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의 年10조 청년전세 정책.. 영등포 전세, 강남보다 비싸졌다

표태준 기자 2019. 10. 17.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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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들, 전세금 띄우려 악용.. 전세금 올린 집주인, 청년들에 "이자 내줄테니 대출받아라"
"이자 300만원 한꺼번에 입금" 솔깃한 제안에 전셋값 비싸도 계약
사회초년생 위한 年1~2% 대출, 집주인들 자산 늘리는 데 쓰인 셈
사당·당산 전세금 4년새 20%↑ "가장 큰 피해는 결국 무주택 청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원룸 전세 보증금이 주거비 비싸기로 이름난 강남구의 논현동 원룸 전세금을 앞질렀다. 정부가 중·하위 소득 청년층의 전세살이를 돕는다며 시중에 뿌린 연(年) 10조원 규모 저(低)금리 전세자금 대출이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본지가 1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영등포구 당산역 일대의 전용면적 40㎡ 미만, 건축 10년 차 미만 다가구·다세대·오피스텔(이하 '신축 원룸')의 최근 1년 전세금 평균은 당산동 5·6가가 2억400만원, 양평동이 1억9600만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조건의 강남구 논현동 신축 원룸 전세금은 1억9000만원이었다. 2015년에는 당산동 5·6가는 1억6500만원, 양평동은 1억5700만원이고, 논현동은 1억7000만원이었는데, 최근 들어 역전된 것이다.

정부의 청년 대상 전세자금대출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사회 초년생에게 지원하는 전세자금 대출의 금리를 최저 1.2%로 낮추고, 지원 규모와 대상도 대폭 늘렸다. 그러자 집주인들이 청년 세입자에게 "이자금을 대신 내주겠다"며 대출을 유도하고 전세금을 높여 받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강력한 대출 규제 속에서 집주인들이 복지 제도를 편법 대출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며 "시장 교란 행위이자 소위 '눈먼 돈'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중개업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발생하는 일종의 모럴해저드"라고 했다. "돈이 없어서 강남으로 이사했다."

서울 당산동에서 살다가 올해 8월 논현동으로 이사한 직장 3년 차 김모(30)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2년 전 당산역 근처에 있는 전세 보증금 1억5000만원짜리 전용면적 33㎡ 빌라 원룸 방을 얻었다. 지금은 비슷한 조건의 원룸 전세금이 2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에 비해 김씨가 옮겨간 논현동 전용면적 33㎡ 원룸 전세금은 1억8000만원이다. 김씨는 "그 좋다는 강남이 당산동보다 오히려 2000만원 이상 저렴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사회 초년생의 메카'로 불렸던 영등포구·동작구·관악구 등 일대 신축 원룸 전세금이 급등하고 있다. 강남구 논현동 전세금이 2015년 1억7000만원에서 1억9000만원으로 11.7% 오르는 동안 관악구 신림동은 28.9%, 동작구 사당동은 22.6% 올랐다.

높은 전세금을 지지하는 것은 정부의 전세자금대출이었다. 정부는 2017년 11월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에서 중·하위 소득 청년에게 지원하는 전세금 대출 금리를 기존 연 1.6%에서 1.2%까지 끌어내리고, 기존에 지원 대상이 아니던 25세 미만 1인 가구에도 전세금을 빌려주는 등 전세금 대출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본지는 16일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에 해당 지역 신축 원룸 매물을 내놓은 중개업소 10곳에 전화했다. "전세 자금이 부족하다"고 말하자, 7곳이 "전세대출을 받아라. 이자는 집주인이 내준다"고 했다. 영등포구에 있는 2억8000만원짜리 신축 주거용 오피스텔 전용면적 42㎡ 방을 중개하는 한 부동산 업자는 "이사가 끝나면 집주인이 이자금을 최대 300만원까지 통장에 바로 입금해줄 것"이라며 "직장·연봉·혼인 여부 등 조건을 말해주면 아는 은행 상담사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1억8000만원에 19㎡짜리 원룸 빌라 매물을 내놓은 영등포구의 한 부동산 업자는 "이자뿐만 아니라 관리비도 깎아주는 곳이 많으니 일단 둘러보자"며 "전세금이 많이 오르다 보니 집주인들이 젊은 사람을 위해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업자들은 보증금 2억원 미만 매물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청년전세자금대출' 상품을, 2억원 이상 매물에 대해서는 '일반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상품을 추천했다. 정부가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의 무주택자 청년에게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전세자금대출의 경우 전세 보증금의 80%(최대 1억)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금리는 연 1.2%에 불과하다. 일반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부부 합산 소득 5000만원 이하를 대상으로 수도권 기준 전세 보증금의 70%까지 대출 가능하며, 금리는 연 2.3~2.9% 수준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13만명이었던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신규 이용자 수는 지난해 16만명으로 늘었다. 이 상품을 통해 시중에 새롭게 풀린 대출금이 지난해에만 10조원에 달한다.

이 일대 부동산 업체 10곳 중 3곳은 "이자금을 대신 내주는 상품이 많지만 양심상 소개해주기 어렵다"고 답했다. 관악구의 S부동산 관계자는 "나중에 방을 매매할 때 비싼 값을 받으려 전세 보증금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라며 "주로 부동산 사정을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방을 구할 때 많이 사용하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에 그런 매물이 많이 올라온다"고 했다. "신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마치 혜택을 주는 것처럼 사회 초년생들을 속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사실상 집주인들이 청년들만 가능한 저리 대출을 이용하는 셈"이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전세금이 오르면 결국엔 집값도 따라 오른다"며 "무주택 청년들은 자기도 모르게 집값을 높이는 데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비양심적인 임대 사업자가 많아져 문제화된다면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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