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이력서에 사진 붙이는 나라

장부승 2019. 10. 1. 04:4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 뽑을 일이 종종 있다.

한국어로 된 이력서 양식은 하나같이 사진 붙이는 난이 있다.

내가 주관하는 채용 과정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지 않기로.

여러 나라 다녀보고 살아봤지만 이력서 증명사진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인 것 같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미국인 친구에게 왜 이력서에 증명사진이 없냐고 물어 보았다. 그 친구는 “당연히 안될 일”이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 인종이나 민족을 알면 차별할 수 있고, 외모를 보기만 해도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한 여성이 이력서에 쓸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최흥수 기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 뽑을 일이 종종 있다. 사람 뽑을 때 내가 지키는 철칙이 하나 있다. 이력서에 사진을 못 붙이게 한다. 한국어로 된 이력서 양식은 하나같이 사진 붙이는 난이 있다. 나는 사진란을 없애 버린다.

한 번은 그런 이력서로 서류전형을 실시하고 결과를 상급자에게 보고한 적이 있다. 서류를 넘기던 상급자가 한 마디 했다. “왜 사진이 없나?” “필요없다고 판단해서 안 받았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니 관상을 봐야 될 거 아니야.” 상급자는 의아해했다.

한국사회에서 이력서에 증명사진은 당연시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이 깨진 것은 미국에서다. 유학시절 학교 행정부서에서 서류 정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직원들이 캐비닛에 있는 종이 서류들을 가져다 일을 하는데, 오후쯤 되면 서류들이 곳곳에 어지럽게 펼쳐진다. 그 서류들을 모아다 알파벳순으로 문서함에 꽂는 것이 내 일이었다. 자연스레 여러 서류들을 접했는데, 특이한 것이 어떤 신청서류든 얼굴 사진이 없었다.

한 번은 미국인 친구에게 왜 이력서에 증명사진이 없냐고 물어 보았다. 그 친구는 “당연히 안될 일”이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 인종이나 민족을 알면 차별할 수 있고, 외모를 보기만 해도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친구 말이 맞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주관하는 채용 과정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지 않기로.

선입견이나 차별 말고도 내가 사진을 받지 않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 얼굴은 면접 때 본다. 얼굴도 안 보고 최종 채용하는 경우란 없으니 어차피 볼 얼굴, 미리 확인할 이유가 없다.

둘째, 증명사진은 대부분 ‘포장’된 사진이다. 증명사진과 실제 얼굴이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돈 주고 산 컴퓨터 앱으로 수정하거나 전문가 도움을 받아 ‘업그레이드’시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셋째, 최소한 내 경험으로는 외모와 업무 능력 간 상관관계가 잘 안 보인다. 비단 증명사진뿐만이 아니다. 이력서에 적힌 각종 경력, 능력이 과장된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번은 입사지원자 이력서에 일본어능력시험 1급이라 적혀 있길래 면접 자리에서 바로 일본어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지원자의 얼굴이 갑자기 흙빛이 되더니 일본어를 안 쓴 지 꽤 돼서 회화에 약하다고 한국어로 답한다. 다른 한 지원자는 이력서에 모 기관 인턴 경력이 있길래 그 기관 업무에 대해 물어보았다. 자기가 무슨 업무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답을 못한다. 둘 다 외모가 출중했지만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정성 들여 이력서에 단정한 용모의 증명사진을 붙이고, 힘들여 쌓은 각종 ‘스펙’을 한 줄이라도 더 적으려 애쓰는 지원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포장이 내용을 대체할 순 없다.

지금 신문지상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난리법석도 그 뿌리에는 내용보다 포장, 실력보다 ‘관상’을 보려는 문화가 있는 것 아닐까?

‘스펙’을 위해 고등학생이 대학 교수와 논문을 같이 쓴다 한들 입시 과정에서 질문 몇 가지만 했어도 금세 제 실력이 드러났을 일이다. 인턴을 했다면 어디서 무엇을 했고,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물어보고 확인해 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뽑는 사람부터 관상과 포장과 껍데기에 의존하니 뽑히는 사람도 거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 아닐까?

여러 나라 다녀보고 살아봤지만 이력서 증명사진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인 것 같다. 일본과 사이가 안 좋으면 으레 일본이 남기고 간 과거 잔재를 청산하자고 하는데, 사실 ‘돈까스’ ‘우동’같은 말 몇 마디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용보다 포장에 더 신경 쓰고, 알멩이보다 껍데기를 우선시하는 이 ‘증명사진 문화’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과거 청산 아닐까?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