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쫓고 쫓기는 불법 '고래잡이' 단속 현장..해경, 육·해·공 압박 작전

김우영 기자 2019. 7. 2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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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고래잡이’ 육·해·공 합동 단속 현장에선...
단속 뜨면 잡은 고래 고기 바다에 버리며 도주
군산해경, 올들어 불법 포경업자 21명 검거해
해경 "마리당 7000만원씩 하니 그들에겐 ‘로또’"

지난 3월 9일 낮 12시 57분. 전북 군산시 어청도 남서쪽 63km 해상을 수색 중이던 해경 초계기 챌린저(CL-604)에 수상한 배 한 척이 포착됐다. 겉보기엔 일반 어선 같지만, 뱃머리에 작살과 망루가 설치돼 있었다. 10t 규모의 불법 고래잡이배였다. 갑판 위에는 고래 고기로 추정되는 물체가 하얀색 방수포로 덮여 있었다. 초계기는 즉각 인근 경비함정에 "단속하라"는 무전을 날렸다.

초계기가 포경선(捕鯨船)을 쫓는 동안 군산해경 함정들이 속속 현장으로 달려왔다. 적발된 사실을 알아챈 선원들 움직임이 빨라졌다. 방수포를 걷어내고 검붉은 고깃덩어리를 바다에 빠뜨리기 시작했다. 해경 관계자는 "저게 이른바 ‘바다의 로또’라고 불리는 밍크고래의 사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9일 전북 군산시 어청도 인근 해상에서 불법 고래잡이배 선원들(빨간 원)이 해경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고래 고기 등을 바다에 버리고 있다. /군산해경 제공



◇포경船 단속은 ‘증거싸움’…하늘서 찍고, 바다서 잡고
포경선은 시속 74km로 질주하며 뒤쫓는 해경 함정과 거리를 벌렸다. 그사이 선원들은 고래 사체는 물론 작살과 그물 등 포획 도구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다. 고압 호스로 물을 뿌리고 락스를 이용해 간판 위에 흥건했던 고래 피도 닦아냈다. 상공에서 초계기가 실시간 촬영을 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일단 증거부터 없애고 보자는 식이었다.

20여분 추격전이 펼쳐졌다. 해경 함정과 고속단정이 포경선에 바짝 다가가자 사실상 멈춰섰다. 해경 단속반이 포경선에 올라탔을 때는 눈에 보이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잡은 고기를 보관하는 어창(魚艙)도 텅 빈 상태였다. 선장 A(45)씨는 "고래를 잡았다는 증거가 있냐"고 고함부터 질렀다. "고기 버리는 것을 다 봤다"고 하자 "그런 적 없다"고 딱 잡아뗐다. 단속반은 초계기에 증거 영상을 확보했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촬영한 영상이 화질이 흐려 식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럴 때 해경은 인근 바다에서 이들이 버린 고래고기 덩어리부터 찾아 나선다. 이날도 바다에 떠 있는 고래 사체 17점을 찾아냈다. 이후 해경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항공 촬영 영상의 화질을 개선했다. 희미하지만 갑판에 묻은 고래 혈흔도 일부 찾아냈다.

지난 3월 불법 포경업자들이 바다에 버린 고래고기를 해경이 수거하고 있다. /군산해경 제공

선장 A씨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해경은 그 자리에서 A씨와 선원 4명을 체포했다. 해경 조사에서 A씨 일당은 지난 2월 말부터 10여일 동안 5m가 넘는 밍크고래 3마리를 몰래 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체는 해체한 뒤 암시장에 팔아치울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잡은 밍크고래는 1마리에 6000만~7000만원 선에 팔린다.

군산해경은 올들어 불법 포경선 선장과 선원 등 21명을 수산업법과 야생생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 모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군산해경 관계자는 "육지의 수사본부와 바다의 경비함정, 하늘 위 초계기가 합동으로 단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평소엔 눈 앞에서 뻔히 보고도 놓치거나, 잡은 뒤 증거를 대지 못해 풀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했다.

◇포경업자들, 포획·운반·유통 등 ‘점조직’ 역할 분담
우리나라에선 1986년부터 상업적 목적으로 고래를 잡는 행위가 전면 금지돼 있다. 고래를 잡으면 수산업법과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각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마리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래는 잡으면 이른바 ‘대박’이기 때문에 불법 고래잡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작년까지 5년 동안 우리나라 인근 해역에서 불법 포획된 고래는 모두 53마리에 이른다. 우연히 그물에 걸려 죽은 채 올라오는 고래까지 합치면 8000마리에 가깝다.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는 조사 과정에서 불법 포획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 적발되지 않은 채 몰래 잡아 몰래 처분한 것까지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해경은 보고 있다.

지난 3월 해경이 나포한 고래잡이배. 선수에 작살잡이를 위한 철제 손잡이와 배 중앙에 고래 수색을 위한 망루가 설치돼 있다. /군산해경 제공

A씨 일당처럼 전문적인 포경업자들은 고래잡이를 위해 맞춤형 어선을 만든다. 이른바 ‘포수’라고 불리는 작살잡이가 작살을 던지기 쉽게 하기 위해 뱃머리에 철제 손잡이를 설치한다. 또 고래를 잡으면 쉽게 갑판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선박 측면은 아예 뚫어놓는다. 이후 ‘기술자’라 불리는 선원들이 고래를 토막내 해체할 수 있는 자동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이들 포경업자들은 포획과 운반, 유통 등 단계적으로 역할을 나눠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가령 포획팀이 고래를 잡아 해체한 뒤 바다에 띄어 놓으면, 좌표를 받은 운반팀이 바다에서 고기를 수거해 유통업자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갈수록 단속이 강화되어도 일망타진이 어려운 이유다.

해경은 포획 단계에서부터 단속해 근절하는 것이 불법 고래잡이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이번 육해공 합동 검거 작전을 통해 불법 포경업자들이 바다에 증거를 버려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며 "포경업자들이 지능화되는 만큼 해경의 단속도 정밀해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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