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주의자의 미식여행>도라지·감자 넣은 영계길경탕.. 일꾼들과 즐긴 '나눔 보양식'
지인과 함께 찾은 강릉 현지인 맛집 - (2)
창녕 조씨 종가 ‘서지초가뜰’
모내기때 일꾼·이웃과 먹던
‘못밥·질 정식’이 대표 메뉴
‘복짬’ 짬뽕
군산 흰찰쌀보리 넣어 면반죽
텁텁함 없는 개운한 국물 일품
‘초당소나무집’ 젤라또
고소한 맛 품은 인절미젤라또
혀에 가루 질감 또렷이 느껴져
아직 무더위가 도착하지 않은 강릉의 날씨는 쾌적하고 시원함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눈을 떠 창문을 여니 경쾌하게 내리는 비가 창문 바로 앞 소나무 숲을 시원히 해갈해주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신선했다. 비 내리는 경포대 해변은 높은 파도 때문에 발도 담글 수 없다는 안전요원의 짧고 예민한 호각 소리도 파묻힐 만큼 힘찬 파도 소리가 우렁찼다. 강릉 여행의 두 번째 날, 오래전부터 방문하고 싶었던 창녕 조씨 종가이자‘농가맛집’으로 잘 알려진 서지초가뜰로 향했다. 논두렁 너머로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 종가의 모습은 이내 곧 동양화 병풍을 펴 놓은 듯 아름다웠다.
종가 사랑채 입구에 ‘홍운탁월(烘雲拓月)’이란 글씨가 보였다. 뜻을 헤아리고 있을 무렵 최영간 종부가 맞아주었다. “시할아버지가 늘 해주시던 말씀이지요. 경농(經農)과 여재(如在) 그리고 홍운탁월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왔습니다.” ‘경농’은 농사를 경영한다는 뜻이고 ‘여재’는 자식을 보는 어미의 마음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라는 의미의 단어다. 또 ‘홍운탁월’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구름을 그릴 때 넉넉함이 남겨놓은 여백에 밝은 달이 뜬다는 문구로, 매사에 여유롭게 정성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를 보게 된다는 은유적 뜻이 담겨 있다.
서지초가뜰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주문했다. “서지초가뜰의 대표메뉴는 못밥 정식과 질 정식입니다.” 최영간 종부의 설명이 이어졌다. “품앗이를 통해 서로의 논에 모내기를 해주던 시절, 일꾼들에게 만들어 제공했던 식사가 바로 못밥입니다.” 그리고 모내기로 한창 바쁘던 때 하루를 정해 동네 사람들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쉬었던 날을 ‘질 먹는 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질 먹는 날에 저희 집에서 만든 여름 별미도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질 정식’입니다.” 또한 “씨종지떡(볍씨를 빻아 만든 떡)과 영계길경탕(영계도라지 탕)이 내림음식 중 여름 별미입니다.”
씨종지떡이란 모를 심는 시기인 청명 때부터 볍씨를 일부러 조금씩 남겨 한꺼번에 갈아서 쑥, 호박오가리, 감 껍질, 감 조각, 풋 강낭콩 등을 함께 넣어 만든 떡으로, 이 떡을 만들어 질 먹는 날에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식감이 과하지 않고 가벼워 여름에 즐기기 딱 좋은 떡이다. 만들 때 함께 넣은 감, 호박 등은 쪄낸 후에 단맛이 증가해 쌀떡과의 조화가 좋았다.
영계길경탕은 어린 닭에 마른 도라지(길경)를 넣고 가마솥에서 푹 끓여낸 보양식이다. 삼계탕과 달리 일꾼들에게까지 인삼을 먹일 수 없어 인삼과 효능이 비슷한 도라지를 넣고 끓인 후 감자 혹은 옹심이를 넣어 큰 가마솥에 하나 가득 끓여내는 여름 별미다. 영계길경탕은 육수 맛이 진하고 옹심이 대신 넣은 감자가 국물을 농축해 깊은 맛이 느껴졌다. 말린 도라지는 장시간 가마솥에 끓여 냈음에도 씹는 맛이 잔잔하게 남아있었다. 이날 질 정식을 주문했는데 직접 영계길경탕과 함께 준비된 다양한 찬을 먹어보니 이 정도의 식사를 오래전부터 일꾼들에게 제공했다니 그 성의가 놀라웠다.
최영간 종부는 “할아버지께서 농사 짓는 사람들을 잘 섬기셨다”고 말하며 질 먹는 날을 준비하며 할아버지가 당부하셨던 말씀을 전해줬다. “할아버지께서 ‘씨종지떡은 푼푼이 해라’ ‘술 거를 때 물은 많이 주지 마라’ ‘싱거우면 못 쓰니 음식은 다 많이 해라’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요. 그 말씀을 기억하며 서지초가뜰을 지켜나가는 힘을 얻어요.”
서지초가뜰에서 이른 점심을 마친 후 선교장, 허난설헌 생가와 자수박물관을 연이어 방문하며 강릉이 보유한 전통 자원의 풍부함을 느꼈다. 이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을 무렵, 어김없이 허기가 찾아왔다. 감자옹심이 등 강릉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보다 풍부한 해산물을 기반으로 매콤한 국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짬뽕이 당겼다.
짬뽕 맛이 거기서 거기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강릉짬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 서운해할 것이다. 강릉에는 중국음식점이 아닌 짬뽕 전문점이 여러 곳 있다. 면 위에 홍합을 껍데기째 수북이 얹어 국물을 부어내는 스타일과 모든 해산물을 잘 손질해서 얌전하게 면 위에 올려내는 스타일로 양분되는데 복짬의 짬뽕은 후자다.
주방장을 맡고 있는 복짬 사장님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면을 삶고 국물을 만들고 끓이기 시작한다. 15분 이상 기다려야 짬뽕을 먹을 수 있다. 군산과 김제지역에서 재배되는 흰찰쌀보리를 넣어 만든 면반죽을 숙성해 사용한다고 했다. 면발의 적당한 무게감과 쫄깃한 식감이 좋았다. 고춧가루 국물은 진하고 매콤했는데 한번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었다. 매웠지만 개운했고 텁텁함도 없었다. 맵기를 조금 순화하면 좋겠다는 개인적 아쉬움은 있었지만 강릉 현지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식당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는데도 식당 좌석은 빈 곳이 없었다.
순두부로 만든 젤라또를 맛보기 위해 초당순두부 길로 차를 돌렸다. 순두부젤라또는 초당소나무집에서 함께 운영하는 젤라또 전문점이다. 순두부젤라또가 대표 메뉴로 그 외에 인절미젤라또와 흑임자젤라또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순두부젤라또는 두부의 순한 맛과 은은한 콩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인기가 있다는 인절미젤라또는 콩가루의 고소한 향과 맛이 좋았다. 하지만 인절미 가루의 질감이 하나하나 또렷이 혀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좀 불편하고 거칠었다. 재료 혼합 때 가루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콩가루를 용해해서 섞지 않고 가루 그대로 사용한 듯하다.
젤라또를 아이스크림의 이탈리아어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젤라또와 아이스크림의 차이는 온도, 공기함량 그리고 대량생산 여부다. 온도는 젤라또가 높고, 공기함량은 아이스크림보다 적다. 그래서 이가 시리지 않고, 질감이 크림같이 부드러워 노인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우유, 과일, 야채, 초콜릿 등 천연재료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젤라또를 만드는 사람을 ‘젤라또 셰프’라고 부른다.
순두부젤라또는 순두부의 맛과 향, 그리고 질감을 잘 살렸을 뿐 아니라 순두부로 젤라또를 만들었다는 사고의 확장만으로도 초당순두부 길목에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전통의 맛과 새로운 맛이 함께 공존하며 초당순두부길이 하루 종일 북적이는 거리가 되길 희망했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짬뽕재료 소진땐 문닫아… 주말저녁엔 서둘러야
창녕 조씨 종가에서 운영하는 서지초가뜰(033-646-4430)은 강릉시 난곡동 264에 위치해 있다. 농부들의 일바라지 음식이었던 ‘못밥’정식은 1만5000원, 여름별미 ‘영계길경탕’이 포함된 식사 ‘질 정식’은 2만 원이다.
면발이 쫄깃하고 국물이 매콤한 짬뽕을 즐길 수 있는 복짬(033-651-2638)은 강릉시 포남2동 1084-7에 위치해 있다. 짬뽕 7000원. 주말 저녁에는 일찍 가야 한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순두부젤라또(010-7523-4487)는 강릉시 초당순두부길 95-5에 위치해 있다. 순두부젤라또 3500원.
본문에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초당순두부 마을에서 유일하게 솥밥을 내는 지연순두부(033-653-7398)는 강릉시 순두부길 55에 위치해 있다. 째복(비단조개)을 넣은 순두부를 즐길 수 있다. 순한맛 8000원, 매운맛 9000원, 모두부 9000원.
오죽헌과 선교장, 허난설헌 생가, 동양자수 박물관(입장료 5000원)에서 전통의 멋을 느끼기에 좋다.
해수사우나로 유명한 MGM호텔(033-644-2559)은 가성비가 좋아 가족여행에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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