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상권] "여기가 영화거리 맞나요?".. 표지판 하나 없는 충무로

진현진 2019. 7. 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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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타임스 연중켐페인 '풀뿌리상권 살려내자'자문위원과 취재진이 방문한 충무로 영화의 거리. 과거 영화사와 필름 제작소가 넘쳐나 한국영화계의 본토로 불렸던 이곳은 '영화의 거리'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와 관련된 콘텐츠와 시설을 찾기 힘들다. 이슬기 9904sul@

1부. 풀뿌리상권이 경제 근간이다 2부. 풀뿌리상권 현장을 가다 15 서울 중구 상권Ⅱ 3부.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상권 정밀진단 충무로

충무로 2가·3가 일대, 여느 거리와 다름 없어

영화산업 구조 변화하며 골목도 침체기 들어가

서울시 영화거리축제·국제영화제 등 활기 모색

을지로 골뱅이 골목

젊은층 사이서 '힙지로'로 불리며 연일 시끌시끌

유명인 맛집으로 입소문…SNS게시물 5000건 이상

원조 '풍남골뱅이' 저녁 시간 만석 "꾸준한 인기"

'충무로 대표 거장, 충무로 샛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화감독과 떠오르기 시작하는 신인 배우를 일컬을 때 종종 붙는 수식어다. 충무로는 과거 영화 제작사들이 모여 있던 지역으로 지금까지도 한국의 '할리우드'로 꼽힌다. 하지만 충무로는 영화와 관련된 흔적 대신 동력을 잃은 낡은 인쇄소와 오래된 식당들만 즐비하다. 당연히 영화의 거리로 인한 주변 상권의 반사이익은 없다. 반면 충무로에서 걸어서 10여분 떨어진 을지로는 유사한 인쇄소 골목이지만 최신 유행을 뜻하는 '힙(Hip)'과 을지로를 합친 '힙지로'로 불리며 젊은 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이 이들의 희비를 갈랐을까.

◇'영화' 없는 충무로 영화의 거리=지난 2일 오후 푹푹 찌는 날씨에 찾은 충무로는 한산했다. 서울의 여느 거리와 다름없이 오래된 간판을 단 허름한 건물과 신축 오피스텔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을 바쁘게 걸어 다녔다. 주변을 둘러봐도 충무로가 영화산업의 메카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없다. 서울 중구청 홈페이지를 보면 '충무로 영화의 거리'를 땅바닥 한 평(3.3m2) 정도에 새긴 곳이 있지만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 충무로 지하철역 내부에 '충무로 영화의 길'이 벽면을 짧게 장식하고 있었지만 고전 영화 포스터 몇 점과 유명 영화배우의 캐리커처 등이 무심하게 그려져 있다.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충무로 영화의 거리는 한국 영화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충무로2가·3가 일대를 일컫는다. 충무로 영화의 거리는 1990년대 이후 영화거리로 지칭하며 시작됐다. 충무로의 역사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되는데 그때부터 나운규 감독을 포함한 영화인들이 충무로로 들어와 영화 제작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극장 근처에 사무실이 필요했고, 당시 예술가들의 요람인 명동과 경성 최대 번화가 종로보다 땅값이 싼 충무로가 적격이었다.

1950년대 말 17~18곳의 영화사가 충무로3가에 모여들었는데, 이때부터 충무로라는 지명은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충무로 일대는 1960~1970년대 이후 문화·예술·영화인의 거리로 유명해졌다가 영화산업의 변화 등으로 침체기에 들어섰다.

이에 서울 중구에서는 충무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활성화방안을 모색했다. '충무로 영화의 거리 축제'와 '충무로 국제영화제'가 그것. 하지만 영화의 거리 일대에서 한국영화 테마전시회와 축하공연 등을 기획했던 충무로 영화의 거리 축제는 2004년 시작해 2014년 제9회까지만 개최됐다. 충무로 국제영화제도 국내외 유명 영화배우·감독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상식, 영화상영 등의 행사를 야심차게 마련했지만 2007년 제1회 이후 2010년까지 단 4회 개최에 그쳤다.

충무로에서 38년째 구둣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씨(64)는 "몇 년 전 영화의 거리 축제 예산이 800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그걸로 어떻게 축제를 하느냐"며 "충무로가 영화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데 부산처럼 큰 시상식 하나가 없다. 말로만 "충무로, 충무로" 하는데 충무로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 중구청은 지난 2007년 충무로3가 옛 매일경제신문사 사옥에서 명보극장까지 도로 180m에 '충무로 영화 시범거리'를 조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카메라 등 각종 모양의 조명등을 설치하고 대종상 등 국내 유명 영화상의 트로피와 수상작 포스터 등을 전시해 영화의 거리를 찾는 시민들을 맞는다는 계획이었다. 또 과거 영화산업 관계자들의 주요 '만남의 장소' 가운데 한 곳이었던 스타다방 자리에는 영화를 테마로 한 카페가 들어서 영화배우 팬 사인회 등을 위한 이벤트 장소로 활용 하겠다고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거들었다. 지난 2011년 문체부는 약 50억원의 예산을 들여 충무로 일대에 한류 스타의 핸드 프린팅과 조형물, 한류 테마관 등의 시설물로 꾸며진 '한류 스타의 거리'를 조성하기로 했지만 무산됐다.

주변 상인들은 이제 기대조차 하지 않는 눈치다. 이 씨는 "충무로 상인들은 이제 관심도 없어요"라며 "전화나 인터넷이 없을 때 스타다방에서 다 연결되고 새벽 4시만 되면 전국에서 필름 받아가려고 줄 섰는데 이제 극장이 다 없어졌다. 서울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충무로는 발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젊어진' 을지로 골뱅이 골목=충무로에서 고작 500여미터 떨어진 을지로는 분위기가 달랐다.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에 모여 있는 낡은 인쇄소 골목은 유사해 보이나, 을지로는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라는 이름으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골목이 됐다. 그 중에서도 골뱅이 골목은 젊은 층 뿐 아니라 퇴근하는 직장인, 수십년 단골들이 고단한 하루를 털어버리는 곳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은 을지로3가역에서 중부경찰서 앞 사거리까지다. 1960년대부터 을지로 골뱅이 무침 가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한창 성업하던 시기 14곳에서 현재 8곳으로 줄어 영업 중이다.

1975년부터 을지로에서 영업을 시작했다는 '풍남골뱅이'는 이날 오후 6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만석이었다. 풍남골뱅이 사장 송영규(38)씨는 "이전에는 단골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젊은 층들이 많이 늘었다"면서 "단골들 역시 꾸준히 찾으면서 지난해랑 비슷한 수준으로 꾸준히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골뱅이 한 그릇 가격은 2만9000원. 결코 싸다고 할 순 없지만 감칠맛 나는 양념에 통통한 골뱅이가 손님들의 발길을 끄는 듯 했다. 이날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포장을 하려는 손님이 이어졌고 한 포장손님은 익숙한 듯 "골뱅이 무쳐먹을 수 있게 따로 포장해 주시고 골뱅이는 더 추가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송 씨는 "하루에 대기하는 인원만 40~50팀 정도 된다"며 "여름에는 손님이 더 많다"고 전했다. 풍남골뱅이는 특히 요리연구가 겸 CEO인 백종원이 단골로 이전부터 자주 찾은 곳이다. SBS TV프로그램 '3대 천왕'도 나와 식당에는 이 방송화면이 무한반복 된다. 송 씨가 아이디어를 냈고 손님들은 방송에 나온 대로 주로 시켜먹는다는 설명이다.

이날 취재진과 함께 충무로와 을지로를 둘러본 MJ소비자연구소 장문정 소장은 "잘 되기 위해선 특정 이미지가 떠오르는 상권이 되어야 하는데 안 되는 곳을 보면 이 이미지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며 "무기력하면 종업원들도 전염이 된다. 결국 사장님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진현진기자 2jinhj@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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