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r Story >"휴전선 155마일 곳곳 '야생화 벨트' 조성.. 꽃으로 통일 준비"

오명근 기자 2019. 8. 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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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이 지난 19일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 내 전나무 숲길에서 평소 아끼는 100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를 껴안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DMZ 희소식물 시범단지 만드는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철책선 안쪽의 황폐한 땅까지

북방지역 식물들로 생태 복원

아름다운 관광자원 거듭날 것

올해 출범 20주년 되는 수목원

식물자원 발굴·보전·복원 주력

생물 6220種 서식하는 광릉숲

한편으론 보전연구에 힘쓰면서

주민에 숲길 개방하며 ‘공유’도

자생식물 키우기 어렵다 하는데

종자증식뒤 농가 대량생산 추진

소비자가 쉽게 구입하도록 할것

이유미(57) 국립수목원장은 요즘 강원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자생하는 희소식물 시범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10년 동안 조사한 DMZ 철책선 부근의 희소식물들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희소식물 보전 연구관 출신으로 국내 멸종위기에 처한 많은 희소식물을 복원 증식하고 식물 유전자와 종자를 보관하는 종자은행(Seed Bank)을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섬시호 등 희소·멸종위기 식물 500여 종의 씨앗을 보전하고 이를 종자파종·조직배양 방법으로 복원·증식시켜 세계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 원장은 국립수목원장 취임 이후부터 연구보다는 생물권 보전지역(BR)인 광릉숲 보전을 위한 행정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인근 주민들에게 숲길과 수목원을 개방하고 주민들과 광릉숲을 지키기 위한 상생 협의를 계속해왔다. 최근 주변 지역의 각종 개발사업으로 숲 생태계가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광릉숲 BR 관리위원회 회의 개최를 서두르고,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이 광릉숲 보전을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개발사업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는 없지만 지자체가 BR 협력 기관으로서 개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9일 오후 경기 포천시 소흘읍 국립수목원 입구에 신축한 종합연구동을 찾았다. 책과 서류가 쌓여 있는 사무실에서 이 원장은 “오랜만이네요”라며 반갑게 맞이했다. 조금 후 사진촬영을 위해 육림호 인근 전나무 숲길로 이동했다. 전나무는 올곧게 자라고 힘들 때 위로가 돼주었다고 해서 이 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무더운 날씨인데도 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 때문인지 서늘하게 느껴졌다. 이 원장은 수년 전에 쓴 기고문 ‘나무처럼 풀처럼’을 되살리듯 “나무들이 햇빛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위로 올라가지만 서로 나눠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매우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국립수목원이 출범한 지 20년이 되었는데 그 역할은 정확히 뭔가.

“국립수목원은 최초 국가 수목원으로서 우리나라 산림 생물종을 조사, 분류, 수집하고 정보화하는 국가 연구기관이다. 산림 생물자원 가운데 사라져 가는 중요한 희소식물이나 우리 고유식물인 특산식물 같은 소중한 식물자원을 발굴, 보전, 복원하는 일을 한다. 또 광릉숲 생태계 및 생물 다양성의 보전 연구는 물론, 전 세계에서 모은 식물자원을 토대로 국가 자산인 바이오산업의 기반을 만드는 일도 수행한다. 희소식물 571종에 대한 복원, 증식, 전시뿐만 아니라 산림환경 교육, 수목원 관람 운영 등 광릉숲 보전을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500년 동안 보전된 수목원 광릉숲의 가치가 엄청날 텐데.

“광릉숲에는 특산식물 광릉요강꽃과 흰진달래 등 식물종 843종이, 하늘다람쥐와 황조롱이 등 동물종 2894종이 서식하는 등 모두 6220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늘다람쥐, 크낙새, 장수하늘소 등 포유류·조류·곤충류 21종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2010년 6월 유네스코 BR로 지정됐다. 핵심지역(754㏊)·완충지역(1657㏊)·전이지역(3만5643㏊)으로 나눠 관리되고 있다. 세계 생물 정보 80%를 제공할 정도로 생물 다양성이 높은 곳이다.”

―지난 2014년 국립수목원 원장에 취임한 이후 주요 성과가 있다면.

“원장이 되고 나서 직원들과 함께 양평군 용문면에 유용식물 증식센터를 설립했다. 희소식물이나 유용식물을 확보해 자원화하고 첨단 기술로 증식 분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시 목적보다는 국내외 희소식물에 대한 공동연구를 통해 식물을 분양하고 신약 개발 등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는 강원 양구군에 있는 DMZ 자생식물원으로, 직원들이 DMZ 일대를 조사해 하나하나 야생화 씨앗을 받아 키워 조성했다. 통일에 대비해 훼손된 DMZ에서 자생하는 식물 종자를 확보해 그 자리에 복원, 식물을 키움으로써 미래 DMZ 식물 거점 역할을 하는 자생식물원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한국형 정원 등 정원 분야별로 식물을 키우는 데이터를 구축하고 정원산업에 대한 연구체계를 만든 것이다.”

―최근 국립수목원이 시행한 사업은 뭐가 있나.

“절대 보전림에서 생물을 탐사하는 바이오 블리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멸종위기종인 작은관코박쥐·담비, 국제 관심종인 삵, 광릉숲에만 서식하는 사슴벌레붙이 등 1424종의 생물종을 발견했다. 특히 지난 5월 희소 난초과 식물로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비자란을 복원하는 데 성공하고 나도풍란·금자란의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야생 자두나무·송라·무당벌레붙이류 등 신종과 미기록종(식물·곤충·버섯·지의류) 439종을 발견했다. 지난해 식물을 증식 분양한 건수만 405건에 달한다. 2014년 광릉요강꽃 엽록체 게놈(유전체) 지도를 세계 최초로 완성하고 2016년 신갈나무 신록 지도를 국내 최초로 작성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표본관에 113만 점의 표본이, 종자은행에는 4814종이 보관돼 있다.”

―국립수목원에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뭔가.

“멸종위기종 장수하늘소와 광릉요강꽃을 복원 증식한 일이다. 장수하늘소는 복원이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광릉숲에서 장수하늘소와 알 3개를 발견한 지 18개월 만에 확보한 원천기술로 성충을 만들어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이 잘 서식하는지 비행거리 등을 모니터링한다. 꽃잎이 항아리처럼 동그란 모양의 광릉요강꽃도 오랜 세월에 걸쳐 복원,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광릉요강꽃 복원 효과를 인접한 자생 개체군의 특성과 비교한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게재하는 등 광릉요강꽃 복원 기술을 세계에 공유했다. 올봄 문을 연 광릉요강꽃 보존원은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요강꽃을 보고 싶어 하는 식물애호가와 사진작가들로 북적인다. 머지않아 이곳을 광릉요강꽃 밸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광릉숲 보전 계획에 따라 우회도로를 건설하고 관통도로 폐쇄 등을 추진 중인데 주민들을 위한 사업도 잘 진행되고 있는지.

“최근 수목원 정문∼봉선사 입구 3㎞ 구간에 ‘광릉숲길’을 덱으로 조성해 놓았다. 주민들이 봉선사천을 따라 옛 울타리 안에 조성한 숲길을 걸으면서 산세와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고 사전예약 없이도 수목원을 관람할 수 있다. 숲을 공유하고 느낄 수 있는 숲길을 만들어 지켜나가자는 취지로 개방했다. 최근 정문∼수목원 주차장 1.1㎞ 구간도 숲길로 조성돼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방문센터 앞에는 도서관과 문화공간을 만들어 주민들이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전시회·음악공연을 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주민들이 지역에서 많은 혜택을 받아야 숲을 사랑하고 보전할 수 있다. 포천시 소흘읍 주민들이 올해부터 포도와 배 등 농산물에 대해 유네스코 인증마크를 사용해 출하할 수 있도록 했다. 매년 개최하는 광릉숲 문화축제에도 참석해 BR 숲의 가치를 알리고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주민들이 사전예약 부도율 10% 범위 내에서 수목원에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관통도로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존치하고 있지만 하루 4600여 대(주말 6000대)의 차량이 통행하면서 배기가스를 내뿜어 노거수(老巨樹)를 고사시키고 있다. 현재 우회도로 개설과 함께 수목원 입구에 주차장을 조성해 놓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민동의를 받아 관통도로를 폐쇄해 차 없는 길을 조성할 수 있다.”

―광릉숲이 주변 지역 개발로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는데 광릉숲 보전을 위한 대책은.

“지자체와 주민이 모여서 광릉숲 보전을 위해 논의하는 구조가 취약하다. 이제 BR 보전센터가 활성화돼 지자체와 주민들을 엮어 거버넌스 역할을 할 예정이다. 수목원은 기술과 전문인력을 제공하는 등 진정성을 갖고 보전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수일 내로 국가기관, 지자체, 주민대표가 참여하는 BR관리위원회 회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소각장·가구단지 조성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순 없지만, 광릉숲 가까운 곳에 대기오염 시설이 들어서는 데 대해 우려가 크다. 지자체가 개발사업을 추진할 경우 정밀하게 조사하는 등 대안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보전센터가 인근에 소각장이 신설될 경우 광릉숲 생태계 전반에 대한 환경영향 평가를 추가로 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안다. 유네스코에 BR 신청 시 단체장 이름으로 서명한 시·군들은 BR 관리계획을 협의하고 광릉숲 보전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국가기관과 지자체, 주민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대 발굴하고 만들어 나갈 일이다.”

―태풍·수해 등의 자연재해와 소나무 재선충병 등 병충해에 대한 대책은.

“예보 시스템을 준비하고 수목원 지점마다 풍속·강우량 측정 장비를 설치해 자연재해를 막고 있다. 재선충병을 방지하기 위해 광릉숲 국유림에 대해 예방주사를 놓거나 동정센터에서 해충, 애벌레를 잡아낸다. 기후변화에 따른 도심 온도를 낮추고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녹지 조성에 대한 노하우를 지자체에 알려주기도 한다.”

―수목원이 많이 달라졌는데.

“최근 산림동물원이 없어졌다. 백두산 호랑이 수컷 1마리가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으로 이송되는 등 다른 동물들은 전문 시설로 이전·분양하거나 자연 방사했다. 대신 소리 정원을 복구하고 곳곳에 산책로를 조성 중이다. 곤충전시회, 자생식물·희소식물 전시회, 분재·세밀화전시회, 열대온실 등이 인기가 높다. 여름숲 캠프와 산새탐험 등 다양한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일요일도 개방할 예정이다.”

―생물종 보전을 위해 각종 학술행사를 개최하고 해외 식물원과 국제교류가 활발한데.

“지난 5월 ‘수목원의 역할’을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 데 이어 지난달 국내 희소 및 멸종위기 식물 종복원 대책 마련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했다. 해마다 열리는 생물다양성 보전 국제심포지엄은 세계 유명 학자들로부터 배우고 우리 식물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 세계 각국 식물원으로부터 공동조사 연구 제의를 받기도 한다. 우리가 동아시아·중앙아시아 보전 네트워크 의장기관을 수행하는 등 세계 식물원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각 공·사립수목원과 식물원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사업계획이 있다면.

“우선 휴전선 155마일 DMZ 철책선 곳곳마다 자생식물 생태복원을 하는 야생화 벨트사업을 해보고 싶다. 이른바 꽃으로 하는 아름다운 통일 준비 작업이다. 현재 군부대 협조를 받아 양구 DMZ 자생식물원 인근 철책선 부근에 지역을 대표하는 야생화 종자를 확보해 복원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철책선 안 황폐한 땅을 야생화로 덮으면 경관이 아름다운 생태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북방지역 식물로 철책선까지 생태 복원되는 꿈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외국식물이 너무 많아 자생식물을 키우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자생식물 종자를 증식해 농가에서 대량 생산하고 소비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자생식물 보급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인터뷰 = 오명근 전국부 차장 om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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