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취소까지 재난문자.. 선제적 경보인가 면피성 남발인가

이영빈 기자 2019. 9.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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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8월까지 713건 급증하는 재난문자
일러스트= 안병현

#1. 부산 금정구에 사는 이주희(가명·33)씨는 태풍 '타파'가 상륙한 지난 22일 같은 내용의 재난 문자 일곱 통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부산시청, 양산시청, 경남도청, 부산 서구청·북구청·해운대구청에서 보낸 문자였다. 정작 거주지인 금정구에선 오지 않았다. 이날 가지도 않은 지역 지자체에서 온 재난 문자도 있었다. "안전에 관한 안내 문자니 필요하긴 하지만 같은 내용으로 일곱 개가 쏟아지는 건 뜬금없었어요. 사는 곳에선 안 왔는데 주변 구청이나 시청에서 온 것도 이상했고요. 무슨 기준으로 보내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2. 서울에 사는 김민희(가명·42)씨는 재난 문자 노이로제에 시달린다. 2년 전 포항 지진이 발생한 이후부터다. 당시 재난 문자가 왔는데 통신 장애로 포항에 사는 부모님과 한동안 연락이 안 돼 발 동동 구르던 기억 때문이다. 그때부터 재난 문자 경보음이 일제히 울리면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지진 트라우마만큼 재난 문자 트라우마가 커요. 요즘은 안개 주의보니 미세 먼지 주의보니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니 스트레스가 극심해요. 어떻게 지진과 미세 먼지가 동급인가요?"

수시로 울리는 '재난 문자 폭탄'에 피로감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재난 문자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남발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발송된 재난 문자는 총 713건. 하루 세 통꼴로 문자를 받았다는 얘기다.

시작은 2005년…요즘은 하루 세 통꼴

재난 문자가 시작된 건 2005년. 소방방재청이 처음이었다. 3년 뒤 행안부가 관련 행정 규칙을 만들며 자리 잡았다. 2016년 347건에서 지난해 860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8월까지 713건. 급증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수치다.

발송 기준은 뭘까. 행정규칙 '재난 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 규정'에 따르면, 재난 문자는 태풍·호우 등 자연재해가 '경보' 수준일 때 발송된다. 경보는 신체, 재산 등이 심각한 피해를 보는 수준일 때 미리 알린다는 뜻. 해일·지진 등 자연현상부터 공습·화생방 등 20여 가지 상황이 '경보' 수준일 때 재난 문자를 반드시 보내야 한다. 풍속·일조량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폭염 경보'는 일반적으로 '최고 기온 35도인 날이 이틀 연속일 때', '미세 먼지 경보'는 시간당 평균 농도가 300㎍/㎥ 이상 2시간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된다.

발송 절차는 이렇다. 특정 시점에서 하루 이틀 뒤 기준에 들어맞는 위기 상황이 올 경우, 각 부처와 지자체에 있는 '재난 정보 입력자'가 송출 시스템에 접속해 정해진 양식에 따라 재난 정보를 입력해 둔다. 예를 들어 전력난으로 대규모 정전이 예상된다면, 산업통상자원부 내 재난 문자 담당자가 지역명, 구체적인 피해, 대처 방법을 올려두는 식이다. 양식 중에는 '인공 우주물체 추락·충돌 예상 시' '댐 본체 위험한 손상 발생(붕괴 징후) 시' 등도 있다.

행안부와 지자체는 송출 시스템에 올라온 문자를 보고 최종 검토해 통신사에 등록된 휴대전화로 보낸다. 매뉴얼에 없는 재난도 있을 수 있다. 100명 중 100명이 모두 재난이라고 판단하는 현상은 발송 최종 결정권자(부지자체장, 행안부 담당자 등)에게 보고 후 바로 발송할 수 있다. 애매한 사항은 담당 부처, 행안부 내부 회의에 따라 발송 여부가 결정된다. '지역 축제 취소' 등 고개 갸우뚱하게 하는 재난 문자도 회의를 거친 결과다.

지난해 5월 5~6일 대구에서 열렸던 지역 축제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이 이틀째 우천으로 취소되자 대구시에선 재난 문자로 취소 사실을 알렸다. 내부 회의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자체는 담당 지역 내, 행안부는 전국으로 재난 문자를 보낼 수 있다. 만약 남해 지역에서 태풍 피해가 있더라도 서울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면 행안부에서 서울 시민에게까지 발송한다.

지난 7일 태풍 링링이 닥쳤을 때 비슷한 재난 문자가 세 번에 걸쳐 왔다. 사소하거나 중복된 내용의 재난 문자가 지나치게 많이 온다는 지적이다. /휴대폰 화면 캡처

문자 담당자 9908명, 면피성 남발?

지난 7일 태풍 '링링'이 왔을 때 서울 여의도에 사는 손세준(29)씨는 잠을 거의 못 잤다. 오전 2시 45분, 오전 6시, 오전 7시 30분, 새벽에 세 차례에 걸쳐 온 재난 문자 때문이었다. "새벽에 갑자기 휴대전화가 '징~징~' 하면서 울려 깜짝 놀라 깼어요. 남해 쪽으로 태풍이 올라오니 유의하라는 내용이었어요. 조금 잘 만하니까 두세 시간 있다 오고, 또 오더라고요. 아침 일찍 스케줄이 있었는데 밤을 거의 새웠어요. 한두 번 보내면 조심할 것 같은데, 그 이상 보내면 짜증이 나요."

과유불급. 너무 잦으면 효과는 줄어든다. 위험을 경고하려고 만든 시스템인데, 남발되며 도리어 재난 불감증을 낳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긴급재난 문자를 차단하는 법'을 찾아 알람을 꺼놓는 사람도 있다.

재난 문자가 도마 위에 오른 건 지난 2016년 경주 지진 때다. 지진 발생 9분 뒤에야 재난 문자가 발송됐다. 모든 요청이 행안부를 통해야 하는 체계 때문에 송출이 지연됐기 때문이었다. 행안부가 뭇매를 맞았다. 이 일을 계기로 2017년 행안부는 신속하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긴급 문자 발송 권한을 기상청과 광역시·도 광역단체로 이양했다.

최근 들어 재난 문자가 부쩍 늘었다고 느꼈다면 이유가 있다. 이달부터 송출 권한을 시·군·구까지 확대했다. 9월 기준 지자체·부처 등에 있는 재난 문자 입력 담당자는 9908명이다. 이들은 법령 기준에 따라 재난 문자 내용을 적고 발송 허가를 요청한다. 그만큼 재난 문자 발송 빈도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부산의 이주희씨 사례도 기초단체에서 발송 권한을 갖게 되면서 여러 구청이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재난 문자가 늘어난 주요 이유로 '면피성 발송'을 꼽았다. 한 수도권 지자체 긴급 상황 담당관은 "보내면 '왜 긴급하지도 않은데 사람 놀라게 하느냐'는 민원이, 안 보내면 '왜 안 보내느냐'는 민원이 들어온다"며 "이래도 저래도 욕먹을 바에는 보내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또 다른 기초지자체 공보실 관계자는 "똑같이 욕먹어도 '일 안 하는 게으름뱅이'보다는 '미련해도 부지런히 하는 일꾼'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 문자가 남발된다"고 했다.

비거주 지역이나 가지 않은 곳에서도 재난 문자를 받는 경우는 왜 발생할까.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재난 문자를 보낼 때 주민등록 주소지가 아니라 지자체 내 기지국의 전자파가 닿는 반경 내 모든 단말기로 보내기 때문에 행정구역으로 잘라서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경보음 남발 말아야

'재난 문자 폭탄'을 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발송 방법과 빈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보음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빈도가 잦으니 경보음이 울려도 신경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이 일어나도 그럴 위험이 있다"며 "경보음은 대피가 필요한 긴급 상황일 때만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보를 많이 아는 게 나쁠 것은 없지만, 비슷한 내용이 3~4차례 연속으로 오면 심리적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며 "태풍 '타파'처럼 광역지자체의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재난일 경우 행안부가 지자체와 상의를 거쳐 한두 번만 오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일반 정보와 재난 정보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영주 교수는 "재난 문자는 국민 모두에게 공공기관이 문자를 보내는 거의 유일한 기술"이라며 "'인명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만 발송한다' 등 재난에 대해 더 엄격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형 휴대전화 쓰는 200만명, 재난문자 못 받는다

그 중 117만대는 앱 설치도 안돼… 원하면 무상으로 교체해줘


안드로이드는 메시지 앱-더보기-설정-긴급알림설정(위 사진), 아이폰은 설정-알림으로 들어가면 재난 문자 수신 여부를 설정할 수 있다. /휴대폰 화면 캡처

재난 문자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위험 순으로 ‘위급 재난’ ‘긴급 재난’ ‘안전 안내’. ‘위급 재난’은 국가가 공습을 당했을 때 등 말 그대로 위급한 상황에 송출된다. ‘긴급 재난’은 지진·해일 등이 발생하거나 관측될 때 상황 개요, 대처 방법 등을 보낸다. 규모 3.0~6.0 미만 지진은 ‘긴급 재난’, 6.0 이상은 ‘위급 재난’이다. ‘안전 안내’는 폭염, 미세 먼지 등 긴급 상황 외에 해당한다.

재난 문자는 수신을 거부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기종에 따라 다르다. 안드로이드폰은 ‘위급 재난’을 빼고 ‘긴급 재난’ ‘안전 안내’는 수신 거부가 가능하다.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메시지 앱에 들어가 더보기(우측 위 돋보기 옆 점 세 개 아이콘)를 누르고 ‘설정’으로 들어간다. 여러 옵션 중 ‘긴급 알림 설정’으로 들어가면 ‘긴급 재난 문자’ ‘안전 안내 문자’를 수신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위급’은 경보음이 60데시벨, ‘긴급’은 40데시벨 정도다. ‘안전 안내’는 경보음 없이 일반 문자와 똑같이 전송된다.

아이폰도 수신 거부는 할 수 있지만 단계별 설정이 불가능하다. ‘설정’을 누르고 ‘알림’에 들어가면 맨 아래 재난 문자 수신 여부를 정할 수 있다. 수신으로 정해 놓으면 ‘안전 안내’ 문자에도 경보음으로 울린다. 경보음은 일괄적으로 60데시벨이다. 거부하면 지진 등 위급 재난 때도 문자를 못 받는다. 남쪽 태풍 경보에 서울 시민이 잠을 설치고 사무실 여러 곳에서 경보음이 울리는 이유다. 아이폰을 이용하는 인천 거주자 조모(25)씨는 “(재난 문자 기능을) 켜놓으면 시끄럽고, 끄자니 무섭다”고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아이폰에서도 설정할 수 있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기술 적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며 “아이폰 사용자는 재난 문자 수신을 해제하고 행안부가 만든 ‘안전디딤돌’ 앱을 설치하면 단계별 설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재난 문자를 받을 수 없는 구형 단말기를 쓰는 사람이 약 200만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재난 문자는 지정 지역에 있는 모든 휴대전화로 동시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CBS(Cell Broadcasting system)’를 이용한다. 2013년 이후 출시된 모든 단말기에는 CBS 탑재를 의무화하도록 법으로 정했지만, 이전 출시된 휴대전화 중에는 없는 것도 있다.

이 중 2G폰 약 36만대, 3G폰 약 117만대는 ‘안전디딤돌’ 앱도 설치가 불가능하다. 행안부 관계자는 “과기정통부와 이동통신사가 협약을 맺어 해당 이용자들에게 재난 문자를 받을 수 없는 휴대전화를 무상으로 교체해 주겠다고 알리지만, 마케팅으로 오해해서인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더 좋은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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