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근린생활자들의 '웃픈' 몸부림

최재봉 2019. 8. 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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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사진)의 단편집 <근린생활자> 의 표제작은 주인공 상욱이 공인중개사의 입에서 나온 '근생'이란 말의 뜻을 묻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근생이란 근린생활시설의 줄임말.

<근린생활자> 에 실린 여섯 중단편은 말하자면 상욱과 같은 비정규직 근린생활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나 '내 집 마련'의 꿈은 허무하게 날아가고, 상욱이 "전원을 다시 껐다 켠 기분"을 느끼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결말은 근생과 비정규직에서 벗어나는 일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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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한겨레출판·1만3500원

“근생이 뭔데요?”

배지영(사진)의 단편집 <근린생활자>의 표제작은 주인공 상욱이 공인중개사의 입에서 나온 ‘근생’이란 말의 뜻을 묻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근생이란 근린생활시설의 줄임말. 소설 맥락에서는 상가로 준공 허가를 받아 놓고 주거용으로 바꾼 공간을 가리킨다. 싼 전세를 구하던 상욱에게 전세가로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며 공인중개사가 소개한 것이 바로 근생이었다. 싸다는 점은 매력이지만, 불법 용도 변경이라 단속 대상이고 적발되면 원상복구에 벌금 등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떳떳한 주거 시설이 아닌, 불법적이고 불안정한 공간인 근생은 비정규직 승강기 수리 기사인 상욱의 직업에 어울리는 거주 형태라 할 수도 있겠다.

<근린생활자>에 실린 여섯 중단편은 말하자면 상욱과 같은 비정규직 근린생활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애를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연애조차 ‘안’ 하며 알뜰하게 모은 돈에 가족들한테서 빌린 돈까지 더해 근생에 깃든 상욱. 그러나 ‘내 집 마련’의 꿈은 허무하게 날아가고, 상욱이 “전원을 다시 껐다 켠 기분”을 느끼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결말은 근생과 비정규직에서 벗어나는 일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그런 어려움에 맞서는 주인공들의 태도 그리고 그 결말에 따라 수록작들을 분류한다면, ‘그것’과 ‘삿갓조개’는 가장 어둡고 불길하다. ‘그것’의 주인공은 산림청 소속 자회사의 정직원이며 사택에 살고 있는 ‘우수 사원’으로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회사 규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삶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드는 일이 발생한다. 귀농한 누이동생 부부가 차례로 암에 걸리고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데, 그들의 죽음이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이 그를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전국의 깊숙한 산지를 찾아가 진공관 저장드럼을 묻는 일. “어쩌면 핵폐기물이나 재처리 물질일지도 모른다”는 이 저장드럼의 정체는 소설이 끝나도록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는데, 주인공은 그 배후에 있는 거악을 향해 단신으로 돌진하다가 쓰러진다.

‘삿갓조개’의 주인공은 해안가 발전소의 도수관에 붙은 삿갓조개를 긁어내는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시급 900원 인상을 요구하며 동료들과 함께 파업을 선언하고 도수관에 들어가 버틴다. 그러나 그들의 파업은 전기 생산을 막는 행위로만 비치고, 발전소 당국은 “삿갓조개를 긁어내듯 도수관 안에 기어들어간 그들을 긁어내”려 한다. 최루탄 공격에도 버티던 주인공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온몸에 돋아나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쥐젖의 존재. 열악하기 짝이 없는 도수관 속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그는 삿갓조개를 떼어 내는 가위로 제 몸의 쥐젖을 긁어내던 끝에 자해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새 등에 자리잡은 삿갓조개가 그와 저수조 바닥을 결박하듯 묶어 놓고 있었다”는 결말은 죽음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직의 굴레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사마리아 여인들’의 주인공은 각각 도둑질과 몸 파는 일로 호구를 지탱하는 나이 든 두 여성. 등산객을 상대로 몸을 팔던 미자 언니와 그 사이 망을 봐 주던 ‘나’는 산림감시원에게 들켜 산비탈을 뛰어 도망치는데,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울음 같은 웃음이 튀어나왔고 의미 없이 흐르는 눈물 역시 멈추지 않았다”는 마지막 대목은 비애와 익살이 버무려진 삶의 진상을 인상 깊게 부조해 놓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장량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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