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없애는 녹두, 해독주스 재료로 제격 [허브에세이]
한약을 먹을 때 녹두를 금하기도 한다. 녹두가 약의 유효성분마저 분해해버려, 약효가 떨어질까 우려해서다. 만약 내가 해독주스를 만들었다면 분명 녹두를 넣었으리라.
수년 전 이른바 ‘해독주스’가 유행했었다. 양배추, 브로콜리, 토마토, 당근을 삶은 다음 여기에 사과와 바나나를 넣어서 같이 갈아 먹는 일종의 홈메이드 건강음료였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변비를 개선한다 하여 인기를 끌었다. 식이섬유가 많은 과채류로 만들었으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해독(解毒) 효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진짜 해독주스를 만들려면 무엇을 넣어야 할까.
먼저 독(毒)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은 독에 대해 ‘건강이나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인체에 오로지 이롭기만 한 물질이 있던가. 무엇이든 과하게 섭취하면 해가 된다. 여기에는 물도 포함된다. 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사례가 실재하니, 사전에 따르면 물도 독인 셈이다.
‘거참 과장이 심하네. 그렇게 따지면 독 아닌 게 어디 있나. 독은 그런 게 아니라, 조금만 섭취해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물질을 말하는 거지.’
현명한 독자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으리라. 맞다. 양이 중요하다. 그래서 LD50(lethal dose 50%)이라는 수치가 있다. 우리말로는 반수치사량(半數致死量)이라 한다. 한 무리의 실험동물 결과 50%를 사망시키는 독성물질의 양으로, 보통 mg/kg 단위를 쓴다. 독성이 강할수록 숫자가 낮다. 쥐에게 경구투여를 할 때를 기준으로 물 9만, 에탄올 7000, 소금 3000, 카페인 250, 청산가리 10 정도다. 독이라 부를 만한 한약재도 있다. 사약의 재료로도 쓰였던 부자(附子)가 대표적이다. 부자의 주성분인 아코니틴의 LD50은 0.3mg/kg으로, 청산가리보다 더 독하다.
이 독을 푸는 약재가 있다. 바로 녹두(綠豆)다. 빈대떡에 들어가는 익숙한 식재료가 맞다. 본초학적으로 청열해독약(淸熱解毒藥)에 속한다. 열을 내리고 독을 푼다. 더위를 식히고 목마름을 그치게 한다. 종기와 상처를 치료하고, 파두(巴豆)나 부자 같은 약재에 중독된 것과 여름에 더위 먹은 것을 치료한다. 〈동의보감〉에는 녹두에 대해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삶아 먹으면 열을 내린다. 머리가 아픈 것을 치료하는데,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면 좋다. 물에 넣고 달여 먹으면 12경맥을 잘 돌게 한다. 즙을 내어 마시면 당뇨를 치료한다. 녹두가루는 열독을 없애고 술독이나 식중독을 치료하는데,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좋다. 녹두죽은 열이 나고 목이 마른 것을 치료한다’고 나온다.
이 글을 보고 매일같이 녹두를 갈아 먹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된다. 올바르게 유통된 식품을 섭취하는 현대인은 독성물질에 중독될 일이 거의 없다. 중독되지 않았는데 해독제를 먹을 필요는 없다. 해독 효과 없는 해독주스도 마찬가지다. 안 먹어도 괜찮다.
이상진 한의사, 전 보령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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