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51) '피리와 쥐' 獨 하멜른, 스토리텔링과 기획이 빛난다.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 2019. 8.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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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하멜른(Hameln)은 인구가 고작 5만 6천 여명에 불과한 소도시다. 아니 도시라기 보다는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시골 같은 곳이다.

하멜른은 독일이 자랑하는 ‘동화의 길’의 보석 같은 존재. 콘텐츠와 관광이 결합된 작지만 강한 도시다./사진=손관승

박람회로 유명한 하노버에서 기차를 타고 50분 정도 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외진 곳이다. 크고 웅장한 도시보다는 작고 특색 있는 소도시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으려는 여행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여행지다.

작다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우선 하멜른 시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영어, 독어를 비롯해 무려 15개의 언어로 안내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중국어와 일본어 서비스도 있다.

그만큼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많이 찾는다는 뜻이다. 특히 요즘 같은 하절기에는 관광객들을 가득 태운 대형 버스들이 하멜른으로 몰린다. 무엇 때문일까?

하멜른은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도시 하나우에서 시작해 북쪽 항구도시 브레멘까지 600km에 이르는 ‘동화의 길’ 가운데 보석 같은 존재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The Pied Piper, 독일어 원어로는 Rattenfänger von Hameln)의 이야기가 발생한 곳이며 그림동화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절대로 뺄 수 없는 도시다.

5월부터 9월중순까지 일요일마다 하멜른의 결혼식장 건물에서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야외 공연이 펼쳐진다./사진=손관승

하이라이트는 일요일 정각 12시, 하멜른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결혼식장 건물 야외무대’(Hochzeitshaus-Terrasse)에서 거행되는 야외공연이다.

알록달록 화려한 문양의 복장을 한 피리 부는 사나이와 사악한 시장, 쥐 캐릭터로 분장한 아이들,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한 80명의 아마추어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벌써 60년 이상 계속되어온 장기 인기공연이다.

약 30분간 진행되는 이 무료 공연을 보기 위해 구시가지 광장은 일찌감치 관람객들로 가득 찬다. 공연 안내는 여러 나라 말로 동시에 이뤄진다.

공연이 끝난 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선두로 쥐로 분장한 아마추어 배우들을 따라 시민들과 관람객들이 함께 거리행진을 하기에 구도심 전체는 흡사 야외공연장처럼 변한다.

연극이 끝나면 알록달록한 복장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선두로 쥐 복장을 한 아이들과 시민들이 뒤를 따른다./사진=손관승

날씨 등의 사정으로 5월중순부터 9월중순까지 하절기에만 열리는데, 올해에는 5월 12일에 시작되어 9월 15일에 끝난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픽션이 아니다. 13세기의 한복판인 1284년 어느 날, 하멜른에서130명의 어린이들이 요술피리에 홀려 갑자기 홀연히 사라졌던 어둡고 슬픈 사연에 배경을 두고 있다.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은 역사적 기록에 남아있고 하멜른의 구도심 건물에도 새겨져 있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이 도시에 골치거리였던 쥐들을 잡아주면 보상해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나쁜 시장과 시민들과 관련한 부끄러운 이야기도 곳곳에 남아있다.

[미니정보]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역사적 배경

하멜른의 전통 건물들에는 요술 같은 소리에 이끌려 어린 아이들이 사라졌던 역사적 사실이 새겨져 있다. 부끄러운 역사의 기록조차 문화자산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사진=위키피디아

하멜른의 구시가지는 쥐 잡는 사람과 사라진 아이들 상징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쥐 잡는 사람의 집’은 관련 테마 장식으로 유명하다. 1589년에 건축된 라이스트하우스, 1607년에 세워진 뎀프터하우스 역시 관련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800여 년 전의 피리 소리는 이 도시에서 어린 아이들을 뺏어갔지만, 현재의 마술피리는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다. 부끄럽고 가슴 아픈 역사지만 이를 소재로 성공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감추고 싶은 역사조차 다루기에 따라서는 훌륭한 무형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그런가 하면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반에는 같은 장소에서 뮤지컬 ‘랫츠’(RATS)가 열린다. 유명 뮤지컬 캣츠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약 45분 동안 거행되는 이 작은 뮤지컬은 같은 사건을 소재로 영국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쓴 시에 영국 작곡가 나이젤 헤스가 현대적인 음악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왈츠부터 랩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노버에서 열렸던 ‘엑스포 2000’ 관련 행사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공연이다.

뮤지컬 ‘랫츠’.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반에 하멜른 결혼식장 야외 테라스에서 열린다./사진=하멜른 시 제공

피리 부는 사나이와 나쁜 시장에 이어 ‘쥐 왕’(Rat-King)이라는 제 3의 캐릭터를 가미했는데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 덕분에 해를 거듭할수록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해에는 3만 5천명이 이 작은 뮤지컬을 관람하였으니, ‘작은 쥐들의 빅 히트’(Little Rats and big Hits)라는 주최측의 말이 허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두 공연 모두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열리지만, 이처럼 장기 공연이 가능한 데는 하멜른 시뿐 아니라 향토 기업들의 후원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다. 작은 도시의 재정형편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 공연자뿐 아닌,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도 단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범 시민적인 문화 페스티벌이다.

그러면 하절기가 아닌 비시즌에는 어떻게 대처할까? 하멜른 시는 실내 공연장인 ‘피리 부는 사나이 홀‘(Rattenfänger-Halle)을 적극 활용한다. 2,300명의 관객이 수용 가능한데, 2014년부터 이곳에서는 ‘미스티카 하멜론’(Mystica Hamelon)이란 이름의 중세 판타지 시장이 선다.

2015년부터 10월이 되면 ‘가을 달 축제’(Autumn Moon Festival)이 거행되는데, 포크, 뉴웨이브, 얼터너티브, 헤비 메탈 등 실로 다양한 음악 축제다. 수천 명의 방문객들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는다.

하멜른 시 주변의 자연경관을 둘러보는 자전거 투어. 문화와 자연, 공연이 결합한 관광상품이 잘 구비되어 있다./사진=하멜른 시 제공

그런가 하면 올해 8월 1일부터 3일까지는 ‘하멜른 맥주축제’(Hamelner Bierfest)라는 행사도 열린다. 독일맥주뿐 아니라 벨기에, 영국, 덴마크, 미국 등 20개 맥주회사의 250개 종류의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축제다.

하멜른은 보존가치가 높은 베저-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파흐베르크하우스(Fachwerk haus)라 부르는 목재 골조의 전통 가옥도 만날 수 있다.

여행자 안내소 건물은 도시의 규모에 비해 매우 크고 또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연간 100만 명 이상 되는 방문자수에 걸맞게 기념품도 다양하다. 연필, 메모장 같은 필기구에서 시작해 향수, 과자류에 이르기까지 무려 250점에 이르는 기념품들은 대부분 피리 부는 사나이와 쥐라는 캐릭터에 맞춰져 있다.

호텔 예약, 도보 가이드 투어 같은 상품도 물론 잘 조직되어 있다. 작은 도시가 갖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근의 하노버와 협력관계를 구축해 박람회가 열리면 여행상품으로 연계하는 시스템도 훌륭하다.

피리 부는 사나이 분수 곁을 지나가는 여행자들. 무형자산과 유형자산을 결합한 전략으로 특화된 소도시다./사진=하멜른 시 제공

하멜른은 이처럼 유형의 문화유산과 스토리텔링이라는 무형의 유산을 적절히 결합시켜 축제 등 다양한 가치사슬을 만들어냈다. 문화와 콘텐츠에 특화된 21세기형 관광상품의 새로운 모델이다. 쥐를 모으고, 아이들을 불렀던 하멜른의 피리는 이제 황금피리가 된 것이다.

독일출신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자신의 책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고 주장했다. 작은 조직은 크기에 맞는 자기만의 생존전략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작고 아기자기한 것이 매력자본일 때도 있는 법이다. 하멜른이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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