의 취직까지 부탁했다. “취직 시험은 어떻게 되었어?” “응, 그거 중수에게 가 보라 했어. 걔 어머니가 아프시잖아.”

미나는 착한 호선이 밉다. 한 푼의 적선을 바라는 누군가 다가오자, 호선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 한다. 미나는 외친다. “주지 마. 돈 없잖아. 돈 꺼내면 헤어질 거야.” “왜 그래, 미나야?” “그럼 왜 어제 나한테 모텔비 내게 했니? 이제 나도 명함 가진 남자와 사귀고 싶어.” 그녀는 내렸다. 강변역에서.

호선은 취직했다. 시청역 역무원이지만 계약직도 아닌 인턴이다. 비록 기관사는 아니지만 호선은 지하철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미나에게도 취직 사실을 알렸지만 답이 없다. 술에 취한 어느 날, 호선은 지하철 안에서 잠이 들어 차고지까지 간다. 그곳에서 호선은 기막힌 광경을 보게 된다. 아무도 없는 지하철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그것도 다섯 명이다. 그들은 객차 안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서로를 부른다. 홍대, 구의, 역삼, 방배, 성내라고. 호선은 자신의 상관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상관은 호선에게 이들을 내보내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고 한다. 호선은 자신이 ‘나가지 않으려면’ 이 지하철 세입자들을 ‘내보내야’ 한다.

이 연극은 2015년 동명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이다. 당시 연재 몇 회 만에 큰 호응을 받았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는 호선을 비롯한 여섯 사람들이 지하철 안에서 몰래 숨어 살고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웃음, 신파, 멜로, 휴먼 등의 장르를 넘나든다. 또한 그 사연마다 붙여진 이름들, 일테면 성내, 구의 등의 호칭도 캐릭터와 묘한 케미를 이룬다. 차량 번호 2129번이 이 여섯 명의 거실이다. 이들은 ‘당당한 세입자’다. 월세는 5만 원, 관리비 1만 원으로 매달 1일 선불이다. 과연 누가 이들의 주인 노릇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이 극을 보는 재미 포인트다. 세입자들은 지하철 월세방의 장점을 ‘극찬’한다. “보증금 없고, 난방비, 에어컨 무료에, 청소는 아주머니들이 다 해준다”고. 극은 호선과 이들 다섯의 ‘적과의 동침’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각 인물들의 사연을 조금씩 관객에게 풀어낸다. 매일 밤 누구를 기다리는 화가 많고 새침한 20대 여성 성내, 기억력을 잃어 가며 치매 증상을 보이는 구의 할아버지, 공무원 준비만 수년 째지만 멀티맨의 능력을 보이는 역삼, 과장되고 와일드한 모습이지만 실상은 가정 폭력에서 도망쳐 나온 방배, 하고 싶은 것과 꿈은 많지만 지속력이 없는 홍대 그리고 ‘착하게 살면 하늘이 알아준다’는 아버지의 말을 이제는 ‘버리고 싶다’는 우리의 주인공 호선까지.

극은 90분간 배우들의 활기차고 재치 있는 애드리브와 연기 덕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지하철 차량 내부를 그대로 설치한 무대도 특색 있다. 특히 세입자석은 지하철 의자에 앉아 배우들의 눈썹까지 살필 수 있다. 한참을 떠들고 웃고 그런데 마지막에 왠지 ‘웃픈’ 그런 이야기다.

[글 김은정(프리랜서) 사진 (주)레드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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