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금강초롱 보며 느끼는 경탄, 분노, 안타까움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2019. 9.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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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꽃을 대하다 보면 세 가지 단계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첫 번째 단계의 감정은 ‘놀라움’입니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자태를 실물로 처음 마주하면 누구나 감탄해 마지않는 것이 금강초롱꽃입니다. 저 역시 그러해서 그 청초한 아름다움 앞에 순순히 무릎 꿇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금강초롱꽃(강원도 고성군 향로봉)

물론 카메라를 손에 들고요. 유사종으로 초롱꽃과 섬초롱꽃이 있으나 금강초롱꽃의 아름다움에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금강초롱꽃에서 느끼게 되는 두 번째 단계의 감정은 ‘분노’입니다. 금강초롱꽃의 학명(Hanabusaya asiatica Nakai)에 남겨진 치욕스런 역사의 잔재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달에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된 ‘우리 들꽃의 독립’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그 내용이 잘 소개됐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롱꽃은 금강초롱꽃의 아름다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알려진 바와 달리 금강초롱꽃은 일본의 식물학자인 우치야마(Uchiyama)에 의해 1902년 금강산에서 최초로 채집됐다고 합니다. 그것을 같은 일본의 식물학자인 나카이(Nakai) 박사가 1909년에 새롭게 발표했습니다.

당시에는 수술의 꽃밥이 모여 있다는 특징으로 학명을 Symphyandra asiatica Nakai라고 했습니다. 금강초롱꽃은 초롱꽃속(Campanula속)의 초롱꽃이나 섬초롱꽃과 달리 수술이 암술 주위로 모아져 있습니다.

울릉도의 섬초롱꽃은 초롱꽃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2년 후인 1911년에 나카이 박사는 금강초롱꽃을 한국특산속 식물로 승격시켰습니다. 뿌리에서 나오는 잎이 없고 잎이 줄기의 상부에 모여 달리는 점 등을 특징으로 삼아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새 속명으로 Hanabusaya(금강초롱꽃속)를 부여했습니다. Hanabusaya는 나카이 박사가 자신을 적극 지원해 준 초대 일본 공사인 ‘하나부사 요시모토’를 기리는 뜻에서 만든 속명입니다.

금강초롱꽃의 수술은 암술 주위에 모여 있다.

종소명인 asiatica는 속명을 바꾸기 전에도 썼던 것을 그대로 썼습니다. 아시아의 식물이라는 뜻일 겁니다. 금강초롱꽃이 한국특산식물임을 고려하면 koreana를 쓰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asiatica를 썼습니다.

나카이 박사는 개나리를 한국특산식물로 발표하면서 종소명에 koreana를 쓴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금강초롱꽃에서만큼은 한국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명명자 자리에는 당연히 나카이 박사 자신의 이름을 넣었고요. 그래서 금강초롱꽃은 한국특산식물임에도 일제 치하의 잔재가 담긴 학명을 갖게 됐습니다.

금강초롱꽃 촬영(강원도 화천군 광덕산).

이런 사실을 처음 안 이들은 애국심에 불타올라 분노합니다. 광복절 즈음이면 언론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부각시키며 애국심에 불을 지핍니다. 금강초롱꽃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모든 식물의 학명에서 나카이를 비롯한 일본의 잔재를 지워내야 한다며 독립투사 같은 어조로 역설(力說)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식물명인 국명을 바꾸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꿔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식물의 학명은 국제적인 명명법에 의한 것이므로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결코 일이 아닙니다.

설악산의 금강초롱꽃은 변이가 많다.

금강초롱꽃의 학명을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Hanabusaya라는 속명입니다. 이미 한번 바꿔진 것이라 다시 또 바꾸려면 지금까지 알려진 차이점 외에 또다른 차이점을 찾아내 새로운 속으로 설정해서 발표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물학자들이 게으르거나 역사의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건 식물 주권이라는 문제에서 약간 빗겨난 문제입니다. 동해로 표기할 거냐 일본해로 표기할 거냐의 문제와도 다르고요.

설악산 대청봉 바위틈의 금강초롱꽃은 광복절 즈음에 핀다

주체의식이 강한 북한에서는 기어코 새 속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첫 발견지인 금강산에서 따온 속명을 써서 1976년부터 Keumkangsania asiatica (Nakai) Kim으로 적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국제 식물명명규약법을 무시하고 만든 학명이기에 인정받지 못합니다. 학명이란 국제적인 약속이므로 어느 한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 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경기도 가평군 화악산의 금강초롱꽃은 변하는 자생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듯하다

어쨌든 우리는 치욕의 과거사가 담긴 학명을 존속시키고 싶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를 들어 국제식물학회(International Botanical Congress)에 예외를 인정받아 금강초롱꽃의 학명을 바꾸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식물학회는 나라 간의 기구가 아니라 식물학자나 식물학단체 간의 국제적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이유 등으로 예외를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어느 분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흰색에 가까운 금강초롱꽃(강원도 화천군 광덕산)

그렇다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엽록체 DNA 염기서열 분석 결과 금강초롱꽃은 초롱꽃보다는 잔대속(Adenophora속)의 모시대와 가깝다고 합니다. 형태학적으로도 금강초롱꽃과 모시대는 매우 흡사해서 속간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건 금강초롱꽃속의 지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금강초롱꽃을 잔대속으로 포함시켜버리면 지긋지긋한 Hanabusaya를 떼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특산속 하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모시대와 금강초롱꽃을 잔대속에서 분리해 새로운 속으로 설정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시대 때문에 한국특산속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덤불 속에서 무더기로 핀 모습.

금강초롱꽃에서 느끼게 되는 세 번째 단계의 감정은 ‘안타까움’입니다. 학명에 대한 분노의 시기가 지나면 금강초롱꽃도 하나의 식물일 뿐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자생지 환경이라든가 개화기, 분포 지역, 개체수, 변이 등등에 대한 것으로 관심사를 돌리게 됩니다.

그런데 자생지마다 부쩍 줄어든 개체수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일이 점점 잦아집니다. 얼마 전에 설악산 한계령 쪽의 금강초롱꽃을 찾아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언제부턴가 그곳의 금강초롱꽃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새벽 4시 반에 올라가서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는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날이 훤할 때 올라갔는데도 금강초롱꽃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헤매다가 겨우 몇 송이 발견하는 데 그쳤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곳의 금강초롱꽃은 손을 탄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변이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너무나도 안타깝게 됐습니다.

정상인 대청봉 근처의 금강초롱꽃은 바닥에 엎드려 자라거나 바위틈에서 자랍니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다 보니 광복절 즈음이면 모두 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칩니다.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곳에서 자라는 덕에 목숨을 부지하는 고지대의 독립투사들입니다.

경기도 가평군의 화악산도 금강초롱꽃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긴 하지만 등산로 주변에 노출되어 있어서 손을 잘 타지 않는 편입니다. 다만, 서식지 환경이 변하면서 많이 사라졌습니다. 숲이 우거져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다 보니 금강초롱꽃이 선호하는 환경에서 멀어지면서 생겨나는 현상 같습니다.

강원도 화천군의 광덕산은 10월 초까지도 금강초롱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도 예전에는 낮은 계곡은 물론이고 길가로도 나와 자랄 정도로 금강초롱꽃이 많았습니다.

운이 좋으면 흰색에 가까운 꽃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개체수가 줄더니 천문대가 생기면서 계곡과 길이 정비되어 이젠 듬성듬성 보일 뿐입니다.

학명을 고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생지를 잘 보전하는 것이 진정으로 금강초롱꽃을 위하는 일 같습니다. 학명 독립은 우리가 원하는 일일뿐 금강초롱꽃이 원하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자생지에서 한 해가 다르게 사라져 가는 동안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요? 덤불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금강초롱꽃 무더기가 종소리처럼 하는 말이 들립니다.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가만히만 내버려 두라고! 그러면 우리가 알아서 잘 자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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