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윤홍식 2019. 8. 2.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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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 포구로 향하는 심각한 표정의 이순신(최민식) 장군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난세다. 중국ᆞ러시아 연합훈련에 참여한 군용기가 반공식별구역을, 러시아 군용기는 영공(독도)을 침범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동맹의 굳건함을 외치자마자 트럼프는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변경하라고 요구했다. 설상가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당사국의 인내와 노력이 절실하고 주변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빌미로 한반도를 다시 전쟁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9ᆞ19 남북군사합의 폐기’를 요구했다. 마치 구한말처럼 한반도의 운명이 외부의 침탈과 내분으로 격랑에 휩싸인 듯하다.

더욱이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아베의 도발은 한일 간 정치경제적 충돌을 극한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베의 도발은 1960년대 이후 동북아의 경제적 번영을 가능케 했던 분업구조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다. 대기업이 일본에서 수입한 소재와 부품을 조립ㆍ가공해 중간재와 완제품으로 수출하는 방식으로 성장한 한국 경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확대하고 있다. 불매운동이 아베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름 없는 수많은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투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고개를 들어 역사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와 동맹국이라는 미국이 강자와 약자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이 싸움이 강자에게 유리한 싸움이라는 것을 확인해 준다.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위기에서 가장 큰 적은 외부의 적이 아니다. 적은 아베와의 갈등이 한국이 이루었던 경제적 성과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삶을 다시 가난했던 과거로 되돌릴지도 모른다는 내부의 두려움이다. 현재의 편안함과 물질적 부를 지킬 수 있다면 불의에 고개를 돌리고 외면해도 괜찮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이 몰고 올 두려움이다. 어찌 되든 집권만 하면 된다는 일부 정치세력이 자행하는 분열적 행위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1597년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왜군을 괴멸시킨 것도, 1939년 10여대의 전차만을 가용할 수 있었던 핀란드가 2,500여대의 전차를 앞세운 소련의 침략을 물리친 것도, 기원전 480년 1만여명에 불과했던 그리스 연합군이 수십만 페르시아 제국 군대를 물리친 것도, 내부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길 원하진 않지만, 아베 정권의 도발로 평범한 이들의 삶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베의 도발은 지금까지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생활 수준이 낮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국 사회가 엄두도 내지 못 했던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하는 경제, 경제성장의 성과가 공정하게 나누어지는 사회, 국민 서로가 짓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하며 공생하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우리 염원대로 사회ㆍ정치ㆍ경제 구조를 바꾸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의 정도를 우리는 알 수 없다. 불안한 미래에 우리는 두려워하고, 손쉽게 서로를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400여년 전 명량해전의 그날처럼 문재인 정부가 평범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나라다운 나라, 사람이 살 만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는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이웃의 약점을 찔러 곤경에 몰아넣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아베 정권에게는 없는 대의와 명분이 있다. 우리는 이웃에게 고통을 주었던 잘못된 침략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실현하며, 이웃 국가들이 상생하는 세상을 실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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