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베이징 쇼핑가에서 본 K뷰티 위기와 가능성] K뷰티, 정체되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때보다 더 큰 위기

상하이·베이징=김남희 조선비즈 특파원, 송현 기자 2019. 9. 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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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신구 IFC몰 LG2층에 있는 설화수 매장(왼쪽). 중화권 모델로 새로 발탁된 안젤라 베이비 사진이 걸려있다. 9월 22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싼리툰 타이쿠리(太古里) 쇼핑몰 1층에 있는 맥매장 안은 제품을 테스트해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진 김남희 조선비즈 특파원

#1. 9월 15일 찾은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신구 IFC(국제금융센터)몰은 주말맞이 쇼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상하이를 상징하는 텔레비전 타워 ‘동방명주’를 대로변에서 마주 보는 이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관광·쇼핑 명소다. 샤넬, 루이뷔통 등 기존 명품은 물론 오프화이트같이 ‘바링허우(八零後·80년대생)’ ‘주링허우(九零後·90년대생)’가 사랑하는 신세대 명품 브랜드 매장이 모인 고급 몰이다.

뷰티 브랜드가 모여있는 LG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자마자 오른쪽에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오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설화수 매장 전면에는 지난 8월 브랜드 중화권 모델에 발탁된 안젤라 베이비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었다. 그러나 손님 없이 썰렁한 매장 안에서는 직원 한 명이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었다. 같은 층에 있는 일본 브랜드 ‘입사(IPSA)’와 ‘시세이도’ 매장 직원들이 손님을 응대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는 모습과 대조됐다.

#2.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9월 22일.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싼리툰은 밤인데도 대낮처럼 환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요즘 베이징에서 가장 뜨거운 젊음의 거리다.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 베이징에서 유일하게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노래가 울려퍼지는 곳이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찍으려는 거리 사진가들이 사진기를 들고 대기하고 있을 정도로 패션과 쇼핑, 문화를 사랑하는 젊은 중국인이 모여든다.

이날 싼리툰의 랜드마크인 타이쿠리(太古里) 쇼핑몰도 젊은 멋쟁이들로 붐볐다. 접근성 좋은 1층에는 샤넬, 입생로랑, 맥, 나스, 라메르 등 고가 뷰티 브랜드 단독 매장들이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색조 화장품을 전문으로 하는 맥과 나스 매장이 특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사람들은 작은 쇼핑 봉투를 갖고 매장에서 끊임없이 빠져나왔다.

한 층 아래에 있는 드럭스토어 왓슨스에서 한국 브랜드들을 찾을 수 있었다. 기초 화장품 구역에는 마몽드, 예화담, 미샤, AHC 등 대기업·중견기업들의 제품이 진열돼 있었고, 시트마스크 구역에는 ‘프로아틴 마스크(메디힐)’ ‘인솔루션 마스크(리더스)’ ‘봄비 마스크(코스토리)’ 등 중소 브랜드 제품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 K뷰티 구역은 진열장 관리가 안 돼 다른 제품과 어지러이 뒤엉켜 있었다. 직원에게 스킨케어 제품 추천을 요청하자 “요즘 매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이라며 ‘스킨 어드밴스드’의 에센스를 건넸다. 포장에 ‘일본에서 생산돼 포장까지 마쳤다(日本 原装进口)’는 표시가 눈에 띄었다.

중국 시장에서 K뷰티 고전이 장기화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로 타격을 입었던 K뷰티 업계가 충격에서 완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더 깊고 긴 침체기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위험 신호는 곳곳에서 나온다. 2012년 이후 고성장세였던 대(對)중국 화장품 수출 증가율이 둔화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1~8월 중국으로 들어가는 화장품 수출 규모는 14억80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 증가했다. 지난 5년간 대중국 화장품 수출 증가율이 23~101%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속도가 둔화했다.

대홍콩 화장품 수출 성적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시위 등의 영향으로 수출이 역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화장품 유통에 필수인 위생허가를 받으려면 6개월에서 1년이 걸리지만, 홍콩은 이런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있어 그동안 많은 기업의 중국 수출 우회 통로로 이용돼 왔다. 올해 중국과 홍콩을 더한 화장품 수출액(1~8월)은 전년보다 4% 감소한 19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화장품 기업들의 상반기 실적도 좋지 않다. ‘이코노미조선’이 증권 시장에 상장된 화장품 기업 67개사의 올해 반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37개사의 상반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감소했다. 영업 손실을 낸 기업도 24개사였다. 특히 중국 시장 비중이 높은 제이준코스메틱, 리더스코스메틱, 글로본, 에프앤리퍼블릭, 에스디생명공학 등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들은 ‘허니듀 마스크’ ‘인솔루션 마스크’ 등으로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대표 중소 기업들이다.

K뷰티는 사드 사태 때 교훈을 제대로 배웠을까

15년 전만 해도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 없던 ‘K뷰티’라는 개념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BB크림’과 2008년 ‘쿠션 팩트’가 메가히트를 치면서다. ‘생얼 메이크업’의 원조로 꼽힌 한국은 스킨케어의 ‘성지(聖地)’로 떠올랐다.

여기에 한류(韓流) 열풍이 기름을 부었다. 그중에서도 중화권(중국·홍콩)이 K뷰티의 독무대였다. K뷰티는 한류 붐을 타고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헤라’ ‘설화수’를 필두로 LG생활건강 ‘후’ 등이 고급 화장품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중저가 로드숍 브랜드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등이 K뷰티 열풍을 이끌었다. 시트마스크팩을 만드는 L&P코스메틱, 리더스코스메틱 등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단골 쇼핑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덕분에 2015년 대중국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의 2배 이상 폭증해 2조원을 돌파하며 고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당시를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전성기를 누리던 K뷰티에 충격을 준 사건은 사드 갈등이다. 2016년 7월 사드 배치가 결정된 다음 해 3월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조치를 내리면서 국내로 유입되는 중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끊었다. 위기감이 커졌다. 당시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6개월 만에 반 토막 났고, 달팽이 크림으로 유명한 잇츠한불(당시 잇츠스킨) 실적도 악화했다.

다행히 시장은 사드 충격으로부터 금세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일찌감치 K뷰티에 빠진 중국인이 한국 화장품을 ‘역(逆)직구(해외에서 한국 플랫폼을 이용해 직접 구매하는 것)’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사드 사태 직후 2016년 4분기 중국으로의 온라인 직접판매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75% 급증했고, 전체 증가분의 대부분을 화장품 품목이 차지했다. 2017년 대중 화장품 수출 증가율이 23%로 둔화했으나, 전반적으로는 수출 증가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드 사태가 그동안 감춰졌던 K뷰티의 취약성을 드러낸 결정적 계기였다고 평가한다. 많은 K뷰티 기업이 브랜드 힘을 키우기보다 매출에 급급해 중국 도매상에 물건을 공급하는 식으로만 접근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K뷰티 브랜드가 이들에게 휘둘리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당시 시장에서 일시적으로 수요가 급감하자, 유통상들은 보유하고 있던 K뷰티 제품 재고를 싼값에 처분하기 시작했다. ‘패닉 셀링’이다. K뷰티 브랜드의 110위안짜리 제품이 40~50위안까지 떨어져 시장에 유통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는 중국 시장 내 K뷰티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K뷰티는 전략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해 성공했다기보다는 중국 현지에서의 한류 수요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진짜 실력’보다는 ‘만들어진’ 수요에 가깝다. 한 중견 화장품 회사 관계자는 “자기 실력이 아니라 유통의 60% 이상 차지하는 현지 도매상에 의존해 성장한 시장”이라며 “당시 손해를 본 도매상들이 그동안 쉽게 구할 수 있는 K뷰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J(Japan·일본)뷰티나 T(Thailand·태국)뷰티 제품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드 사태 이전 K뷰티가 중국 시장 전성기를 누릴 때 이런 상황을 개선했다면 지금의 불안감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브랜딩 작업이나 시장 분석, 현지화 등 정비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주임 연구원은 “중국에서 주문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다른 것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며 “‘일단 제품만 팔면 된다’는 수출 위주의 인식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지금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뷰티 시장에서 잘나가는 시트마스크류는 최근 시장 가격 하락세를 경험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JM솔루션·파파레서피·메디힐·리더스 등 K뷰티 시트마스크의 평균 판매 가격은 지난해보다 10~20% 정도 하락했다.


품질 앞세운 J뷰티, K뷰티 앞마당 공격하는 C뷰티

소비 트렌드 측면에서도 K뷰티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는 K뷰티 대항마로 J뷰티와 C(China·중국)뷰티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기준 한국은 중국 수입 화장품 시장 1위 자리를 일본에 빼앗겼다. 지난해 프랑스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선 지 1년 만에 이번에는 일본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분기별로 따지면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국제무역센터(ITC) 조사에 따르면 2분기 한국과 일본 대중 화장품 수출액 격차는 7800만달러로 전 분기(5100만달러)보다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사드 사태를 계기로 J뷰티와 C뷰티가 떠올랐다고 해석한다. 9년간 K뷰티 브랜드를 중국 시장에 유통해온 중국인 유해영(가명) 대표는 “화장품 브랜드에 대해 중국 소비자들은 ‘유럽 뷰티-J뷰티-K뷰티-C뷰티’순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사드 사태 당시 사람들은 K뷰티 대신 돈을 좀 더 주고 J뷰티를 사거나 가격은 낮아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C뷰티를 사봤는데 이게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J뷰티는 ‘품질’ ‘안전’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땄다”면서 “가격대도 생각보다 높지 않은 제품이 많아 J뷰티 제품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K뷰티와 J뷰티 대표 기업 실적 흐름도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시세이도는 지난해 연매출 1조9000억엔으로 2년 연속 1조엔을 돌파한 반면, 아모레퍼시픽의 작년 영업이익은 5495억원으로 25% 감소했다.

특히 시세이도는 중국 시장에서 K뷰티가 주춤한 사이 제품 가격을 20% 낮추는 등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섰고, 결과는 고성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반기 시세이도의 중국 매출은 1077억엔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다. 시세이도는 “시세이도·끌레드뽀보떼·입사·나스 등 프레스티지 브랜드 성장률이 높으며, ‘일본산(Made in Japan)’ 제품인 엘릭시르·아넷사도 중국 시장에서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C뷰티 공세도 매섭다. 영국계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화장품 시장 매출 성장률 상위 20개 브랜드 중 C뷰티 브랜드 4개가 이름을 올렸다. 상하이자화(上海家化), 미노나(薇诺娜), 위니팡(御泥坊), 코기(高姿官网) 등으로 대부분 K뷰티의 주력 상품인 마스크시트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브랜드들이다. 실제로 9월 20일 기준 중국 왓슨스 상하이 푸둥점에 있는 시트마스크 제품 54종 중 C뷰티 제품은 25종으로 K뷰티 제품(21종)보다 많았다. J뷰티 제품이 7종, T뷰티 제품이 1종이었다.

전문가들은 C뷰티의 추격은 예견됐던 결과라고 말한다. K뷰티가 전성기를 누리던 2016년에도 기술력을 갖춘 C뷰티 제품들이 K뷰티 자리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실제로 중국 2위 화장품 기업인 쯔란(伽藍)의 화장품 개발팀은 한국인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해영 대표는 “C뷰티 제품 품질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며 “K뷰티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차별화’만이 1만4000 K뷰티 기업의 사는 길

최근 K뷰티 기업들은 새로운 해외 시장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가 캐나다에 첫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고, ODM(제조자 개발 생산) 기업인 코스맥스는 자체 브랜드를 러시아 화장품 유통 채널에 입점시켰다. 카버코리아와 정샘물뷰티가 태국 시장에 진출했다. 시장 다변화 전략으로 긍정적이지만, 중국 시장 성장세 둔화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기업들이 놓쳐서는 안 되는 세계 2위의 뷰티 시장이다. 2018년 기준 미국(895억달러)에 이어 620억달러를 기록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까지 연평균 5.7%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평균은 2.7%다. 9월 26일 기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 업체 수는 6487개사에 달했다. 2013년(1895개사)보다 3배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K뷰티만의 차별화 포인트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중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우리만의 차별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뷰티 시장에서 K뷰티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품질·효과·효능을 앞세운 고급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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