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모의 <가시나무> 그 시절 초라했던 나를 안아주면서 [내 인생의 노래]

2019. 9. 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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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열여섯에서 열일곱,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던 나의 아이돌은 조성모였다. 또래 친구들과는 취향의 결이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덕질’은 같았다. 용돈을 모아 CD를 산다거나, ‘내 가수’가 나오는 잡지를 산다거나, 용돈을 모아 콘서트엘 간다거나.

그때의 나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청소년이기도 했다. 계급의 사다리를 운 좋게 타고 오르던 중이었지만,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던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운 좋게 특목고에 진학했고, 운 좋게 진학한 특목고에 적응하지 못해 헤매고 있던 여고생이었다.

서른여섯의 내가 생각하기엔 그까짓 거 참 뭐라고 싶어지지만, 열일곱의 여고생에게는 그게 그리 쉽게 넘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무척 이르게 깨달아야 했기에 참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다. 고등학교 진학 전 이미 고가의 선행학습을 받고 온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아니었다. 친구들이 손쉽게 가져오던 자그마한 색조화장품조차도 나는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똑똑하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가난하고 초라하기까지 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열일곱 나이에 강제로 깨달아야 했다.

그런 열일곱 여고생에게 ‘내 가수’였던 조성모는 꽤 괜찮은 위로였다.

그 중에도 2.5집에 수록되어 있던 곡 〈가시나무〉를 무척이나 많이 들었다. 철학적이었던 원곡을 단순한 연가로 바꿔놓았다는 비평이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마 그 미성이 그 가사와 함께 적잖은 위로가 되어주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위로가 되었던 ‘내 가수’였지만, 흔히들 그렇듯 나이가 들고 시간과 함께 ‘내 가수’ 역시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런데 얼마 전 유튜브 동영상 속에서 그렇게 지워냈던 ‘내 가수’를 다시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2000년 무렵의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그 유튜브 채널 속에서 ‘내 가수’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가시나무를 부르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그때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꺼내어 본 영상 속에서는 보이고 들렸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는 그 힘듦을 노래하며 체념하고 있던 내 가수. 그래서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이 미성에 정말로 많은 위로를 받았던 이유를.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하는 그 작은 동질감에서 오는 가벼운 위로. 그러자 언젠가 처분해버렸던 CD들이 아쉬워졌다. 그렇게 흘려보내고 지워버릴 게 아니었는데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나도 조금씩 단단해졌고, 내가 그렇게 초라하고 작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때 들었던 음악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볼 생각이다.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것을 들으려고 노력하면서, 그 시절의 초라했던 열일곱 여고생을 꼭 안아주면서, 그렇게.

김수완 프리랜서 작가·전 뉴스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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