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에도 한강 찾은 ‘잠자리 사냥꾼’ 비둘기조롱이

한겨레 2019. 10. 2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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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한강 하구 들른 나그네새…잠자리·땅강아지 배 채우고 아프리카로
잠자리를 잡아 공중에서 다듬어 먹는 비둘기조롱이. 나그네새로 우리나라를 들르는 소형 맹금류다.

비둘기조롱이는 시베리아 남동부, 중국 동북부 그리고 북한의 고산지대에서는 적은 수가 번식한다. 올해도 번식을 마치고 기나긴 이동에 나선 비둘기조롱이를 9월 19일 한강 하구의 논 습지에서 관찰했다.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빠르다. 나그네새인 비둘기조롱이는 한강 하구를 잊지 않는다.

비둘기조롱이 수컷.
이른 아침의 평야. 이슬이 마르면 비둘기조롱이의 사냥이 시작된다.
벼와 함께 논두렁 수수도 익어간다. 정겨운 초가을 풍경이다.

벼가 황금색으로 물들 무렵인 9월 중순과 10월 중순 사이, 비둘기조롱이가 김포와 파주 평야에서 무리 지어 관찰된다. 중부 서북지역이 이들의 이동 길목인 데다, 먼 길을 떠나는 비둘기조롱이에 필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잠자리가 한강 하구 논에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한강 하구를 찾아오는 비둘기조롱이는 해마다 줄고 있다. 6∼7년 전에는 300여 마리가 찾아왔는데, 이제는 100여 마리가 넘지 않는다. 한강 하구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논 위를 나는 깃동잠자리. 비둘기조롱이의 먹잇감이다.
잠자리를 낚아채는 비둘기조롱이 암컷.

동북아시아에서 집단 번식한 뒤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를 지나 인도양을 건너뛴 뒤 인도와 스리랑카를 횡단하고 나서 다시 아라비아 해를 건너 남아프리카까지 간다. 지구를 반 바퀴 도는 월동 여행이다.

인도양을 건너는 비둘기조롱이는 서쪽으로 부는 강한 바람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바람은 약 3000m 고도에서 강하게 불어 비둘기조롱이는 이주하는 동안 1000m 이상의 높이에서 날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나갈랜드 지역에서는 그물을 사용해 비둘기조롱이를 마구 잡아 구이용으로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험 많은 비둘기조롱이가 예기치 않게 인도에서 그물에 걸려 구이가 되진 않을까 걱정된다. 특히 경험이 많은 노련한 비둘기조롱이는 다음 세대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길라잡이가 되기 때문에 희생이 안타깝다.

까치는 해마다 찾아오는 비둘기조롱이가 달갑지 않아 텃세를 부린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상대다.
비둘기조롱이가 공중에서 잠자리를 사냥하고 있다.
잠자리를 움켜쥐었다.

특히 비둘기조롱이가 아라비아 해를 건너는 시기는 된장잠자리가 인도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시기와 일치해 이동 기간 먹이가 되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번식지로 돌아오는 경로는 풍향이 바뀌기 때문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대규모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된장잠자리가 비둘기조롱이의 먹이임이 밝혀진다면 며칠씩 걸리는 대양을 먹이 없이 이동하는지 수수께끼도 풀리게 된다.

비둘기조롱이가 아무리 빠르고 현란한 비행술을 갖추고 있더라도 잠자리 또한 뛰어난 비행가이기 때문에 종종 사냥에 실패한다.

비둘기조롱이는 대범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황조롱이의 정지 비행기술, 새호리기의 재빠른 회전기술 등을 비둘기조롱이는 모두 갖추고 있다. 비행술은 신기에 가깝다.

주로 저녁 늦게 또는 아침 일찍 공중이나 땅에서 다양한 곤충을 잡아먹는다. 대부분의 먹이를 비행 중에, 때로는 맴돌면서 잡기도 하고 땅 위에서 격렬하게 먹이를 잡기도 한다.

된장잠자리. 전 세계에 하나의 종만 있는 코스모폴리탄이다.
논에서 먹잇감 잠자리를 찾는 비둘기조롱이 수컷.

전봇대나 전깃줄에 앉아 먹잇감을 고르는데 보통은 잠자리가 주식이다. 논 위로 낮게 나는 잠자리를 사냥하거나 하늘을 맴돌며 높이 나는 잠자리를 사냥한다. 하늘에서 잠자리를 사냥할 때는 신기에 가까운 멋진 비행술을 자랑한다.

땅강아지는 비둘기조롱이가 제일 좋아하는 별미이지만 사냥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논에서 농로로 기어 나오는 땅강아지를 사냥한다. 땅강아지는 흔하지 않아 운이 좋아야 발견할 수 있다.

논길로 나온 땅강아지. 통통하게 살이 쪘다.

10월 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온종일 땅강아지만 노리는 비둘기조롱이 수컷을 만났다. 수만 리를 몇 번이고 왕복 이동하면서 경험이 축적된 노련한 사냥꾼일 것이다.

전봇대 꼭대기에서 농로 길 주변을 유심히 살핀다. 전깃줄보다 편안한 전망대다. 농로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땅강아지를 잡기 위해서다. 수컷 비둘기조롱이는 이미 땅강아지가 빈번하게 출몰하는 곳을 잘 알고 있었고, 주변 환경을 꿰뚫고 있었다.

전봇대에 내려앉는 비둘기조롱이 수컷.
땅강아지를 잡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전망 좋고 편안한 전봇대가 사냥을 준비하기엔 제격이다.

지나가는 차량, 자전거, 사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려다보며 호기심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유심히 살핀다. 그리곤 땅강아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사냥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좋은 낚시터를 잡아놓은 셈이다. 아주 노련한 비둘기조롱이다. 지금껏 비둘기조롱이를 관찰하면서 다른 비둘기조롱이에서는 볼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놀랍다.

관찰하면서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다른 비둘기조롱이들은 얼씬거리지도 못한다. 필자 앞으로 다가와 정지비행을 하며 살피는 여유까지 보였다.

땅강아지나 애벌레를 만나면 정지비행을 하다 사냥을 한다.
대범하게 머리 위에서 필자를 살펴보는 비둘기조롱이 수컷.

땅강아지가 자주 출몰하는 곳에 자리를 잡은 비둘기조롱이는 40~50분 간격으로 나타나 농로를 가로질러 건너가는 땅강아지와 풀숲에 있는 땅강아지를 사냥한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중간에 잠자리 사냥을 하며 몸을 풀기도 한다.

비둘기조롱이는 주로 날아가는 먹잇감을 발로 채 잡지만 땅바닥에 있는 땅강아지는 부리로 물고 가는 경우가 많다. 잡은 먹이는 날면서 다듬어 먹거나 전깃줄에 앉아 먹고 전봇대를 사냥 전망대로 이용한다.

땅강아지를 물고 있다. 사냥한 먹이는 날면서 먹기도 하고 전깃줄에 앉아서도 먹는다.
전깃줄은 휴식 장소로 매우 적합하다.

온종일 고단백 땅강아지를 15마리나 사냥해 먹었으니 부족함이 없다. 비둘기조롱이의 잔칫날이었다. 해가 질 무렵 비둘기조롱이가 숲 속으로 훌쩍 돌아간다. 숲으로 들어간 비둘기조롱이를 내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약은 없다. 나그네새는 그저 미련 없이 떠나면 그만이다.

목적지를 정해놓은 새는 돌아서지 않는다. 비둘기조롱이의 1만3165㎞ 머나먼 비행이 시작되었다. 거리가 326㎞인 서울과 부산을 20차례 왕복하는 거리에 해당한다. 비둘기조롱이는 지금쯤 월동지인 남아프리카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 비둘기조롱이 사냥 모습 연속 사진

사냥감을 발견했다. 스키점프를 하듯이 튕겨 나간다.
엄청난 속도의 활공이 시작되었다.
부메랑 모양으로 날개를 접어 쏜살같이 땅강아지를 향해 달려든다.
날개를 펴 속도 조절을 한다.
거리 조절을 위해 날개를 펼치는 것은 속도와도 관계가 있다.
땅강아지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날개를 활짝 펴 속도를 줄인다.
착지를 위해 날개와 꼬리를 한껏 펼친다.
부리로 재빨리 땅강아지를 물었다.
땅에서는 발보다 부리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부리는 바닥에 있는 먹이를 잡기에는 불편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냥은 끝났다. 단단한 허벅지 근육과 붉은 갈색 깃털, 주황색 발이 이채롭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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