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자영업자에 '빛' 보는 반지하

이진혁 기자 2019. 9. 2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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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유명 상권을 중심으로 최근 반지하 점포가 늘고 있다.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에 위치한 반지하층 레코드숍 겸 카페 내부. /권유정 인턴기자

마포구 연남동과 망원동,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 골목길에서는 허리춤 아래로 시선을 옮겨야 보이는 카페, 술집, 소품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오가는 사람들의 다리뿐인 곳도 있다. 하지만 지상층보다 저렴한 임대료와 다양한 공간 활용도로 20~30대들에게 반지하는 더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빈곤과 어둠의 상징이 아니다.

자영업자나 창업 준비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반지하 점포 계약 시 주의점’, ‘반지하 점포 관리 수칙’ 등과 같은 제목의 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습기에 따른 통풍 문제, 하수 배수 어려움 없이 유동인구가 어느 정도 있는 지역이면 오히려 반지하를 선호한다는 예비창업자도 많다.

◇몇 계단 내려갔을 뿐인데 월세는 절반

청년 업주들이 반지하를 선호하는 건 낮은 임대료 때문이다. 카페나 술집 등 외식업의 경우 매출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 고정적 지출이 발생하는 판매관리비를 줄여야 이익이 남는다. 판관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대료, 즉 월세를 줄이기 위해 반지하를 택한 셈이다.

지난해부터 연남동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박연수(30) 씨는 "반지하라 조금 습하거나 볕이 잘 안 든다는 단점만 빼면 불편함이 없어서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홍대 인근 연남동 H공인 관계자는 "중심 상권이라면 반지하나 지상층의 월세가 비슷해도, 중심가를 벗어나면 확실히 월세 차이가 난다"면서 "33㎡(10평)을 기준으로 중심 상권 지층이나 반지층 점포 월세가 180만~200만원 정도라면 경의선 숲길이 끝나는 가좌역 인근 반지층 점포는 월세가 150만원 이하로 내려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태원동에 있는 일부 반지하 점포의 경우 월세가 100만원을 넘지 않는 곳도 있다. 경리단길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최근 상권이 많이 활기를 읽어가면서 지하나 반지하는 월세를 높일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용도만 변경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인근 주택의 33㎡짜리 반지하 월세는 50만~6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이 지역의 지상층 임대료가 월 120만~180만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초 역세권에 해당하는 일부 지상층 임대료는 월 40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용산구 이태원동(좌), 마포구 연남동(우) 골목길에 위치한 건물 반지하층에 임대 및 공사 문의 플랜카드가 걸려있다./권유정 인턴기자

◇ ‘보일 듯 말듯’ 공간 특성도 인기 비결

저렴한 월세에 비해 공간 활용도가 높은 것도 반지하의 장점으로 꼽힌다. 입구 쪽에 놓인 계단이나 지층에서 보이는 가게 내부 공간을 독특하게 꾸며 시선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게 입구로 이어지는 곳에 소품을 배치하거나 밖에서 보이는 내부 창틀이나 주방에 화려한 조명, 술병을 진열해 놓기도 한다.

지난 7월 문을 연남동 경의선숲길 근처에서 선술집을 개업한 김모(28)씨는 "가게가 눈에 잘 안 띄는 반지하에 있으면 스피크이지바(불특정 다수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가게)처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면서 "업종마다 다르겠지만, 술집은 통유리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것보다는 살짝 어두운 게 낫다"고 했다. 연남동에서 음반가게 겸 카페를 하는 김 모씨도 "음악을 듣고 즐기는 공간이다 보니 반지하가 아무래도 집중이 더 잘 되고 아늑한 느낌이 있다"며 "비싼 임대료를 내고 지상에서 영업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젊은 자영업자의 반지하 선호도가 임대인의 요구와도 관련 있다고 설명한다. 부동산 운용사 한 관계자는 "건물주 입장에선 지층을 쪼개 공간을 하나라도 더 확보하는 것이 수익에 도움이 된다"며 "특히 마포, 용산 같은 골목상권은 지상과 반지하 불문하고 손님들이 찾아서 오는 곳이라 지상이나 반지하의 의미가 그리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우병탁 팀장은 "저층만 리모델링해서 점포로 내놓는 게 지상층을 임대하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인식이 청년 자영업자들의 독특한 요구와 결합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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