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표지석] <57>3·1독립운동기념터:세브란스병원

김정욱 기자 2019. 10.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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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기념터'는 서울시내에 여러 곳이 있다.

이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자리는 1919년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였던 곳이다.

1919년 2월 기독교계 인사들은 이곳에 모여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3·1독립운동은 기독교·천도교·불교 등 3대 종교계의 연합으로 전개됐고, 이 종교계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독립의 의지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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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3·1독립운동기념터’는 서울시내에 여러 곳이 있다. 이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자리는 1919년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였던 곳이다. 이 터의 표지석은 서울시 중구 서울역 건너편 연세세브란스빌딩 앞에 있다.

1919년 당시 이 자리에는 세브란스병원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濟衆院)이 구리개(현재 을리로)에서 서울역 건너편으로 확장·이전되면서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19년 2월 기독교계 인사들은 이곳에 모여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이때 천도교 측도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은 기독교계 인사들은 독립운동의 일원화를 추진했다. 기독교와 천도교는 하나로 힘을 합치기로 했고, 여기에 불교계도 합세하기로 했다.

3·1독립운동은 기독교·천도교·불교 등 3대 종교계의 연합으로 전개됐고, 이 종교계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독립의 의지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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