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의 황홀경[이준식의 한시 한 수]〈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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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마음 울적하여 수레 몰아 옛 언덕에 오른다.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 장안 부근의 옛 동산에 오른 시인, 잠시 낙조의 황홀경에 빠져 본다.
황혼이란 돌이킬 수 없는 인생 만년의 회한일 수도 있다.
반면, 시기적으로 국세가 기울어가는 만당이라는 우연이 겹쳤을 뿐 이 구절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경외 혹은 찬탄으로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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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당(晩唐) 이상은의 시는 난해하고 생경한 어휘, 모호하고 몽롱한 메타포로 유명한데 이 시는 예외적으로 단순 소박한 표현으로 일관했다. 난해하기는커녕 단숨에 읽히는 경쾌함마저 담겨 있다.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 장안 부근의 옛 동산에 오른 시인, 잠시 낙조의 황홀경에 빠져 본다.
한데 시인의 진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황혼이 가까워지자 석양은 너무나 아름답다”는 찬탄을 발하려 했을까. 아니면 “황혼 때문에 사그라질 아름다운 석양이 안타깝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제4구의 ‘지시(只是)’ 두 글자가 갖는 다의성(多義性) 때문에 이런 엉뚱한 반전이 생겼다. 그래도 후자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국력이 강성했던 성당(盛唐)이 지나고 혼란의 중당(中唐)을 거쳐 눈앞에 다가온 만당 쇠퇴기, 시인은 스러져 가는 제국의 영화를 황혼에 비유하면서 시대적 상실감을 노래했으리라. 그뿐이랴. 황혼이란 돌이킬 수 없는 인생 만년의 회한일 수도 있다. 지난날 시인 묵객들은 이 구절에서 늘그막의 초조감이나 비애를 공유했다.
반면, 시기적으로 국세가 기울어가는 만당이라는 우연이 겹쳤을 뿐 이 구절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경외 혹은 찬탄으로 읽어도 좋다. 실제 이 시는 시인이 서른 초반의 나이에 지었고, 당시 그는 수도 장안을 떠나 은거 생활을 하긴 했으나 장안을 오가며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유하던 시기다. 흐르는 시간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자연의 장엄미를 만끽하리라는 심경으로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옛 동산 올라 자연과 교감하는 시인, 그는 안타까웠고 또 행복했을 것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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