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문화의 전당 '한국가구박물관' 조선의 일상으로 타임슬립하다

2019. 9. 4. 11: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가구박물관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투어 온라인 사전 예약. 둘째, 투어 시작 30분 전 박물관 마당에 있는 라운지에서 예약자 본인 확인. 셋째, 정시가 되면 투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한옥으로 이뤄진 박물관 마당으로 입장할 것.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전부이며, 사진 찍을 시간은 넉넉히 5분 정도 주는 편이다. 그리고 박물관 실내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가이드 투어가 시작되는데,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중도와 몰입도가 높은 관람을 즐길 수 있다.

한국가구박물관-사대부집

▶박물관에서 보는 조선의 리빙 스타일

한국가구박물관에 가는 길, 마음은 한편 들뜨기도 했고, 다소 무겁기도 했다. 너무도 가고 싶었던 곳을 벼르고 벼르다 예약하고 가는 길이니 마음이 둥둥 뜰 수 밖에. 그러나 한편으론 실내 촬영이 절대 안 된다는 원칙 때문에 마음이 평화롭진 못했다. 사진이 필요한 직업에서 오는 아쉬움이기도 했지만 일부 촬영을 금지하는 박물관이나 갤러리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보수성을 염려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투어가 엄숙하고 위압적인 분위기이면 어쩌지?’ 그런 마음이었다. 박물관을 가기 위해선 지하철4호선 한성대역에서 마을버스 ‘성북02’를 이용해도 아무 문제 없지만, 이 날은 박물관 마당까지 택시를 이용했다.

마당에서 바라본 성북동 풍경. 저 멀리 북악산 능선과 서울성곽도 눈에 들어온다, 베롱나무(백일홍)가 활짝 열린 한옥 정원, 실내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마당.
한국가구박물관은 주차장과 한옥 라운지(방문자 대기실)가 있는 주변 공간과 전통 한옥으로 만든 박물관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라운지는 예약 확인과 입장료 2만 원을 내는 곳이다. 이곳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다. 보통은 2~3명이 동행하기 때문에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시간을 죽인다. 예약한 오전 11시가 되자 즉시 투어는 시작되었다. 박물관 건물의 커다란 대문이 열리자 담담한 느낌의 한옥과 깨끗한 잔디밭, 그리고 소나무 외에는 별다른 조경이 보이지 않는 마당이 가슴에 들어온다. ‘불로문’을 지나자 안채 마당이 나온다. 한옥도 눈에 들어오지만 마당 밖으로 보이는 성북동 전망이 마음을 확 끌어당긴다. 고급주택들이 메우고 있는 계곡 건너편 서울성곽이 아름다운 선을 잇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마당에 대한 해설사의 설명이 마음에 콕 들어왔다. 단어 하나하나를 녹취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기억을 더듬어 정리하면 이렇다.

“보시다시피 마당에는 나무 몇 그루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마당이지요. 우리 선조들은 마당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그냥 비워두는 거죠. 창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오면 담 너머 보이는 모든 풍경을 정원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자연 풍경을 빌려와 나의 가슴에 담는 ‘차경문화’인 것입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물론 한국가구박물관처럼 우뚝한 언덕 위에 솟아있는 집이야 전망을 가릴 그 무엇도 없으니 굳이 정원을 꾸밀 필요가 없겠지만. 생각해 보면 평지에 있는 한옥들도 정원을 요란하게 꾸민 경우를 많이 본 기억은 없다. 방문을 통해 마을 풍경을 다 볼 순 없지만, 어차피 대문 열고 나가면 세상 전체가 풍경이 되니 굳이 마당에 따로 구조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다. 해설사는 또한 ‘실내 촬영이 일체 되지 않으니, 사진이 필요한 분들은 이곳에서 한옥과 풍경을 담으시라’며 시간을 주었다.

▶조선 후기 리빙 스타일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가구박물관-서안(책을 얹던 책상), 서울 지역에 있던 전통 한옥들의 오브제들을 가져와 재조합한 한국가구박물관, 불로문은 하나의 돌로 만든다. 끊어지지 않는 생명을 이야기하고있다, 가구박물관 견학은 해설사 투어로만 가능하다.
가구전시실이 있는 한옥은 회랑채와 사대부집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대부집은 수유리에 있던 순정효황후의 사가를 옮겨 건축한 것으로, 가구 투어를 위해 두루두루 둘러보니 동선과 구조가 빼어난 공간이었다. 박물관 투어는 회랑채에서 시작되었다. 회랑이란 궁궐에서 임금이 비나 눈이 오는 날에도 자유롭게 궐과 궐을 이동하도록 만든 복도형 한옥인데, 이 집 회랑채 아래에는 ‘실로암’이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어서 풍취를 더해주고 있다. 회랑채 등에 사용된 고재들은 일제 시대 때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되면서 철거된 궁궐의 구조물들이라고 한다.

투어를 하던 그날. 날씨는 얼굴이 익을 정도로 무더웠는데, 실내는 아주 시원했다. 한옥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냉난방이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단, 한옥 디자인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찬바람이 나오는 구멍은 숨기거나 잘 보이지 않도록 했다. 한옥 곳곳에는 ‘분할문’들이 많이 있었다. 한옥 특유의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이용하면 이 공간을 다용도로(이를테면 회의, 행사, 결혼식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 공간은 그동안 세계적인 VIP들의 방문, 친교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에 열린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각국 정상 부인들이 다 함께 방문해 친교를 나누었고, 2013년에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방문했으며, 2014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가 찾아와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작년 2018년 초에는 2009~2010년에 걸려 우리나라와 아랍에미레이트 간에 맺었던 ‘비밀군사협의’ 해결을 위해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칼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의 회동 장소로 이곳 한국가구박물관 한옥이 사용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네이버창업자 이해진 등을 이곳으로 초치해 회담을 나누기도 했다.

밖에서 창을 통해 들여다 본 부엌
가구 전시실은 지하에 있다. 한국가구박물관에는 모두 약 2500여 점의 고가구가 있다. 70대인 정미숙 관장이 처녀 시절부터 인사동 등에서 수집한 가구들이다. 박물관에 전시되는 가구는 약 500여 점. 모두 직사각형 구조의 한옥 중앙 부분에 전시되어 있고, 관람객은 가장자리 복도를 이용해 설명을 들으며 구경하는 방식이다. 전시 가구는 시즌에 따라 전체가, 또는 일부가 변경되는데, 이번에 전시된 가구들은 조선 후기의 가구들이었다. 진품이든 모조품이든 이태원 등 고가구점에서 볼 수 있는 가구들이라는 말이고, 그만큼 친근감도 높게 느껴졌다.

처음 만난 가구는 ‘먹감나무’로 만든 가구들이다. 먹감나무는 감나무에 먹색이 입혀진 나무를 말한다. 먹감나무를 잘라보면, 어떤 나무는 그 먹색이 ‘산이 솟은 모양’, ‘파도가 물결 치는 모양’,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 등을 띄고 있다. 그래서 그 모양이 살려 마감재로 사용하면 멋들어진 가구가 완성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감나무에는 올라가는 게 아니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있었다. 감나무는 육질이 약하기 때문에 잘 부러지며, 자칫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구를 만들 때 골격을 잡아주는 부분은 소나무, 오동나무, 느티나무 등을 사용하고, 판재는 먹감나무를 사용, 마감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여주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지만, 먹감나무로 마감한 가구들은 정말 멋들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가구는 단풍나무 가구. 가구 색깔이 붉고 예뻐 주로 안방용 가구로 사용했다고 한다. 가구에 들어가는 장식도 원, 네모, 나비, 꽃 등 다양했는데, 원은 하늘, 네모는 땅, 나비는 남성, 꽃은 여성을 뜻한다. 제주산 휘가시나무로 만든 가구들도 특이했다. 세 번째로 만난 휘가시나무는 제주 현무암처럼 구멍이 숭숭 난 게 특징인데, 구멍에 석회가루, 진흙 등을 메꾸면 독특한 디자인이 나온다. 그런데 이 나무로 만든 가구의 문이 참 특이했다. 문이 미닫이와 여닫이를 겸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미닫이, 거기서 더 활짝 열고 싶으면 여닫이로 열면 모두 열리는 것이다. 함과 장, 농의 변화무쌍한 쓰임새도 이곳에서 배울 수 있었다. 다음은 자개장. 자개장 앞에 서면 노인들은 누구나 ‘그때 그 자개장을 내가 왜 버렸을까?’ 후회하며 웃고, 아이들은 ‘할머니네 집에서 본 가구잖아!’ 하면서 반가워한다고 했다. 거북이 등껍질 가구도 보았다. 거북이 등껍질 가구는 세월이 갈수록 파괴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처음에 보긴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북이 등껍질 부분이 훼손되기 시작하는 것이고, 현재 기술로는 그 현상을 늦추거나 막을 도리가 없다고 한다. 거북이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60년 전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가구는 루이비통 트렁크와 아주 유사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루이비통백의 디자인과 한옥은 잘 어우러지는 맛이 있는 것 같았다.

투어가 시작될 때만 열리는 대문, 부엌 옆에 있는 장독대
특별한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옻칠가구가 그것이다. 목가구를 견고하고 오래 사용하기 위해 옻칠을 하면 붉어지기도 하고, 검은색을 띄기도 하는데, 붉은색은 주칠가구, 검은색은 흑칠가구라 불렀다. 이런 가구들은 궁궐에서 나온 것들이 많은데, 한국가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주칠가구 중 평상의 경우 10장생 문양 등을 근거로 ‘궁궐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약장 가구 전시장 앞에서는 신기한 약장의 비밀을 확인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서랍은 상식적인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가구 아랫 부분에 귀하거나 비싸거나 위험한 약재 등을 꼭꼭 숨겨두는 공간도 마련해 두었다. 가구의 문을 열어도 눈에 띄지 않고, 고개를 더욱 숙여야 나타나는 디자인이었다. 가구 장인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어 보였다. 오동나무로 만든 책함은 책의 사이즈에 맞춰 제작한 것으로 책 뚜껑이 저절로 열리지 않게 하는 장치, 보관 중인 책에 대한 인덱스 등 과학적인 아이디어들이 돋보였다. 함, 책상, 관복장은 단순하고 소박한 디자인들이 오늘의 번잡스러운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오동나무 가구 앞에서는 한 관람객의 에피소드가 전해졌다. 어느날 80대 노인이 찾아왔다. 오동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자, ‘내가 실제로 그런 일을 겪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열 여섯 살 되던 해였다.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그 나무를 베어 방에 갖다 놓으셨다. 마치 사람 돌보듯 들여다 보고, 만지고, 쓰다듬고, 뒤집고를 하신 것이었다. 자신이 시집을 가게 되자 그 나무를 꺼내 장을 짜서 주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자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었고, 시집 갈(보낼) 때가 되자 가구를 준비했고, 결국 장롱을 짜서 혼수로 선물한 것이다. 오동나무 한 그루가 가구가 되려면 15년쯤 자라야 하는데, 그 시점을 예측하고 나무를 심고 가꾸다 이윽고 가구까지 만들어 주신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들의 속 깊은 정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하기사, 지금도 마당만 있다면 못할 것 없을 일이다.

부엌가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조선의 부엌가구는 느티나무로 많이 만들었다. 느티나무는 나뭇결이 거칠면서도 화려하다. 어떻게 보면 용 같기도, 호랑이 같기도 하다,고 해설사가 설명해 주었다. 실제로 느티나무를 베어보면 옹골차고 단단하다고 한다. 또한 강력한 향기가 다소 역하게 나는데, 그것이 바로 방충, 방균 역할을 해서 해충이 꼬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느티나무 외에는 은행나무, 피나무 등이 부엌가구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음 전시대로 가자 뒤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뒤주는 그 안에 어떤 곡물이 들어가냐에 따라 쌀뒤주, 팥뒤주, 콩뒤주, 깨뒤주 등으로 나눠져 있고, 그 크기 또한 곡물의 크기, 곡물 사용 빈도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쌀뒤주는 사이즈가 큰 편인데 전체가 쌀뒤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윗 부분의 문을 열어 팔이 내려갈 수 있는 깊이까지만 쌀 뒤주 역할을 하고, 아랫부분의 별도 문이 있는 곳은 접시 등을 보관하는 수납장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이런 뒤주를 ‘뒤줏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뒤주는 골격과 골격을 못으로 고정하는 방식이 아닌, 서로 맞물려 연결하는 방식이라 그중 하나가 썩거나 망가지면 그 부분만 떼어 새 각재를 넣어 수리했다고 한다.

‘소반’ 전시대 앞에서는 마음이 조금 복잡해 졌다. 우리나라는 원래 ‘혼밥’ 시스템이었다. 한 방에서 밥을 먹어도 아버지 상 따로, 자식들 상 각각 따로 만들어 식사를 했다. 그 관습은 오래오래 이어져 현대까지 이르렀었는데, 한국전쟁 때 깨졌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난리통에 정신 없어 죽겠는데, 뭔 밥상을 따로 차리냐’며 한 밥상 모여 밥을 먹었다. 그 덕(?)에 어머니, 누이들의 일손은 아주 조금 줄어들게 되었다. 한국가구박물관에는 한반도 북부 지역의 해주반, 중부지역의 나주반, 남부지역의 통영반 등 소반들을 소유하고 있다. 해주반은 북방 특유의 복잡하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고, 나주반은 단아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통영반에는 대나무반과 조개로 무늬를 넣은 디자인이 자주 발견된다. 결국 소반에도 지역 산물이 적용된 것이다. 전시된 소반 가운데 ‘회전반’이 눈에 띄었다. 회전반은 상판이 돌아가는 상과, 농번기 때 소반에 상을 차려 머리에 이고 나가는, 그리하여 사방이 잘 보이도록 시야를 확보해 주는 소반이라고 한다. 소반은 다리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호랑이 다리를 닮았다는 호족반, 개다리 모양의 개다리소반, 말다리를 압축해 놓은 듯한 말다리소반 등이 그것이다. 다리가 하나 달린 ‘일주반’도 전시되어 있다. 일주반은 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 물그릇 등을 올려놓는 상을 말한다.

▶사대부집 방바닥에 앉아 느껴보는 가구 인테리어와 차경문화

한국가구박물관 앞을 지나는 대사관로. 이길을 가까운 곳에 정릉, 길상사, 우리옛돌박물관 등이 있다.
해설사는 관람객 일행을 사대부집 건넌방으로 인도, 모두 앉도록 했다. 앉은 눈높이로 방을 둘러보자 창문과 내 눈과 가구들의 높이가 일직선상에 보인다.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은 가구를 들일 때 사람의 ‘기’를 중심으로 배치를 달리했다고 한다. 사람의 앉은키보다 높은 큰 가구들은 ‘가구가 사람의 기를 누른다’ 해서 대청 등 사람이 기거하지 않는 곳에 놓고, 안방이나 건넌방에는 사람의 앉은키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구를 배치, ‘사람의 기를 살려주는’ 조화를 만들었다. 특히 납작한 가구들은 사람이 누워 자는 안방에 넣어 자는 동안 기가 살아나도록 도모했다. 물론 이런 원칙이 모두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앉았던 건넌방에는 성인 가슴팍쯤 오는 키 큰 가구도 있었다. 장식용 가구였다. 이런 가구들은 ‘사방이 뚫려있어 분위기를 억압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건넌방 문을 열자 시원한 대청마루가 눈이 들어온다. 이곳의 대청마루에는 보료와 병풍이 놓여있었다. 해설사에 따르면, ‘원래 예전의 대청마루에는 아무것도 놓여져 있지 않았다. 단지 이곳에 보료 등을 설치해 둔 것은 당시 조선 남성의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대청마루 끝에 있는 분할문을 열자 ‘안방’이 등장한다. 안방은 바로 여성(정경부인)이 주인. 해설사는 관람객들에게 안방과 이어져 있는 ‘누마루’ 앞에 꼭 앉아볼 것을 권했다. ‘누마루’는 이 집의 남편의 ‘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누마루 창문은 그 모습 그대로 하나의 액자였다. 그 안에는 마당의 소나무, 성북동 골짜기, 북악산 능선, 서울성곽이 있다. 이 그림에는 물감도 필요 없고 붓도 쓸모 없다. 게다가 이 액자에 들어오는 풍경화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한국의 차경문화(빌릴 차, 풍경 경)는 환경과 단순함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에 더욱 소중한 가치로 느껴졌다.

한국가구박물관 관람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다. 웹사이트에 가입 후 들어가 ‘가이드투어 예약’을 탭하고, 약관과 개인정보취급방침에 동의한 후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면 일단 예약 완료다. 그리고 당일 시작 30분 전쯤 방문, 관람료를 내면서 예약 확인을 하면 완전히 끝이 난다.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실내사진 제공 한국가구박물관 *해당 기사는 한국가구박물관 해설사의 설명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95호 (19.09.17)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티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