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배의 향기 라이브러리] '샤넬 넘버5' 향수는 해 질 녘 바이칼호수서 탄생

2019. 7. 1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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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사는 열정·인내의 직업
첫 관문은 후각테스트 통과
도제식수업..길게는 3년 훈련
아모레퍼시픽 향연구실에서 실제 생화를 이용해 향기를 포집하는 모습.
인생을 바꾸는 향수를 우연히 사용한다는 드라마 '퍼퓸' 덕분인지, 요즘 많은 학생들이 내게 어떻게 하면 조향사가 될 수 있는지 많이 물어본다.

우선은 향료회사에서 전문 조향사가 되거나, 화장품이나 식품 회사 내 향료연구팀에서도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 보통 조향사는 '향장품 향료 조향사(Perfumer)'와 '식품 향료 조향사(Flavorist)'로 나뉜다. 향장품 향료 조향사는 다시 향수, 스킨케어, 헤어케어, 보디케어, 홈케어(방향제, 디퓨저, 향초) 조향사 등으로 세분화된다. 사실 조향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직업이다.

우선 조향사가 되려면 후각이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실제로 조향사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은 후각테스트이다. 보통 후각테스트는 냄새의 차이를 잘 구별할 수 있는지, 냄새의 강도를 잘 구분할 수 있는지, 특정한 냄새에 취맹(부분 취맹)이 아닌지, 냄새를 잘 기억할 수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시험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후보자들이 이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렇게 선발된 조향사는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게 되는데 보통 6개월에서 3년까지 훈련받는다. 이 기간 동안 선생님이 옆에 붙어서 도제(徒弟)식으로 향에 대한 기초지식과 조향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한다.

신입 조향사는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접하면서 조향 경험을 차곡차곡 쌓고, 그동안 선생님은 제자가 어느 분야에서 일할 때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꾸준히 확인하며 훈련을 시킨다.

이렇게 훈련 기간을 마치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찾은 조향사는 본격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나의 경우 치약의 좋은 향을 개발하기 위해 하루에 무려 27번의 양치를 한 적도 있고, 고객들이 원하는 멋진 스킨케어 향을 만들기 위해 300번이 넘는 실험을 한 기억도 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축적해서 훌륭한 조향사가 되기도 하고, 또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에 조향사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향료 업계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향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기간을 보통 10년으로 본다. 즉 10년 정도는 꾸준히 향을 만들어야 조향사라는 호칭을 들을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조향사에게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향사들은 후각이 둔화되지 않도록 본인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훈련한다. 어떤 조향사들은 매일 향수를 맡으면서 코를 단련시키기도 하고, 어떤 조향사들은 매일 다른 종류의 천연 및 합성향료를 맡으면서 코가 녹슬지 않게 만든다. 주기적으로 식염수로 코를 세척해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도 있다. 에르메스의 수석조향사인 장클로드 엘레나는 건강한 후각을 유지하기 위해 술, 담배는 물론이고 자극적인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향사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자질은 열정이다. 작곡가, 미술가와 같은 예술가처럼 조향사는 끊임없이 향을 창조해내야 하므로, 새로운 것에 대한 창의적인 애정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향사들은 여행을 하면서 꽃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향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음악회나 전시회 등에서 영감을 얻어 멋진 향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해 질 녘 바이칼 호수의 아름다움을 보고 러시아의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는 샤넬의 '넘버 파이브(No.5)' 향수로 승화시켰다. 필자의 경우 향은 거의 없지만 봄마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의 이미지를 향으로 표현해 해피바스의 '체리블라썸 바디 워시'로 출시하기도 했다.

[전병배 아모레퍼시픽 고객감성랩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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