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리포트] 인도의 호랑이 호구조사 프로젝트

정한길 기자 2019. 9. 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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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사냥의 풍경을 담은 그림. 1800년대 초반에 인도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 정부는 지난 7월 '호랑이 센서스(개체수 조사)'를 발표하며 인도 호랑이 개체수가 3000마리에 육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때마침 발표일인 29일은 '세계 호랑이의 날’이어서 더욱 전세계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른바 호랑이 호구(虎口)조사나 나름없는 이번 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인도 내 호랑이 개체 수는 2014년 2226마리에서 지난해 2967마리로 늘었습니다. 전 세계 야생 호랑이는 약 3900마리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75%가 인도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인도는 2006년부터 4년마다 대대적으로 '호랑이 호구 조사'를 실시해 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야드벤드레이데브 잘라 인도야생동물연구소 교수는 "호랑이는 인류가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며 "인도는 호랑이 개체를 잘 유지하기 위해 호랑이의 밀렵을 막고 50개의 호랑이 보호 구역을 설치하고 호랑이 보호구역 안에 살던 사람들이 정착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도 정부가 호랑이 숫자를 조사한 이유와 어떻게 정글에 사는 호랑이 개체수를 확인했는지  살펴봤습니다. 

호랑이를 왕좌에서 끌어내린 '인간'

커다란 덩치와 무지막지한 힘, 빠른 속도, 수영 실력까지 호랑이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가진’ 동물 세계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물의 왕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결국 호랑이를 왕좌에서 끌어내린 존재가 있었습니다. 

과거 호랑이는 아시아 지역 전체에 걸쳐 넓게 분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도, 러시아, 중국 등 13개 나라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생태환경사를 연구한 김동진 박사는 “15세기 이후부터 호랑이에게 암흑기가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이 호랑이를 집중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Emst Slavro Blored/위키피디아

인구가 늘면 식량이 더 필요하고, 그러면 더 넓은 농경지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호랑이가 사는 숲을 농경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호랑이 대 인간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 군인들은 호랑이 사냥법을 교육받았고, 일정한 양의 호랑이 가죽을 왕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당시 바쳤던 호랑이 가죽의 수를 통해 추정해 보면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매년 1000마리에 가까운 호랑이가 사냥을 당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후 호랑이의 수가 크게 줄어 18세기부터 호랑이 가죽을 바치는 것이 힘들어졌고, 결국 호랑이 가죽을 바치는 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당시엔 호랑이와 표범을 모두 합쳐 ‘범’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정확한 호랑이의 숫자를 추정할 순 없지만, 이를 통해 사람이 호랑이와의 서식지 경쟁에서 승리를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은 호랑이를 서식지에서 쫓아낸 후에도 호랑이 사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20세기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은 인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스포츠로 즐겼으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선 호랑이를 보양식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호랑이 뼈를 넣어 담근 술은 지금도 아시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탐욕은 결국 호랑이를 멸종위기까지 몰아갔습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무분별한 밀렵은 호랑이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호랑이 찾아 지구 13바퀴를 돈 사연

인도에서 호랑이, 표범의 가죽과 뼈를 판매하고 있는 현장. 호랑이 밀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The Wildlife Protection Society of India

실제로 호랑이는 사람을 쉽게 공격하지 않습니다. 호전적인 성향을 가진 호랑이들은 과거에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호랑이는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의 호랑이들입니다. 실제로 숲에 호랑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호랑이가 민가로 내려온 적은 있지만 사람을 직접 공격했던 경우는 1년에 1~2번 정도로 매우 드뭅니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이런 사고는 호랑이에게 위치 추적 기술을 적용시키면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호랑이를 지키려면 호랑이가 어디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도 정부와 인도야생동물연구소는 어마어마한 인력을 투입해 호랑이 호구조사 프로젝트를 실시했습니다. 연인원 59만 3882명의 사람들이 지구 13바퀴에 해당하는 52만2996km를 돌아다니며 손수 데이터를 모았고 2018년 한 해 동안 조사한 결과, 인도에 살고 있는 호랑이의 수는 2967마리라고 추정했습니다. 이는 2014년에 비해 33%가 늘어난 숫자입니다. 

이 조사를 위해 연구자들은 인도의 21개 주에 있는 숲에서 최대 열흘 간 머물며 똥이나 발자국 등 동물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연구자는 발견한 흔적을 ‘M-STrlPES’라는 앱에 기록했했습니다. 이 앱에는 좌표 정보가 함께 기록되기 때문에 어떤 동물이 어느 지역에 많이 분포하는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엔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호랑이의 분포 지역을 추정했습니다. 멧돼지, 사슴, 노루, 고라니 등 호랑이가 즐겨 먹는 동물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호랑이가 살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호랑이 분포 예상 지역이 정해진 후엔 이곳에 ‘트랩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트랩 카메라는 열과 움직임을 감지해 주변에 동물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촬영을 하는 카메라입니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트랩 카메라만 무려 약 2만 7000개, 찍은 사진은 약 3500만 장에 달합니다. 

3500만 장의 사진 중에서 호랑이 사진만을 골라내는 건 인공지능의 몫입니다. 뿐만 아니라 호랑이의 줄무늬는 사람의 지문처럼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줄무늬의 모양으로 서로 다른 호랑이를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랑이가 몇 마리인지까지도 알아냈습니다. 

똥으로 호랑이를 찾아라

호랑이를 치료 중인 야드벤드레이데브 잘라 교수. Yadvendradev Jhala

인도의 호랑이가 늘어나고 있는 건 전세계의 호랑이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호랑이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왜 호랑이를 복원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걸까요?

호랑이, 표범, 눈표범, 사자는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도 몸집이 큰 편에 속해 ‘빅 캣(big cat)’이라고도 불립니다.  지난 2013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박종화 교수와 서울대 이항 교수 연구팀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호랑이의 유전자 지도를 해독하는 데 성공해 사자, 눈표범과의 차이점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표범의 유전자 지도까지 해독하면서 여러 빅 캣의 유전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이른바 ‘유전자 마커’를 찾아냈습니다.

유전자 마커를 이용하면 동물의 똥을 분석해 똥의 주인이 호랑이인지, 표범인지 등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랑이 중에서도 어떤 개체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똥 샘플만 있으면 그 지역에 호랑이가 얼마나 사는지,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어떤 개체들이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았는지 등을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조지아대 프랭클린 웨스트 교수는 조금 특이한 방법으로 호랑이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2015년, 그는 애틀란타 동물원의 호랑이에서 피부 세포를 채취해 냉동보관을 했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냉동 동물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보통 종 보존을 목적으로 세포를 보관할 때엔 정자와 난자를 이용하지만, 정자는 죽을 확률이 높으며 난자는 채취가 어렵다는 단점이 이습니다. 이에 웨스트 교수는 체세포를 신체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로 바꾼 뒤 이를 다시 정자와 난자로 바꾸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체세포는 채취가 쉽고 수명도 길어 보존에 유리하합니다.

 
사라졌던 호랑이가 돌아온다는 것은 그 지역의 생태계가 건강을 되찾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호랑이가 먹고 살기 위해선 먹이가 될 야생동물이 풍부해야 하고,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어야 합니다. 또한 호랑이는 최상위 포식자로서 야생동물들을 잡아먹어 생태계의 개체수를 적절히 유지하기도 해야합니다. 호랑이는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는 파수꾼인 셈입니다. 

임정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은 여전히 호랑이 복원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호랑이가 복원되는 속도보다 밀렵꾼에 의해 죽임을 당해 수가 줄어드는 속도가 훨씬 빠른 상황입니다. 임 연구원은 "호랑이를 복원하려면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며 "호랑이가 위험하지 않다는 걸 가르치는 건 오히려 쉬운 편이고, 사람들이 호랑이를 사냥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덴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Anyuisky Nation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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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과학동아 17호(9월1일 발행) 호랑이 호구조사 프로젝트

도움

김동진(별빛생태농원 대표, 전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이항(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임정은(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 야드벤드레이데브 잘라(인도야생동물연구소 교수)

[정한길 기자 jhg1roa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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