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앞 행복주택·관리없는 공공임대..지방은 '찬밥' 취급 [공공임대주택-구멍뚫린 복지(4)]

고희진·김원진 기자 2019. 10. 2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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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공공임대 지역 불균형

지난 17일 강원도 정선군의 한 마을 풍경. 탄광촌이었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아직도 노후 주택 문제가 심각하다. 곳곳에 슬레이트 지붕과 나무 문틀로 돼 있는 오래된 주택이 정비 없이 남아있다. 지역에는 살던 집에서 지내고 싶어 하는 고령자들이 많아 공공임대주택 보급과 노후 주택 개·보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고희진 기자

‘재개발’ 대구, 저렴한 주거지 줄고

공공임대율 전국 평균에 못 미쳐

국민임대 대기 19개월…전국 3위

도시공사는 분양전환만 집중 공급

전등 없는 계단·높은 집 안 문턱

광주 등 관리 부실…슬럼화 우려

전북 영구임대 공가율 6.27%

서울 공공임대 공가 0.1% ‘대비’

정선에 청년·신혼 위주 행복주택

신청률, 고령자 313% 신혼 52%

지역 특성 고려 안 해 수요 불일치

중앙 정책 일괄 적용 방식 문제로

대구역에서 내려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이 모여 있는 동성로 쪽으로 가는 도로. 멀리 고층건물을 바라보며 걷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쪽방과 여인숙촌이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한 달에 20만원도 안 하는 여관방들이 늘어서 있다. 해가 안 드는 방은 2만~3만원 더 저렴하다. 칠이 벗겨진 벽면에 군데군데 금이 가 있다. 같은 방향으로 좀 더 걸으면 이번엔 쪽방촌이다. 오래된 일본식 목조건물도 눈에 띈다. 보증금 없는 월세 10만원짜리 방 10여개가 일렬로 있다.

강원도 정선군. 탄광촌이었던 이곳엔 현재 강원랜드 카지노가 들어섰다. 광부들이 산 중턱에 얼기설기 지어놓고 살던 집은 아파트가 상당수 대체했다. 노후 주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가 있는 언덕배기 아래에는 아직도 나무 문틀,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정비 안된 주택이 다가오는 겨울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집주인은 대개 고령자다.

‘주거취약계층’ 하면 흔히 서울 도심부의 쪽방촌·고시원 거주자를 떠올린다. 이들을 위한 지원 정책도 서울 중심이다. 열악한 주거에 내몰려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한 이들은 지역에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사회의 무관심과 지원 부족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는다.

경향신문은 지역의 공공임대 현황을 살피기 위해 지난 한 달간 대구, 광주, 전북 전주, 강원 원주·정선 등지를 찾았다. 지역 사정에 맞는 공공임대보단 중앙정부 정책에 ‘구색 맞추기’식 공급이 이뤄지다보니 공공임대의 수요·공급은 일치하지 않았다. 오래된 아파트는 시설 관리가 서울에 못 미쳤다. ‘공가’ 문제도 심각했다. 임대료 부담으로 공공임대 입주를 꺼리는 이들도 있었다.

■ 낮은 공공임대 보급률

대구에서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09곳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진행됐다. 전체 면적(994만8200㎡)으로 계산하면 대구 수성못(약 22만㎡)의 45배에 달한다. 2015년 재건축·재개발이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도심 내 값싼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사라졌다. 시설이 열악해도 적은 돈으로 입주가 가능해 저소득층의 마지막 보루였던 ‘저렴 주거지’가 대거 없어졌다.

최병우 대구주거복지센터장은 “대구는 쪽방촌 등이 도시 전체에 흩뿌려져 존재했는데, 최근 재개발로 상당수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주거취약계층은 ‘집 밖’으로 내몰렸다. 올 초 대구 한 주민센터에는 재개발로 거주지를 잃고 다리 밑에서 지내는 사례가 접수됐다. 주거복지센터에 들어온 집 잃은 세입자들의 상담 요청이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저렴 주거지를 잃은 이들이 공공임대를 찾지만 부족하다. 2017년 기준 대구에는 주택이 98만8000가구 있다. 이 중 저소득층이 20년 이상 살 수 있는 공공임대는 6만5500가구에 불과하다. 2017년 기준 국내 전체 주택 중 공공임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7.2%였으나, 대구는 7%로 평균에 못 미친다. 경북(4.3%), 경남·충북(각 5.0%), 부산(5.2%), 제주(6.2%) 등도 낮은 비율을 보였다.

제 역할을 해야 할 지방자치단체는 최저소득계층을 위한 주거지 마련에 무관심했다. 대구도시공사는 2011년부터 10년 분양전환 공공임대만 공급했다.

공급이 부족한 공공임대에는 늘 입주 대기자가 줄을 선다. 대구는 국민임대 대기자의 대기기간이 19개월에 이른다. 전국 평균(10개월)보다 두 배 가까이 길다. 최 센터장은 “밀려나는 세입자들이 갈 곳은 공공임대나 더 낙후된 주택이다. 임대주택이 한정돼 있으니 집을 기다리던 이들이 쪽방이나 단독·연립주택으로 몰렸다. 최근엔 저렴 주거의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 늘어나는 ‘공가’…부실한 관리

광주는 임대주택 비율이 10.4%로 평균보다 높다. 그러나 주택 노후화 문제가 심각했다. 시설이 낙후하자 빈집이 발생했고, 주변 지역까지 침체하게 하는 ‘슬럼화’ 우려도 커졌다. 시 외곽지역에 들어선 영구임대단지의 특징이다. 도심과 가깝고 신식 시설을 갖춘 영구임대는 대기자가 400명이 넘는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ㄱ영구임대는 전용면적 40㎡(약 12평) 이하가 주를 이룬다. 쓰레기 투기 문제가 심각해 단지마다 철조망으로 큰 ‘쓰레기받이’를 설치해 놨다. 서울에선 볼 수 없던 모습이다. 한 지체장애인 입주자는 “휠체어를 타는데, 집 문턱이 높아 혼자서는 집에서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가 사는 집의 화장실 문턱 높이는 10㎝가 넘었다.

이 아파트에 살던 입주민 100여명이 지난해 근처에 새로 지은 ㄴ영구임대로 옮겼다. ㄴ영구임대는 겉부터 말끔했다. 주거 면적도 47㎡(약 14평), 56㎡(약 17평)가 다수 있었다. 특히 높은 문턱이 없었다. ㄱ영구임대에서 20년간 살다 이곳으로 이사했다는 박정임씨(60·가명)는 “여긴 휠체어 타고 다니기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박씨는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지역 공공임대 현황을 살펴볼 때 서울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공가’였다. 지난 8월 기준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10년 분양전환을 모두 합친 서울의 공공임대 공가율은 0.1%다. 집이 빌 틈 없이 사람으로 채워진다.

전주도 광주처럼 공공임대 공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주가 속한 전북은 소득 1~2분위 저소득층이 들어가는 영구임대 공가율이 6.27%로 높다. 구도심의 한 영구임대 단지는 층과 층 사이 계단마다 전등이 모두 빠져 있어 어두웠다. 계단에선 악취도 났다. 한 동의 절반가량은 에어컨 실외기가 없었다. 거의 모든 집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 서울 영구임대 단지와 다른 모습이었다.

지역은 낙후된 영구임대를 떠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지원받아 저렴한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 전세임대로 이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서울에선 같은 가격으로 전세임대를 구하지 못해 저소득층은 주로 영구임대 입주를 바랄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 관리도 지역도시공사와 LH 사이에 차이가 났다. LH가 운영하는 대구의 영구임대는 난방배관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조경이나 복도도 깔끔했다. 반면 지역도시공사가 운영하는 영구임대는 시설 노후화가 외관으로도 드러났다. 복도 창틀이 낡아 창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 현실 고려 없는 ‘공급’

지난 15일 광주 영구임대아파트 두 곳의 모습.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영구임대는 화장실 문턱이 10㎝(왼쪽 사진)가 넘는 반면 지난해 입주를 시작한 새 영구임대는 집 안팎에 문턱이 없어 휠체어 이동이 편리하다. 고희진 기자

영구임대의 공가가 부실 관리에서 생겼다면, 행복주택과 분양전환의 공가는 지역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에서 비롯됐다. 청년, 신혼부부 등이 주요 입주자인 행복주택은 여러 지역에서 미달을 기록했다. 경북의 공가율이 27.80%로 가장 높았다. 4가구 중 1가구는 ‘빈집’이라는 의미다. 충북(23.73%), 충남(10.82%), 경남(6.21%), 광주(5.82%)의 공가율도 높았다.

지난달 정선에 첫 행복주택이 들어섰다. 총 150가구를 모집했다. 청년 70가구, 신혼부부 50가구, 고령자 12가구, 주거급여수급자 15가구 등이었다. 고령자와 수급자 신청률은 각각 313.3%, 320.0%였지만 신혼부부 신청률은 52.0%로 미달이었다. 청년 신청률은 110%였다.

정부가 주거복지로드맵을 신혼부부와 청년 위주로 짜면서 각 지역에도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행복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지역 특성을 살피지 않은 주택 공급도 잇따른다. 이용규 정선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현재 사북·고한지역 인구 구성을 생각했을 때 임대주택에 고령자 지원이 많았던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라며 “공공임대라면 특정 계층과 상관없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임대가 지역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행복주택 45㎡(약 13평)의 신혼부부 기준 보증금과 임대료는 1936만원, 14만5000원이다. 근처 국민임대 51㎡(약 15평)의 보증금과 임대료는 1214만8000원, 17만9780원이다. 평수를 생각하면 둘 사이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행복주택이 국민임대보다 더 낫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 지역에선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는 게 부담스러워 공공임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후된 주택에 사는 이들도 있었다. 정선에서는 저렴한 공공임대 보급과 노후 주택 개·보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선군도시재생지원센터는 노후 주택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령자들은 집을 옮기기보다 살던 곳을 보수해서 지내길 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55가구가 신청했다.

10년 분양전환 공공임대 공가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울산(17.07%)이다. 울산은 대규모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고소득 직장인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보니 10년 뒤에 분양되는 공공임대의 인기가 높지 않다. 분양전환 공공임대를 사기보다는 자가 구입을 선호한다. 울산은 전체 공공임대 비율도 3.6%로 낮다.

■ 주거복지 관심도 지역 격차

광주는 공가 해결을 위해 도시공사에서 보급한 노후 영구임대에 청년을 입주시켰다. 공가와 청년 주거난을 한꺼번에 해소하려는 시도다. 현재 10여명의 청년이 해당 영구임대에 입주했다. 사업 모델이 알려지자, LH에서는 광주의 다른 영구임대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광주는 법령상 지원 대상이 엄격히 제한되는 영구임대에 청년이 입주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해 법령 개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청년들은 보증금과 임대료 혜택을 받았다. 문턱 제거 등 집 리모델링과 에어컨 설치 등이 무상으로 이뤄졌다. 청년 입주자들은 특기를 살려 아파트에서 공동체 활동을 한다. 1호 입주자 김형진씨(26)는 매주 동네 아이들을 위해 무상 태권도 교실을 연다. 2호 입주자 김태진씨(35)는 최근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증명사진을 찍어줬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활동계획서와 활동보고서도 작성한다.

김태진씨는 “10여명 청년이 아파트를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령 주민들과의 소통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영구임대 공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지방정부·의회가 공공임대 정책에 손을 놓거나 발목을 잡은 사례도 있다. 2013년 원주 사회복지단체가 모여 비주택 거주자 실태조사를 했다. 비주택 거주자는 공공임대의 주요 수요자다. 예산 부족으로 주거취약계층이 많은 군과 읍 단위는 조사도 못했다. 같은 해 일부 시의원과 지역사회에서 주거복지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홍성용 원주주거복지센터장은 “주거복지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시의원들의 반대가 컸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국민임대 대기자의 평균 대기기간이 36개월로 전국에서 가장 길다. 공공임대 수요가 있지만, 이후 원주에서 지역단위의 주거복지 관련 사업이 보이지 않는다.

민간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주거복지센터가 있는 지역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전국에 약 40개가 있는데, 서울과 경기도권에 30개가 몰려 있다. 군 단위 지역 주거복지센터는 한 곳도 없다. 지역 격차는 공공임대 공급과 관리, 복지의 영역에서도 나타났다. 서울 등 수도권에 관심과 자원이 쏠린 사이 지역 주거취약계층의 설 곳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고희진·김원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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