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꿈 낙서판' 만들어 진로지도 "체험관 마련 특강도 합니다"

윤정아 기자 2019. 7. 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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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부산 신남초 교장은 “학생들의 주옥같은 편지를 읽고 있으면 눈시울이 젖어 온다. 아이들 생각이 이렇게 깊을 줄 몰랐다”며 “초등학교 선생님인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 학생들이 김 교장에게 감사편지를 전달하는 장면. 김미영 교장 제공

부산 신남초교 김미영 교장

교장실 밖 자유로운 낙서 공간

아이들 희망직업 적고 자기표현

‘곤충학자 꿈’ 많자 전시회 기획

입학식 땐 ‘피카츄’ 코스프레

장애학생과 매일아침 교문인사

특수학교 근무땐 인권상 받아

보컬밴드 만들어 콘서트 열어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 ‘꼭 요리사가 될 거예요’ ‘내 꿈은 우주 공학자’ ‘한 아이의 아버지!’ ‘꿈 없어요’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신남초교 교장실 밖은 학생들이 색색의 펜으로 남긴 낙서들로 가득하다. 일명 ‘꿈 낙서판’.(사진) 당장 교장 선생님이 나와 “이놈들! 낙서하면 안 돼요!”라고 외칠 것 같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의 꿈에 대해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낙서판에는 학생들의 미래 희망 직업뿐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그림이나 ‘꿈은 이뤄진다!’ ‘끈기, 희망’ 같은 구호들도 끄적여져 있다. 한편에는 ‘교장 선생님 사랑해요’ 문구도 적혀 있다. 이 낙서판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이 학교 교장 김미영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김 교장은 부임 첫해인 2017년 교장실 앞에 2개의 낙서판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낙서 공간을 만들어줬다. 2년 사이 6개로 늘었다.

“학교란 한 아이가 올바른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하는 곳이잖아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꿈을 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남을 배려하고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와서 자신의 꿈에 대해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낙서판을 설치하게 됐어요. 아이들은 저 같은 기성세대들은 잘 모르는 직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유튜버, 틱톡커,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직업들이죠. 이 낙서판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활동을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낙서판으로 인해 학생들이 교장실을 어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실제 아이들의 낙서는 진로 교육으로 이어졌다. ‘곤충학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쓴 학생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최근 학교 체육관에서 ‘곤충전’을 열었다. 살아 있는 곤충이나 애벌레를 직접 만질 수 있도록 체험관도 만들고, 곤충 표본 전시관도 마련했다. 야간개장으로 지역사회 아동들과 학부모들에게도 문을 열었더니 반응도 좋았다. 김 교장은 1∼6학년 모든 학급을 돌며 진로 특강도 진행했다.

김 교장은 학생들에게 ‘엘사 교장쌤’이라 불리기도 한다. 최근 두 번의 입학식에서 학생들에게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엘사’와 ‘피카츄’로 분장, 깜짝 코스프레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지도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신남초는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급을 운영 중인데, 그중에서도 A 군은 또래에 비해 학습능력과 사회성이 떨어져 학교생활이 어려웠던 학생이다. A 군의 마음을 열기 위해 김 교장은 매일 아침 교문에서 인사를 한 뒤 따로 불러 ‘20분 대화하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먼저 ‘하이파이브’를 건넬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 덕에 2년 연속 A 군의 짝꿍을 자청했던 권모(12) 양과도 ‘절친’ 사이가 됐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아무래도 소외받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권 양은 누나처럼 A 군과 함께하고 도와주던 모범적인 학생이었어요. 지난 겨울방학에는 ‘교장선생님, 사진 한 장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데, 제 얼굴을 그려보고 싶다고.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는 글귀와 자신의 사인이 담긴 그림을 선물해주더라고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전문가용 색연필을 전했죠. 비싸서 못 샀던 색연필이라며 활짝 웃는 아이 모습을 보니 제가 더 행복해지더라고요. 그 아이의 꿈은 복지사래요. 이런 맛에 교사를 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마음을 가진 아이들. 아이들에게 배우는 게 너무 많습니다.”

김 교장은 신남초에 오기 전 4년 반 동안 특수학교인 부산한솔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학교 최초로 장애 학생 보컬 밴드를 창설하고,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장애 인권교육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김 교장은 한 달 뒤면 교직을 떠난다. 교단에 선 지 40년이 흘렀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르쳤듯, ‘평생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은퇴 후 또 다른 제 꿈을 펼쳐보려 합니다. 브로치 디자이너요! 그동안 취미로 브로치를 만들고, 학교에 방문하는 분들께 선물로 드리곤 했어요.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죠. 학교 학생들도 제게 ‘교장 선생님, 꿈을 꼭 이루세요’라고 응원해줘요. 학교를 떠나는 게 많이 아쉽지만, 40년간 아이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벅찹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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