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방, 안방 저리가라

김충령 기자 2019. 8. 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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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부엌의 진화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샘 사옥 7층에 마련된 쇼룸. 100㎡ 크기의 모형 주택에 들어가자 탁 트인 주방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은 거실과 같은 공간처럼 이어졌고 부엌 중앙에는 거실을 바라보는 형태의 '아일랜드 식탁'이 있었다. 한편에 있는 짙은 회색 문을 열자, 냉장고의 내부였다. 냉장고를 주방가구 안에 빌트인한 뒤 수납장 문과 냉장고 문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아일랜드 식탁의 표면을 일부러 동전으로 긁어 흠집을 냈다. 긁힌 지점에 젖은 헝겊을 올리고 다리미로 열을 가하자 흠집이 사라졌다. 오염과 긁힘에 강한 '페닉스(FENIX)'라는 특수 소재를 쓴 것이다. 이탈리아 소재 업체 '아르페 인터스트리알레'가 개발한 소재다. 주방의 서랍을 열었다가 힘껏 밀었다. 쭉 미끄러져 가다가 속도가 줄더니 충격 없이 부드럽게 닫혔다. 독일의 '블룸(Blum)'이 만든 서랍이다. 옆에 있던 한샘의 직원은 "수만 번 여닫아도 잔고장 하나 없다"고 말했다.

조리대에서 거실 쪽을 바라보며 음식을 만들 수 있는 형태인 '아일랜드 식탁'형으로 구성된 한샘 키친바흐의 주방 가구. 조리대 뒤의 수납장 속에는 냉장고·오븐 등의 가전이 빌트인 형태로 들어가 있다. /한샘

부엌이 진화하고 있다. 한때 아파트 부엌마다 천편일률적이었던 '시스템키친'에서 벗어나, 하나의 디자인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프리미엄키친' 시대가 등장하고 있다. 국내 가구 1위 업체인 한샘은 프리미엄 부엌가구 브랜드 '키친바흐(Kitchen Bach)'를 선보이고,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한샘 관계자는 "고객은 '레디 메이드(ready-made·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이미 만들어져 나온다는 의미)' 형태로 만들어진 주방 가구를 살펴본 뒤 자신의 집 구조에 맞게 구성해 하나의 콘셉트로 주방을 꾸밀 수 있다"고 말했다.

구석에 있던 부엌이 집안의 중심으로… '요리남' 고려해 조리대도 높아져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부엌은 아궁이를 통해 난방·취사를 함께 하는 곳이었다. 마루나 방과 분리돼 있었고, 주부는 쪼그리고 앉거나 허리를 굽혀 조리했다. 1970년대 이후 아파트가 보급되며 국내에도 '입식 부엌'이 등장했지만, 주방은 거실과 분리된 공간이었다. 주방가구에 디자인이란 개념도 희박했다. 1990년대 이후엔 한국 여성의 평균 신장을 고려해 조리대 높이가 85㎝로 통일됐고, 싱크대·조리대·가스레인지가 순서대로 이어진 과학적 동선이 일반화됐다.

2010년대 이후 가구와 주방가전을 결합한 빌트인이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남성도 요리하면서 조리대는 최대 89㎝로 높아졌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요리할 때 거실에 있는 가족을 등지고 요리했지만, 아일랜드 식탁에선 가족을 바라보며 조리한다"고 설명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가격에 상관없이 지갑을 여는' 소비 트렌드도 주방가구 시장을 활성화하는 요소다. 최근에는 집에서 여가·취미 생활을 즐기는 홈리빙족이 증가하면서 주방 꾸미기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28조4000억원 규모던 국내 인테리어·리모델링 시장은 2020년 41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실제 키친바흐 주방가구의 경우 50평형(약 165㎡) 기준 1500만~2000만원(가전 별도)의 비용이 든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2006년 출시 당시만 해도 연간 500세트 정도밖에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샘 측은 "지난해 기준 연평균 1만2000세트 이상 시공할 정도로 수요가 많다"고 했다.

부엌 가구의 품질 보증 기간 10년

한샘은 지난 4월 키친바흐의 품질 보증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늘렸다. 부엌 점검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달 초 한샘은 "기존에 키친바흐를 구매한 고객에 대해서도 최대 10년의 품질 보증 기간을 소급해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품 불량이 발생할 경우 무상으로 수리받을 수 있다. 통상 가구의 품질 보증 기간은 1년이다. 김덕신 한샘 키친바흐사업부 전무는 "한 번 구매하면 평생 쓰는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고객에게 각인시킬 것"이라고 했다.

주방 리모델링 시공 기간도 1~2일 정도면 가능하다. 전국의 주요 매장에서 '공간 가상 설계' 서비스도 제공한다. '홈플래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집 도면 위에 원하는 가구를 배치해 입체(3D) 이미지로 보여주는 식이다. 고객의 취향에 맞춘 '와인레스토랑' '카페' '쿠킹랩' 콘셉트의 주방 가구 라인도 내놓았다. 한샘 관계자는 "홈플래너를 이용해 주방을 바꾼 가상 모습을 미리 볼 수 있게 해 리모델링 시행착오를 확 줄였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가족 위해 고생하던 세대에게… 좋은 부엌 돌려주고 싶어"

"평생 가족을 위해 묵묵히 고생한 세대에게 집이라는 공간을 돌려주겠습니다." 지난달 29일 한샘 사옥에서 만난 김덕신〈사진〉 키친바흐사업부 전무는 "예전의 부엌은 벽을 바라보며 밥을 하는 곳이었지만, 이젠 거실과 연결된 집 안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고(最高)의 부엌에 관심이 가장 많은 고객층은 50대 후반 이상의, 대형 주택에 거주하는 은퇴 세대"라고 했다. 실제로 프리미엄키친인 키친바흐 고객의 80%는 50평(165㎡) 이상 주택 거주자다. 평생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집을 꾸민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채 살아온 세대라는 것이다. 경제적 성공을 이뤘지만, 인테리어는 초보다. 김 전무는 "은퇴를 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은데 인테리어를 할 줄 모르다 보니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부엌이란 공간을 아내에게만 맡겼다가 은퇴하면서 요리에 관심을 가지는 남편들도 많다"고 했다.

그는 "키친바흐는 한국의 주택형에 맞는 1003개의 모델을 갖추고 있어 고객의 집에 딱 맞는 주방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본사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리모델링 시공을 일일이 감독하고, 애프터서비스(AS)를 본사로 일원화해 책임지는 구조"라고도 했다. 김 전무는 "특히 주방은 물과 불을 쓰는 공간인 만큼 시공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 번 구매하면 평생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키친바흐의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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