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프인터뷰] 이건명 "'투란도트' 슬로바키아 공연 빨리 보고파"

박은희 2019. 7. 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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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로 시작한 작품이 인생 한가운데..매순간 소중히 여기게 하는 사건"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투란도트’가 매년 여름 내 인생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의리로 시작한 작품이 이렇게 오래갈지 꿈에도 몰랐죠.”

뮤지컬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 역을 맡아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매 시즌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이건명은 ‘투란도트’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딤프·DIMF)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2006년 프리를 시작으로 매년 열리는 딤프는 2011년 직접 제작한 ‘투란도트’를 개막작으로 정식 소개했다. 유희성 연출가와 이해제 작가, 장소영 음악감독, 이란영 안무가, 조문수 의상감독이 의기투합해 탄생한 작품은 대구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올해도 제13회 딤프 특별공연으로 지난달 29일부터 계명아트센터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건명은 “첫 공연부터 매진을 기록해 얼떨떨하고 감사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트라이아웃까지 하면 10년째 하는 공연이라서 ‘보실 분들은 다 보셨을 텐데’라는 걱정이 좀 있었어요. 첫 공연을 하는데 1천900여석을 꽉 채운 관객들이 에너지를 쏟아서 박수와 함성으로 응원해주시는데 그냥 마냥 감사했어요.”

이건명은 여름 작품에 들어갈 땐 미리 트리플 캐스팅으로 부탁하는 게 몇 년째 아주 자연스럽고 대구의 맛집은 현지인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딤프와 ‘투란도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그의 지나온 얘기와 현재의 생각들을 들어봤다.

[딤프 사무국 제공]

다음은 뮤지컬배우 이건명과의 일문일답.

- 처음부터 딤프와 함께 했다고 들었다.

“프리 때부터 참여해오고 있다. 그 전에 뮤지컬 ‘맘마미아’로 한달 반 대구에 있었고 그 다음에 ‘미스사이공’으로 한달 정도 있으면서 배성혁 딤프 집행위원장과 친해졌다. 인간적으로 너무 잘해주시니까 ‘이런 제작자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분이 딤프라는 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기획하시니까 함께 안할 이유가 없었다. 무조건 내려가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시작을 했다. 그게 인연이 돼 ‘투란도트’도 처음엔 의리로 했다.”

- 처음 접한 ‘투란도트’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처음엔 콘서트 버전으로 트라이아웃을 했는데 음악이 너무 좋았다. 그때 모두가 그 얘기를 했다. 창작뮤지컬의 가장 큰 무기일 것이다. 장소연 감독님도 내가 어느 음역대에서 가장 쓸만한 소리가 나오고 어느 음역대를 벗어나면 좀 애매한 소리가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딱 그 음역대에 맞춰서 써주셨다. 정말 내가 가장 힘들게 뽑을 수 있는 소리들을 딱딱 찍어놓으니까 감정표현이 너무 잘되는 거다. 여자 곡도 그렇고 그 배우한테 정확히 맞춰서 하다보니까 음악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것들의 힘이 있었겠지만 가장 도드라진 매력은 음악이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는 힘 중의 하나일 것이다.”

- 창작과정에서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일단 물속 표현하는 걸 연출님부터 영상감독님, 조명감독님 모든 분들이 가장 힘들어했다. 어느 나라가 아니라 물속의 어느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그걸 앙상블 친구들로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지 고민이 많았다. 아마도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물속세계·신비로움·환상 등을 걸 심는 것이었던 것 같다.”

- 지금까지 업그레이드해오면서 느꼈던 점들이 궁금하다.

“성공을 거듭하면 안주하기 마련이다. 딤프도 그렇고 ‘투란도트’ 스태프들도 그렇고 심지어 배우들까지도 안주하지 않은 게 되게 큰 원동력이 된 것 같다. 매회 조금씩 고치려고 노력했고,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서 그해에 적용하지 못한 건 그 다음해에 시도했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올해도 새로운 곡이 추가됐다. ‘참 대단하시다,멋지네’라는 생각을 했다. 제작팀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면 배우는 당연히 안주할 수 없다. ‘거기에 맞게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를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니까 그런 것들이 재밌게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올해 추가된 넘버 3곡 소개 부탁한다.

“내레이션과 대사로 처리됐던 극의 일부를 넘버로 재구성했다. 예전엔 드라마 전개가 대사와 음악이 오가는 식이었다. 매해 조금씩 수정하다가 이번에 많이 바꿨는데 흡사 송스루 뮤지컬마냥 바뀌었다. 그러다보니까 연결이 훨씬 더 부드럽다. 공연을 보시는 분들도 느끼실 것이다. 연기를 하는 우리한테도 감정변화가 너무 수월하다.”

- 새로 합류한 해나와의 연기 호흡은 어떤가.

“이번 작품에서 해나를 처음 만났는데 걸그룹이었다고 하더라. 어떤 노래인지 들어보니 해나 소리와 안 맞아서 좀 답답하더라. 해나에게 ‘그래. 여기로 왔으니까 니가 가진 거 다 토해내라’고 했다. 어린 친구가 조금 참아왔던 에너지를 쏟아내는데 너무 멋졌다. 게다가 걸그룹이라는 선입견으로 둘러싸여있는 애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니 보는 사람으로서 속이 시원하더라. 그러다보니까 애정이 좀 더 가게 되고 애정이 가다 보니까 호흡은 당연히 더 잘 맞게 되는 것이다. 되게 힘 있는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

- 지금까지 작품에서 만난 많은 후배들 중 ‘칼라프’를 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한 배우가 있나.

“많다. 나는 좀 건장한 친구가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거 되게 선입견이다.(웃음) 근데 칼라프가 왕자긴 하지만 곱게 자라지 않고 전쟁에도 참여하는 왕자라서 용감하기도 하고 왠지 남성미가 느껴지면 한다. 민우혁이나 김우형처럼 누가 봐도 한번에 ‘용맹스럽겠다’는 분위기가 풍기는 그런 친구들이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더블캐스트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동하는 왜소하긴 하지만 날렵하고 스마트함이 있어서 잘 어울린다.”

- ‘투란도트’가 슬로바키아 라이선스 수출 계약을 해서 내년에 초연된다. 한국의 이 창작뮤지컬이 유럽에서도 통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처음 만들 때 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니까 장소를 어느 나라에 국한한 게 아니라 물속의 그 어떤 왕국로 설정하고 이름도 ‘오카케오마레’로 했다. 음악은 동양적이면서 몽환적인 콘셉트를 가지고 만들었다. 한국이나 중국으로 볼 수도 없는 그 어떤 공간의 어떤 음악, 어떤 사건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 가서도 되게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오리엔탈리즘처럼 동양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고, 동양에서는 ‘우리나란가?’ 하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아마 ‘투란도트’가 국제화될 수 있는 큰 무기가 아닌가 싶다. 슬로바키아 작품 빨리 가서 보고 싶다. 내가 한 걸 다른 나라 사람이 하는 걸 한번도 본적 없다. 너무 감격스러울 것 같다.”

- 인생에서 뮤지컬 ‘투란도트’는 어떤 의미인가.

“내 주변 어떤 것이 내게 나비효과로 다가올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않나. ‘투란도트’를 통해서도 ‘그래, 인생 아무도 모르네’ 하는 걸 느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련의 사건들이 있겠지만 이 작품도 나에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매순간 소중하게 여겨라’라고 얘기하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다.”

[딤프 사무국 제공]

- 1996년 ‘아가씨와 건달들’로 정식 데뷔를 했다. 2019년 현재 24년차 뮤지컬배우로서 느끼는 행복은 무엇인가.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은 축복받은 삶이라고 얘기하지 않나. 내가 그 옛날부터 오늘까지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음악으로 내 마음을 치유하는 게 거의 생활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삶인 거다. 굳이 더 얘기하자면 1996년 즈음 뮤지컬은 가난을 각오하지 않고는 뛰어들 수 없는 바닥이었다. 뮤지컬배우라고 하면 ‘힘들지? 그래도 넌 니가 좋아하는 거 하잖아’라고 위로받는 직업이었다. 그 당시 내 또래 배우들은 다 ‘가난? 웃기지마, 나는 꿈을 먹을 거야’라고 뛰어들었다. 그런 직업으로 이젠 의도치 않게 모자라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나. 악조건이 호조건이 돼버려서 그것도 너무 행복하다. 우리끼리 만나면 ‘평생 소주밖에 못 먹을지 알았던 우리가 아주 가끔은 양주를 먹는다’는 얘길 한다. 힘든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라 훨씬 더 소중함을 아는 것 같다.”

- 힘든 시절 어떤 것까지 감수하면서 꿈을 좇아봤나.

“데뷔했을 당시엔 하루 공연되는 뮤지컬이 서너 편뿐이었다. 우리가 아는 ‘아가씨와 건달들’ ‘코러스 라인’, 해적판 ‘레미제라블’, 해적판 ‘캣츠’ 이정도였다. 그 다음해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져서 3~4편 있던 공연이 1~2편으로 줄었다. 밥 먹을 돈이 없는데 누가 공연을 보러 오나. 오디션 볼 작품도, 연습하는 작품도 사라져서 그땐 너무 힘들었다. 물질적인 것도 힘든 건데 내가 사회적으로 쓰임이 없어지니 ‘내 존재가치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 괴로웠다. 난 스스로의 자존감이 굉장히 높던 사람인데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왜 존재하는가’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사회 탓을 하게 됐다. 왜냐면 갓 사회에 뛰어든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점점 시니컬해지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빠졌더니 사랑하는 여자도 떠나고 그러니까 더 힘들어졌다. 무대가 좋은 것 하나, 빨리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맘 하나로 겨우겨우 기어 올라왔다.

- 방송 매체엔 전혀 관심이 없었나.

“그때는 자존심이 너무 셌다. 대학 다닐 때도 댄스그룹 하자는 레코드사도 있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다니면 많은 관계자들이 와서 본다. 내가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주인공을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봤다. 뮤지컬 하겠다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한 데다 키도 작지 않으니 구본승을 데뷔시킨 음반사에서 2인조 댄스그룹을 만들겠다고 하더라. 그때는 ‘전 무대할건데요’ ‘전 연극할건데요’ 이런 단호함이 있었다. 그 당시까지는 매체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수많은 무대배우들이 매체에서 오면 ‘우린 너희와 달라’ 이렇게 바보 같은 자존심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세상 가난하면서 왜 그렇게 자존심들이 셌나 모르겠다.”

- 그런 고집은 아직도 있나.

“그러니까 이렇게 무대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니겠나. 그저께 하루 종일 리허설을 하고 어제 드레스리허설 후 첫공연을 했다. 어제 아침에 피트니스센터 가서 운동하고 오다가 안무팀을 만났는데 놀라더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무대에서 2시간 반동안 칼라프로서 에너지를 끌고 가는 게 버거워진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놓아야 된다. 근데 아직은 무대 위에서 체력 따위 때문에 놓는 일은 없다. 그걸 위해서 오늘도 운동을 하고 왔다. 옛날에 부린 고집이 그런 쪽으로 옮겨간 것 같다.”

- 자기관리가 철저한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관리를 못했으면 누가 칼라프 왕자를 9년을 시켜 주나. 나이가 몇인데. 관리 안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나. 일주일에 4~5일 정도는 운동을 한다. 취미를 아예 체력관리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바꿨다. 자전거 타는 취미를 가진 지가 너무 오래됐다. 시간이 나면 자전거를 끌고 제주도도 가고 한번은 일본 후쿠오카 자전거투어도 다녀왔다.”

- 공연 외 관심사는 무엇인가.

“너무 많다. 자전거도 있고 남들 공연도 되게 많이 보러 다닌다. 사람 좋아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러 다니는데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야 되니까 술도 마시게 되고. 공연 때는 술을 거의 못 먹다보니까 공연이 없을 때는 최선을 다한다. 다음날 일어나면 ‘큰일났다’ 하고 운동 가서 땀 좀 빼고. 왜 이렇게 사나 모르겠다, 나도.(웃음)”

- 공연이 없을 때 여가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

“시간이 많을 땐 여행을 좀 다닌다. 얼마 전에도 보라카이가 다시 개장했다고 해서 깨끗한 바다일 때 보고 싶어서 한번 갔다 왔다. 쪽시간엔 책을 많이 본다. 항상 가방에 1~2권씩 갖고 다닌다. 현대인이다 보니까 휴대폰도 많이 본다. 그래서 옛날에 책 읽던 습관을 다시 가져오고 싶어서 문지애 아나운서가 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매주 ‘책읽어주는 남자’라는 코너의 패널을 뛴 적이 있다. 일주일에 책 한권을 읽고 문지애 아나운서와 연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잘됐다’ 하고 독서를 했더니 책이 다시 손에 잡히기 시작하더라.”

- 요즘 읽은 책 중 추천을 해준다면.

“류시화 시인의 에세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랑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그렇게 2권 갖고 다닌다. 후자는 각국의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호텔들을 여행하면서 기행집으로 만들어놓은 책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는 ‘우리가 왜 이렇게 바동거리면서 살지’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인데 되게 좋다.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하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너무 달리지 않나. 걸으면 뒤처지는 사회다. 그런 나라가 흔치 않겠지만 저 먼 유럽처럼 다 같이 걷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데 이 사회는 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 아픈 일인가.”

- 창작뮤지컬이나 소극장 공연에 꾸준히 참여하며 다양한 관객을 만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화려하고 주목받는 작품만 고집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연극은 주로 소극장에서 하지 않나. 연극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연극에 항상 로망을 가지고 있다. 근데 어찌하다보니까 대극장 뮤지컬배우라는 타이틀을 떠안게 돼서 주로 대극장에서 섭외가 온다. 갈증은 항상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나의 갈증을 아는 제작사 분들이 대본을 보내준다. 대본을 보고 ‘너무 재밌다’ 싶으면 ‘잠시 나 대학로 좀 갔다 올게’ 하고 무조건 간다. 그게 내 갈증도 풀어줄뿐더러 나를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소극장은 한눈에 무대가 딱 들어오니까 2시간 동안 단 1초도 내가 긴장을 놓으면 안된다. 근데 대극장은 사실 누군가에게 포커싱이 돼있을 때 살짝 흐트러져도 티가 안난다. 그런 안일함에 빠질 수 있는 너무나 좋은 조건이 대극장인 것이다. 소극장에서 몇 달을 하고 나오면 그 집중력이 또 몸에 배서 무대 위에서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다. 창작은 내가 만들어낼 부분이 훨씬 많으니까 재밌어서 한다. 내가 인생을 좀 즐기는 스타일이다.”

- 하반기 계획과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얘기해 달라.

“작품은 내년 봄까지 계획돼 있다. 쉬면 (팬들이) 뭐라고 한다.(웃음) 나는 이 세상 모든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건강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건강만 하면 그 어떤 일이 닥쳐도 다 해결할 수 있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변에서 건강에 문제가 생겨 힘들어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나는 무조건 매해 계획이 ‘건강하자’다. 다행스럽게 올해도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반 지났으니까 나머지 반도 철저하게 건강해서 무대 위에서나 실생활에서나 항상 좋은 모습 보여주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 목표다. 연말까지 그렇게 살겠다.”

박은희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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