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진의 오늘 하루]콩새의 귓속말
[경향신문]
대화를 끝낸 그는 조용히 평상 위에 누웠다. 가을하늘 품은 햇살이 그의 등을 따사롭게 덮었다. 조금 전 그는 이 옥상 아래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조폭들이니 조심하라는 귓속말을 내게 건넸고 나는 내 안위를 염려하는 콩새의 마음에 고맙다는 화답을 마친 참이었다. 물론 그의 말은 진짜가 아니다. 애칭 ‘콩새’로 불리는 그는 후천적으로 생긴 조현병으로 인해 정신장애가 있다. 발병 이후 세상과 담을 쌓은 콩새가 유일하게 집 바깥을 찾는 곳이 이 옥상 아래 입주해 있는 수원정신보건센터다. 우리는 몇 달째 ‘카메라로 세상 마주보기’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오는 사이였다. 심리적 불안 상태라 하더라도 마음을 다한 ‘충고’를 내게 건네는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콩새는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감정의 폭이 큰 탓에 불안한 순간도 잦았지만 마음이 가는 사물이나 공간을 보면 날쌔게 달려가 셔터를 눌렀다. 횟집 수족관에 있는 바닷게를 찍고는 “나도 갇혀 있다”고 표현하거나 건물 바깥의 햇살 가득한 마당을 보며 “나도 이제 저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할 때는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콩새를 포함해 다섯 명의 같은 질환을 가진 이들과 6개월 동안 만나면서 그들에게 세상과의 접촉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숲과 거리를 함께 거닐거나 놀이공원에서 수많은 관람객들과 몸을 스치기도 했다. 세상을 느끼고 그 느낌을 이루는 감정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성을 인지하게 되길 바랐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이들을 환자가 아닌 또 다른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배움의 여정이기도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콩새의 귓속말이 귓가에 남아 흔들린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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