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테가미 쿄코의 비망록 [장르물 전성시대]

2019. 7. 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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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건이 나면 늘 범인으로 몰리는 남자

오키테가미 쿄코는 최고는 아니지만 ‘가장 빠른 탐정’이라는 수식처럼 모든 사건을 단 하루 만에 해결하는 명탐정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쿄코는 소위 ‘망각 탐정’으로 자고 일어나면 모든 기억이 리셋된다.

니시오 이신의 <오키테가미 쿄코의 비망록> 한국어판 표지 / 학산문화사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면 그 이미지는 비교적 명확한 반면 장르로 정의하기엔 여전히 모호한 구석이 있다. 우선, 이미 ‘소’설(小說)인데 굳이 ‘가볍다(light)’라는 의미까지 더했으니 도대체 얼마나 작고 가벼운 이야기이려나 싶을 만하다. 미스터리, 호러, 로맨스처럼 이야기의 내용이나 얼개를 제시하는 용어도 아니다. 그럼에도 라이트노벨이 비교적 젊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화풍 삽화가 가미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처음부터 영상화를 목표한 듯 독특한 소재나 세계를 구상화한다는 점이 더해져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니시오 이신의 작품을 보면 라이트노벨의 정체는 보다 명확해진다. 니시오 이신은 2002년 〈잘린머리 사이클〉로 데뷔한 이래 주로 현실을 조금 비튼 ‘이세계(異世界)’나 기현상을 앞세운 미스터리극을 선보이며 대표적인 라이트노벨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데뷔작부터 이어진 이른바 ‘헛소리 시리즈’는 미스터리 장르의 전형적인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과장된 캐릭터와 상황을 창조해 전에 없던 게임을 전개했다. 이형의 존재에 씐 소녀들을 구하는 〈괴물 이야기〉를 필두로 한 ‘이야기 시리즈’ 역시 전기(傳奇)적인 요소가 강하긴 하지만 결국 갖가지 난제의 원인을 추리하고 해결한다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구조를 띤다.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설정을 동원해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벌이는 이야기를 논리와 이성으로 정련해 새 영지를 개척한 작품들이다.

〈오키테가미 쿄코의 비망록〉은 본격 미스터리, 그 중에서도 코지 미스터리로 분류될 법한 작품이다. ‘코지(cozy)’가 의미하는 그대로 살인사건 같은 강력범죄를 차치한 ‘안락한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추리극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일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기존 코지 미스터리와 조금 결이 다르긴 하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카쿠시다테 야쿠스케는 사건이나 범죄와 맞닥뜨리면 늘 범인으로 의심받는 인물이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초등학교 시절 학급에 물건이 없어지면 왠지 모르게 범인 취급받던 녀석처럼 마치 천성인양 늘 용의자로 몰리기 일쑤였을 뿐이다.

그렇게 살아온 탓에 자연히 단골 탐정도 여럿이다. 이 중 오키테가미 쿄코는 최고는 아니지만 ‘가장 빠른 탐정’이라는 수식처럼 모든 사건을 단 하루 만에 해결하는 명탐정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쿄코는 소위 ‘망각 탐정’으로 자고 일어나면 모든 기억이 리셋된다. 그래서 명석한 추리력으로 하루밖에 유지되지 않는 기억의 빈틈을 메우고, 유명 소설가의 돌연사가 절대 자살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약 100권의 소설책을 자지 않고 읽는 기행에도 도전한다. 자신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몸 이곳저곳에 메모를 남기고, 이에 근거해 의외의 국면을 모색하는 창의력은 단연 발군이다. 기억, 즉 추리 과정이 유지된다는 당연한 전제를 배제한 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결국 미스터리 장르의 핵심으로 수렴된다.

늘 범인으로 몰리는 남자와 기억이 하루 단위로 지속되는 명탐정의 이야기라니, 과연 기존 추리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뜻밖의 ‘설정’이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이야기는 굉장히 새롭다. 굳이 살인이 아니더라도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한 사건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해답을 찾는 명탐정 쿄코의 방식은 온통 낯선 것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속편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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