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의 덫에 빠진 학교 석면 해체 공사

곽선정 2019. 9. 9. 15: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침묵의 살인자, 1급 발암물질... '석면'에 붙은 수식어는 무시무시합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5천분의 1에 불과한 석면 입자가 호흡기를 통해 유입되면 긴 잠복기를 거쳐 폐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오는 2027년까지 이른바 '무(無) 석면 학교'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까지 전국 2만 9백여 개 학교 가운데 만 2백여 개 학교가 석면 해체·제거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습니다. 공사를 끝낸 학교에서도 석면 잔재물이 잇따라 발견됐고, 학교 석면 지도도 오류 투성이어서 재검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걸까요.

학교 석면 해체 작업 현장 모습


■ 속도전의 덫에 걸린 석면 해체제거 작업..."정부가 불법 부추겨"

KBS는 한 학교 석면 해체제거 작업 현상의 영상을 입수했습니다. 무엇인가 깨부수는 소리와 함께 석면 텍스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교육부의 공사 지침은 천장재인 석면 텍스는 석면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물을 뿌리고, 원형을 유지하며 제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키지 않은 겁니다.

작업장 내부의 공기를 빨아들여 외부와 압력차를 만들어 먼지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음압기도 작동하지 않고 방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 석면 가루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음압기 정상 가동 사진과 작업 현장 음압기 모습 비교


왜 이렇게 '날림' 공사가 이뤄지는 걸까. 현장 관계자들은 해체·제거 업체들이 영세한 곳이 많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일부 인정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부 정책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빨리빨리'가 석면 해체·제거 공사 현장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대부분 학교가 방학을 이용해 공사를 합니다. 이 때문에 1~2달 사이에 공사 물량이 쏟아집니다. 이 기간에 석면 해체·제거 작업은 물론 청소와 새 천장재 시공, 잔재물 조사까지 마무리해야 합니다. 이러다보니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속도만 내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미 교육청이 공사를 발주할 때부터 과도한 양을 산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건설기준연구원 표준품셈을 보면 1인 하루 석면 텍스 해체 작업량은 8.33㎡. 하지만 한 업체 관계자는 "발주처인 교육청인 1인당 100㎡를 하게 설계를 하고 이것도 늦다고 빨리할 것을 채근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정부에서 부실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연관기사] 가루 풀풀 날리는데…학생 건강 위협하는 ‘석면 제거 공사’

■ 감리보고서 믿을 수 있나

교육청은 석면 해체·제거면적 800㎡ 이상의 공사를 발주할 때 감리인을 지정합니다. 감리인은 현장에 상주하며 작업 전반을 지켜보고,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돼 있습니다.

취재진은 (사)한국석면건축물안전관리협회의 도움을 받아 2017년 겨울방학과 지난해 여름방학 석면 해체·제거 작업을 한 학교 가운데 감리보고서를 공개한 670여 개 학교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3분의 2 정도인 434개 학교에서 560여 건의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발견됐습니다. 음압유지가 미흡한 것이 237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작업장 면적과 투입한 음압기 대수, 현장 사진 등을 분석해 나온 결과입니다. 작업 중 매일 측정해야 하는 비산 측정과 농도 측정이 빠진 경우도 104건이나 됐습니다.

작업 과정을 찍어 첨부한 사진들에서도 문제점이 확인됐습니다. 환경부 고시에 따라 음압기 필터에서 석면 먼지가 제대로 걸러져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배출구 0.3~1m 이내에서 비산 측정을 해야 합니다. 또 배출구 개수를 모두 측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엉뚱한 위치에서 측정하거나, 배출구 여러 개를 묶어서 측정하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측정 위치와 방법이 그대로 담긴 보고서 첨부 사진들


이런 잘못을 현장에서 바로 잡고 조치를 취해야 할 감리가 버젓이 사진을 첨부해 보고서를 만든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보고서를 받고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젭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감리보고서를 받고 부실하게 작성되거나 서류가 누락된 경우 보완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또 석면안전관리법에 따라 과태료나 벌금, 고발 조치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감리보고서는 제출만 하면 '무사통과'입니다.

실제 광주광역시와 전남 22개 시군에 최근 3년 동안 석면 감리보고서와 관련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사후 조치를 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다른 시도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전국석면학부모네트워크가 2017년부터 3년 동안 석면 해체·제거공사와 관련해 환경부 처벌규정에 따른 감리인 처벌건에 대한 현황을 정보공개청구했더니 단 5곳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이 5곳 가운데 일부는 시민사회단체 신고로 잘못이 확인된 것입니다. 한 자치단체 공무원은 "석면 관련법이 너무 복잡하고, 1차적으로 감리를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관기사] ‘교실 석면 제거’ 엉터리 공사에 감리도 부실

■ 비산, 농도 측정 업체는 부족한데 공사 강행..."조사결과 불신"

더 큰 문제는 감리보고서에 '문제없음'으로 나와있는 각종 측정 자료들도 적정성이 의문시 되고 있다는 겁니다. 우선 음압 유지. 대부분 -0.508 mmH20 를 유지하고 있다는 결과지가 첨부돼 있지만, 현장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대부분 현장에서 음압을 유지하지 않은 채 작업하고 있다는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업체 관계자는 "음압기록은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고, 음압기록장치의 숫자를 미리 세팅해 다닌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음압기록지는 믿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비산 농도 측정 문제도 심각합니다. 공사 현장의 석면 비산 농도는 매일 측정해 그 결과에 따라 공사를 이어가거나 중지하도록 돼 있습니다. 분석사가 시료를 하나하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된 분석사도 시료 하나당 10여 분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공사 현장 1곳에서 나오는 시료 개수는 최소 20개 정도. 규모에 따라 백여 개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측정업체는 200여 곳에 불과(휴·폐업 제외)하고 대부분 분석사가 1~2명 정도로 영세합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방학 때 석면 해체·제거를 한 학교는 전국적으로 923곳. 측정업체가 여러 학교를 한꺼번에 분석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실제 감리보고서 분석 결과에서도 한 측정업체가 12일 동안 무려 12개 학교를 중복해서 맡은 경우도 확인됐습니다.

석면은 제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안전 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관리감독도 허술하다면 학생들뿐 아니라 해체·제거 작업자, 인근 주민들까지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 때문에 업체 관계자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속도 경쟁 보다는 안전한 제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무(無)석면 학교' 달성만을 목표로 물량을 쏟아내기보다 학생과 노동자, 주민들의 '건강권'을 우선한 석면 해체·제거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곽선정 기자 (coolsun@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