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무형문화재를 찾아>조개껍데기·나무와 시간이 빚은 장식.. "배울수록 미묘해요"

이경택 기자 2019. 8. 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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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현 장인이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의 ‘수곡공방’ 전시실에서 나전칠기 작품의 제작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위로부터 나전칠기 광택작업, 제품인 나비 당초문 구절판, 나전에 사용되는 소라껍데기.

⑮ 손대현 나전칠기 명장

1964년 무역회사 심부름일 하다

우연히 칠기공방 자개보고 반해

옻칠 대가 민종태선생 알고 사사

옻올라 고생하다 점점 매력빠져

전복·소라 등으로 12단계 공정

괴목함·주칠함·이층장 등 제작

현대화 위해 기업들과 컬래버도

중동부호 겨냥 TV 이니셜 새겨

“경남 창원의 다호리 고분에서 출토된 칠기 파편들은 우리 옻칠 예술사에서 귀중한 자료입니다. 기원전 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칠이 발라진 나무는 다 삭았지만 칠은 썩지 않은 채 발견됐습니다. 옻칠이 오래간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죠. 그리고 옻이야말로 자연이 준 최고의 도료라는 점도 학계에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수곡(守谷)공방에서 만난 손대현(70) 장인은 옻칠의 우수성에 대해서 먼저 말문을 떼기 시작했다.

손 장인은 국내 최고의 나전칠기(螺鈿漆器) 장인이다. 그는 대한민국 나전칠기 1호 명장(1991)이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옻칠장(1999)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나전칠기는 칠공예 장식기법 중 하나로, ‘나전’은 조개껍데기 등을 이용해 문양을 붙여서 꾸미는 것이고 ‘칠기’는 기물, 물건, 나무 등에 옻칠하고 마감한 것을 이른다.

“1964년 심부름 일을 하던 무역회사의 건물에 칠기공방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서 누군가 쟁반을 마감하며 광을 낼 때 자개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작정 찾아가 배워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나전칠기 옻칠의 대가인 민종태 선생의 존재도 알게 됐습니다.”

손 장인은 민종태 선생을 사사하기 위해 3년간 그가 있는 공방에 드나들며 칠을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고, 결국 1968년 전수생으로 들어가게 됐다.

“처음에는 옻이 올라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배우면 배울수록 나전칠기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나전의 빛깔은 좌측에서 보는 것, 우측에서 보는 것 그리고 위에서 볼 때, 아래에서 볼 때가 모두 달라요. 각도에 따라 빛이 미묘하게 바뀌죠. 마치 보석 같아요. 나전만이 지닌 아름다움입니다.” 나전칠기는 모든 소재가 자연에서 온 것이다. 나무도, 칠도, 조개껍데기도 자연 소재인데, 그중에서도 옻은 그 자체로 갖는 효과가 크다. 옻칠은 방습, 방열, 방충의 장점이 있는데, 옻으로 만들어진 소품 곁에 있다 보면 그 칠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옻칠은 주성분이 우루시올(urushiol·옻산)입니다. 고무질 효소와 다당류로 이뤄져 있는데 공기와 접촉, 온도와 습도가 맞으면 왕성하게 화학반응을 일으켜 옻의 고무질을 굳혀요. 옻칠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칠은 칠하는 순간 완성되지만, 옻칠은 나무와 흙, 물이 시간을 만나서 계속해서 완성돼 가는 영원성이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옻칠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옻칠 위에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금을 살짝 입히고, 중국은 조칠 기법이라고 해서 칠을 두껍게 한 후 조각을 한다. 반면 우리는 자연 재료인 어패류 즉 나전과 옻칠을 접목했다.

진주빛이 나는 전복이나 소라 등 어패류 조각을 옻칠한 목기물에 박거나 붙여 장식하는 나전칠기는 대략 12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간단히 설명하면 우선 조개껍데기를 숫돌로 얇게 갈아서 줄로 썰고 무늬에 맞게 끊음질을 한 후 바탕 나무에 생칠을 한다. 모양을 낸 조개껍데기를 토분 칠을 더한 바탕 나무 위에 인두로 눌러 붙인 다음 옻칠을 더한 후 광을 내면 완성된다.

현재 수곡공방에서는 옻칠 괴목함, 주칠함 등 옻칠 가구부터 나전칠 십장생 모란당초 무늬함, 국당초문 서류함, 나비당초문 이층롱, 모란당초문 이층장, 주칠 모란당초문 이층장 등 여러 제품을 만들고 있다.

작품 제작에는 전수 조교인 아들 손문규(38) 씨와 이수생 2명 등이 참여한다. 아들 손 씨는 대학에서 옻칠을 전공했고,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공방 이름이 ‘수곡’인 것은 제 사부인 민종태 선생의 스승이 궁에서 유물을 관리했던 전성규 선생인데 그분의 호가 수곡이었고, 제게까지 수곡이란 호가 대물림된 것이죠. 한문 뜻풀이를 보면 ‘작은 골짜기를 지키라는 것’인데 나전칠기는 겉이 번드르르해도 속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단계와 과정에 정성을 기울이라는 의미로 전해주신 것 같습니다.”

손 장인은 나전칠기의 현대화를 위해 기업과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BMW 7시리즈 코리안 아트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BMW의 자동차 내장재 나전 장식을 맡기도 하고, 삼성전자에서 102인치 텔레비전을 개발했을 때 강화압출알루미늄 소재에 옻칠로 중동 부호들의 이니셜을 새겨 수출하기도 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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